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인천으로 오시라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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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24일 01: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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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인천으로 오십시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영종, 송도, 청라 등 인천에 위치한 3개 경제자유구역 홍보를 위해 만든 영상물의 머리 제목이다. 이 홍보영상물의 맨 마지막 문구 역시 철새로 끝난다. “철새도래지는 철새에게 최적의 환경을 보장한다.”

    이 멋진 두개의 카피대로 영종, 송도, 청라 등 3개 경제자유구역은 철새에게 최적의 환경을 보장했던(혹은 아직은 보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경제자유구역청의 홍보카피와는 반대로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는 경제자유구역 개발공사로 지금 심각하게 파괴됐고 또 위협받고 있다.

    잊혀진 경제자유구역, 혹은 포기한 경제자유구역 반대투쟁

    인천경제자유구역의 홍보를 액면그대로 믿는다면 철새들에게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던 갯벌 5,795만평을 매립하고, 대신 인공 녹지와 공원을 조성하여 ‘최적(?)의 조건을 자랑하는 거대한 인공 철새도래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진보진영의 최대 화두는 ‘경제특구반대투쟁’이었던 적이 있다. 노동, 교육, 의료에서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할 경제자유구역을 진보진영은 목이 터지게 반대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이렇게 경제자유구역 반대투쟁은 실패로 끝났고 진보진영의 관심으로부터도, 민주노동당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갔다.

    그리고 영종 자유구역 4,184만평은 매립이 완료됐고, 송도 앞바다도 빠른 속도로 매립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청라경제자유구역은 7월 24일 1공구 기공식을 가졌고, 같은 시각 인천의 환경단체들과 민주노동당은 청라경제자유구역 개발 반대 집회를 가졌다.

    지난 6월20일 인천광역시가 주최한 「2007년도 예산편성을 위한 예산정책시민토론회」에 제출한 경제자유구역청의 보고 자료에 따르면 영종, 송도, 청라 총 6,333만평이 개발된다. 청라매립지 538만평이 오래전에 매립된 것을 감안하면, 경제자유구역개발공사 완료 후 새로 매립돼 육지로 둔갑하는 갯벌이 5,795만평에 달한다.

       
     ▲ 청라매립지내 심곡천의 겨울풍경 (사진=인천하천지기 하늘말나리)
     

    인천 경제자유구역청조차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라고 말하는 인천앞바다. 어차피 한번 시작되면 막을 수 없는 것이 정부정책이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미 영종경제자유구역은 95%이상 매립이 완료됐고 송도는 애초 목표량의 절반가량이 매립됐거나 물막이 공사를 완료한 상태이다.

    지금도 송도를 가면 날로 좁아지고 있는 앞바다 갯벌에 엎드려 열심히 조개를 캐고 있는 인천도심의 마지막 ‘원주민’들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세계적인 희귀조류인 검은머리갈매기, 검은머리물떼새 등이 어부들과 같은 운명이 되어 위태로운 목숨을 연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항상.

    경제 자유구역 가운데 한 곳인 청라 지역의 매립 공사가 오늘(24일) 기공식을 갖는다.

    갈 곳 없는 생명이 새 터전을 잡은 청라매립지

    지난 2005년 4월19일. 하늘말나리, 민들레, 백리향, 하늘타리 등 이름만이라도 자연을 닮고 싶어 하는 다섯 명의 여성들이 낮선 땅으로 접어들었다.

    인천광역시 서구청 뒤편 양지초등학교 옆 심곡천 지방2급하천 시점을 시작해 강물이 바다에 닫는 청라도까지 걷기로 했다. 차가 지날 수 없고, 구멍가게와 식당도 하나 없는 오직 논과 개활지만 있는 곳이다. 물론 538만평 광활한 벌판 가장 자리로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어 언뜻언뜻 볼 수는 있었다.

    심곡천과 공촌천은 80년대 중반 지도만 펼쳐도 상류에 짤막한 소하천 수준에 불과했다. 그나마 심곡천은 모두 복개돼 있어 지도상에 표기조차 되지 않았다. 청라도를 중심으로 북항 인근 율도와 김포를 연결해 매립하면서 청라매립지와 수도권매립지가 새로 생겨났다.

    지금 인천공항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오른편은 수도권매립지이고 왼편은 청라매립지이다. 매립을 하면서 갯골이었을 심곡천과 공촌천이 길어졌고, 경인운하 건설 중단으로 매립할 흙이 없어 중간 중간 광범위한 습지도 생겨났다.

