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이 있어서 집값 폭동 안 일어나는 것 같아”
        2006년 11월 15일 05: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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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본 경제학 책은 군나르 뮈르달의 것이었는데, 20년이나 지난 지금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책을 뽑아들게 한 동기, 어린 마음에 ‘와, 멋있어’ 하는 울림을 줬던 그 제목, 『Against the Stream』만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머리를 상류로 두는 물고기와 달리 사람은 물결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대개 그렇게 살게 마련인데, 일전에 <레디앙>에 소개되었던 임영일 교수 같은 이들은 종자가 다른 것인지 물결을 거스르며 살려고 한다. 거기 조준상이 합류했다.

    만나자마자 조준상은, “<한겨레>에 관련된 인터뷰나 질문은 거절합니다”라며 못을 박는다. 12년 다닌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조 상근자가 된 지 한 달쯤 된 사람에게 옛 직장 이야기 말고 무엇을 물어 보겠는가? 기자 생활 12년 경력의 조준상은 독자들의 궁금증 같은 것은 전혀 안중에 없는 모양이었다.

       
     
     

    “‘종이신문’이 전세계적으로 하향세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속도가 더 빠르고, 바닥이 없을 거 같아요. 왜 그런지 여러 분석이 있는데, 제가 볼 때는 독점적 시장구조와 불공정거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어요.

    한겨레 노조에서 언론노조로 파견나와 있을 때 신문법과 신문유통원 문제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거나 마무리를 잘 하지는 못했죠. 이런 문제를 제대로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겨레 기자에서 언론노조 정책실장으로 옮긴 이유 중 하나예요.”

    <한겨레> 이야기를 해달랬더니, ‘종이신문’ 이야기로 은근슬쩍 빠져 나간다.

    “방송광고공사 같은 것은 군사독재 시절에 비정상적으로 탄생했지만, 광고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을 방지한다든지 여러 순기능을 하고 있거든요. 이런 순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요즈음 이런 것들이 위협받고 있는데, 자유화나 민영화라는 시류로 순기능마저 없애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겠죠. 그런 게 언론노조가 할 일이겠지요.”

    역시, 하필이면 언론노조인가에 대한 답이지, 왜 <한겨레>를 그만두었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아무래도 신문사에서 온갖 취재원을 만나며 인터뷰 피하는 노하우를 쌓은 모양이다. 중앙지(中央紙) 12년 경력을 <레디앙> 반 년차가 당해낼 도리는 없다. 게다가 나는, 아직은 ‘언론계’가 아니라, ‘실업계’에 종사하고 있지 않은가. 뭐, 남의 집 속사정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조준상에게 노조 일은 낯설지 않다. 그는 언론노조 한겨레 지부 위원장이기도 했고, 1994년 한겨레에 입사하기 전, 두 해 동안은 한국노총 화학노련에서 일하기도 했다. 요 며칠은 ‘노조 상근간부가 된 신문기자’라는 이야기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신문기자가 된 노조 활동가’라고 지칭되던 시절이 더 길었다.

    십 수 년 노동운동 경력의 조준상이 바라보는 언론노조는 어떨까?

    “언론운동과 노동운동을 절묘하게 줄타기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언론운동에 주력한 셈이죠. 이 양자를 어떻게 묶을 건가도 고민이죠. 산별화 추세에 맞추려는 노력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언론노조는 조합비도 같지 않을 정도로 약한 산별노조예요. 늦게 시작한 금속노조보다도 산별화 정도가 더 약하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릴 거예요.

    지역 민방과 지역 MBC 등의 공동교섭을 추진 중이예요. 임금 같은 것까지 통일시키지는 못해도 조직 체계 같은 것은 통일시켜야겠죠. 언론노조 조합원이 17,000명,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까지 합치면 19,000명으로 대기업 노조 하나 정도 규모밖에 안 되고, 지부들 규모도 워낙 작아서 전임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큰 고민거리예요.”

    이러저러한 여론조사를 보면 참 웃기는 게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언론 종사자들의 ‘아수라 백작’ 수준 의식이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압도적으로 민주노동당을 뽑고, 기자나 피디들은 두 보수정당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지지한다. 같은 사람들이, 조사기관과 설문대상에 따라 답변을 달리 하는 것이다. 하긴, 자동차 회사 생산직의 절반이 정리해고에 찬성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기는 하다.

    “프로듀서나 기자들이 노조 활동에 조금씩 소극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기는 해요. 방송국 노조에서는 기능직이 더 활동적이기도 하죠. 매체 환경 변화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방송과 통신이 통합되면서 그런 기술 변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회사나 노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죠.”

    그런가? 기자나 프로듀서 같은 소프트웨어 생산자들 자체가 보수화하는 건 아닌가? 노동과정에서의 위계에서 노동자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맞아요. ‘선진 노동자’ 재생산이 안 되고 있어요. 사회의식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면 정치학교나 연수원 같은 걸 해야 하는데, 거기 착수하지 못하고 있어요.

    요즘 신문사나 방송국에서 공채 뽑으면 다 강남에서 온대요. 그래서 옛 선배들은 ‘기자가 아니라, 샐러리맨만 양산되고 있다’고 하소연하죠. 그러니 ‘부자들 얘기’만 나오죠. 문화 생산의 계급성 문제가 심각해요.”

    조준상은 지난 10월 13일 세 번째 사표를 냈고, 그 사표는 곧 수리되었다. 조준상은 다음 월요일부터 언론노조로 출근했다. 퇴직금 대부분은 중간 정산되었고, 2~3년치쯤 받은 퇴직금으로 집에 TV나 바꿀 생각이다.

    “얼마 전부터 등산을 시작했어요. 가까운 데 어지간한 산은 다 가봤고, 검단산에서 남한산성 거쳐 분당까지 ‘종주’도 해봤어요. 새 세상이 보입디다. 집값 오르는 거 보면 폭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폭동 안 일어나는 이유가 서울 주변 산들 때문인 것 같아요.”

    조준상이 새 세상을 보고, 새 깨달음을 얻은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덩치에 언감생심 산에 오르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산과 폭동을 연관시키는 고차원 눙을 칠 수 있겠는가?

    어떤 회사는 괜찮은 직원을 잃었고, 어떤 노조는 훌륭한 활동가를 얻었고, 산은 과중한 무게를 지게 되었다. 그나저나 과부하로 인해 토양침식이 더해질 북한산 등산로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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