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이유 없는 확신’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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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11일 08: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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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나르시시즘이 폭발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기중심적 합리성’에 기반 해 행동해 온 북한이 10월9일 핵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성공과 실패 여부에 대한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북한 핵실험 사실을 부정할 만한 설득력 있는 주장은 나오고 있지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핵실험을 기정사실로 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북한의 나르시시즘이 폭발했다

    특히, 이번 핵실험은 10월3일의 ‘핵실험 계획 선언’ 후 6일 만에 전격적으로 단행한 것으로, 북한이 핵에 기반 한 ‘군사적 억지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 보면, 북한이 ‘핵 억제력’ 확보를 공언해 왔던 것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가깝게는 작년 2월 10일 ‘핵 보유선언’이 있었고, 올해 7월의 미사일 실험 발사에 대해서도 ‘자위적 국방력” 확보 차원에서 행했음을 분명히 했었다.

       
     
     

    물론, 북한 핵실험은 미국의 대북 압박, 제재, 무시 정책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 바 크다. 부시행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 무시정책과 위협으로 일관해왔다. 게다가, 작년에는 ‘9.19 공동 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북 금융제재를 단행했다.

    올해 9월의 한미정상회담 후에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일본과 호주가 대북 추가제재에 동참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핵실험은 중일, 한일 정상회담과 미국의 중간선거 등을 계기로 삼아 북미 직접대화와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승부수’라는 평가도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위기를 임계점까지 끌어올려 극적인 반전을 노려왔던 북한 특유의 전략이 성공(?)을 거둬 대화의 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살아야 한다.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그리 호락호락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 ‘북한 vs 국제사회’의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 당국의 ‘군사적 모험주의’가 반복될 때마다,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여론은 축소되어왔다. 한반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합리적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이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군사적 모험주의가 질식시키는 합리적 해결 노력

    그와 같은 과정 속에서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보디 블로우’(body blow)와 마찬가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 핵실험이 자기 나름의 ‘전략적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중심적 판단’에 불과하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안은, 지난 7월 미사일 발사 이후보다 훨씬 강화된 대북 제재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조치를 포함하고 있는 ‘유엔헌장 7장’이 들어간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가 한 가닥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핵물질과 핵 기술 ‘이전’을 레드라인(red line)으로 제시한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북한은 10월3일의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을 밝혔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의 정면충돌을 피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북한의 핵 실험은 그 의도와는 달리 미국의 추가제재와 군사적 조치의 명분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상황을 통제 불가능한 위기국면으로 치닫게 할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안보리 결의안에 ‘유엔헌장 7장’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경제 ․ 금융거래를 전면 봉쇄하는 결의안이 나온다면 북한이 입는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높아지는 한반도 위기 상황의 가능성

    미국이 PSI(대량파괴무기확산방지구상)를 가동해 해상을 봉쇄하고 북한 선박에 대한 정선(停船), 임검(臨檢), 나포(拿捕)를 강행하려 한다면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전화(戰禍)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보다 바로 그와 같은 우발상황일지도 모른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군사적 대치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미․일의 대북강경파와 냉전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우려할 부분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남북관계의 성과마저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한반도 위기관리를 위한 완충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북포용정책은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전면 전쟁’을 예방해 온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핵실험이 동북아 군비경쟁을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것은 단순히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성급한 예단과는 다르다. 우리는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와 작년 2월의 ‘핵보유 선언’, 그리고 올해 7월의 미사일 실험 발사 이후 미일 양국의 군비확장이 가속화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대표적인 예가 미사일 방어(MD)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장 위협이 되지 않는 북한의 핵능력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동북아에서 자국의 이해를 관철하는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상황악화 조치가 아닌 문제해결 노력을

    문제는 현 상황을 어떻게 차분히 가라앉히고, 위기 타개를 위한 조치들을 취해 갈 것인가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미일과 유엔이 북한에 대한 ‘제재 일변도’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핵실험이 미국의 대북 압박 ․ 제재 정책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과 핵과 미사일 카드를 동원해서라도 생존을 하겠다는 북한 ‘생존전략’의 충돌 속에서 빚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압박, 제재를 강화한다는 것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 올 수도 있다.

    문제해결의 핵심은 미국이 대북 압박과 제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부시행정부가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발휘해, 북한과 진지한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시 행정부는 자국 내에서 일고 있는 대북정책 비판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동시에 북한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이유 없는 확신’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북한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민족공조를 실천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결국, 대북금융제재에 대한 전향적 조치 등을 포함한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 그리고 북한의 자제와 회담 복귀가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위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부분이 우리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떠나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촉구와 동시에, 북한에 대해 상황악화 조치에 대한 자제와 대화 복귀를 요구하는 것은 상식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북한 핵실험을 빌미로 그동안 쌓아왔던 남북관계의 성과마저 백지화하려고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대북포용정책 때리기’에 대한 또 다른 ‘집착증’의 산물일 뿐이다.

    위기를 촉발한 원인에 눈을 감은 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려 한다면 그것이 누구라 할지라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북한과 미일을 포함한 모든 관련당사자들의 ‘문제해결 지향적 행동’만이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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