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장 말처럼 판결도 후련한가
        2006년 09월 26일 06: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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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을 순회하며 판사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쏟아낸’ 발언들이 지난주에 이어 올초에도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 말들이 워낙 직설적이고 적나라하여 법원과 검찰 그리고 변호사 집단에 불신을 가지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마저 가져다주나 보다. 한마디로 너무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과연 대법원장의 말이 주는 후련한만큼 법원의 판결 또한 후련한 것일까?

    사법부 불신하는 사람들을 후련하게 했지만…

       
      권영국 변호사 (해우법률사무소)  

    이용훈 대법원장은 “일부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라는 것은 소송에서 유리하게 하기 위해 법원을 속이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경향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법원이 듣고 싶은 얘기는 다 감추고 무색무취한, 하고 싶은 이야기만 써 놓은 것이다”라며 서류에 의존한 재판을 경계했다.

    또 “판사들이 사람을 구속하는 것을 사무처리로 생각하는데 구속영장이 발부된 가족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에도 당사자의 아픔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영장발부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그동안 수사기관에서 만든 조서로 유무죄를 확정했는데, 이런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 검사들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술을 받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며 “재판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려면 검사의 수사기록을 내던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법원장 발언의 세 가지 목적

    대법원장이 행한 발언은 크게 세 가지를 겨낭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법관이 반대신문권이나 진술거부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작성되는 검찰조서에 의존하여 재판을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법정에서 제출되는 증거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둘째, 검찰의 구속영장청구에 대해 손쉽게 영장을 발부해주던 법원의 관행을 버리고 당사자의 아픔을 생각하여 영장발부를 신중하게 함으로써 불구속재판의 원칙을 세워야한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변호인이 작성하는 서류는 의뢰인의 소송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므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나아가 법원을 속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서류에 의존하는 재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재판 등 형사소송법의 대원칙 강조

    결국 대법원장이 행한 발언의 진의란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재앙과도 같은 구속영장발부에 신중을 기해야 하며,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와 변호사들이 작성한 서면 등의 서류를 중심으로 재판해오던 관행에서 벗어나 공개된 법정에서의 구술변론과 심리를 통해 형성된 심증을 토대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재판 등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다시 강조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대법원장의 말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법질서 확립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기관인 검찰에 대해, 그 기능과 역할을 존중하지 않는 뜻으로 국민에게 비칠 수 있어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검찰총장의 유감표명은 검찰이 여전히 유죄 입증을 당사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에 의존하려는 관행을 두둔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현재 검사실 조사가 투명하고 적법한가?

    특히 검찰총장은 변호인의 참여가 보장되고 영상녹화 등에 의하여 투명성과 적법성이 담보되는 검사실 조사를 ‘밀실수사’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으나, 과연 현재 검사실에서의 조사가 투명하고 적법한 것인가?

    며칠 전 금태섭 검사가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려다 피의자의 법적 권리를 ‘누설’하였다는 이유로 상명하복의 관계를 자랑하는 검찰조직이 대책회의를 통해 결국 연재를 포기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 ‘누설’ 내용이란 피의자가 되었을 때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피의자가 없으므로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가장 불리한 증거로 될 조서에 도장을 찍지 말라는 것이었다.

    구속영장 기각을 이유로 판사 뒷조사 압력

    이처럼 피의자의 법적 권리조차 일반 국민에게 알려주는 것을 묵인하지 못하고 중단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검찰의 사무실에서 투명하고 적법한 수사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에 누가 흔쾌히 동의할 것인가? 수사의 투명성과 적법성은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참여권이 있음을 진정으로 고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데 진정 수사과정에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참여권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지 반문할 일이다.

