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죽음을 한국인들에게 알려 달라"
        2006년 11월 07일 03:29 오후

    Print Friendly

    머나먼 이국 땅에 와서 지옥같은 노동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이 프레스에 깔리고 심장마비로 죽어 싸늘한 시체가 되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데도 사용자는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쁘고 정부는 사망사건 통계조차 제대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아침, 산업기계와 선박용 주강품 등을 생산하는 한국주강 사무실에서 베트남에서 온 산업연수생 반랍(25)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공장에서 15분 가량 떨어있는 한국주강 의령공장의 숙소에서 자고 있었다. 함께 자던 그의 베트남 동료들이 아침에 깨웠는데 그는 일어나지 못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을 거두었다.

       
     
    ▲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머물고 있던 숙소(사진 마창산재추방운동연합)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예전에 사무실로 쓰던 곳이었고,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은 매트리스와 전기장판을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숙소를 방문했던 마창산재추방운동연합 김병훈 사무처장은 "숙소가 돼지우리 같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사인은 심근경색, 즉 심장마비였다. 그는 1일 아침부터 머리가 아팠지만 일을 계속 했고, 철야작업을 하다 몸이 너무 안 좋아 밤 10시경 탈의실에서 잠이 들었다. 이어 다음날 다시 8시간 근무를 마치고 11시 잠이 든 후 영원히 깨워나지 못했다.

    그를 비롯해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은 월 100시간이 넘는 잔업과 특근을 해야 했다. 9월에도 104시간의 시간외 근무를 했다. 월급은 ‘금속산업최저임금’인 82만원을 받았다. 금속노조 한국주강지회 모상철 사무장은 "업무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보통 일주일에 이틀씩 철야근무를 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이틀 철야근무·잔업특근 한 달 104시간

    그는 1년 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오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았고, 올 4월 회사에서 한 건강검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만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전쟁 같은 밤일’과 장시간노동이 25살 건강하고 젊은 청춘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한국주강지회는 3일 곧바로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함께 회사를 만났다. 노조는 ▲산재사망에 따른 위로금 지급 ▲이주노동자 숙소 개선 ▲뇌심혈관계 교육 및 건강검진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일하다 죽은 것도 아니고 개인질병"이라며 노조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마창산추련 김병훈 사무처장은 "잔업시간이 평균 104시간이고 철야근무를 했고, 건강검진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과도한 장시간 노동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산업연맹 경남본부 김정철 노동안전부장은 "급격한 작업량의 변화와 과다한 작업량으로 인해 사망한 것은 산업재해라는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라 회사는 산재사망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시신은 경남 의령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고, 산업연수생들이 돌아가면서 그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그의 유족은 베트남 대사관에 사고해결을 위임했고, 8일 대사관에서 노무관이 현장에 내려올 예정이다. 윤종선 노동안전부장은 "회사가 약간의 위로금과 장례비용을 지급하고 사건을 마무리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 이젠텍 공장 중국인 유학생 프레스 압착 사망

    이에 앞서 10월 25일 이젠텍 공장에서 중국인 유학생인 A씨가 프레스에 압착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는 전남의 한 학교에 유학생이었는데 이곳까지 와 취업을 했고, 이젠텍 공장 안에 있는 해동기업이라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이젠텍의 대형 프레스에서 작업을 하다 저녁 6시 경 사고를 당했다.

    이날 사고에 대해 사람이 프레스에 있을 때는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는 안전센스의 작동여부가 논란이 됐다. 금속노조 이젠텍분회 이선자 부분회장은 "회사는 이 노동자들이 장난치다가 사고를 냈다고 얘기하는 모양인데, 이 기계는 사람이 있으면 자동으로 작동이 멈추는 기계인데 안전장치를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04년 9월 1일에도 한 파견노동자가 제품을 넣고 팔을 빼지 못한 상태에서 기계조작을 했고 두 팔이 잘려나간 사고가 있었다. 그는 "그 때도 안전장치가 작동을 하지 않았고, 안전교육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는데 교육을 받았다는 가짜 싸인을 받아갔었다"고 말했다.

    이젠텍분회는 지난 30일 경인지방노동청 평택지청을 찾아 공동사고조사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선자 부분회장은 "근로감독관이 2차로 현장조사를 나갈 계획이 있다고 해서 그 기계를 작동했던 우리 조합원이 있으니 같이 확인하자고 했더니 그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조사하겠다며 말을 바꿨다"고 전했다. 현재 이젠텍 분회는 회사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사건은 담당한 경인지방노동청 평택지청 노삼식 감독관은 "경찰서에서 찍은 사진에 안전장치에 불이 들어와 있어서 안전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나 싶다"며 "왜 안전장치가 작동하는 범위 밖에 들어가 있었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뒤에서 작업을 도와주던 사람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일어난 이젠텍 회사의 한 관계자는 "(하청)업체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유족과 30일 정도에 합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다음날 다녀갔고, 안전장치에 대한 논란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자 사망통계는 매달, 이주노동자는 1년에 한 번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노조가 없는 회사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불법체류중인 이주노동자들은 산재사고 자체가 은폐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노동부는 한국 노동자의 산재사망에 대해서는 매월 통계를 내서 발표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의 산재사망 통계는 연 1회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부가 발표한 백서에 따르면 지난 해 74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 것으로 나와있다.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가 5일에 한 명꼴로 숨진 것이다. 또 합법적 이주노동자 23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산재 사망자수는 1만명 당 3.2명으로,  2005년 노동부가 발표한 전체 산재사망자 통계인 1만 명당 2.2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체류 사실을 두려워해 은폐된 사망사고까지 포함하면 이주 노동자 산재 사망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팀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산재사망 통계는 근로복지공단의 승인 여부를 확인해서 나온 자료로 해마다 백서를 통해 공표를 하고 있다"며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근로자뿐만 아니라 불법이나 연수생을 불문하고 산재처리가 되기 때문에 사망자에 안 잡힌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우삼열 사무국장은 "근로복지공단에 승인을 받은 경우는 통계로 잡히지만 고용주가 보상을 하고 시신을 보낸 경우가 종종 있어서 정부발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망사건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할 경우 불법체류자 고용이 드러나고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은폐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속노조 윤종선 노동안전부장은 "언제부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서 대응활동이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목숨에 대해서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며 "금속노조도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관심과 실태파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