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농민, 구경하는 노동자
    2006년 10월 25일 10:18 오전

Print Friendly

장면# 1.

23일 오전 9시 한미FTA 4차 협상이 열리는 중문관광단지 앞 예래입구.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예상보다 일찍 버스를 타고 나온 온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협상장 입구에 내렸다. 경찰은 50여명밖에 없었고, 경비도 허술했다. 뛰어들어갔다면 단박에 협상장 입구까지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은 40분 넘게 주유소 앞에 멍하니 서 있었고, 뒤늦게 버스를 타고 나타난 경찰이 입구를 완전히 봉쇄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농민들과 합세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간 전국농민회총연맹 150명의 농민들은 전날 미리 봐두었던 중문골프장을 통해 하얏트호텔 앞까지 달려갔다. 당황한 경찰이 급히 연락을 취하는 사이 농민들은 다시 식당을 지나 협상이 열리는 신라호텔 10m 앞까지 진출했고, 협상 관계자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장면# 2.

23일 오후 4시 30분. 협상장으로 향하는 길이 경찰에 의해 완전히 봉쇄 당하자 농민들은 중문광광단지 내에 있는 퍼시픽랜드 앞 방파제로 내려갔다. 한 농민이 밧줄을 쥐고 바다로 뛰어들어 건너편 방파제로 헤엄쳐갔고, 이어 밧줄 3개를 연결했다.

환갑을 앞둔 농민부터 여성농민까지 40여명의 농민들이 줄지어 바다로 뛰어들었다. 당황한 경찰이 긴급하게 병력을 배치하자 농민들은 바다 속을 헤엄치며 3시간 동안 물속에서 시위를 벌였고, 회담장인 하얏트호텔 가까이까지 진격했다. 노동자는 금속노조 한국코아지회 홍승명 사무장이 유일했다.

같은 시각 500여명의 노동자들은 방파제 입구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농민들의 투쟁을 구경하고 있었다. 원래 이날 바다로 뛰어드는 해상시위는 노동자들이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해상시위를 벌일 인원이 많지 않았고, 결국 바다로 뛰어드는 투쟁은 농민들이 하게 됐다. 이날 일부 농민들은 "민주노총 구경만 하고 있을 거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 24일 낮 12시 제주 천제연폭포 앞 주차장에서 경찰들이 "한미FTA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행진하는 집회참가자들을 방패와 곤봉으로 내리쳐 10여명의 농민과 노동자가 다쳤다.(사진 민주노총)
 

장면# 3.

24일 오전 11시 중문농협 앞에서 열린 원정시위 셋째 날 결의대회를 마친 원정시위대는 천제연 폭포 주차장에서 경찰과 맞섰다. 농민들은 6m 높이의 2층짜리 대형 콘테이너에 밧줄을 묶어 끌어냈고, 협상장으로 향한 길을 봉쇄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사회자가 정리집회를 하려고 하자 농민들은 "이제 막 싸우기 시작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거칠게 항의했고,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50m를 달려나와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농민 10여명이 크게 다쳤다.

그러나 이 자리에 민주노총 원정시위대는 100여명 남짓밖에 없었다. 많은 노조에서 오전에 비행기표를 끊어 서울로 올라갔고, 오후나 저녁 비행기를 끊은 노동자들도 제주시로 이동해 남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똑같이 22일부터 24일까지 2박3일간의 원정투쟁을 전개했다. 노동자들은 24일 일찍 집으로 떠났다. 그러나 농민들은 2박3일을 온전히 싸웠다. 가장 멀리 강원도에서 온 전농 강원도연맹 소속 농민들 37명은 22일 새벽 6시 집을 출발했고, 마지막날인 24일도 오후까지 투쟁을 마치고, 밤 8시50분 제주항공을 이용해 서울로 올라왔다. 농민들은 25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농민들과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정해진 숙소를 벗어나지 않고 생활했고, 2박3일 동안 3천원짜리 도시락만 먹었다. 제주도에 와서 회 한 조각 먹지 못했고 투쟁 과정에서 금속노조 박창식 수석부지부장이 머리가 깨져 8바늘을 꿰매는 등 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일부 노조 간부들은 가까운 관광지로 가 회식을 했고 23일 A노조 대의원들은 봉고차를 빌려 횃불문화제가 끝나기도 전에 제주시내로 가 술을 먹기도 했다.

1년 중에서 가장 바쁘다는 수확기에 농민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자기 돈 20만원을 넘게 내고 원정투쟁에 참가했다. 노동자들은 조합비로 참가했기 때문에 사비를 내지 않았다. 농민들은 구속을 각오하고 참가했다.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제주도에 간다고 하니까 투쟁도 하고 관광도 할 생각으로 온 간부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바닷물에 뛰어들었던 순창군 농민회 양수철 농민은 "우리가 사전답사와 준비를 잘 해서 투쟁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이지, 민주노총에 계신 분들도 다 싸울 의지는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노동자 농민 다 죽이는 한미FTA 박살내자" 제주 원정투쟁 기간동안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다. 금속노조 전송철 부위원장은 "처절하게 싸우는 농민 앞에 정말 부끄럽지 않게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