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 너머의 창포, 석창포
    그리고 꽃창포의 민속적 실체(1)
    [푸른솔의 식물생태] 단오날 청포로 머리 감는 풍습
        2021년 11월 02일 08: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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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오날 창포를 삶아 머리를 감는 민속문화는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익숙한 풍습이다. 그러나 그 창포를 둘러싼 부정확한 논란과 오해들이 적지 않아 이에 대해 살펴보는 글을 ‘푸른속의 식물생태’ 칼럼을 쓰는 조현래 씨가 보내왔다. 긴 글이어서 3~4회에 나눠 게재한다. 다소 전문적인 내용들이 있지만 글을 차분히 따라가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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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시작하며

    창포(Acorus calamus)와 석창포(Acorus gramineus)를 직접 본 적은 없을지라도 단오날에 잎을 삶아 머리를 감는 우리의 풍습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창포를 기억하면서 자생하는 식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붓꽃과(Iridaceae)의 붓꽃속(Iris) 식물인 꽃창포(Iris ensata)와 노랑꽃창포(Iris pseudacorus)에 천남성과(Araceae)에 속하는 식물로 전혀 관련이 없는 ‘창포’라는 명칭이 있는가 라는 의문말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제대로 풀리기도 전에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창포와 석창포는 잎에 잎맥이 뚜렷하게 발달하는 Acorus calamus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고, 수창포와 계손은 잎에 잎맥이 뚜렷하지 않은 A. gramineus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석창포와 계손은 A. gramineus로, 수창포와 창포는 A. calamus를 지칭했으나, 이름들이 혼용되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혼용에 따른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계손과 석창포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A. calamus는 창포로, A. gramineus는 수창포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 신현철 외, 「식물명 창포와 석창포의 재검토」, 한국식물분류학회지 제47권2호(2017), 154쪽 이하.

    도대체 이름에 무슨 잘못이 있어 석창포를 석창포라 부르지 못하고 수창포라고 해야만 한다는 것일까?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먼저 창포, 석창포 및 꽃창포라는 종의 식물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사진1. 청포; 2017/6/4/ 경기도 양평

    사진2. 석창포; 2018/5/12/ 전남 강진

    [2] 창포, 석창포 그리고 꽃창포라는 종과 창포의 유래에 대하여

    1. 꽃창포, 석창포 및 꽃창포에 대한 구별(식물도감의 기재문을 중심으로)

    한국식물지편집위원회가 편찬한 『한국속식물지』(2018)의 기재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 국립수목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스시템’의 기재 내용을 보완하여 창포(A. calamus), 석창포(A. gramineus) 및 꽃창포(I. ensata)에 대한 구별기준과 특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도표. 창포, 석창포 및 꽃창포의 구별과 특징

    일부 식물도감은 석창포(A. gramineus)에 주맥이 없다고도 기재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식물분류학자들의 대부분이 함께 저술한 『한국속식물지』(2018)에는 “잎은 주맥이 불분명” 즉, 주맥이 있지만 외부적으로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기재하고 있다.

    사진3. 창포의 잎의 단면도: 잎의 단면 세밀화는 ‘중국식물지’ 참조.

    사진4. 석창포의 잎의 단면도: 잎의 단면 세밀화는 ‘중국식물지’ 참조

    사진5. 꽃창포의 잎의 단면도

    그런데 현재의 식물분류학(taxonomy)에 따른 식물도감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의 잎의 잘라 단면을 관찰하면 창포와 석창포가 속하는 천남성과의 창포속과 꽃창포가 속하는 붓꽃과의 붓꽃속은 차이가 있다. 창포속의 잎은 가운데를 기점으로 각이 져 V자형을 이루고, 붓꽃속의 잎은 잎의 단면이 일(一)자형이고 각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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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1) : 위 주장의 견해를 가진 식물학자는 사적인 대화에서 현재의 식물분류학에서 붓꽃속(Iris) 식물을 식별하는 형질로 잎 단면을 다루지 않으므로 중요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식물분류학에서 붓꽃속(Iris) 식물의 종을 식별할 때 분류학적인 형질로 잎의 단면을 다루지 않는 것은 분류군의 계급(ranks)에 따라 분류가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과(family)가 다르게 분류되고 속(genus) 내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종 식별에 필요한 형질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분류군의 계급에 따른 체계적 분류가 없었던 시대 즉, 이용자의 목적에 따라 식물을 인식하고 분류하던 시대에 비슷한 여러 식물에서 필요한 식물을 식별하는 방법으로서 전혀 의미가 없었을까? 여기서는 과학으로서의 식물분류학이 정립되기 이전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고려 가능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창포속(Acorus)과 붓꽃속(Iris) 사이에 잎 단면에서 이러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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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잎의 주맥(중륵)이란 무엇인가?

