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사위 낙태죄 공청회,
    토론자 등 형평성 논란
    민주당 법사위원들도 '폐지 찬성'
        2020년 12월 08일 10:34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8일 편파성 논란이 제기됐던 ‘낙태죄’ 관련 법안 공청회를 예정대로 개최했다.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공청회 참석 전문가들은 낙태죄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여러 부정적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낙태죄를 폐지할 경우 여성이 낙태를 남용할 것이라거나, 출생률 저하 문제 등을 들어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낙태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낙태의 범죄화는 여성에게 임신 상태와 출산·양육을 강제하는 것이며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1988년에 낙태죄를 전면 폐지한 캐나다에선 지난 30년간 오히려 낙태 시술 건수가 감소했다는 해외 입법 사례를 들었다.

    이날 법사위 낙태죄 관련 법 개정에 대한 공청회는 시작하기도 전에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여성계는 진술인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이날 공청회 참석 전문가 8명 중 6명이 낙태죄 유지를 주장했고, 나머지 2명만 낙태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생명권이 제일 중요, 근친간 임신도 낙태 안 돼”

    낙태죄를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전문가 중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정부안에 힘을 실었고, 이흥락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음선필 홍익대 법대 교수,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연취현 변호사, 최안나 산부인과 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 등은 정부의 형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태아의 생명권 보호 등을 이유로 낙태 허용 범위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낙태죄 폐지는 생명권 훼손할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며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결정권으로 낙태하는 것은 10주 이내로 제한해야 하고, 10주부터 22주까지는 상담과 숙려기간을 거쳐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법률정책위원인 인취현 변호사는 “최대한 단기간 이내에,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주 이내에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으로서의 존엄을 해하지 않는 낙태 허용범위”라며 “24주까지 일정 사유와 조건에 기한 낙태를 허용하는 정부안은 지나치게 장기이며, 태아의 생명으로서의 존엄을 파괴하는 입법안으로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낙태 행위로 인한 최대피해자인 태아의 목소리가 이 법안 논의에 필수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며 “태아의 입장에서 본다면 낙태죄는 생명권 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덧붙였다.

    사회·경제적 사유는 물론 근친간 임신까지도 낙태를 허용해선 안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흥락 변호사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대해선 “너무나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며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근친간 임신의 경우도 낙태를 하면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그는 “생명권 박탈의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근본적인 검토를 요한다”며 “천부인권인 생명권 박탈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생명을 최대한 살리는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낙태죄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헌재의 판단을 거론하면서도 생명권은 양보할 수 없는 권리라고 했다. 그는 “낙태죄 조항으로 인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지만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비해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다”며, 임부에게 태아 심박동 청취 기회를 부여, 일정 기한 내 의사의 낙태시술 보고 의무 규정, 미성년자 낙태수술에 관한 부모 동의서 고지 의무화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회, 정부 개정안 처리한다면 여성차별 재생산하는 것”
    “낙태 줄이고자 한다면 효과없는 처벌 아닌 다른 정책 고민해야”

    낙태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측의 전문가는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원,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교수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임신중단을 처벌의 대상이 아닌 온전한 의료행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죄의 실제 작동 여부와는 별개로 법 조항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안전한 임신중단 시술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낙태죄는 낙태를 줄이는 데 아무 효과가 없다는 점은 국내외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규제가 강력할 때 오히려 안전하지 못한 인공임신중절의 비율이 늘고, 모성사망률이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낙태를 줄이기 위해 낙태죄를 존치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낙태를 줄이고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의 비율을 높이려면 별다른 효과도 없는 처벌이 아니라, 다른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며 “현대적 피임법을 더 널리 보급하고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의료 지식을 강화하고, 성관계에서의 평등을 확보하고, 아이를 키울 만한 사회경제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여성들이 낙태 시술을 남용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여성의 생명권과 자유권, 안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1988년 낙태죄를 전면 폐기한 캐나다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낙태죄가 없는 30년을 보낸 결과 이제 캐나다인들은 처벌조항이 없어도 낙태 남용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임신중단 건수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고, 주수 제한이 없어도 대부분은 초기에 시술한다”며 “소수의 후기 임신중단은 대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거나 보건의학적 필요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한 수술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연계하고, 재정적 지원을 한다. 후기 임신중단은 ‘금지해야 하는 영역’이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영역’으로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도 짚었다. 그는 “낙태죄를 두어 여성을 위협하고 사전 상담을 강제해서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여성을 멈추게 한다고 행복하게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하는 미래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것은 임신상태를 강제하는 것이고 출산과 양육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낙태의 범죄화를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김혜령 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기독교윤리전공) 교수는 “정부의 입법안은 시끄러운 정국에서 그 고통의 책임을 이전과 같이 여성에게만 차별적으로 부담해 온 전통을 유지하겠다는 매우 보수적인 판단”이라며 “(낙태죄를 일부 존치하는 정부 개정안을 처리하게 되면) 정치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해결하기 보다 오히려 은밀하게 재생산하는 주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여성의 재생산권을 주장하는 일은 임신과 출산을 거부하겠다는 불의한 주장이 아니”라며 “자발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실존적 자유의 토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낙태죄로 여성을 처벌할 사회적 비용으로 적극적인 피임 교육과 온전한 의료행위로서 안전한 임신중단 시술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낙태죄 전면 폐지를 실시한 서양의 국가들에서는 임신중절을 한 여성에 대한 범죄자 취급과 처벌에 쓸 사회적 비용을 안전한 의료행위로서의 임신중절술과 적극적 피임교육, 나아가 출산과 양육에 대한 보편적 지원을 늘리는 데에 돌림으로써 오히려 건강한 모성을 확대하는 실용적 결과를 보여준 선례들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낙태죄 존치 주장이 우리사회에 오랫동안 뿌리 박힌 여성 차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여성이 생리학적으로 출산을 할 수 있는 기능, 그 기능으로 여성을 좁혀서 보는 시각이 작동하는 것”이라며 “임신과 출산은 자연적이면서도 문화적 행위다. 야생동물이 출산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낙태죄를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민주당 법사위원들 “낙태죄 폐지 찬성”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의 불참 속에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 여당 의원들은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낙태죄가 없어지면 여성들이 손쉽게 임신중절을 선택할 것이라는 주장은, 여성을 처벌로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낡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범계 의원도 “저는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며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주수 제한을 두든 규범력이 작동하질 않는다”며 “그렇다면 낙태죄 문제를 법령의 이름으로 해방하고 사회문화적으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나 태아 생명권 문제를 계도하고 알려가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소병철 의원 또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을 지목하며 “특정 의견만 입법화할 순 없다”며 “헌재의 결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6개 법안 중 3개 법안이 낙태죄 전면 폐지하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상 의원도 “낙태죄가 있는 나라에서 임신한 몸으로 사는 건 언제든 국가에 통제당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견해에 주목한다”며 낙태죄 전면 폐지에 힘을 실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