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대추구 경제 극복 위해 적녹동맹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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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31일 1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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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추진위원이며 초록정치연대의 후원회원이기도 한 이장규입니다. 새로운 진보신당이 자신의 지향으로 내건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란 슬로건에 대한 주대환 동지의 비판이 있었습니다.

    평소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거니와, 진보정당운동의 선배로서는 존경하는 분이지만 이번 글에 대해선 반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반론 속에는 제가 생각하는 신당의 지향에 대한 의견도 포함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신당의 상과 관련된 본격적인 내용은 조만간 쓰게 될 탈당 및 신당 가입의 변에서 보다 자세히 밝힐 예정입니다.

    어떤 식으로 반론을 할지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적색과 녹색의 결합 불가능성을 확신하고 계시는 주대환 동지의 의견과는 달리, 보다 적색이면서 보다 녹색인 길을 모색하고 있는 포스터나 버킷, 오코너 등의 생태사회주의론에 입각한 이념적 반론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 부동산 투자 전략 강연에 모인 인파. 국민경제 전체가 지대를 추구하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적녹동맹이 필요하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그럴 경우 주대환 동지는 이미 지적하신대로, “머리 속에서는 다 가능하지만 현실에선 가능하지 않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그리고 저 역시 현학적인 이념논쟁을 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새로 만들어질 신당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추상적인 이념논쟁의 과잉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진보신당은 이념보다 한국 현실에 밀착한 정당이어야

    가령 저는 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규정하며 그 중에서도 생태사회주의적인 지향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주의만이 답이고 사민주의는 개량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향후 수십 년 내에 현실화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붕괴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회주의로의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면한 현실 사회 내에서 사회주의적 운영원리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사민주의적 실천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사실은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하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쟝 조레스를 좋아합니다. 그는 흔히 사민주의자 내지 개량주의자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회주의를 위한 대중적 경험으로서의 사민주의를 고민했으며 개량과 혁명의 변증법을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스스로를 사민주의자라 생각하시는 분들 또한 사민주의만이 답이고 사회주의는 낡은 관념이라고 미리 규정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민주의를 넘어 자본주의 그 자체를 극복하려는 전망에도 열려 있었으면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념과잉이 아니라 한국의 현실을 보다 깊이 고민하는 것입니다. 저는 신당이 그 무엇보다도 한국적 현실에 밀착된 정당이기를 바랍니다. 영국노동당, 스웨덴사민당, 볼세비키, 브라질노동당 등등을 따라 하려 애쓰기 이전에 우리의 현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먼저 탐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토지개혁의 영향과 가족간 소득이전을 고려하지 않고는 제대로 해명되지 않습니다. 토지개혁의 영향에 대해선 주대환 동지도 다른 곳에서 이미 잠깐 언급하셨거니와, 저는 이것이 대소봉쇄의 전진 기지라는 국제정치적 요인과 더불어 이후 한국자본주의의 급속한 초기성장을 이룬 내부적 핵심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전적으로 이야기하면 토지개혁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주계급이 몰락하고 지가증권이 신흥자본가의 손에 집중되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며, 또한 작으나마 자신의 땅을 분배받은 소농의 자식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양질의 노동력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토대 하에서 7,80년대의 고도성장이 이루어졌거니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또한 성장의 과실을 일정 부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 세대는 토지를, 아버지 세대는 직장을 통해 나름대로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97년 이후(사실은 그 이전부터 시작은 되었지만), 이 시스템은 거꾸로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독약으로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각종 개발사업들이 전면화하면서 토지소유는 보상이나 개발이익 등 초과지대수입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부 소수가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국민경제 전체가 지대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생산적인 투자를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것도 바로 이들 지대추구자들이 그 핵심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대추구가 한국 경제 위기 원인

    문제는 이러한 지대추구가 극소수 가진 자들만의 행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향이든 새로 옮긴 도시든 예전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땅이나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결국 토지개혁의 성과가 지대추구로 변질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비생산적인 분야로의 자금집중은 필연적으로 생산적인 분야에서의 투자축소를 낳고 고용사정을 악화시켰습니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많지만, 한국경제 전체가 지대추구경제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바로 비정규직의 확대와 청년실업, 서구였다면 실업자로 존재했을 영세자영업자층의 확대 등 다양한 모순들의 핵심적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할 일이 있습니다. 젊은이의 대부분이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 등 불안정고용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생각보다 불만이 표출되는 정도가 낮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모두 보수적이어서 프랑스와 같은 대규모 시위가 안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바로 가족간 소득이전 때문입니다. 한국은 국가나 사회가 담당하는 복지는 형편없는 반면 가족이나 친척을 통한 복지는 외국보다 아주 강합니다. 유교의 영향도 있을 테고 현실적으로 그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본인들만 보자면 지극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이미 말했듯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나 아버지가 다니는 직장에서 나오는 수입이 젊은 세대에게 최소한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겁니다. 쉽게 말해, 부모님이 밀어주니까 몇 년씩 공무원시험 준비를 할 수 있고, 결혼할 때 전세라도 얻어주니까 저임금의 직장이라도 버티는 거지요.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극소수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외하고는 신규고용의 대부분이 불안정노동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언제든지 잘릴 수 있고 안 잘려도 언제든지 옮기고 싶은 상황에서, 자신의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생산성이나 창의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굳이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당장은 부모의 소득으로 고달픈 비정규직의 신세를 완화시킬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사라지고 미래가 없는 비정규직의 현실만 남는 순간 한국경제 전체의 미래도 같이 사라집니다. 할아버지 세대의 토지와 아버지 세대의 직장을 담보로 젊은 세대를 비정규직으로 방치하고 나면 그 다음 세대는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장담하건대, 이대로 가면 한국경제는 장기적 몰락의 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큽니다.