    사진6. 잎맥의 도해도

    잎맥(葉脈; leaf vein)은 잎의 조직에 뻗어 있는 관다발을 일컫으며 잎과 줄기 사이에 물과 양분을 나르는 기능을 한다. 잎을 지탱하는 역할도 한다. 속씨식물 중 쌍떡잎식물의 잎맥은 대부분 그물맥(망상맥; netted vein)으로 잎 가운데 뚜렷한 주맥[主脈=중륵(中肋); main vein=midrib]과 이로부터 가지를 쳐 뻗어 나온 측맥(側脈; lateral vein) 그리고 측면에서 가지를 쳐 나오는 세맥(細脈; sublateral vein, veinlet)으로 구성된다. 쌍떡잎식물의 잎맥에는 그물맥외에도 우상맥과 차상맥 등이 있다.

    잎맥(葉脈)은 영어 leaf vein을 번역한 용어로, 그물같은 모양을 이루어 물과 영양분을 이동시키는 것이 마치 혈관(핏줄)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맥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중륵(中肋)은 영어 midrib를 번역한 용어로 가운데 굵은 맥 사이로 작은 측맥들이 뻗어 나가는 모습이 마치 큰뼈에서 작은 뼈들이 이어져 있는 갈비뼈의 모양을 연상시킨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속씨식물 중 외떡잎식물의 잎맥은 길게 나란히 배열되는 나란히맥(평행맥; parallel vein)이다. 나란히맥의 경우에도 가운데 뚜렷한 주맥이 존재하지만 그물맥에서 달리 측맥들이 주맥에서 가지로 뻗어 나가는 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나란히맥에서도 주맥을 가장 굵은 맥이라는 뜻에서 달리 중륵(中肋; midrib)이라고도 한다.

    중국과 우리의 옛 문헌에서 ‘菖蒲'(창포)에 대한 설명에서 “有脊”(유척)이라고 할 때 ‘脊'(척)은 등골뼈가 등에 돋아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의 식물분류학에서 사용하는 주맥(主脈)은 혈관의 모습을, 중륵(中肋)은 갈비뼈를 형상한 것이므로 ‘脊'(척)의 개념과 동일하지는 않다. 이것은 옛 사람들이 현재와 비슷한 관념으로 보았을 수도 있지만 형상화한 개념이 다르므로 다른 관념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일단 서로 형상화한 것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식물을 구별하는 옛 사람들의 인식은 현재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 보기로 하자.

    3. 菖蒲(창포)라는 이름의 유래는?

    창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중국 명나라의 이시진(李時珍; 1518~1593)에 의해 편찬된 『본초강목』(1596)에 잘 나타나 있다.『본초강목』은 “菖蒲 乃蒲類之昌盛者 故曰菖蒲“(▷번역: 창포는 바로 부들 종류로서 창성한 것이다. 그래서 창포라 한다)라고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菖蒲'(창포)를 ‘蒲'(포)의 일종으로 보았는데 ‘蒲'(포)는 현재 부들(Typha orientalis) 또는 그와 근연종으로 Typhaceae(부들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조선 초기 언어학자인 최세진(崔世珍, 1468~1542)에 의해 저술된 『훈몽자회』(1527)는 한자어 ‘菖'(창)에 대해 “菖 챵포 챵 又부들亦曰-蒲“(菖은 창포 ‘창’으로 또한 부들이다. 그리고 ‘菖蒲’창포)라고 한다고 하였고, 실학자 유희(柳僖, 1773~1837)에 의해 1820년대에 저술된 우리의 옛 문헌 『물명고』도 부들을 뜻하는 “香蒲, 부들“을 菖蒲(창포)와 연관 항목에 기록해 비슷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천남성과의 창포와 부들과의 부들 사이의 유사성은 무엇일까? 꽃의 모양도 전혀 다르고, 식물체의 크기도 부들이 1m 이상으로 월등히 크게 자라며, 약성에도 서로 차이가 있다. 외떡잎식물로서 칼처럼 날카로운 잎의 모양만이 유사성이 있다. 옛사람들의 정확한 인식의 내용과 근거를 알 수는 없지만 현재와는 다른 인식과 문화가 있었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이점도 기억해 보기로 하자.

