• “우리의 비판과 항의,
    반미-친러시아 진영론 비판”에 대한 답변
    [답변과 반론] 서로 존중하며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길
        2022년 12월 21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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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러시아인의 푸틴과 러시아의 침략전쟁 비판, 그리고 반미-친러시아 진영론에 치우친 이들을 초대하여 진행한 국제포럼 행사에 대한 비판 기고 글을 레디앙에 게재한 바 있다.(기고글 링크) 이 기고에 대한 반론 글을 국제전략센터와 프라샤드가 보내와서 싣는다. 의미 있는 논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앞의 기고 글을 영어로 번역하여 뒤에 붙였다. 이번 프라샤드의 기고들도 영어 원문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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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비판과 항의, 반미-친러시아 진영 논리” 기고에 대한 답변

    * 국제전략센터는 지난 12월 6일과 7일, 사학자이자 언론인이며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장인 비자이 프라샤드를 두번째테제 출판사와 함께 한국에 초청하여 진보 시민단체와의 국제 진보포럼과 진보정당과 함께한 포럼, 출판사와 함께한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이 행사는 기후위기와 경제위기 속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유라시아와 동아시아에서 고조된 긴장 상황을 신냉전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연대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기획되었습니다. 또한, 신냉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최근 출간된 <신냉전에 반대한다: 워싱턴이 벌이는 신냉전과 절멸주의에 관한 노트>의 책 내용을 소개하고 토론의 장을 열고자 했습니다. 이 행사를 계기로 한국 시민사회와 진보정당, 진보적 지식인과 시민이 한자리에 모여 주류 언론에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담론을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최근 레디앙에는 이렇게 열린 포럼 및 연사들에 대한 비판과 항의 기고가 발표되었습니다. 재한 러시아인들의 반전 단체 Voices in Korea와 러시아 페미니스트 반전 저항의 한국 모임(cell)에서 활동하는 재한 러시아인 알렉산드라 씨의 기고 “우리의 비판과 항의, 반미-친러시아 진영 논리”라는 글은 일부 오해에 기반하여 있고 사실이 왜곡된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째, 행사의 내용과 참여했던 초청 연사 중 그 누구도 친러시아 진영 논리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행사에 초청 연사였던 노엄 촘스키는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하며 그들의 범죄 행위”임을 분명히 했으며, 한국에 초청한 비자이 프라샤드 역시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전쟁에 대한 미국의 역할에 대해 역사적으로, 또한 현재 진행 중인 근거를 가지고 폭로하는 활동이 반미-친러시아의 진영주의자로 낙인찍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중국에 대한 입장은 한국에서도 논쟁이 많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중국 민중이 아니라 집권 세력만을 지지하는 것이라 매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고 글은 연사 비자이 프라샤드의 소셜 미디어 사진을 캡처해서 수록하는 등 소셜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일부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여러 정보 및 거친 논쟁과 조롱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는데 일부 과장되거나 사실과 맞지 않는 인신공격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비자이 프라샤드에 대해서 친러시아 인사라거나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지지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한국에서의 포럼의 맥락은 사라지고 비난이 자리 잡은 모습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안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건설적인 비판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의견 차이에 대해서 비판하기 전에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는 자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전, 평화와 같은 옳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에 대해 존중을 표하지만, 비판을 하기 전에 적어도 저희가 전달하려는 내용에 대해서 먼저 들어보고 비판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전략센터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 성평등, 생태, 민주주의,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교류와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해 서로를 이해하고 뜻을 모아 위기를 타파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기고 글에 대한 비자이 프라샤드의 답변 전문과 국제포럼 내용을 담은 기사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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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번역본] 진보 진영이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길은 없는가

    비자이 프라샤드

    나는 30년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를 포함해 많은 전쟁 지역과 현재 진행 중인 전쟁 지역을 다녔다. 내 자신도, 그 어떠한 이들도 보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많은 것들을 봐왔다. 전쟁 지역에 대해서 흔히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군사 장비의 시끄러운 소음과, 총소리와 폭탄 소리 등으로 인한 소음이다. 특히나 큰 소리가 나는 현대의 폭탄은 민간 지역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어린 아이들의 비명을 유발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보고 경험하는 죽음과 주변 어른들에 대해 가지는 신경학적 공포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 지역의 소음 때문에 여러 세대에 걸쳐 아이들이 겪었을 트라우마를 상상해보라. 전쟁의 폭력 때문에 인류가 치러야 하는 재앙을 본다면 어떠한 전쟁도 지지할 수 없다.

    내가 겪어 본 전쟁 중에서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가고 인구 전체의 삶을 황폐화하며 국가에 상상 이상의 상처를 남긴 이라크 전쟁만큼 참혹한 전쟁은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현지에서 보도하고 있는 기자들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이라크의 피해를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고통에 비교하지만 어떤 전장이 더 참혹한지는 비교할 수 없다.

