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의 한국적 현실
    "죽은 지구 위에서는 일자리도 없다"의 실천적 합의
        2020년 10월 14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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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운수노조 정치신문 “노동조합 정치가 반이다” 9호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이자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인 김현우 씨가 투고한 글인데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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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산업부 장관 등과 함께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을 방문했다.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의 상징이 될 만한 재생가능에너지 사업 현장을 둘러보고 최근 위기에 처해있는 두산중공업 관계자들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기후정의운동을 함께하는 단체들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탈석탄’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문대통령에게 요구하기 위해 두산중공업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했을 때, 그들이 만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두산중공업 지회 조합원들이었다. 조합원들은 기자회견 물품을 거칠게 치우며, 탈석탄 탈원전 때문에 많은 조합원들이 명예퇴직하고 가족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며 환경단체들을 제지했다. 오히려 지회는 탈원전 정책의 속도 조절을 요구하며 특히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를 탄원하기 위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참이었다. 실랑이 끝에 환경단체들은 경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겨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두산중공업 지회 역시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경남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원자력노동조합연대 (사진: 두산중공업 지회 웹사이트)

    이 장면은 기후위기가 격화되면서 노동현장과 기후정의운동의 현장에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삽화로 여겨진다. 두산중공업은 원전 관련 매출 비중이 15% 정도, 석탄화력 관련이 70% 가까이 되는 발전 주기기 전문 업체다. 20년 전 한국중공업이라는 공기업을 두산이 인수하여 사기업이 되었지만 발전기기 관련 기술은 국내에서 독보적이기 때문에 대체 불가능하여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석탄발전 해외 수주가 줄어든 게 주된 타격이 되었고, 사측의 방만 경영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가스터빈, 풍력터빈 등 두산중공업이 갖고 있는 몇 가지 대체 기술들이 있지만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노동조합 지회의 현 집행부는 문재인 정부가 취소한 신한울 3,4호기라도 재개하면 숨통이 트이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회의 모든 조합원이나 지회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노동운동 지지자들의 생각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핵발전 산업의 세계 동향과 정부 정책 전망을 볼 때 설령 신한울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며 중장기적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핵발전과 석탄화력을 제외한 영역으로 무게중심을 시급히 옮기고, 그것을 전제로 정부 지원이든 공기업화든 지역 범위의 대책을 포함하는 대안을 요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한국에서만 펼쳐지고 있는 게 아니다. 프랑스의 생계형 운전자들이 유류세 인상에 항의해서 벌인 ‘노란 조끼’ 시위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과제와 사회적 형평성 또는 민주적 합의가 충돌해서 빚어진 사례였다. 미국 민주당에서 주창한 ‘그린뉴딜’ 결의안에 대해 AFL-CIO(미국 노동총연맹) 산하의 일부 산별노조는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의 서한을 보냈고, 유럽의 ‘그린딜’에 대해서도 일부 노조가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통해 일자리의 전체 숫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많지만, 단기적으로 타격을 입는 개별 노조나 지역 또는 부문의 입장을 그러한 장밋빛 미래로 설득하기는 어렵다.

    2018년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 자료사진

    지속불가능한 오염 산업과 공장이 녹색 산업과 일자리로 전환할 필요 앞에서 그 과정과 결과가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희생을 초래하지 않는 정의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개념이다. 1980년대 미국 노동운동에서 시작되어 국제 노동운동의 정책으로 발전했고, 2015년에 ‘파리협정’의 전문에 몇 줄로 포함되기까지 했다.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개념이고 정책이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왜 정부가 발표한 한국의 그린뉴딜에는 ‘정의로운 전환’이 단순히 ‘공정 전환’이라는 표현 한 줄 말고는 아무런 내용이 없을까? 미국이나 유럽의 그린뉴딜이 2050년 이전 온실가스 배출제로 달성 등 기후위기 대응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한국판 그린뉴딜에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의 목표와 효과 예상조차 들어있지 않다. 투여되는 재정 규모도 경제와 사회의 체질을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정도로 개선할 마중물이 되는 규모가 아니며, 창출될 것으로 제시된 일자리의 숫자도 현실성이 불분명하다. 말하자면 실제로 이렇다 할 ‘전환’이 없고, 따지고 다투어야 할 ‘정의로움’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정부만 탓할 일일까? 이제까지 온실가스를 쉼 없이 배출하며 양적 성장에 치중했던 역대 정부들의 경제 정책과 산업 정책 기조가 대통령의 한마디로 바뀔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한 것이 아닐까? 미국 민주당의 그린뉴딜과 유럽의 그린 딜이 그나마 실 내용을 갖추고 급진화된 것도 풀뿌리 기후정의운동이 동력과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산업에서 주류이며 정책 결정에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의 발언권이 계속 득세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동조합 역시 조합원의 일자리와 지역사회의 미래에 커다란 변수가 될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문제를 자신의 정책과 사업으로 발전시키지 못해왔다. 늘 이유와 핑계는 있다. 정부와 자본에 맞서 싸워야 할 일이 너무 많고, 조합원들은 기후위기 문제를 잘 이해 못하거나 중장기적 대안을 얘기하는 집행부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만이 기후위기 바깥에 있을 수 없고 한국 사회 바깥에 있을 수도 없다. “죽은 지구 위에서는 일자리도 없다”라는 세계 노동운동의 구호는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의 노동과 우리의 조직 활동은 실은 자본의 이윤 체계 유지와 확대에 얼마나 동참해왔는지,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위기 심화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의 노동과 조직은 얼마나 지속가능한지, 다른 생산과 다른 소비를 위한 조직은 불가능한지를 따져보면 된다. 더 간단히 말해, 이 다중적 위기의 시대에 노동조합이 바라고 만들고 싶은 경제와 사회를 상상하고 말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계산과 논의가 너무 오래 걸려서는 안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 티핑 포인트로 불리는 1.5도 상승까지는 채 8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총연맹과 일부 산별노조들에서 기후위기 교육부터 시작하고 있지만 정책과 조직 사업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 노동조합의 전략과 노선으로 이야기를 넓혀야 한다.

    필자소개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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