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창립일 선물주는 관행 끊어봅시다"
    2006년 12월 15일 0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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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상조회는 회비를 몇 천원밖에 안 내는데도 1년에 우산이라도 준다. 근데 노동조합은 3만원이나 받아가면서 선물 하나 주는 게 없다."

"노동조합을 상조회로 생각하니 노조가 잘 될 리가 있냐? 지금까지 정리해고 당하면 싸우고 임금인상하고 권리 향상시킨 게 노동조합인데 선물과 비교하냐? 지금까지 임금인상 된 게 몇 천만원인데. 노동조합은 공기와도 같은 거다. 노조 그늘에 있으니까 소중함을 모르는 거 아니냐?"

지난 7일 오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한 조합원과 노조활동가 사이에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날의 에피소드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상조회’ 정도로 여기고 선물 보따리나 안겨주는 곳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대자동차노조의 선물파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노동조합들은 오래 전부터 노조 창립기념품을 지급해왔다. 작은 노조는 10만원 안팎의 예산이지만 대공장노조의 경우 그 예산이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규모다.

선물비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현대자동차노조는 올해 노조창립기념품으로 조합비 예산을 1인당 1천원씩 책정했었다. 그러나 대의원대회에서 올해는 3만원 상당의 선물을 하자고 결정했다. 노조는 설문조사를 벌여 선물을 파라솔로 결정하고 4만4,000개를 주문했다. 자그마치 13억2,000여만원이었다.

지난해에는 1인당 2만원이 책정되어 있었으나 대의원대회에서 1천원짜리로 하자고 결정됐고, 이에 따라 장애인단체에 주문해 조합원들에게 비누세트를 지급했다. 이 예산도 4천만원이 넘었다.

대우자동차노조도 노조창립기념일인 지난 6월에 1인당 1만5천원 상당의 비누세트를 지급했고 내년에도 그 정도의 예산을 사용할 예정이다. 조합원이 1만명에 가깝기 때문에 1억 5천만원이나 된다. 그러나 기아자동차노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노조창립 기념일 선물을 주지 않았다.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는 기를 쓰고 노동조합에 낙찰을 받으려고 한다. 한번 낙찰을 받고 나면 "현대자동차노조에 납품한 회사"라는 신용이 생기고 사업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는 "현대자동차노조에 납품하기 위해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납품단가를 낮추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돈과 권력이 있는 곳에 비리의 그림자는 스며들기 마련이다.

"노조창립 기념품 선물 없애자" 여론 높아져

이번에 산별노조 전환을 앞에서 이끌고, 총파업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현대자동차노조 박유기 집행부가 선물파동으로 총사퇴하면서 노조창립기념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산별노조 전환을 이끌고, 민주노총 총파업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집행부의 사퇴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금속연맹 전규석 울산본부장은 "창립기념품이라는 선물을 왜 주나, 주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라며 "노조창립의 기념은 다른 것으로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에서 예산을 책정해놨는데 없애자니 허전하고, 뭘 하자니 돈이 부족해서 목간 전용해서 이런 식으로 준 것"이라며 "집행부가 의지만 있다면 선물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노조 김호규 교육위원은 "그 동안 노동조합에서 선물을 계속 줬는데 올해만 안 주는 게 어려웠고, 선물 선정을 공정하게 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며 "선물 줄 돈 있으면 조직사업비나 교육사업비로 쓰는 게 올바르다"고 말했다. 이번 선물사태를 계기로 선거에서 후보들이 공통 공약으로 내거는 것에 대해 "의도는 좋지만 강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 본관 앞 잔디받에서 투쟁중인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사진=현대자동차노조)
 

"간부들의 자기혁신이 가장 중요"

현대자동차 현장조직인 자주회 강봉진 의장은 "노조간부의 자기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간부를 선임하는 잣대가 실무 위주가 아니라 헌신성과 희생정신, 치열함과 현장성이 기준이 되어야 하고 잘못을 저지른 활동가들은 원칙에 따라 일벌백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활동가 자신의 노력 뿐 아니라 노동조합이라는 체계 속에서 제도적 보완장치나 훈련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공장은 창립기념품 뿐만 아니라 투쟁물품에도 많은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엇보다 간부들의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노조의 경우 방석을 하나 맞춰도 4만4천개를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1억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게 된다. 모든 영역에 비리가 개입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지회는 2000년도까지는 노조창립기념품 선물을 해왔다. 조합원 1인당 1만원씩 5천만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 그러나 2001년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예산이 확 줄어 선물비를 책정할 수가 없었고, 본부노조에서 "산별노조 정신에 맞게 선물을 없애라"는 지침이 나오면서 선물지급 관행이 사라졌다.

산별노조는 하나의 노조, 회사마다 선물 다르면 안돼

기업별노조는 노조마다 창립기념일이 다르지만 산별노조는 똑같다. 같은 노조 조합원인데 회사 사정에 따라 노조 창립기념품을 다르게 받을 수는 없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이창희 사무국장은 "노조창립 기념일은 같은데 선물은 다르게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노동조합비는 ‘상조회’비가 아니라 ‘연대기금’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선물로 돌려줄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연대기금 등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노동사회연구소 김영두 연구위원은 "유럽의 산별노조에서 노조창립 기념일에 선물을 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현대자동차 선물사태를 계기로 조합비를 선물로 되돌려주는 관행을 혁신하고 연대의 정신에 맞게 전체 노동자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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