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풍 만나면 꼼짝도, 순풍이면 두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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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1월 03일 04: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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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에는 시작할 때부터 글을 썼는데, 솔직히 얘기하면 여기에 글을 쓰는 것이 편하지는 않다. 기분 같아서는 위, 아래, 옆, 뒤, 가릴 것 없이 수틀리면 그냥 "간나"를 퍼붓고 싶지만, 그렇게 상황 파악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나도 주제파악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

    내 인생 처음 만난 ‘빨갱이’의 교훈

    고등학교 때 세계사 선생이 이르시기를, "입 조심, 글 조심, 보약보다 낫다"고 했다. 전교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도 몇 년 전, 그 해를 못 넘기시고 남부교육구청과 대판 붙고, 미국으로 이민가게 되셨다. 내 인생에 만났던 첫 번째 빨갱이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앞뒤 무척 가리면서 글을 쓰는 편이다. 그냥 내키는 대로 욕을 해댔다가는 아마 지금쯤 목이 내 어깨 위에 온전히 달려있지 못할 것 같다.

       
     ▲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원래 속성이 ‘당’이라는 조직은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고, 게다가 나름대로 진보 내에서는 어느덧 ‘메이저’의 위치에 선 조직은 더더군다나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비판하면 전혀 딴소리를 해대는 것은 환경운동연합도 마찬가지이고, 참여연대도 그렇고, 전농도 마찬가지이다.

    뒤에서 조용하게 수군거려도 대뜸 "왜 동지의 등에 칼 꼽느냐"고 고색창연한 소리를 해대기가 일쑤다. 물론 동지의 등에 칼을 꼽는 건 나쁜 일이기는 한데, 이 말을 제일 잘 써먹는 사람들은 청와대에 계신 몇 분 들이다. 그야말로 나쁜 습관부터 배워서, 좌파의 장점들은 하나도 없고, 보호색만 잔뜩 갖추고 계신 분들이다.

    민주노동당은 어떨까? 여기는 욕을 하도 먹어서 그런지 비판에 대해서는 인이 박혀서 그야말로 맷집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우리나라 좌파 진영에서 민주노동당처럼 대놓고 욕먹고 또 욕 먹어도 끄덕도 안하는 조직은 별로 못 본 것 같다.

    좌파 진영에서 욕 가장 많이 먹는 민노당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동시에 있겠지만, 하여간 잘 버틴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중요한 장점이다. 약한 조직은 한 번만 흔들어도 휘… 흩날려간다. 그것보다는 낫다. 다른 걸 갖추지 못했으면 일단 맷집이라도 쎄고 볼 일이다.

    어차피 간첩당이라고 온 국민이 굳게 믿고 있을텐데, 그나마 맷집도 없으면 버틸 재간이 없겠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동당은 기본 체력은 갖추고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게 다야? 이렇게 말하면 슬퍼할 사람 많겠다. 그렇게 욕을 먹어도 끄떡도 않고, 미동도 않는 시민단체들은 많다. 떠드는 입이 아파서 결국 손 들게 만드는 조직들, 한 두 개가 아니다.

    문제는 욕 먹고 버티는 맷집 말고 다른 걸 잘 하는게 있어야 하는데, 이건 별로 잘 안 보인다. 아, 잘 하는 것 있다. 엇박… 싱코페이션이라고 불리는 엇박은 음악성 아주 높은 사람들이 당김음을 섞어서 사용하는, 긴장과 이완의 연속 과정이기는 한데, 민주노동당에는 적절한 엇박이 있다.

    가끔은 대박이고, 많은 때는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기는 하는데, 엇박이 현재 민주노동당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이다. 이건 사실 어쩔 수 없다. 게임에 자주 등판하지 못하는 투수들이 가끔 마운드에 오르면 엇박 투구를 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래봐야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첫 꿈을 이룬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운행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의 경우는 상당한 수준의 시민단체의 지원과 지지를 받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꼭 그렇지도 않다. 이건 시민단체만 보고 섭섭하다고 할 일은 아니다. 국회의원 가졌다고 민주노동당도 "잘나 뿡" 엄청나게 했다. 아마 뒤에서 순전히 기분 나쁘기 때문에, "그래 네가 얼마나 잘 되나 보자"라고 했던 사람의 줄이 수 천리는 족히 뻗쳤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 맘에 안드는 거 다 쓰면 A4 백장도 부족

    그래도 당 안 ‘뽀샤지고’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적이다. 기타 등등, 맘에 안 드는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A4 100장으로도 부족할 것 같지만, 연초부터 그런 얘기 하려고 펜을 들은 것은 아니고…

    민주노동당의 공식적 지지율은 영 시원찮아 보이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은 것 같다. 대선을 치르려는 정당으로서는 좋은 징조이다.

    어차피 버릴 표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미안했던 마음으로 기꺼이 사표 한 장을 던질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갈대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 같다. 어부지리라고 할지… 정확히 표현하면 ‘낙장불입’이다. 잘못해서 민주노동당에 던져준 표라도, 낙장불입…

    역풍을 맞으면 한 걸음 앞으로 떼기도 어렵지만, 순풍을 잘 만나면 그야말로 두둥실이다. 갈 길 잃은 국민들의 마음과 잘 만나서, 올해에는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레디앙 독자 여러분들의 댁에도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시고, 끼니 떨어지거나 집에서 쫓겨날 걱정들은 없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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