    [3] 식물분류학과 중국 문헌에 대한 자의적인 이해 또는 곡해(?)

    1. 총설

    현재의 식물분류학에 근거하여 중국의 송대에 저술된 『증류본초』(1082)나 명대에 저술된 『본초강목』(1596) 또는 조선 초기에 저술된 『향약집성방』(1433)이나 조선 중기에 저술된 『동의보감』(1613)에 기록된 식물이 정확히 어떤 종(species)을 일컫었던 것인지 동정(identification)할 수 있을까?

    동정(同定)은 표본, 실제하는 식물 또는 그 유전자의 확인 등을 통해 기존의 연구 결과와 비교 검토하고 이미 밝혀진 분류군 중에서 그 위치를 결정하는 일을 뜻한다. 따라서 옛 문헌이 표본이나 실제하는 식물 또는 유전자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므로 문헌을 대상으로 한 종의 동정은 불가능하다. 옛 약학서(본초학서)에서 일부 식물 분류군 또는 종의 특징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저술자들이 현재의 식물분류학에 근거하여 분류 형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기록한 것이 아니다. 또한 현재의 식물분류학에서 사용하는 분류군으로서의 종의 개념-그것이 동일하게 통일되지 않은 개념일지라도-에 따라 식물을 인식한 것도 아니므로 옛 문헌상의 정보가 종의 동정에 필요한 충분한 내용을 갖추고 있지도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다만 옛 문헌의 기록이 단속적인 것이 아니라 당대의 식물 인식과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현재로까지 연결되므로 여러 정보를 총합하여 개략이라도 어떤 종인지를 추론하여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론이 과학적인 근거를 갖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식물분류학적 내용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학, 언어학, 민속학 그리고 한의학 등을 포함하여 학문적 방법론에 따른 충분한 근거를 수집하고 그것을 종합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옛 문헌의 어떤 식물명이 어떤 종을 일컫었던 것이라고 할 때 그 결과는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복합적인 과정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용도나 기타 민속적 이용이 뚜렷하여 그 추정이 비교적 용이한 경우도 있으나 유사한 식물의 경우에는 그것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다수 있다.

    그런데 위 주장에는 식물분류학의 식별 형질 중 그 일부만으로도 옛 약학서 또는 문헌에 기록된 식물의 종을 특정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즉, 창포(A. calamus)와 석창포(A. gramineus)의 종 식별 지표로 사용하는 midrib(중륵)이 뚜렷한지라는 식별 형질과 옛 문헌에 기록된 ‘有脊'(유척)이 동일한 뜻이고, 그 형질만으로도 옛 약학서의 식물이 어떤 종을 지칭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식별 형질 하나만으로 옛 문헌에 기록된 식물의 종을 동정하는 것이 제대로 된 설명이 어렵게 되자 위 주장의 견해는 보완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식물분류학에 따라 중국 옛 문헌상의 식물 명칭을 정리한 ‘중국식물지’에 근거하여 옛 문헌의 식물을 해석하는 방법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중국식물지’에 기록된 옛 문헌의 명칭은 중국의 역사, 문화, 민속과 언어학에 따랐기 때문에 우리의 것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옛 문헌의 식물명들이 혼용 또는 혼효(混淆)되거나 때로는 모순과 불일치가 있는 것만큼 ‘중국식물지’도 그러한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 결과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옛 문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옛 민속을 곡해하게 된다. 실제 그러한지를 차분히 살펴보자.