    그곳에 갈대, 산조풀, 매자기 등 풀씨가 날아와 싹을 틔었고, 풀이 있기에 각종 곤충들이 왔고 풀과 곤충이 있기에 새들이 왔다. 인위적으로 자연을 바꿨지만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았던 이곳은 자연의 생명력으로 또 다른 독특한 생태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것이 2005년 4월19일 다섯 명의 인천하천지기들이 발견한 내용이었다. 겨울철새는 모두 북쪽으로 날아가고 없을 시기이건만 게으른 철새들이 남아 있었다. 자동차의 출입이 안 되는 이곳은 일부 농부들을 제외하고는 오는 사람이 없었다.

    인천하천지기들은 그 이후로 매월 공촌천, 심곡천을 중심으로 청라매립지에 대한 식물, 곤충, 조류, 어류 모니터를 진행했다. 조류학자, 식물학자, 곤충전문가들을 줄줄이 모셔왔다. 인천하천지기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조류학자 박성근 박사는 도심 한가운데 천혜의 철새 도래지가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청라구역 환경영향평가서, 현장에 와서 보고 쓴 건가?

    그러나 청라매립지는 골프장, 카지노 등 레저관광산업을 주력으로 한 경제자유구역을 위해 올해부터 농사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경제자유구역 1공구’에는 현장사무실을 세웠고 철문도 만들었다.

    그곳을 갈 때마다 육중한 굴삭기는 땅을 파헤치고 있고 굵직한 중장비 바퀴자국 위에는 놀라 달아났을 법한 고라니와 너구리 발자국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매립지 전역에 공사팻말과 깃발이 꽂혀있다. 용도는 대부분 ’골프장‘이라고 적혀 있다.

       
     ▲ 노을지는 청라매립지. (사진=인천하천지기 하늘말나리)
     

    그런데 개발을 맡은 한국토지공사의 위탁으로 수성엔지니어링(주)가 2004년 11월 제출한 ‘「인천청라지구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 실시설계 용역」중 환경영향평가부문 최종보고서’를 보면 기가 막힌다. 우선 식물, 곤충, 조류 등의 조사에서 현장을 한차례라도 방문하고 쓴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인천녹색연합이 지난해 조사한 식물조사 결과 350여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환경영향평가서에는 107종만 기록돼 있었다. 또 천연기념물과 속칭 환경부가 귀하다고 한 곤충, 양서파충류, 조류는 모두 다 누락돼 있다.

    오로지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만을 명시했는데 그 조차도 헛웃음이 나온다. “(청라가) 개발되면 영종 등 대체서식지로 (철새들이)이동할 것”이라는 것이 대책의 전부였다. 영종도 매립됐는데 터전을 잃은 이들은 어디로 갈까?

    사실 청라매립지는 그리 안정적인 곳이 못된다. 굴삭기로 파헤친 곳을 보면 수십센티만 파도 뻘흙이 나오고 있었고 매립 당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파묻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러나 비록 쓰레기가 묻혀있고 매립지와 소각장에서 악취가 날아오기도 하지만 여기저기서 쫓겨나 갈곳없는 철새들은 ‘여기라도’ 머물면서 먹이도 먹고 알도 낳고, 새끼도 키우면서 사는 것이다.

    환경생태 보전 등의 거창한 운동을 떠올리지 않더라고 요즘 유행하는 생명공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종 다양성’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사라지면 연구대상 한 종이 영원히 사라질 놈들도 많다는데 소중한 생명의 터전을 마구잡이로 개발하면서 ‘생명공학’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무지한 범인은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은 천연 저수지인 이곳을 매립하고 난 뒤 큰비가 올 때 배수대책이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전무하다. 인천하천지기들은 요즘도 각자 담당구역을 정해 공촌천과 심곡천을 중심으로 매주 청라매집지 모니터를 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개발이 시작됐다고 투쟁 포기하면 안 된다

    그러나 갈 때마다 광활한 개활지에 터를 잡은 뭇 생명들에 감탄을 한다. 또 잠시라도 앉아 쉴 때면 벌판을 붉게 만드는 칠면초, 나문재, 해홍나물 등 염생식물과 벼과와 사초과 식물들이 자라는 광활한 개활지의 풍광에 상념에 젖기도 한다. 전국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없는 이곳만의 특징이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그래서 더더욱 청라를 파헤치는 굴삭기 삽날과 육중한 중장비 바퀴자국 위를 달아난 고라니와 너구리의 발자국에 안타까움과 미안함과 무력감을 느낀다.

    이곳을 이렇게 개발하도록 놔둬야만 하는가? 저 바다 위에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세우고 있는 인간들의 터전은 과연 안전할까? 그리고 자문한다. 경제자유구역, 개발이 시작되었기에 이렇게 무관심해도 혹은 포기해도 괜찮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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