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콘크리트 걷어내고 농사를 짓자
        2006년 11월 13일 11: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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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처음 도시농업을 제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매우 생소해했다. 농촌의 농업도 망해가고 있는 판국에 무슨 도시농업인가? 도시 사람마저 농사를 짓게 되면 시골농부들은 뭘 먹고 살라는 말인가? 등등 여러 의구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도시농업이 반드시 우리의 농업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어떻게 보면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농사를 짓고 있기에 지금의 농업 위기를 맞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농경사회였다. 우리 민족에게 농사는 본능에 가깝다. 나는 조상 대대로 서울이 고향이고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다가 지금은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다.

    우리 집은 농사와 전혀 무관한 집이었다. 그런데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조그마한 자투리 땅만 있으면 상추며 배추 등을 꽂아 키워 먹었다. 우리 집만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사는 안산에도 할머니나 아줌마들은 조그만 땅만 있으면 작물을 키워 먹는다.

    지금도 어머니는 텃밭 농사를 하고 계시고, 형님들도 주말농사를 하거나 농사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가족들이 모여 농사를 짓자고 의기투합한 일도 전혀 없는데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는 이를 농경민족의 경작본능이라 생각한다. 먹이를 보면 달려드는 맹수의 본능처럼 흙만 보이면 뭔가 심어 키워먹으려는 생존 본능 말이다.

       
     
    ▲ 안산 바람들이 농장에 있는 원두막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농자는 천하의 큰 근본(農者天下地大本)이라 했다. 왜 큰 근본일까? 사람들에게 먹고 살 거리들을 만들어주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 정도는 작은 근본일 뿐이다.

    처음 농사를 지을 때, 자연 파괴의 속성을 지닌 인간의 문명이란 기실 농사로 시작된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점 때문에 약간의 철학적 회의를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 5~6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의문이 비로소 풀렸다. 모든 농사가 자연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벼와 콩 만큼은 자연을 지키는 농사라는 사실을 계기로 문제들이 하나 둘씩 풀려갔다. 그러면서 왜 농부가 천하의 큰 근본이라 했을까 라는 의문도 자연스레 풀 수 있었다.

    농자가 큰 근본인 것은 다만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정도는 다만 인간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근본이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천하를 망가뜨리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

    먼저 농사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흙을 가꾸고 살리는 일이다. 흙이란 따지고 보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이니, 영어로 흙을 earth라고 한 것은 서양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었던 듯하다.

    범인(凡人)은 가족을 위해서 살고, 정치가는 권력을 위해서 살고, 운동가는 사회를 위해서 살고, 성인은 인류를 위해서 살지만 농부는 흙을 위해서 산다. 흙이란 인류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발 딛고 사는 터전이니 농부는 성인보다 더 높은 단계의 존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농자가 큰 근본인 이유도 이 만한 근거가 없을 것이다.

    농자가 큰 근본인 이유 중에 다음은 가장 더러운 똥을 가장 귀한 생명의 자원으로 부활시키는 점에 있다. 이 또한 우리의 지구를 지키고 생명의 터전인 흙을 지키는 위대한 방법이다. 인간이 만드는 더러운 쓰레기를 생명의 자원으로 부활시키지 않으면 그것은 지구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의 환경오염의 문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생명의 귀한 자원이 될 똥을 바다를 오염시키는 쓰레기로 버리고 원천적으로 재활용될 수 없는 쓰레기를 양산하는 현대 문명인들이 과연 이 지구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참으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농자가 큰 근본인 까닭은 인간이라는 생명을 비롯해 모든 생명을 함께 살게 하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가 살자고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사는 것에서 내가 살길을 찾는 존재가 바로 농자라는 것이다.

    옛말에 파종할 때 농부는 벌레가 먹을 것과 새가 먹을 것, 그리고 사람이 먹을 세 알을 심는다 했다. 어차피 씨앗을 심으면 벌레의 공격을 막을 수 없고 새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놈들 먹을 것까지 심는 게 더 현명한 것이다. 게다가 씨앗은 한 알을 심는 것보다 여러 알을 심으면 서로 협력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잘 자라기 마련이다. 그러니 벌레와 새와 함께 공생하는 길에서 사람이 살 길을 찾은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큰 근본인 농자가 농업이 돼서는 안될 것 같다. 업(業)이라 하면 웬지 구속처럼 느껴진다. 업보나 카르마Karma라 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농업은 진짜 업이 되어버렸다. 돈이라는 경제주의와 성공이라는 출세주의가 세상 사람들의 혼을 빼앗더니 큰 근본의 농사를 가장 벗어던지고픈 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도시농업을 모든 사람들이 농부의 삶을 사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운동에 또 업자를 붙이자니 영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 나는 도시농업보다 도시농부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그럼에도 업자를 붙여야 하는 현실은 우리가 만든 또 다른 업보인 듯하여 씁쓸하기 그지없다.