    2. 식물분류학에 대한 자의적인 이해 혹은 의도적 곡해?

    위 주장은 『한국식물분류학회지』라는 국내에서 가장 정평있는 식물분류학 학회지에 논문으로 실렸으며 그 저자는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식물학자이다. 그런데 위 주장이 실린 논문에는 식물분류학에 따른 창포(A. calamus)와 석창포(A. gramineus)를 식별하는 형질에 대해 매우 이상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국내에서는 중국에서와는 달리 잎맥이 있는 종류에 창포라는 국명과 A. calamus라는 학명을, 잎맥이 없는 종류에 석창포라는 국명에 A. gramineus라는 학명을 사용하고 있다(Ko. 2007)” – 위 주장(1)의 논문, 157쪽 참조.

    그런데 위 글에서 인용한 ‘(Ko, 2007)’은 해당 논문은 인용문헌에 따르자면 고성철,「ACORACEAE Marinov 창포과」, 『The Genera of Vascular Plants of Korea』, Flora of Korea Editorial Committee(2007)[이하 “(고성철, 2007)”], 1,095쪽을 일컫는 것이다. 해당 인용문헌은 창포(A. calamus)와 석창포(A. gramineus)를 식별하는 형질 중의 하나로 A. calamus에 대해 “Leaves with a distinct midrib“[잎은 뚜렷한 중륵이 있음]이라고 기재하고, A. gramineus에 대해 “Leaves without a midrib“[잎은 (뚜렷한) 중륵이 없음]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위 (고성철, 2007)에서 “Leaves without a midrib”는 창포와 대조한 것이므로 ‘뚜렷한’ 중륵(midrib)가 없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위 고성철, 2007에 대한 한글본인『한국속식물지』(2018), 1,455쪽은 동일한 저자에 의해 석창포(A. gramineus)의 구별 형질로 “잎은 주맥이 불분명“이라 기재하고 있기도 하다[위 도표 참조].

    그런데 위 주장의 식물학자는 느닷없이 석창포(A. gramineus)의 주맥(또는 중륵)이 불분명하다는 내용을 잎맥(葉脈)이 없다는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일단 인용의 오류이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잎맥은 잎에서 수분과 양분을 나르는 통로이다. 잎맥이 없다면 석창포(A. gramineus)는 잎에서 물과 영양분을 어떻게 수송할 수 있다는 말인가? ‘midrib'(중륵)이 불분명하다는 식별 형질을 ‘잎맥이 없다’로 바꾼 것이 혹시라도 옛 문헌상 표현인 “無脊”(무척)과 대비될 때 肋(갈비뼈)와 脊(등골뼈)는 다른 것이라고 독자가 쉽게 알아 챌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생기지만, 여기서는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식물학자가 식물분류학에 따른 종을 식별하는 형질에 대한 개념조차 정확히 인용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일단 기억해 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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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2) : 위 내용이 의도적인 왜곡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이유는 인용문헌에서 ‘midrib’라고 명시되어 있고 중륵(주맥) 및 잎맥이라는 용어는 식물학 용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는 주요한 형태적 형질에 속하는 것이어서 오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주 묘한 인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위 주장의 논문 157쪽은 “(3) 전남 장성에 자라며 임금의 약재로 사용되었다는 석창포의 경우 잎맥이 없으며 잎이 좁고 짧으며 상록성이 특성을 지니고 있어(Park, 2006)”라고 별도로 인용한 문구가 하나 더 있다. 여기서 (Park, 2006)에 대해 인용문헌에 따라 살펴보니 지역신문에 ‘자연생태사진가’로 스스로를 소개한 이가 기록한 글에 나온 표현이었다. 굳이 식물분류학의 여러 주요 문헌과 용어를 달리하면서까지 ‘자연생태사진가’의 견해를 따르는 이유가 의도적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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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중국의 옛 문헌에 대한 자의적인 이해 혹은 의도적 곡해?

