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성장 기폭제
    [행복칼럼] 결의, 약속, 노력, 책임
        2019년 02월 23일 05: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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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는 신랑을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는가?”

    7년 사귄 끝에 혼인식을 치루는 자리에서 주례 목사님이 물으셨다. 순간 ‘내가 이 남자를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떠오르며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신부인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혼인식장은 그야말로 일대 혼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한참의 세월이 지나 깨달았다. 아~사랑의 감정은 달라질 수 있지만,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지 이 남자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하는 것이 혼인서약이구나 하는….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뿐 아니라, 결의이자 약속이며, 노력이며 책임이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찾아오거나 혹은 떠나가 버리는 사랑의 감정이 수동적 사랑이라면, 내 의지로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은 능동적인 사랑의 본질이다. 책임감이 따르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왜 이토록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쉽지 않은 사랑을 결심해야 하는 걸까

    성경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했다.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인 신뢰나 희망보다 사랑이 더 가치 있는, 즉 사랑이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리라.

    긍정심리학의 최고 권위자인 바버라 프레드릭슨은 사랑이 기쁨, 감사, 평온, 관심, 희망, 자부심, 유쾌함, 영감, 경외심 모두를 아우른다고 보았다.

    2004년 영국문화원이 설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비영어권 나라 102개국 4만 명을 대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영어단어’를 조사했다. 그 결과 1위가 mother(어머니), 2위가 passion(열정), smile(미소), 4위가 love(사랑)이었다고 한다. 역시 이 지구상의 많은 이들이 ‘사랑’을 사랑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사랑은 삶의 핵심 가치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한 뼘만큼이라도 성장하게 한다. 그 사람과의 인연이 시작되기 전보다 인연이 시작되고 나서 잠재력이 더 많이 발휘되고 인간관계도 더 넓어져야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연인뿐 아니라 부모나 친구나 어떤 관계라도 상대의 성장이 따라오지 않는 관계는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아님을 확언한다. 부모가 자신은 좋은 부모라고 입에 거품 물고 주장한다 한들 자녀가 나날이 조린 감자처럼 시들어간다면 일방적으로 들이대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사랑은 상대만 성장시키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하다보면 상대가 성장하는 만큼 자신도 확대되고 성장한다. 성장은 순환론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상호 성장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 어느 한쪽의 ‘희생’일 가능성이 크다. 즉 사랑은 나를, 너를, 모두를 성장시킨다.

    성장은 내가 나답게 살 때 가능하다. 주어진 역할로 점철되어 나답지 않게 살면 사회적인 성공 여부나 객관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삶에 생기가 없다. 한마디로 삽질하며 살고 있는 거다.

    중요한 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나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 찾기‘를 발판으로 타인과 세상을 신뢰할 수 있다.

    결혼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아군 한 명 확보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영원한 내 편이 있기에 온갖 풍파를 기꺼이 겪어 낼 수 있다. 더도 말고 딱 한사람이면 된다.

    남편이 바로 그 한사람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잘 웃고 씩씩했던 이십대에 이상하게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 친구 앞에선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가 되었다. 데이트 시절 내가 가장 많이 한 건 남자 친구 앞에서 하염없이 우는 거였다. 철벽같던 ‘가짜 내’가 무너지니 ‘진짜 내’가 드러났다. 겉모습과 달리 연약하고 돌봄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모습을 남편 앞에선 그냥 드러낼 수 있었다. 남편이 있었기에 ‘나 찾기’가 가능했던 거다.

    대학 졸업하고 중간에 딱 일 년 쉬어본 외에는 40년 넘게 줄창 일했다. 때로는 나도 직장 좀 안 다니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살림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뼛속 깊이 알고 있다. 이렇게 바깥일 하면서 큰소리치며 사는 게 나다운 것임을. 남편은 나로 하여금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오늘의 나로 성장하게 해준 고마운 상대이다. 말 그대로 편한 남자, 내 편인 남자, ‘남편男便’이다.

    일본에서는 여자가 오십대 이후의 남편 없이 사는 게 몇 대 복 중의 하나라고 한다. 뉴스에서 보니 우리나라도 65세 이후 혼자 사는 여자가 남편 있는 경우보다 수명도 길고 삶의 질도 높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男便이 오래오래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 박용재 시집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필자소개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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