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고향 일구어가는
    고향의 아름다운 예배당
    [그림 한국교회] 당진의 거산교회
        2020년 10월 20일 01: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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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고향 /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난생처음 서울로 와서 갑자기 치른 중학교 입시에 낙방하고, 친구 하나 없이 객지에서 적적하게 지낼 때, 향수에 젖어 부르던 동요입니다. 30여 년 만에 고향에 간다는 생각에 잠을 설치고, 이른 아침 고속버스 타고 가면서 ‘고향의 봄’을 읊조리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청명한 10월 6일, 모처럼 교회 사진을 찍으러 고향(충남 당진시 송산면)에서 가까운 당진시 신평면의 “거산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코로나19를 넘어 가을 들녘을 보고 싶었고, 불법세습을 꼼수로 허용한 작년의 예장(통합)총회 ‘명성교회 수습안결의’를 철회하려고 대책집행위원장으로 맡아 기를 쓰고 활동했지만, 지난 9월 21일 전/현직 총회 임원들이 온라인 총회를 핑계로 위법적 편파진행으로 무산되어, 참담한 마음도 달랠 겸 고향행을 단행한 것입니다.

    당진 버스터미널에서 호산나교회 김남철 목사님이 승용차로 저를 안내하여 주었습니다. 신학대학원 시절, 동아리 후배였는데 30여 년 만에 만난 것입니다. 안부를 나누는 사이에 금방 도착한 거산교회(이동일 목사)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것보다 큰 규모이고 걸출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여러 부속건물들은 좋은 질감의 벽돌로 공들여 제대로 지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큰 건물을 지어 여러 공간으로 사용하지 않고 용도에 따라 각각 건물을 지었고 건물명이 따로 있었습니다. 조경도 잘 되어 있고, 야외공연장의 잔디밭이 아침 햇살에 화사하게 빛났습니다. 외진 동네에 이런 교회당이 있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섬기는 호산나교회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주렁주렁 모과를 달고 있는 나무가 저를 반겨주었는데, 주일에는 노인들 예닐곱밖에 반길 분이 없답니다. 거기서 모교 송산초등학교는 멀지 않았습니다. 봄이 되면 담임선생님 인솔로 단체로 손발의 겨울 때를 벗기던 시냇물은 보이지도 않고, 산업단지로 인한 직장인들로 학생들이 늘었는지 증축하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이 잔디 구장으로 바뀐 것보다 더 낯선 것은 달리기할 때 멀기만 했던 그 넓던 땅이 너무 작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대했던 플라타너스 대신 서 있는 느티나무들이 제법 큰 것을 보니 어느덧 55년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였습니다.

    교가에도 나오는 봉화산은 야트막한 동산에 불과하였습니다. 저렇게 낮은 산이라니…… 정든 집과 너른 밭, 밤나무 단지는 간 곳 없고, 양옥 주택만 서너 채 보였습니다. 바다를 매립하여 거대한 산업단지로 만들었다는 아름다운 바닷가는 보고 싶지 않아서 포기하였습니다. 조개를 줍던 긴 모래사장, 낚시하고 물장난치던 염전 저수지, 새알 줍던 바닷가 낮은 산들은 이제는 흔적도 없을 것입니다. 당진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봄이면 흐드러지게 꽃 피우던 학교와 면사무소 둘레의 벚나무들은 고목으로 죽었는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후배 목사는 오랫동안 청소년상담센터를 운영하며 힘들게 개척교회를 세우다가 지금도 미자립교회를 사역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교계와 신학 입장이 당당하여 의기투합이 되었습니다. 고향은 ‘상전벽해’(桑田碧海)여서 허망하였지만 눈부신 가을 햇살에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며칠 전 믿음의 고향을 경험하였습니다. 2016년 11월, 라오스에 여행을 같이하고 그해 말부터 촛불집회에서 본격적으로 다시 만나기 시작한 새문안교회 대학부 선후배들이 올해 10월부터 매월 줌으로 포럼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10월 13일, 첫 모임에서 제가 “추락하는 한국교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44년 만에 발제하고 토론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새문안교회 재건축으로 사라진 언더우드 기념관 지하 친교실에서 발제하던 기억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경기도 혁신학교 여교장 선생님과 독일의 선교사 후배도 참여하여, 열 서너 명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발제만으로도 고향을 방문한 것처럼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이 대학생회는 제 신앙과 삶을 변화시킨 뿌리인 까닭입니다.

    이덕주 감신대 은퇴교수는 저서 <충청도 선배들의 이야기>(도서출판 진흥, 2006)에서 충청도 교회 목회자들의 신앙을 ‘선비 신앙’이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충청도 선비’는 추하고 살벌한 세속 정치 현장에 어느 한쪽에 휩쓸리거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중용의 미덕을 뜻하는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내가 신석구 목사님을 비롯한 충청도 출신 목회자와 교인들에게서 읽은 것이 이런 선비정신이 녹아들어 있는 ‘선비 신앙’이다. 오늘 한국 사회와 교회가 풀어가야 할 동서 지역갈등의 양대 축인 영남과 호남, 그 가운데 위치한 충청도에서 얻을 지혜는 양보와 희생을 바탕으로 조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선비 신앙’이 아닐까?”(12,13쪽)

    1910년, 서울에서 낙향한 이신애 권사가 자기 집에서 시작한 기도회로 거산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권사의 전도, 교육, 봉사의 희생정신으로 교회는 당진시 신평면 일대에 복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여성이 극도로 차별받던 시대였지만, 균형과 중용의 미덕을 간직한 ‘선비 신앙’으로서 지역주민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것입니다.

    우리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가 힘겨운 코로나19에서 성찰하며 새로운 교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코로나시대에서 교회본질 회복과 목회”라는 주제로 6회분의 온라인 목회아카데미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10월 15일 첫날,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은 “이 시대에서 회복해야 할 교회의 본질”이란 제목의 탁월한 강연 중에, 이제는 교회가 적대감을 환대로 바꾸어야 한다며 신학자 폴 틸리히의 구원관을 소개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이다.” 바로 거산교회가 지난 110년 동안 환대하는 신앙공동체로서 존재한 까닭에 외진 곳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품었습니다.

    앞으로도 거산교회는 2020년 “오늘의 초대교회”라는 목회계획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고향으로 삼는 초대교회의 정신을 오롯이 이어받으면, 산업단지로 변화하는 당진에서 더욱 단단한 믿음의 뿌리가 될 것입니다.

    필자소개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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