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림은 그 자리, 놈들은 다 바뀌고"
        2006년 12월 29일 01: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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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살 맞은 학림다방
     

    거짓말 같았다. 외국 음식점 체인점과 커피숍, 유흥주점 등으로 도배된 대학로 한 복판에 ‘쉰 살’ 먹은 가게가 있다니. 게다가 그 이름마저도 빠른 시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능청스럽다 못해 오만(?) 했다. ‘ 찻집’도 아니요, ‘카페’나 ‘커피숍’도 아닌, ‘다방’ 이었다. 덩달아 오랜 단골들도 그 곳이 영원히 ‘다방’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포스트 – 민주화 세대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기자에게, 그 ‘다방’은 영화 <챔피언>,  <강원도의 힘>,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작업’을 거는 아늑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때문에 50년 이라는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아온 ‘다방의 전설’ 을 먼저 논하는 게 어쩐지 기자에겐 생경스러웠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전설 가득한 그 다방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 강의실’로 불리기도 했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은 자살하기 전 날 마지막으로 그 다방을 방문했다.

    방학이 끝난 후 서울역에 5시 반에 내려 갈 곳이 없어 이불과 책 보따리를 싸매고 찾아왔던 소설가 김승옥과 ‘ 오적 필화 사건’으로 전국을 유랑하던 시인 김지하는 그 곳을 임시 거주지로 삼았다. ‘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는 망명 생활을 끝내고 99년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학림(學林)다방. 대학로라는 최첨단 소비 공간에 있기엔 어색한 이름이다. 그러나 그 곳엔 4.19 혁명의 함성, 6.3 사태의 침묵, 이청준, 황지우, 유홍준, 김민기 등의 절절했던 20대가 최루탄 가스와 뒤엉켜있다. 시인 김지하씨는 "그 곳에 가면 오래된 사진 속에 있는 것 같고, 학림은 잃어버린 사랑과 실패한 혁명의 쓰라린 후유증 그리고 로망스이다”라고 노래했다.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은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 이름’은 안 잊었노라"고 말을 전했고, 또 20년 만에 학림을 찾은 어떤 무명씨는 "학림은 도도하게 그 자리에 있는데, 같이했던 그 놈들은 다 바뀌었구나"라며 다방 회고록에 안타까움을 남겼다.

    “50년 만에 놀아보자”

    2006년 세밑. 지난 26일부터 대학로 학림 다방에선 늦은 8시부터 50살 맞이 기념 송년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26일엔 연출가 강준혁, 작곡가 강준일 형제가 모차르트 실내악을 선보였고, 27일엔 언론인 홍세화와 춤꾼 채희완이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28일.  연극인 김민기 – 가수 윤선애가 ‘이야기 꾼’과 ‘공연’을 맡았는데, 50년간 변하지 않은 학림 다방만큼이나 김민기씨의 말수도 여전(?)했다.

       
      ▲ 예의 어눌한 말쏨씨를 뽐낸(?) 김민기씨
     

    이야기 꾼 역할을 맡았으나 김씨는 예의 그 어눌함과 함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라는 ‘‘단 한마디’로 무대와 청중을 압도했다. 그리하여 행사를 기획한 시인 김정환씨가 김민기씨를 대신해 "오디오도 안 되고, 비디오도 안 되는 제가 나와 송구스럽다. 고난의 행군의 시작입니다"라며 "50년 만에 놀아보고자 기획했으니, 모두 맨 정신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손님들에게 추임새를 넣었다.

    이날 학림다방은 서로의 숨소리를 느낄 정도로 많은 손님과 취재진들이 몰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에 학림 다방의 공동(?) 주인이기도 한 김민기씨는 언론의 관심이 불편했는지 "오늘은 좀 평소와 달리 불편한 분위기이다"라고 솔직히 심정을 토로하며, 기자들이 접근 할 때마다 연신 "난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니 말을 걸지 말아 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특별히 송년회를 맞아 학림 다방에 포도주와 음향기기를 후원한 김씨는 "여기 대학로에는 나같이 꼰대 같은 사람이 갈만한 곳은 학림밖에 없다. 그동안 변하지 않은 만큼, 이 상태로만 유지되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라며 "솔직히 커피를 팔아 대학로에서 다방을 유지하는 게 쉽진 않은데, 지금까지 잘 꾸려온 주인장이 착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대학로에서 그저 커피만을 팔아 다방을 운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학림다방엔 그 흔한 장식품이나 화려한 조명등 조차 하나 없다. 지난 5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몸에 새긴 낡은 가구들과 1,000 여장의 LP 판, 그리고 특별한 원두커피가 있다.

    학림 다방의 4대 사장인 이충렬씨는 길 건너 학전에서 일하는 김민기씨와 이웃사촌이자, 정찬의 소설 ‘베니스에서 죽다’ 에 ‘케이(K) 사장’으로 등장한 인물이며, 아마추어 사진작가이자, 유명한 커피 전문가이다.

    “이제 겨우 50년 지났을 뿐”

    그는 학림 다방을 계속 운영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독학으로 커피를 연구했고, 그 결과 5년 전 ‘브랜드 학림'(http://hakrim.pe.kr)이라는 커피를 개발해 현재 판매 중에 있다. 20년 째 학림다방을 운영하는 이씨는 "그냥 좋은 분들을 만나는 재미에 20년이 저절로 흘러갔다.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라며 50주년의 공을 손님에게 돌렸다.

    이어 그는 "외국에선 100년을 넘어 200년 된 역사적 다방들이 많을 텐데, 우리는 이제 겨우 50년 지났을 뿐이다"라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100년, 1,000년 가는 한결같은 다방을 손님과 함께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40년 단골인 서울대 의대 교수 박 모 씨는 "외국에 나가 있는 내 동기들의 모든 소원은 학림 다방에서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학림은 한국에서 마음이 가장 편한 공간이며, 젊은 시절의 사랑, 우정, 방황, 죽음 등 내 인생이 담긴 곳"이라며 "한국에 이런 철학과 사회 문화적 역사를 지닌 다방은 그 어디에도 없다. 제발 지금처럼만 이대로 유지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라고 말했다.

    시인 김정환씨의 바람대로 술자리가 무르익자 대학 광장의 전설적 가수 윤선애씨가 무대에 나섰다. 여전히 작고 마른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윤씨는 ‘저 평등의 땅’, ‘그리움만 쌓이네’, ‘다시 만날 날 있겠죠’ 등의 노래를 힘 있게 열창하며 청중을 압도했다.

    서울대 82학번인 윤씨는 "선배들만큼 학림에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우리 학번에게도 학림은 항상 토론이 가능했던 건강한 지성의 공간이었다. 50년간 이 자리를 지켜 온 게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다"라며 "다른 외국 체인점의 커피숍은 혼자 드나드는 공간이지만, 학림 다방은 생각이 통하는 다른 사람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색깔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만큼은 선배들과 함께 지켜내고 싶고, 또 후배로서 책임감이 느껴져 어깨가 무거워진다"라고 말했다.

    LP플레이어의 갸우뚱 거리는 바늘이 LP판과 만들어 내는 오래된 소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도란거리는 대화, 빛바랜 나무 가구들이 뱉어내는 숨소리를 반주삼아 사람들은 50살 맞은 학림다방을 축하하며 또 다른 추억을 학림과 함께 만들어 갔다.  한편, 앞으로 학림다방은 화가 김정헌-소리꾼 임진택, 시인 황지우-가수 전인권, 통일문제연구소장 백기완씨 등의 입담과 재주를 31일까지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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