    그리고 검찰의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였다는 이유로 판사의 뒷조사 운운하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한 판사의 주장은 검찰이 얼마나 구속 위주의 강압적 수사관행에 젖어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투명성과 적법성이 담보되는 검사실 수사를 말할 것인가? 검찰이 검찰총장의 말처럼 ‘공익에 대한 대표자’이고 ‘국민에 대한 봉사기관’이라면 조서의 작성을 위해 진술을 강요하는 수사태도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대한변협의 옹색하고 수준낮은 대응

    대법원장의 발언과 관련한 대한변호사협회의 성명은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한 진의는 제쳐두고 표현에 대한 감정적 대응만으로 일관하고 있어 비판의 격을 스스로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서류에 의존하는 재판을 지양하고 법정에서 현출되는 증거에 근거하여 재판해야 한다는 구술변론과 공판중심주의의 주장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 “(대법원장이)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사람을 속여 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발언을 한 것은 법조 전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논쟁의 핵심에서 비켜난 ‘과도한 표현’에 대해서만 정색을 하고 있는 모습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대법원장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하여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직설적이고 과도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여론이 대법원장에게 매우 우호적이라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은 구속수사 위주의 수사관행과 검찰조서나 서류에 의존하려는 재판관행에 대해 매우 큰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검찰과 변협이 대법원장의 언행에 대하여 각을 세울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한 사법제도의 틀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발전적 논쟁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대법원장의 발언과 이율배반적인 재판 현실

       
    ▲ 검찰총장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가운데 21일 오후 이용훈 대법원장이 퇴근을 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재판의 상을 제시하고 있는 대법원장의 발언과 관련해 일선 법원의 재판현실로 돌아오면 매우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수차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않고 있는 법원의 유전무죄식 양형과 무분별한 영장발부의 문제가 그것이다.

    지난 2월에 있었던 두산그룹 총수의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횡령죄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 판결을 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사범들 다수에게 의원직 상실을 우려하여 벌금 100만원 이하의 온정적 판결들을 내리는 반면, 하층민들의 생존권 투쟁에 대해서는 그 처절성으로 인해 빚어지는 ‘폭력성’을 이유로 추상과도 같은 엄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얼마 전 쟁의행위기간 중 포스코의 불법적인 대체인력 투입에 항의해 포항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포항건설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에 대한 재판에서 검사가 58명에 대해 구속영장청구를 하자 법원은 58명 전원에 대하여 영장을 발부하는 기염을 토했다.

    포항건설노조 58명 전원 영장발부-27명 중형 선고

    그리고 25일 포항지원은 그들 노동자들 중 27명에 대해 징역 3년 6개월에서 1년 6개월에 이르는 상당히 무거운 실형을 선고하였다. 포스코의 불법적인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항의차원에서 본사를 방문했다가 우발적으로 점거농성이 이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검찰이 요청한 수만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수십명을 구속하고 실형을 선고하는 등 구속수사 및 구속재판의 관행을 조금도 시정하지 못하였다.

    포스코의 파업기간 중 불법 대체인력에 대해서는 검사의 수사대상에서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었던 반면 그에 항의한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한 수사와 형벌이 내려졌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지위에 있는 하청업체 및 건설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구속자는 111명으로 공안사건 구속자의 절반을 넘고 있다고 한다.

    이들 구속자 중에서는 원청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적법하게 전임자 급여를 지급받았음에도 공갈죄로 처벌받은 건설노동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검찰의 공안적 시각이 법원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포항건설노동자 58명에 달하는 검찰의 대단위 구속영장청구에 대해 법원은 100%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잔인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장의 엄격한 구속영장발부와 불구속재판의 원칙 발언은 결국 구두선으로 그치고 만 것이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은 입이 아니라 판결로 말하는 곳

    법원은 입으로 말하는 곳이 아니다. 법원은 판결로 말하는 곳이다. 아무리 법원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엄격한 영장발부와 공판중심주의를 외친다한들 일선 법원의 법관들이 구속재판의 관행을 선호하고 검찰의 조서에 의존하여 재판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기몰이를 위한 일시적 장식품이 될 뿐이다.
     
    진정 이용훈 대법원장이 법원의 유전무죄식 양형과 무분별한 영장발부, 그리고 조서재판의 관행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법원으로 거듭나려면 이번 발언 파문과 관련하여 대한변협이나 검찰에 대해 적당히 유감을 표명하고 타협하려 해선 안된다.

    불구속수사원칙, 구두변론 및 공판중심주의의 확립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적 형평에 맞지 아니하는 유전무죄식 양형을 시정하기 위하여 법원 내부를 개혁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판사들이 사람을 구속하는 것을 ‘사무처리’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발언’할 것을 대법원장에게 주문하는 바이다. 타협은 또 다른 내성을 길러낼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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