    (1) 주장과 인용

    위 주장의 식물학자는 여러 중국의 옛 문헌을 검토한 후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이상을 요약하면 중국에서는 창포에는 여러 종류가 있음을 인지했고, 이 중 잎맥이 없으며 산간계곡에서 자라는 종류는 수창포와 계손으로, 잎맥이 있으며 돌 위나 돌 틈에서 자라는 종류는 창포 또는 석창포로 구분했고 이 중 석창포를 약으로 사용했다” – 신현철 외, 「식물명 창포와 석창포의 재검토」, 한국식물분류학회지 제47권2호(2017), 156쪽

    그리고 “수창포와 계손은 잎에 잎맥이 뚜렷하지 않은 A. gramineus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지 그가 인용한 중국의 옛 문헌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송대의 『증류본초』(1082)와 명대의 『본초강목』(1596)을 통해 살펴보자.

    * 『증류본초』(1082) 중 ‘菖蒲’의 인용내용

    眞菖蒲葉有脊, 一如劍刃, (중략) 東間溪澤又有名溪蓀者, 根形氣色極似石上菖蒲, 而葉正如蒲, 無脊. 俗人多呼此爲石上菖蒲者, 謬矣.

    ▷ 번역 : 진짜 창포 잎에는 잎맥이 뚜렷하고, 잎 이 칼날처럼 생겼다. (중략) 동측 계곡 측면에는 계손(溪蓀)이라는 것이 자라는데, 석상창포와 뿌리의 형태와 색이 매우 비슷하나 잎은 부들처럼 생겼고 잎맥이 없다. 일반 사람들 중 이 식물을 석상창포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잘못이다.

    又有水菖蒲, 生溪潤水澤中甚多. 葉亦相似, 但中心無脊, 採之乾 後輕虛多滓, 殊不及石菖蒲, 不堪入藥用, 但可搗末, 油調塗 疥瘙.

    ▷ 번역 : 또 수창포는 계곡 얕은 곳이나 물 속에서 매우 많이 자라고 잎이 창포와 비슷하긴 하나 중심에 잎맥이 없으며, 이를 캐서 말리고 나면 가볍고 비워져 찌끼가 많아지는데, 특히 석창포에 미치지는 못하여 약재로 적절하지 않다. 다만 가루로 찧고 기름으로 개어서 옴이나 종기에 바른다.

    * 『본초강목』(1596) 중 ‘菖蒲’의 인용내용

    菖蒲凡五種. 生於池澤, 蒲葉肥, 根高二三尺者, 泥菖蒲, 白菖也; 生於溪澗, 蒲葉瘦, 根高二三尺者, 水菖蒲, 溪蓀也; 生於水石之間, 葉有劍脊, 瘦根密節, 高尺餘者, 石菖蒲

    ▷ 번역 : 창포는 5종이 있다. 연못에서 자라고 포엽이 비대하며 뿌리의 높이가 2-3척인 것을 이창포나 백창이라 하고, 계곡가에서 자라고 포엽이 작으며 뿌리의 높이가 2-3척인 것을 수창포나 계손이라 하고, 물의 돌 틈에서 자라며, 잎에 칼 같은 잎맥이 있고 파리한 뿌리에 마디가 조밀하고 높이가 약 25cm를 넘은 것은 석창포이다.[* 주의 : 붉은색 번역은 위 식물학자의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함]

    (2) ‘脊'(척)=’中肋'(중륵)?