    여하튼 사람이라면, 아니 생명의 존재라면 나는 누구든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누르면 들어갈 줄 아는 사람이 편하듯이, 눌러서 한 치도 들어가지 않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콘크리트 바닥보다는 부드럽게 들어갈 줄 알고 뭇 생명을 자라게 해 주는 흙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원래는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살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유전인데, 요즘엔 콘크리트 병원에서 태어나 콘크리트 바닥과 벽에 기대어 살다 콘크리트 장례식장과 콘크리트 화장터로 돌아가니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유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흙을 밟고 사는 삶을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농사는 여러 직업 중에 하나인 것 같은 농업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슨 직업을 가지든 그것은 돈 버는 일일 것이고 농사는 돈이 아닌 인간의 기본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농업이 누구나 농부의 삶을 살 권리를 보장해주는 길이라 보는 것이다.

       
     
    ▲ 바람들이 농장에서 주말농사를 짓고 있는 최이해 씨와 가족들(사진 최이해)
     

    웰빙이라는 유행병이 사라지길

    농사지을 권리를 다르게 말하면 내 손으로 내 밥상을 차릴 수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농장에서 내거는 도시농업의 목표는 밥상 자급이다. 물론 100% 자급할 수는 없다. 적어도 25%를 밑도는 우리나라 식량 자급율 이상을 목표로 하면서, 우선 김치 자급과 양념 자급을 내 손으로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밥상 자급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거름 자급이다. 내가 먹는 밥은 유기농법을 통해 내 손으로 직접 짓는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싼 똥오줌은 자연을 더럽히는 오염원으로 버려버린다면 이런 모순도 없다. 먹는 것보다 싸는 일이 더 중요하다.

    몇 날 며칠 먹지 않는다고 해도 몸은 크게 망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날 며칠 똥오줌을 싸지 못한다고 해 보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것이다. 잘 싸서 그것이 귀한 자원으로 돌고 돌아 내 몸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런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 도시농업인 것이다.

    도시농업은 소비 생활만 하는 도시 사람들을 생산적인 농부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운동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소비자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웰빙이라는 말이 세상 사람들의 정신을 휘어잡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하루빨리 이 웰빙이라는 유행병이 사라졌으면 한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폼나 보이지만 사실 이게 우리 농업과 환경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내 몸에 좋다고 하면 수입 농산물일지라도 친환경 농산물이라면 구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내 한 몸 건강하자고 깨끗한 것 먹기 위해 수많은 비닐 포장지를 쓰레기로 버리고,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엄청난 석유를 낭비하고 매연까지 내뿜는 환경오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니 이런 이기적인 소비 심리가 문제인 것이다.

    내가 먹을 것 내가 직접 농사짓는 도시농업

    그러나 도시농업은 내가 먹을 것 내가 직접 농사 지어 키워먹자는 것이다. 설사 농약을 쳐도 사먹는 유기농보다 더 양심적일 수 있다. 내가 먹을 것이니 포장지도 석유도 매연도 불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농업으로 밥상 자급율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100%의 자급을 이룰 수는 없다. 모자라는 부분은 시골농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도시농업을 통해 도농직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다. 나는 도시농부들과 시골농부가 자매결연을 맺는 일을 했으면 한다. 내손으로 깨끗한 작물 키워 먹고 모자라는 것은 시골농부님의 도움으로 보충하자는 것이다.

    도시사람들도 농사를 짓는다면 시골농부들은 뭘 먹고 사느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농사를 몰라 외식, 수입농산물, 농약농산물만 소비하던 도시사람들이 농사를 하면서부터는 외식도 줄고, 되도록 국산과 유기농산물을 애용하게 된다. 이렇다면 도시농업이 시골농업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생하면서 나아가 시골농업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엔 시골의 농업보다 도시의 농업이 더 발달했다고 한다. 도시에는 거름이 많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다보니 똥오줌이 많아 그렇다. 그리고 농사에 필요한 자재와 기구들 구하기도 수월했을 것이고, 사람도 많다보니 인재도 많아 농사 기술도 더 발달했을 것이다. 게다가 잉여 생산물 판매하기도 쉬웠을 것이니, 이래저래 옛날엔 도시농업이 농업의 중심이었다는 얘기다.

    도시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생명의 흙으로 부활시키자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의 도시는 농업의 중심이기는커녕 농업을 죽이는 데 중심이다. 그런데 농업이 죽으면 분명히 그 대가는 도시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

    나는 도시농업이 위기에 처한 우리의 농업을 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사실 우리의 농촌은 세상의 괄시로 너무나 지쳐 있다. 그 분들께 더 이상 무거운 짐을 맡겨놓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도시사람들이 농업을 살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도시사람들이 시골로 내려가 농부가 되는 것도 중요한 한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시골로 내려가는 길은 멀고도 아주 험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도시를 경작하자고 제안한다. 도시의 시멘트,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살아있는 생명의 흙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너도나도 도시를 경작하려고 나선다면 많은 사람들이 농부가 되는 때는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농부로서 근본의 삶을 산다면 우리의 세상이 참으로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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