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 갑질과 성접대 강요
    노조 가입하자 '계약해지'
    10년 만의 운송료 인상 전제조건은 화물연대 탈퇴, 집단행동 금지 등
        2019년 04월 24일 05: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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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1. 화물노동자 A씨, 농협 물류센터 배차 담당자인 B씨에게 술 접대를 했다.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나자 B씨는 이번엔 소위 ‘2차’로 불리는 성 접대를 요구했다. A씨는 B씨의 무리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A씨의 한 달 임금인 운송료를 결정하는 배차의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 2. 농협 물류센터 화물노동자 B씨는 담당자 C씨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다. D씨는 동료와 통화 중이었다고 설명했지만 20살이나 어린 C씨는 다른 직원들 앞에서 D씨의 휴대폰 통화목록을 내놓으라고 언성을 높였다. C씨는 D씨는 물론 D씨와 통화했던 동료의 휴대폰 통화목록까지 확인하고 나서는 “다음에 또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해고”라고 으름장을 놨다.

    사례 3. 탈장을 한 화물노동자 E씨는 병원에서 수술 후 4주 진단을 받았으나, E씨는 사흘 만에 무리하게 출근을 했다. 그러다가 수술 부위에 이상이 생겨 진단서를 떼고 이틀간 일을 쉬었다. 그러자 회사는 “꾀병 부리지 말라”며 “또 이러면 해고하겠다”고 말했다.

    화물노동자를 향한 농협의 ‘갑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물연대본부 등의 말을 종합하면, 배차 담당자들은 화물노동자들에게 적게는 20만원부터 300만원까지 매달 돈을 요구해왔다. 명절 땐 상품권을 상납해야 했고, 스크린골프를 치는 비용이나 개인차량 선팅비까지 요구하는 담당자도 있었다. 상납 요구에 응하는 화물노동자는 응하지 않은 이들보다 매달 몇백만원 씩은 더 벌어갈 수 있었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배차 담당자가) 노골적으로 돈상납, 술상납, 성상납을 요구한다”며 “술 마시다가 2차를 가자고 하는 경우가 있다. 장부에 다 기록해 놨고, 돈을 보낸 통장내역도 있다”고 밝혔다.

    농협 안성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한 화물노동자는 “배차 담당자한테 담배 한 보루 안 사준 사람 어디 있겠냐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기사들에게) 공공연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갚으라고 하면 보복 배차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농협물류센터 화물노동자 기자회견(사진=곽노충)

    농협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화물노동자들은 25일째 거리 투쟁 중이다. 10년 동안 1원도 오르지 않은 운송료를 인상해달라는 게 아니다. 농협의 갑질과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현실을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진짜 요구다.

    지난 2월부터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가입해 교섭력을 얻은 이들은 회사가 제시한 운송료 5% 인상안을 받아들게 됐다. 그러나 회사는 이와 함께 ‘화물연대 탈퇴’, ‘집단행동 금지’, ‘배차 거부 시 계약해지’ 등의 조항이 담긴 확약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압박했다. 10년 만의 임금인상의 전제조건이 노조 탈퇴였던 셈이다. 조합원 전원이 확약서 서명을 거부했고, 회사는 확약서를 거부한 조합원 전원에 대해 지난달 31일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노조 가입 한 달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해고였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생존권을 박탈당한 화물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신분 때문에 법의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회사는 조합원 전원을 해고한 직후 대체인력을 채용했다. 법의 보호도, 파업의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물류센터의 출입문을 가로 막고, 거리에서 부당함을 알려내고, 자신의 목에 쇠사슬을 두르며 항의하는 일 뿐이었다.

    그러자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은 지난 16일 대의원대회에서 “화물연대는 불법단체”라며 “불법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농협물류에 진입을 허용하지 말라.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일체 계약을 못하도록 조치를 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 전국농민회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4일 공동성명을 내고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저열한 노동인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고대책회의, 전농 등은 이날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0년간 농협의 먹거리를 운송해온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뻔뻔한 발언이자, 농협중앙회가 그동안 화물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해왔을지 여실하게 보여준 저열한 반노동자 발언”이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농협물류 화물노동자들은 배차를 구실로 한 금품상납, 성접대 강요, 인격적 모독을 비롯한 온갖 갑질 횡포에 시달렸다”며 “농협중앙회와 농협물류가 지금껏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해 화물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서 악랄한 행위를 지속해온 결과물”이라고 짚었다.

    8년간 농협물류에서 화물노동자로 일한 임상빈 씨는 “기댈 데 없는 저희들로서는 저희들을 지켜줄 수 있는 화물연대라는 노조에 가입한 것 뿐”고 말했다. 임 씨는 앞선 사례 2, 3을 겪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임 씨는 “우리가 무슨 무리한 요구를 했나. 무엇 때문에 25일이라는 시간을 아스팔트 위에서 자야 하느냐”며 “10년 동안 임금이 1원도 오르지 않았지만, 저는 회사에 말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이 그립다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동료들의 생존권을 빼앗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들의 갑질이 보고 싶지 않다고 고쳐달라고 요구했을 뿐 다른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일하고 싶다. 화물연대 조합원들과 함께 갑질이 사라지고 인권이 보호되는 그날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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