    이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요약한 바와 같이 인용된 중국 문헌에서 기록된 계손(溪蓀)과 수창포(水菖蒲)에 대한 기록은 ‘無脊'(무척)하고 약재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계손(溪蓀)과 수창포(水菖蒲)를 현재의 식물분류학에서 말하는 A. gramineus(중국명: 金钱蒲/국명: 석창포)라고 한다. 위 인용된 중국 문헌에 계손(溪蓀)과 수창포(水菖蒲)에 대해 식물분류학에 따라 A. gramineus라고 확인(동정?)할만한 내용은 특별히 없다. 석상창포와 뿌리가 비슷하다거나 잎이 부들과 같다거나 계곡에 자란다거나 뿌리의 길이 2~3척이라는 것만으로 앞서 살펴 보았듯이 A. gramineus라고 볼만한 식별 형질은 딱히 없다. 다만 그가 식물분류학을 오인 또는 곡해하여 midrib(중륵)을 잎맥으로 치환했듯이 중국 문헌의 인용에서는 ‘無脊'(무척)을 “잎맥이 없다”로 번역한 것이 분류 형질로 볼만한 것으로는 전부이다. ‘無脊'(무척)은 말 그대로 ‘등골뼈’가 없다는 뜻인데 왜 “잎맥이 없다”로 번역될까? 위에서 인용된 중국 문헌의 저자인 당신미(唐愼微, ?~?)와 이시진(李時珍)이 현대의 식물분류학에 통달하여 이를 숙지한 표현이라는 황당한 전제가 있지 않은 한, 이러한 번역과 이해는 불가능하다. 만일 가정하여 옛 문헌의 저자들이 현재의 식물분류학에 정통했다면 당연히 ‘無中肋'(무중륵, without a midrib)라고 했겠지 굳이 ‘無脊'(무척)이라고 했겠는가? 상식과 이치에 닿지 않은 주장이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가?

    그런데 ‘脊'(척)= midrib(중륵)으로 볼 수 없게 하는 중국의 옛 문헌이 있다. 앞서 인용된 『본초강목』은 ‘香蒲'(향포)라는 표제하에 “蒲叢生水際 似莞而褊 有脊而柔“(▷ 번역: 향포는 물에서 무리지어 나면 왕골과 유사하면서 좁고 등골뼈가 있으면서 부드럽다)라고 기록하여 여기도 ‘脊'(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19세기 초에 저술된 우리나라의 『광재물보』에도 ‘香蒲 부들‘이라는 표제하에 『본초강목』과 동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속식물지』(2018), 1,687쪽은 현재의 부들과(Typhaceae)의 식물인 부들(Typha orientalis)의 종 식별의 형질로 “(잎의) 횡단면은 삼각형“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위 식물학자의 주장에는 현재의 식물분류학에 따른 식별 형질을 옛 문헌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그 논리를 따르자면, ‘香蒲'(향포)에서 옛 문헌의 ‘脊'(척)의 개념은 잎맥이나 주맥(중륵)과 관련 없는 잎의 횡단면에 관한 내용이 된다. 실제로도 잎맥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잎의 단면에 관한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3) 수창포와 계손을 약재로 사용?

    다시 중국의 옛 문헌의 창포 부분에서 계손(溪蓀)과 수창포(水菖蒲)에 대해 ‘無脊'(무척)이라고 한 것을 살피면, ‘菖蒲'(창포)와 비슷하지만 약재로 사용할 수 없는 식물을 구분하기 위한 개념이다. 즉, 『증류본초』와『본초강목』은 계손과 수창포에 대해 약재로 적절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런데 현재 중국에서 A. gramineus는 생약명을 ‘石菖蒲'(석창포)로 하여 약재로 사용하고 있다. A. gramineus를 약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해과학기술출판사, 김창민 외 편찬, 『중약대사전II』, 도서출판 정민(1997), 2,306쪽 및 ‘중국식물지’ 중 A. gramineus 부분을 참조하면 민속적 이용은 명확하다. 중국의 역사와 민속 그리고 한의학에서 계손과 수창포의 약재 사용에 대해 별도로 견해를 변경한 문헌이나 기록 등이 있지 않은 한 현재 약재로 사용하는 A. gramineus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역사학, 민속학 및 한의학에 근거할 때 정상적인 추론이다.

    그런데 위 주장의 식물학자는 계손과 수창포가 자신이 주장한 것과 달리 A. gramineus를 지칭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지자 돌연히 다음과 같은 매우 기이한 논거를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이들 모두를 구분하지 않고 약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증류본초』 기록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증류본초』에는 “지금 약방에서 파는 상품은 두가지를 섞어 놓은 것이 많은데,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고 기록되어 있다(今藥肆所貨, 多以二種相雜, 尤難辨也)

