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바논 침공과 함께 시작된 알려지지 않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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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22일 08: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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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지역은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다. 수십 만의 터키 병력과 수천의 이란 병력이 산악지역에서 게릴라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PKK(쿠르드노동당) 게릴라 본거지인 칸딜산을 공격하고 있다. 이미 수천 명의 쿠르드인들이 마을을 소개하고 산악지대로 피난한 상태이며 포탄에 사상자도 발생했다. 이에 맞서 쿠르드 게릴라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이미 6명의 이란군이 사살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던 시기에 맞춰 터키와 이란은 쿠르드 게릴라들의 근거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세계의 시선이 모두 이스라엘과 레바논에 집중된 상태여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란, 헤즈볼라 안 돕고 친미 터키와 공동 작전

    놀라운 일은 이스라엘에 맞서 전투중인 헤즈블라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이란이 산악지역에 숨어있는 쿠르드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가 뒤섞여있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무엇보다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중동세계에서는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물론 적은 언제나 같은 적일 수는 없다. 적은 항상 변화무쌍한 존재이기에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중동문제에 정통한 세계적인 석학인 촘스키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영국은 "미국의 공격용 개"이고 터키는 "미국의 지역경찰"이다. 지금까지 터키는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면서 막대한 원조를 대가로 받아왔다. 반면, 이란은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래로 미국과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왔다.

    더구나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로는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여 손봐줄 대상 1호로 찍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터키와 이란은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터키와 이란의 외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이 진행되는 동안 터키는 20만 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하여 이라크 북부의 국경을 넘어 쿠르드 게릴라들을 공격해왔다. 또한 이란도 터키의 공격에 보조를 맞춰 쿠르드 게릴라들을 다른 방향에서 공격해왔다.

    미국 이라크 침공 이후 상황은 줄곧 악화

    터키가 이라크 국경을 넘어 쿠르드 게릴라들의 본거지인 칸딜산을 타격하자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지역정부에서 거세게 반발했지만 물러설 태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이라크는 민족간의 내전에 휩싸인 상태이다. 수니파와 시아파, 수니파와 쿠르드, 쿠르드와 투르크메니 등 수 많은 민족들이 대립해왔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3월 20일 이후, 이라크 상황은 단 한 번도 나아진 적 없이 오직 악화일로의 길만을 걸어왔다. 지금은 하루에도 백 명 이상이 죽어나가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됐다.

    이라크의 국민들은 이제 미군을 아예 쓸모없는 존재로까지 취급하고 있다.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측에서도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상황에 끼어들기를 주저하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미군 내의 고위지휘관급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이 제거되면서 자연스럽게 쿠르드 민족은 친미화 돼버렸다. 그렇다고 쿠르드 민족이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수정했다거나 내버린 것은 아니다.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민족이나 터키와 이란, 이라크에 흩어져 살고 있는 쿠르드 민족은 민족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설정해놓고 투쟁해왔다.

    미국의 묵인 아래 진행되는 쿠르드 공격

    반면에 터키는 사활을 걸고 쿠르드 민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저지해왔다. “쿠르드 민족의 독립국가 건설은 터키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위기감이 터키 국민들 사이에 만연해있는 상황이다. 현재 터키가 수십 만의 군사력을 북부이라크 국경지대에 배치시켜 놓은 까닭도 쿠르드 민족의 독립국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이라크의 쿠르드 민족이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쌓는 것도 터키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무슬림 국가로서 친미적인 국가는 터키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미국도 터키의 요구사항은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미 터키는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한 로비를 통해 PKK게릴라들을 테러리스트단체의 명부에 올리는데 성공한 바 있다. 당연히 PKK게릴라들에 대한 공격은 테러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히 비판할 수 없게 됐다. 테러와의 전쟁을 지상최대의 슬로건으로 내건 미국 정부의 입장도 난감하게 됐다.

    터키는 그 동안 이라크 주둔 미군들에게 PKK게릴라들을 소탕해주기를 호소했지만 번번히 거절 당해왔다. 미국은 자칫 PKK게릴라들에 대한 공격이 쿠르드 민족 전체의 반미화를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자제해왔다. 자연히 지역경찰인 터키가 중앙의 묵인하에 타격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란의 핵개발로 인한 위기가 증대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타격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던 때에 갑자기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으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선제타격이 주춤해지자 이란은 터키와 연합하여 쿠르드 게릴라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터키와 이란의 연합은 같은 이슬람 민족이라는 공통분모에다가 쿠르드  게릴라라는 공동의 적을 연합의 토대로 삼고 있다. 쿠르드민족 내에도 많은 조직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PKK는 주변국가들에 가장 위협적인 조직으로 지목돼왔다.

    터키를 통해 이란을 미국 날개 안으로?

    터키와 이란이 쿠르드 게릴라들을 향해 공동전선을 구축함에 따라 중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 동안 터키측은 PKK에 무장해제를 요구해왔고 반대급부로 사면을 제안해왔다. 무장해제 요구는 사실 PKK게릴라들에게 무조건 항복하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PKK게릴라들의 투쟁은 결과적으로 지난 25년 동안 약 3만 명의 인명이 죽어나가는 대가를 치렀다.

    어쨌든 현재 터키가 주도하고 있는 칸딜산 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은 이라크 북부지역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쿠르드 민족이 거주하는 이라크 북부지역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평온했지만 이제 전쟁의 불길이 서서히 번져가고 있다.

    미국이 연출하고 있는 ‘신중동’의 시나리오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경찰인 터키를 통해 이란을 미국의 날개 아래로 끌어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란도 터키와의 연공을 통해 미국과의 대립각을 내리면서 협상을 통해 위기를 마무리할 가능성마저도 내보이고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선제공격을 감행할 경우를 대비한 준비일 수도 있다. 쿠르드 게릴라들과의 전쟁을 단지 다음에 닥쳐올 더 큰 전쟁에 대비한 군사훈련 정도로 고려한다면, 이란으로서는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까지 허약한 레바논이나 나라없는 팔레스타인 민족이나 쿠르드 민족은 중동에서 언제나 ‘동네북’정도로 취급당해왔다. 중동문제가 풀리지 않을 땐 언제나 이들을 공격하여 돌파구를 찾아왔다. 세계의 희생양으로 피를 흘려온 이들 민족은 앞으로도 세계가 강제한 굴레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주창하는 신중동정책의 제일순위는 이들의 해방이어야만 한다. 이들의 해방이 없는 신중동은 구중동보다 나을 게 없는 영원한 전쟁의 중동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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