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계개편 알리바이를 찾아라"
        2006년 10월 27일 01: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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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재창출이 최고의 개혁이다". 이건 지난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임종석 후보가 민주세력대통합을 주장하며 내놓은 말이다. 범여권통합론자들의 강령으로 손색이 없는 표현이다.

    "정책노선 없는 정치공학만으로는 정권재창출은 커녕 살아남기도 힘들다". 이는 임종인 의원이 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의 한 대목이다. 당내 개혁강화론자들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당의 ‘실패’를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먼저 ‘민주세력’의 분열에서 비극이 시작됐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등이 이런 입장이다. 임종석 의원도 물론 같은 입장이다. 다수의 여당 의원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분열’이 ‘실패’의 씨앗이었다면 ‘통합’에서 ‘성공’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 고민에 빠진 열린우리당 지도부 (사진=연합뉴스)  
     

    반면 당이 개혁노선을 포기하면서 재앙이 싹텄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임종인 의원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작성한 개혁포기의 목록은 아주 많다. 대연정 제안, 국가보안법 폐기 실패,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이라크 파병, 한미FTA, 전략적 유연성 동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등등. 이들은 개혁정체성의 재확립이야말로 유일한 활로라고 주장한다.

    최근 난삽하게 쏟아지는 여당의 정계개편 관련 논의는 물론 임종석 의원식 발상법에 기초해 있다. 그런데 이들에겐 본질적인 딜레마가 있다. ‘통합’은 해야 하는데 ‘명분’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민주세력대연합’이나 ‘평화개혁세력대연합’ 같은 낡은 통합틀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는 게 이들의 고민이다.

    민병두 의원같은 사람은 ‘복지 평화세력 vs 개발 봉쇄세력’의 구도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리 새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정동영 전 의장이 내놓은 ‘신중도’도 마찬가지다. 김영춘 의원처럼 ‘정책노선’을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정책과 노선의 분별정립 후 통합의 순서를 밟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통합을 전제로 답을 찾으려는 연역적 논법의 딜레마다.

    자칫 과거회귀적 통합으로 비칠 경우 ‘필패’의 보증수표가 될 수도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이 "지금은 정계개편을 말할 때가 아니다"고 거리를 두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정 전 의장의 핵심 측근은 "지금 정계개편에 관심 갖는 국민이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 여당의 주요 계파가 27일 질서정연한 정계개편 논의를 주장하며 속도조절에 들어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임종인 의원이 주장하는 개혁노선 강화론도 딜레마는 있다. 개혁노선의 강화는 불가피하게 ‘뺄셈’의 정치를 수반한다. 대선을 앞두고 통합에 목을 메고 있는 여당 사람들이 ‘뺄셈’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임 의원은 ▲정치면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와 대연정 제안 ▲외교안보면에서는 이라크 파병 및 추가 파병, 굴욕적인 용산기지 이전 협상,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사회경제적으로는 법인세 2%인하, 특별소비세 인하, 기업도시특별법 통과, 삼성에게 면죄부 주는 금융산업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개정, 비정규직에 불리한 비정규직법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추진 등을 개혁노선의 후퇴로 규정했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기성정당의 범위 안에서 임 의원의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할만한 세력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이런 요구를 담아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여당의 개혁노선 포기는 단순한 전략적 오류라기보다 여당 의원 다수의 정체성과 신념적 차원의 문제로 보여진다.

    여당 통합론자들이 찾는 것은 결국 ‘통합’의 알리바이다. ‘알리바이’지만 ‘알리바이’로 비쳐지지 않는 ‘알리바이’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기왕의 정계개편론이 대선용 정치공학으로 해석되는 마당에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알리바이’가 아닌 것도 ‘알리바이’로 비쳐질 소지가 다분하다. 임종인 의원이 주장하는 ‘개혁노선’의 강화도 대선용 정치공학을 일체 배제할 때 가능한 발상법이다.

    내년 대선의 지평에 갇혀서는 지금 여당이 처한 딜레마를 풀기 힘들어 보인다. 지금 여당에는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왜 집권해야 되는가, 어떤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자문하고 자답해야 한다. ‘정권재창출이 ….이다’는 식의 수사에서 주어와 서술어는 위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여당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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