    위 주장의 식물학자가 인용한 문구는 『증류본초』에 최초 기록된 것이 아니라, 송대의 소송(蘇頌, 1020~1101)이 편찬한 『본초도경』(10161)에 실린 문구이다. 정확히는 “今藥肆所貨, 多以二種相雜, 尤難辨也“(▷ 번역: 지금은 거리낌없이 약재로 파는데, 대부분 두 종을 섞은 것이니, 더욱 판별하기 어렵다)이다. 당시 ‘菖蒲'(창포)를 뿌리를 약재로 사용할 때 뿌리가 비슷한 식물과 구별이 어렵고 구별이 되지 않은채 섞어 파는 경우 그 구별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현대에 약재로 사용하는 경우 식물분류학의 지식을 참고하여 식물의 종(species)을 식별하고 주요 성분 분석까지 이루어진다. 어떤 종을 약재로 사용할지가 혼동된다면 몰라도, 서로 다른 종을 섞어 놓았기 때문에 혼동되고 구별이 어렵게 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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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3) : 위 주장의 식물학자는 식물분류학에 따른 A. gramineus의 식별 형질인 중륵(中肋)을 논할 때에는 1,000년이 더 넘은 옛 시대의 본초학자들을 현재의 식물분류학에 정통한 사람으로 보아 中肋(중륵)=脊(척)을 아무런 이유없이 같은 것으로 본다. 그런데 옛 시대의 오인과 혼돈이 현대에도 동일하다고 할 때에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현재가 마치 송나라 시대와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혼동은 옛 약학서를 살필 때에 분류 자체에 중점이 있는 식물분류학(taxonomy)에 더하여 민속식물학(ethnobotany) 즉, 옛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학, 민속학 그리고 한의학 등 다른 영역이 학문이 필요하는 것, 그 각 학문의 방법론을 함께 준수하여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 것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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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紫花'(자주색 꽃)이 피는 창포?

    위 주장 식물학자의 논문에는 중국 고전에 기록된 창포에 대한 기록으로 중국 동진시대의 갈홍(葛洪, 284~363)이 편찬한 『포박자』(317~318년 저술 추정)의 창포에 관한 내용이 있다. 『포박자』는 중국의 신선 방약과 불로장수의 비법을 서술한 도교 서적이다. 우리나라에도 오래전에 전래되었으며 통일신라 말기의 최치원의 글에서도 고려시대의 문헌에도 발견된다

    * 『포박자』(4세기) 중 ‘菖蒲’의 인용내용

    又菖蒲生須得石上, 一寸九節已上, 紫花者尤善也.

    ▷ 번역 : 또한 창포는 모름지기 돌 위에 자라는 것을 얻어야 하며, 약 3cm에 마디가 9개 있는 것이 좋으며, 자주색 꽃이 피는 개체가 더욱 좋다.

    앞서 살폈듯이 창포속(Acorus) 식물은 자주색 꽃을 피우지 않는다. A. calamus와 A. gramineus는 모두 황록색의 꽃이 핀다. 그런데 위 주장의 식물학자는 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중국에서는 잎맥이 있는 것은 창포 또는 석창포로 구분하고, 잎맥이 없는 것은 수창포 또는 계손으로 구분했다고 확신한다. 자주색 꽃이 피는 『포박자』의 저 창포는 도대체 무슨 종의 식물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 논한 중국의 옛 문헌이 있다. 청나라 시대에 오기준(吳其, 1789~1847)이 편찬한 『식물명실도고』(1848)가 바로 그것이다. 『식물명실도고』는 약재 식물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에 관한 내용을 기재한 문헌이다.

    * 『식물명실도고』(1848) 중 ‘菖蒲’의 내용

    沈存中謂蓀卽今菖蒲 而抱朴子謂菖蒲須得石上 一寸九節 紫花尤善 菖蒲無花 忽逢異萼 其可遇不可必得者耶 然平泉草木記又謂茅山谿中有谿蓀 其花紫色 則似非靈芝天花神仙奇藥矣 若如陶隱居所云 谿蓀根形氣色 極似石上菖蒲 而葉如蒲無脊 俗人誤呼此為石上菖蒲 按其形狀 乃似今之吉祥草 不入藥餌 沈說正是 隱居所謂俗誤 而抱朴子乃併二物為一彙耶 離騷草木疏引証極博 不無調停 詩人行吟 徒揣色相 仙人服餌 尤務詭奇 隱居此注似為的矣

