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현실에서 길 찾기
    사상가이자 실천가로서 마르크스 읽기
    [책소개] 『마르크스를 읽자』 (미카엘 뢰비,엠마뉘엘 르노,제라르 뒤메닐 / 나름북스)
        2020년 09월 26일 09: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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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를 넘나드는 카를 마르크스의 방대한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저술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사상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준비 없이 뛰어들기엔 그의 저작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다. 《마르크스를 읽자》는 초심자들을 위해 정치, 철학, 경제 세 영역으로 나눠 마르크스 원전의 핵심 부분을 발췌하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마르크스 연구자 3인이 해설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다.

    제1부 「정치」 편은 마르크스 저작을 연대기적으로 읽으며 그의 정치사상의 변화를 살핀다. 책의 시작인 「정치」 편에선 전반적인 마르크스 사상도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정치」 편에선 동시대에 제기된 정치적 질문에 마르크스가 어떠한 이론적 접근과 실천적 개입을 모색했는지가 자세히 드러난다. 마르크스가 어떤 지적 여정을 거쳐 세계를 변혁하는 보편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를 설정하게 되는지, 또 혁명이나 계급투쟁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이론과 실천 전략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다룬다.

    「정치」 편 저자인 미카엘 뢰비는 마르크스 청년기 저술인 『헤겔 국법론 비판』(1843)과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1844)을 읽으며, 헤겔좌파에서 공산주의자로 이동하는 마르크스의 지적 경로를 추적한다. 또 『독일 이데올로기』(1846), 『공산주의자 선언』(1848),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를 읽으며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그리고 혁명에 대한 그의 사상을 훑는다. 「고타강령 비판」(1875),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회람문」(1879) 등을 통해선 마르크스가 사민주의자 등과 논쟁하며 국가와 노동자계급 진로 등의 주제를 두고 어떤 실천성을 강조했는지 보여준다.

    「정치」 편을 옮긴 배세진은 “「정치」 편의 핵심은 마르크스의 이론적이고 사상적인 변화와 운동가로서 마르크스의 정치적 변화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해명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또 배세진은 “뢰비는 마르크스의 시작에서 끝으로 나아가는 그의 이론적, 그리고 정치적 변화를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고 정확하게 정리함으로써 교과서라는 본서의 형식에 걸맞게 마르크스 속으로 우리가 입문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철학과 대결한 지적 여정의 재추적
    철학으로부터의 탈피=철학적 실천의 근본적 전환

    제2부 「철학」 편은 1부와는 다르게 마르크스의 청년 시절 저술에 집중한다. 에마뉘엘 르노가 쓴 「철학」 편은 비판철학의 구성이라는 기획에서 시작해 ‘철학으로부터 탈피’로 나아가는 마르크스의 사상적 궤적을 따라간다. 1841년 박사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로 시작된 마르크스의 지적 이력은 『독일 이데올로기』(1846)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표현 양식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르노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미 ‘철학으로부터의 탈피’를 기획하고 있었다.

    따라서 2부에선 시기적으로 1843~1846년 사이에 쓰인 『독불연보』, 『경제학-철학 수고』,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독일 이데올로기』가 주요 읽기 대상이다. 이를 통해 르노는 마르크스가 철학과 대결하면서 밟아간 지적 여정을 재추적함으로써 그가 ‘철학으로부터의 탈피’에 이르게 된 이유를 짚고, 그러한 ‘탈피’의 기획이 이후 저작에 어떠한 철학적 색조를 입혔는지를 분석한다.

    「철학」 편의 1장에선 『독불연보』를 통해 마르크스의 지적 여정이 청년헤겔주의와 비판철학의 자장 안에서 형성된 것임을 확인한다. 이어 2장에선 인간학적 재구성(『경제학-철학 수고』)과 실천철학(「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을 매개로 청년헤겔주의를 벗어나려 한 마르크스 사유의 자락을 들여다본다. 3장에선 『독일 이데올로기』를 통해 마르크스가 청년헤겔주의를 넘어 철학 자체와 단절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이유를 확인하게 된다. 르노는 청년 시절 마르크스의 이 같은 지적 여정에 대해 “각각의 여정이 직전 여정에 대한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자기비판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이러한 경로에 비추어 본다면, ‘철학으로부터의 탈피’는 철학의 청산이나 새로운 철학이라기보다 오히려 철학적 실천의 근본적 전환이라는 기획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옮긴이 황재민은 「철학」 편의 의의를 마르크스 사상 전개에서 청년헤겔학파라는 지적 맥락이 갖는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정치경제학 비판’ 역시 철학적 관점(철학의 새로운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자리매김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찾는다. 황재민은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적 철학이란 곧 마르크스가 청년 시절부터 철학이 역사적 분석, 경험적 탐구, 현실적 투쟁 등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관한 그 자신의 끊임없는 숙고 과정의 산물로 파악될 수 있으며, 이는 오늘의 철학 함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자본』을 통해 마르크스 경제 이론 읽기
    ‘철학으로부터 탈피’에서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철학」 편의 중심 주제인 ‘철학으로부터 탈피’라는 마르크스의 사상적 궤적은 결국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 정치경제학 비판은 마르크스 말년의 주저 『자본』을 통해 드러나는데, 이는 《마르크스를 읽자》 3부 「경제」 편에서 다룬다.

    제라르 뒤메닐이 쓴 「경제」 편은 『자본』을 토대로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주요 내용을 설명한다. 뒤메닐은 「경제」 편을 3개의 장과 11개 절로 구성했는데, 이중 1장 전체를 할애해 마르크스의 방법론과 이론 구조를 상세히 설명한다. 두 번째 장에선 상품, 화폐, 자본 등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기본 개념들로 시작해, ‘잉여가치’, ‘자본의 유통’, ‘대부자본과 현대자본주의 제도’ 등의 주제를 다룬다. 2장에선 『자본』 1권과 2권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지만, 거대 주식회사와 금융기관들을 다룬 『자본』 3권의 논의들도 소개된다. 3장에선 경쟁 이론, 축적, 기술과 분배, 위기, 금융 메커니즘 등의 내용을 『자본』의 플랜과 연계해 설명한다.

    옮긴이 김덕민은 「경제」 편에 대해 “경제학의 역사성과 마르크스의 『자본』이 기초하고 있는 지식에 대한 이론, 그리고 (자본 관계를 사회적 관계와 직접적으로 동일시하면서 경제법칙과 경제적 범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려고 하는) 사회학의 반경제학적 편향 등을 다각도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또한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법칙들과 범주들, 그것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 사상을 이해하는 징검다리

    한편, 이 책의 공동저자인 미카엘 뢰비, 에마뉘엘 르노, 제라르 뒤메닐은 “본서에서 제시하는 바는 단순히 말해 저자들이 선별한 텍스트들로부터 출발하는, 그리고 이 선별된 텍스트들에 대한 저자들의 간략한 맥락화와 설명이 이어지는 마르크스 독해의 입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마르크스 사상을 이해하는 정석은 그의 저작을 직접 읽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저자들은 “만일 우리가 본서의 독자 중 단 몇몇에게만이라도 마르크스의 온전한 텍스트, 논문 그리고 저작들을 원전 형태로 읽고자 하는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우리의 목표는 아마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기대의 말도 덧붙였다. 세 저자의 바람대로, 《마르크스를 읽자》가 독자들에게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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