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그리웠던 게다
    [낭만파 농부] 다시 봄기운 느끼며
        2022년 03월 31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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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봄이다. 물오른 신록과 빛깔 고운 꽃들로 하여 불현듯 눈에 띄는 봄이기도 하다만 이번에는 따뜻함 또는 포근함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사실 지난 겨울은 몹시 추웠더랬다. 날씨 탓에 난방비도 많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때 맞춰 펼쳐진 대선, 서로 물어뜯기 바쁜 진흙탕 개싸움에 넌덜머리가 나고 그래서 더 추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전투구가 어서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선거판이 막을 내리고 나서 들녘을 굽어보니 거기에 벌써 봄이 와 있었다.

    하지만 여느 해와 달리 꽃은 좀 볼품이 없어 보인다. 겨울이 길었던 탓인지 일주일 남짓 늦게 피어났고 송이도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지금도 서리가 하얗게 내리는 걸 보면 꽃샘추위가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은 ‘절정국면’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하루 확진자가 수십만을 헤아린 지 한 달이 넘어간다. 주종인 오미크론 변이의 독성이 약해 이제는 감염 자체를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사망자와 위중증 환자기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희망적으로 보자면 기나긴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이제는 벗어나나 싶어 가슴이 뛰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엊그제 축구장의 만원관중을 보면 실감이 난다. 오미크론 감염증세가 감기보다 가볍더라는 주변 사람들 얘기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 벼농사두레도 지난 주말에 ‘경작설명회’를 열었다. 이제 한 달 뒤면 벼농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니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경작설명회는 새로 벼농사에 도전할 뜻을 품은 회원들에게 농사 관련 정보와 작업공정을 안내하는 자리다. 해마다 너댓 명 정도가 경작에 관심을 나타내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번에는 열 명 가까운 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에다 얼마 전 한꺼번에 새로 가입한 새내기 회원 환영모임까지 겸하다 보니 서른 명 훌쩍 넘게 북적이는 행사가 되었다. 지난해 가을걷이 끝 무렵의 ‘햅쌀밥 잔치’ 이후 무려 넉 달 만의 공식행사다. 새해 첫머리의 ‘회원엠티’도 건너뛰고, 두레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인 ‘농한기 강좌’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지나온 터다.

    사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설명회가 아니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이미 여러 차례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다. 더욱이 참석자 절반 가까이는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 일반회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시답잖은 농담에도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시시한 선물에도 드잡이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사람이 그리웠던 게다. 온몸으로 봄을 느끼고 싶었을 터. 팬데믹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세월에서 벗어나고픈 바람이 솟구친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이슥토록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꽃을 피운 동력이었을 테지.

    3월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이렇듯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셈이다. 그것이 농사꾼의 달력이다. 하긴 그 새도 못자리용 상토를 신청하고, 논매미 토양을 채취해 농업기술센터에 제출하는 따위의 준비작업이 없지는 않았다. 여기에 함께 농사를 지을 이들을 마주하고 나니 이제야 농사철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아직 준비할 게 더 남아 있긴 하다. 벼농사에 새로 도전하는 회원과 경작지(논)를 조정하는 일이 남아 있다. 벼농사두레의 새로운 진용을 갖추는 일과 한 해 청사진을 그리는 정기총회도 앞두고 있다. 뭐 머리 싸매고 처리해야 할 과제라기보다는 그저 올해의 첫 잔치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먹고, 마시고, 신나게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하나가 되어가는, 그리하여 다음 번이 기다려지는 그런 잔치판 말이다.

    세상사라는 게 늘 순탄하지만은 않고 더러 뜻하지 않은 일도 벌어지는 것이지만 ‘뜨거운 한 해’를 예고하는 이 봄기운에 숨이 절로 가빠온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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