    ▷ 번역 : 심존중*1)은 이르기를 “손(蓀)이 곧 지금의 창포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포박자』는 “창포는 모름지기 돌 위의 일촌에 아홉 마디가 있고 자주색 꽃이 핀 것을 구하면 더욱 좋다”고 했지만, 창포는 꽃이 없는데 홀연히 이상한 꽃을 만났으니 이것은 우연히 만나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평천초목기』*2)에서 또 “모산의 계곡 중에 계손(谿蓀)이 있는데 그 꽃이 자주색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아마도 영지(靈芝), 천화(天花)나 신선의 기이한 약(奇藥)은 아니다. 만약 도은거(陶隱居)*3)가 말한 바처럼 “계손(谿蓀)의 뿌리의 모양과 기색이 석상창포(石上菖蒲)와 매우 비슷하고, 잎은 등골뼈(脊)가 없는 포(蒲)와 같다. 민간인들이 이것을 석상창포(石上菖蒲)로 잘못 부른다. 그 형상을 살펴보면, 지금의 길상초(吉祥草)와 비슷한데, 약이나 식용에 넣지 않는다”는 것이 맞다면, 심존중의 견해는 바로 도은거가 이른바 민간의 잘못이라고 한 것을 그대로 말한 것이다. 그리고 『포박자』는 곧 두 가지 식물을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다. 『이소초목소』*4)는 인용하여 증명한 것이 극히 넓지만 조정한 것이 없지는 않다. 시인들이 시를 읊을 때 다만 서로 색깔로 요량하여 신선이 먹는다고 한 것은 더욱 그릇되고 괴상한 일이니, 도은거의 이 주석(注)는 적절한 것이다.

    *1) 심존종(沈存中) : 북송 시대의 정치가 심괄(沈括,1031~1095)을 말한다. 위 문구는 그의 저서 『몽계필담』에 나오는 것이다.

    *2) 『평천초목기(平泉草木記) 』: 당나라 시대의 이덕유(李德裕, 787~849)가 지은 정원 식물에 관한 『평천산거초목기(平泉山居草木記)』를 말한다.

    *3) 도은거(陶隱居) : 중국 남북조시대의 학자이었던 도홍경(陶弘景, 456 ~ 536)의 호(號)이다. 그는 약학서인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註)』를 저술하였다.

    *4) 『이소초목소(離騷草木疏)』: 송나라 시대의 오인걸(吳仁傑, ?~?)이 편찬한 것으로 『이소(離騷』의 초목 부분을 논한 것이다.

    오기준의 『식물명실도고』(1848)에서 기록한 바에 따르면, 『포박자』에서 ‘菖蒲'(창포)가 자주색 꽃(紫花)가 핀다고 한 것은 그냥 우연히 잘못 기재된 내용이 아니다. 계손(溪蓀)은 뿌리가 석창포와 매우 유사하지만, 자주색 꽃이 피고 잎에 등골뼈(脊)가 없으며 뿌리를 약재로 사용할 수 없은 식물이다. 현재의 식물분류학의 지식을 이용하여 위 오기준의 기록을 비추어 해석하면 천남성과 창포속(Acorus) 식물은 황록색의 꽃을 피우므로 계손은 창포속 식물이 아니게 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위 식물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국의 옛 문헌에 기록된 수창포와 계손이 창포속의 A. gramineus를 일컸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계손(그와 유사한 수창포)은 뿌리가 비슷하여 창포의 일종으로 오인되어 인식되었지만, 실제로는 잎에 등골뼈(脊)이 없고 자주색의 꽃이 피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옛 문헌에서 菖蒲(창포)와 관련하여 ‘有脊'(유척) 또는 ‘無脊'(무척)이라고 논한 것은 현재의 식물분류학에서 창포속(Acorus)의 A. calamus(국명 : 창포)와 A. gramineus(국명 : 석창포)의 종 식별 형질의 하나로 사용하는 중륵(中肋)이 분명한지 여부(distinct midrib)를 뜻하지는 않았던 것이 명확해진다.  <이어서 계속됩니다>

    * <푸른솔의 식물생태 이야기> 연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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