    적녹동맹 해야 지대추구 차단 가능

    적록동맹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에서 왜 장황하게 한국경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지 궁금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발주의로 표현되는 지대추구를 차단하고 이를 좋은 일자리 창출에 돌리는 것은 현 한국경제의 사활적인 과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적록동맹이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생태계 파괴를 불러오는 각종 개발주의를 저지하는 것은 단지 녹색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대추구경제로 빠져들고 있는 한국경제의 몰락을 저지하고 비정규직의 확대가 아니라 고용안정과 좋은 일자리를 추구해야 할 적색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역으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나 일자리 창출은 단지 적색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비정규직인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각종 개발사업에 찬성할 수밖에 없는 부모세대 즉 개발 지지세력의 토대를 허무는 일이기에 녹색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적색과 녹색의 결합이란 단순히 노동운동이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거나 환경운동이 노동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발주의 저지와 비정규직 문제해결이 현 단계에서는 양자 모두의 핵심적 과제임을 함께 인식하고 그에 대한 공동의 정치적 실천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적록동맹은 가능할 뿐 아니라 미래의 한국을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 * *

    보론 1 – 정파등록제에 대하여

    현 단계에서의 적록동맹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인정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방향까지 합의(생태사회주의 등의 이념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며 이는 서로가 각자의 문제의식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사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각자의 차이를 인정한 연대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는 정파등록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정파등록제에 대해, 정파의 기득권을 인정한다든지 평당원의 활동공간을 제약한다는 등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파등록제란 일종의 당내당을 인정하는 것이며 변형된 정당간 선거연합입니다. 실제로 외국에는 평소 독자적인 조직을 가진 정당으로 존재하면서 선거 때는 서로 협력하여 선거연합을 이루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정당법의 제약으로 이러한 선거연합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정당으로 등록하되, 각자 정파로 등록하여 독자적인 조직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사실상 정당간 선거연합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만약 다수 정파의 전횡이나 평당원 참여공간의 축소를 우려하신다면, 그건 특정 정파는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하더라도 1/3 이상의 의석을 가질 수 없게 한다든지,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평당원들이 반드시 일정 비율 이상 참가하도록 하는 등의(이때는 추첨으로 뽑힌 평당원 중 본인이 동의하면 참가시키는 등의 새로운 시도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적절한 제도를 만듦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는 정치적 연대가 필요함을 참가하는 그룹 모두가 깊이 인식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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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론 2 – 몇 가지 프로그램에 대하여

    개발주의 저지와 좋은 일자리 창출이 적록동맹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면 이를 위한 핵심프로그램이 무엇일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는 앞으로 보다 풍부한 논의가 되어야 할 부분이거니와 여러 분야가 연관된 상당히 방대한 내용이므로 여기서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을 간단히 말해보고자 합니다.

    개발주의 저지를 위해선 토지소유자의 초과지대수입을 차단하는 것과 건설사의 초과이윤을 차단하는 것이 실제적인 물적 토대를 허무는 데 가장 중요합니다. 부재지주나 대토지소유자의 경우 토지보상에서 상당한 차등을 두어야 하며, 개발로 인한 각종 이익은 최대한 환수해야 합니다. 최저가 낙찰 확대 및 일정 비율 이상의 직접시공 의무화, 다단계 하도급의 근절 등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입법화 및 제도화되어야만 가능한 이런 프로그램들보다 제가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가령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건설노동자의 공동체인 법인을 만들고 지자체와 이 법인이 바로 공사계약을 맺는 방식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이는 국회의 다수당이 되지 않더라도 한 지역만 장악하면 가능한 것이거니와, 지역에서 구체적인 전형을 창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우리의 프로그램이 실제로 실행 가능함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산절감효과는 말할 것도 없구요. 또한 이는 적과 녹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공동체란 가치를 확산시키는 측면도 있습니다. 중앙에서의 전체적인 변화만 바랄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성과를 이루어내는 것이 적록동맹의 올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좋은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형식적으로만 이야기되어 왔던 실질노동시간 단축의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사실 전세계 노동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구였음에도 한국 노동운동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제기된 적이 없습니다.

    노동시간 단축 없이는 모두 몽상

    IMF 이후 주40시간 노동제가 도입되었지만 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기존의 노동자들이 특근수당을 더 받기 위한 수단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명목노동시간이 아니라 실질노동시간 단축 즉 일정 시간 이상의 잔업이나 야근을 아예 금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는 실질임금의 감소를 동반할 수 있으므로, 실질임금의 감소가 문제가 되는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그에 대한 손실보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보전이 안 되더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또 ‘양보’니 뭐니 해가면서 비판하겠지만 스스로 일을 적게 하고 여유 시간을 늘리는 대신에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결코 양보가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입니다. 한편 아예 잔업이나 특근수당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는 많은 사무직이나 벤처 노동자들에겐 실질노동시간 단축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사람들이 일중독에서 벗어나 이웃과 공동체의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길 때만이, 풀뿌리에서의 참여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제 아무리 평당원 민주주의나 당원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참여나 풀뿌리 공동체를 강조해본들, 실질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물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적색이든 녹색이든, 변혁운동이건 급진민주주의건, 세계 최고 수준의 실질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선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한 모두 몽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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