    전쟁을 반대해야 하며 전쟁을 막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내가 말하고 실천해온 모든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전쟁을 반대해 왔고,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 역시 반대한다. 이것이 내가 2014년부터 협상의 필요성과 인접 국가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평화를 향한 제스처라기보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그려지는 것은 이상하다. 자기 의견과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하여 무조건 자기와 정반대되는 것으로 치부하며 비난하는 흑백논리는 상당히 위험하다. 이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그렇다. 이러한 입장이 미묘한 차이나 대화의 공간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전에 내가 소셜 미디어에 “Zero COVID”라는 문구를 들고 찍은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팬데믹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국민을 살리지 못한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을 보면서, 지난 3년간 (중국과 같은) 정부가 효과적으로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해온 것에 감탄했다. 그 사진은 내가 출장 중 호텔 방에 있던 펜으로 쓰고 찍은 것이다. ‘Zero’의 ‘Z’를 두 겹으로 써서 색이 진해졌다. 이렇게 진하게 쓴 ‘Z’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는 의미로 읽혔다. 전쟁을 종식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나의 공공연한 발언이 있었음에도 이런 거짓이 사실로 유포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이 사진은 내가 중국 정부와 중국의 모든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인사라는 징표로 해석되었다. 중국이 팬데믹에 대응한 방식, 절대 빈곤을 종식하기 위한 정책, 국민의 사회적 발전을 이뤄온 방법과 같이 중국 정부의 많은 정책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은 분명 사실이다. 중국을 인도와 비교한다면 중국 정부가 이뤄낸 놀라운 발전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서구 언론의 주장은 완전히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종종 과장된) 이런 주장들을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중국 정부에 대한 이런저런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그 대답으로 올바른 생각을 가진 좌파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신장 지구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홍콩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대만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리트머스 시험지로 사용된다. 나는 이러한 리트머스 시험보다는 토의와 토론을 하고 싶다. 오직 하나의 정답만 있는 객관식 시험처럼 진보 진영 담론을 대하고 싶지 않다. 역사는 모순덩어리이고, 사회 정책은 어려운 선택지로 가득하다. 역사가 한가지의 옳은 답만이 있는 질문의 연속이라고 믿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이런 인식은 진보 진영 내에서 서로를 해치는 문화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관대해야 서로를 모욕하는 것이 아닌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백해무익한 비방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잃게 할 뿐이다.

    [영어 원문] Can The Left Disagree Without Being Disagreeable?

    Vijay Prashad.

    I have been a reporter for thirty years. During this period, I have been to many former war zones and to active war zones, including in Iraq, Libya, and Syria. I have seen things that I wish I had not seen and that I wish had not been seen by anyone, let alone experienced by anyone. The thing about war zones that is often not talked about is the noise: the loud noises of the military equipment and the sound of gunfire and bombs. The sound of a modern bomb is extraordinary, punctuated as it often is in civilian areas by the cries of little children. Imagine the trauma inflicted upon generations and generations of children by the noise itself, not to speak of the neurological fear of the adults around them and the great loss of life that they experience from early in their lives. There is no war that should be supported based on the catastrophic cost paid by humanity for the violence.

    There is no war that I have experienced that has been as devastating as the war on Iraq, which snatched the lives of millions, devastated the lives of the entire population, and left the country scarred beyond belief. No doubt other reporters who are in Ukraine will come with their own stories. There is no comparison of warzones, one more deadly than the other, although the sheer destruction of Iraq compares to the pain inflicted on Hiroshima and Nagasaki by the atomic bombs.

    Wars are to be opposed and every effort must be made to prevent wars and to end wars.

    So, to claim that I support the Russian war on Ukraine is against everything that I have said or done on the record. I oppose this war as I oppose every war, which is why I have written – since 2014 – for the need for negotiation and for the need for neighbours to find a way to live with each other. It is peculiar that a call for negotiation between Russia and Ukraine is now painted as a ‘talking point’ of Vladimir Putin rather than a gesture towards peace. That is the toxic nature of debate, including within the left, where anything that is not identical with what someone believes is pilloried as the absolute opposite position; the space for nuance and dialogue is being withered by this sort of attitude.

    I posted a picture on social media about Zero Covid. Having lost family and friends in the COVID pandemic, beloved people who lived in countries that had failed their populations, I remain in awe of the three years of Zero Covid policy and practice of countries with efficient governments (such as in China). When I took that picture, I was in a hotel room, where I used the stationery and pen provided for me. I had to draw the Z for Zero twice, which made the Z darker. This extra dark Z was taken to mean support for Russia’s war in Ukraine. This is the absurd place we have entered, where such fantasies are peddled as fact, despite the public record of my arguments for an end to the war.

    Second, the picture was interpreted as a sign that I am a full-scale supporter of the government in China and all its policies. To be sure, I am impressed by the Chinese government’s many policies, such as the way it handled the pandemic, the way it has eradiated absolute poverty, and the way it has managed the social development of the population. If you compare China with India, you will have no problem seeing the impressive developments in the former. There is a noxious way in which Western media claims about China are taken as completely correct, and then these claims – often exaggerated – are put before one as a litmus test: what do you think about this or that policy of the Chinese government, and based on one’s answer, one is measured for ones correct leftism. What is your view on Xinxiang? What is your view on Hong Kong? What is your view on Taiwan? I have never been interested in these kinds of litmus tests. I am interested in discussion and debate, not in treating left discourse as a multiple-choice exam where there is only one correct answer to every question. History is a bundle of contradictions; social policy is fraught with difficult choices: to believe that history is a sequence of questions with one pure answer is erroneous and it creates a fratricidal culture in the left. We need to be far more generous with each other, able to hold conversations without resort to insults and abuses.

    Out of disagreement comes understanding. But out of malicious slander only comes disorientation.

    국제포럼 기사 링크

    [국제진보포럼] 경제위기, 기후위기, 핵전쟁의 위기는 미패권의 위기, 신냉전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 주체의 등장

    [국제진보포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신냉전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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