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테일한 약점 계속 찾아야”
    서울교통공사, 장애인 시위 대응 문건 논란
    전장연 “언론공작 문건 경악···사장 사과, 사퇴해야”
        2022년 03월 17일 03: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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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교통공사가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응지침 문건을 만들어 공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문건엔 여론전을 통해 장애인단체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장애인단체의 실수를 찾아내 시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동권 시위를 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언론공작 문건에 경악한다”며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사과를 촉구했다.

    17일 전장연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언론팀이 작성한 ‘사회적 약자와의 여론전 맞서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문건이 공사 직원게시판에 올라왔다.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전장연이 진행한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한 바 있다.

    YTN 등 복수의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된 문건의 내용을 보면, 공사는 ‘지피지기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고사성어를 쓰며 전장연이 어떤 단체인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적었다. 또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언더도그마’가 지배 논리로 자리 잡은 이슈”라며 언론과 대중이 이에 경도돼 원칙과 절차가 유명무실해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사진=YTN보도 캡처

    특히 해당 문건엔 공사의 실점은 최소화하되 전장연의 실점을 찾아내야 한다, 물밑홍보를 해야 한다 등의 구체적인 지침도 포함돼있다.

    공사가 전장연을 이기려면 대외적으론 “우리도 너무너무 (엘리베이터 등) 설치 개량하고 싶다. 힘들지만 이런 건 하고 있어. 내 맘 알지?”와 같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전장연의 잘못을 찾아내 물밑 홍보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 문건은 “현재는 (전장연이) 출근길 시위로 잠시 휴전 상태지만 디테일한 약점은 계속 찾아야”한다며 “여론전 승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해 강조했다.

    특히 실점과 득점 사례까지 제시하며 향후 대응에 참고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지난해 공사는 전장연이 혜화역 시위를 예고하자 엘리베이터 앞에 ‘장애인단체 불법시위로 운행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붙였다가 시민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이를 공사가 실점한 사례로 꼽았다.

    ‘물밑 홍보’의 성공적 사례로 출근길 선전전 중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하는데 전장연 측이 열차를 막아 갈 수 없다’며 항의한 사건을 소개했다. 또 시위자들이 승강장 틈새에 휠체어 바퀴를 일부러 끼워 넣었다는 ‘고의 운행 방해설’을 퍼뜨린 정황도 담겨 있다.

    또 문건에는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요구에 대해 “근본적 문제 해결이 어려운 만큼 이동권 논의에서 공사가 이슈를 선점할 가능성은 매우 적음”, “교통약자 위한 서비스는(실효성이 있든 없든) 언플용으로 좋은 소재”라고 적시했다. 최근 공사는 2024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해당 문건에 따르면 이 같은 약속도 언론플레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더 나아가 대응 문건에는 장애인단체와의 싸움에서 승리가 확실할 때는 법적 대응까지 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공사 측은 직원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문건일 뿐 공식 문건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장연이 이동권 시위를 하던 당시 혐오와 비난의 목소리가 폭주하면서 전장연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장연은 공사가 시민과 장애인 편가르기에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성명서를 내고 “서울교통공사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상 이행해야 할 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서 역사에서 수많은 장애인의 죽음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며 “공사가 지난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히면 되는 문제였으나, 공사는 이를 ‘장애인과 시민의 싸움’으로 편가름하는 언론플레이 전술을 짜는 데만 급급했다”고 질타했다.

    이 단체는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 요구를 ‘장애인과 시민의 싸움’으로 만든 것은 공사”라며 “그 결과 일부 시민들이 ‘장애인이 죄 없는 시민 발목 잡는다’며 지하철에서 온갖 욕설을 퍼붓고, 전장연 홈페이지와 SNS는 혐오와 협박으로 넘쳐났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서울교통공사의 언론공작 문건의 출발은 문건에도 명확하게 나타나듯 서울시의 무책임에 있으며, 언론공작 문건 작성이 홍보실 언론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 아님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며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공개적인 방식으로 공식 사과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전장연의 캠페인이 불법이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이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교통약자 모두에게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지하철로 만들기 위한 21년의 외침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길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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