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리병원 한 군데 들어서면
    전국 확산될 것, 건강보험 붕괴 우려"
    [인터뷰] 노숙농성 중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2019년 02월 13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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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삭발을 하고 청와대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 승인을 철회하고 공공병원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기 위함이다. 국내 의료법인·의료인의 우회투자 의혹까지 사실로 밝혀진 상황에서, 단 하나의 영리병원도 허용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좀처럼 이 문제에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나 위원장은 국내 건강보험체계를 뒤흔들 영리병원 문제에 더 이상 정부가 방관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영리병원이 뭐 길래 제주도민들이 이렇게 사활을 걸고 반대 투쟁을 벌이고 산별노조 위원장이 머리를 깎고 거리로 나왔을까. <레디앙>은 12일 오전 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나순자 위원장을 만나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병원에 숨겨진 자본과 정치권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봤다. 정리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12일 제주 영리병원 철회와 공공병원 전환 촉구 결의대회(이하 사진은 보건의료노조)

    의료진은 모두 떠난 녹지병원, 국내자본 개입 논란과 가압류만 남아
    녹지, 손해 줄이기 위해서라도 개원 강행할 듯
    “개원 전 청와대가 결단해야”

    녹지병원 승인·설립 허가 과정에서 드러난 자본과 정치권이 결탁한 ‘의료 탐욕’의 민낯. 녹지병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정진엽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신은 (이후 언론에 밝혔듯이) “본 적도 없다”는 녹지병원 설립 사업계획서를 승인해줬고, 이는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으로 소위 ‘안종범 수첩’에 기록된 사실이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도민이 참여한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결정을 무시하고 녹지병원의 개원을 내국인 진료 금지 등의 조건부로 허가했다.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청을 포위하는 시위를 벌일 만큼 이 문제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 : 녹지병원 설립 승인을 둘러싸고 영리병원 논란이 첨예하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 국내에서 영리병원을 운영할 자는 관련 유사사업의 경험이 있다는 것과 국내자본이 투자(우회 투자)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투자실행 가능성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처음 우리가 중요한 봤던 것은 녹지그룹이 중국 부동산 회사라 의료사업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녹지그룹이 중국 BCC, 일본 IDEA와 MOU를 체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두 회사 모두 국내 성형외과 의사들과 연결이 돼있다. 국내 자본의 우회투자인 것이다. 또 만약 우회투자가 아니라면 관련 유사사업의 경험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녹지병원 건물과 터 자체도 날아 가버릴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3개 건설사에 1200억이 넘는 건설비용을 치르지 못해서 현재 토지와 건물 모두 가압류돼있는 상태다. 건설노동자들은 100억이 넘는 임금체불을 당했다. 그런데도 제주도에선 토지와 건물은 가압류 상태이지만 의료기기는 가압류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병원 개원에는 문제가 없다는 억지논리를 구사하고 있다.

    제주도는 조건부 허가를 하기 전부터 병원에 대한 가압류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10월 5일, 그러니까 공론조사위원회가 불허 권고(10월 4일)를 한 후에 녹지그룹에 병원 직원들에 대한 고용승계 방안과 매각을 포함한 녹지병원 재활용 방안을 묻는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제주도도 개원 가능성이 낮다고 본 거다. (공론조사위는 공론화 과정에서 가압류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녹지그룹에선 ‘녹지병원을 제주도가 인수하거나, 인수할 제3자를 소개해 달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주도에 보내왔다. 사실상 영리병원 개원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중국과의 외교 문제, 소송, 의료관광 등을 이유로 영리병원을 허용했다.

    현재 녹지병원에 채용됐던 의사 9명, 간호사 29명 등 총 134명 직원 대부분이 병원을 떠났다. 의사, 간호사는 한 명도 남지 않았고 원무과 직원 몇 명 정도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정종권 : 여론도 좋지 않고 승인·허가 과정의 문제도 드러났다. 이제 국내 의료인의 우회투자 의혹에 가압류 사실까지 밝혀졌으니 개원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하나.

    나순자 : 녹지그룹은 투자한 800억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을 거다. 제주도와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 소송을 걸어놓고 의사 1명이라도 데려다 놓고 개원을 할 거라고 본다. 형식적으로라도. 그렇게 되면 이 싸움은 길어질 것이고 더 어려워지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문제가 있는 사업계획서를 재검토하고 개원 전에 영리병원 철회라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이유다.

    영리병원이 가져올 재앙
    미국, 영리병원으로 20년 만에 의료비 폭등 등으로 국민 고통 심각
    국내 영리병원은 더 빠르게 번식할 것

    단 하나의 영리병원이 정말로 건강보험체계까지 뒤흔들 위협이 될 수 있을까. 나 위원장은 “그렇다”고 확언했다. 영리병원과 민간의료보험이 장악한 미국의 현재는 단 20년 만에 만들어진 모습이다. 아이가 비싼 의료비 때문에 충치 치료를 하지 못해 뇌 감염으로 사망하는, 한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일은 미국이 영리병원을 허용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비싼 의료비 문제는 잊을 만하면 충격을 준다. 배우 안재욱 씨가 2013년 여행 차 미국에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뇌출혈이 와서 수술을 했는데 비용이 5억 정도 들었었다. 한국에선 수술, 입원비용까지 모두 합해도 28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최근인 작년 말 그랜드캐넌에서 추락해 의식불명 상태인 한 한국인 청년은 미국에서 병원비만 10억, 이송비 2억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기도 했다.

    정종권 : 제주 영리병원이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에 어떤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이렇게 사활적 투쟁으로 나서는가.

    나순자 : 미국 전체 병원 중 영리병원은 22%, 공공병원은 26%, 나머지는 민간 비영리병원이다. 영리병원이 하나 생긴 후로 20% 이상까지 늘어나고 지금처럼 전체 병원비를 인상시키는 데에 20년이 걸렸다. 뭐든 변화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영리병원이 주도하고 의료비 폭등에 사람들이 힘들어 하게 되는 상황이 되는 데 20년도 걸리지 않을 거다.

    제주도에 영리병원 하나 생기는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주도에 하나가 생기고 나면 이후 경제자유구역 8개로 확산될 건 뻔하다. 요건을 다 충족해서 허가를 요청하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이 무슨 권한과 이유로 불허할 수 있겠나. 경제자유구역으로 퍼진 영리병원은 그 주변의 모든 병원에 영향을 줄 거다. 예컨대 경제자유구역인 부산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그 주변에 있는 부산대병원이나 백병원 등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더 비싼 걸 개발해서 진료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국내 빅5 병원(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의 의료계 잠식만 봐도 그렇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처음 생겼을 때 온갖 홍보로 환자들이 몰렸다. 이후 서울대병원과 연대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이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고, 현재는 건강보험 30%가 빅5 병원에 몰려있고, 모든 의료 정책은 빅5 병원에 쏠려 있다. 과거에 사람들이 많이 찾고 높은 평가를 해줬던 대학병원 같은 곳이 이제 동네 삼류병원으로 전락했다.

    물론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제도가 잘 돼있기 때문에 환자들은 병원 양극화를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지금도 병원 관계자들은 병원의 양극화를 절감하고 있다. 그런데 영리병원이 생기면 그땐 환자가 그 양극화를 느끼게 된다는 거다. 여기저기 투자를 받은 영리병원이 호화스럽게 병원을 지어놓고 크게 홍보를 할 거다. 최고의 의료진과 의료장비들에 대해 홍보하게 되면 빅5로 몰렸던 환자들이 영리병원으로 가게 될 거다.

    삼성과 아산, 단 2개의 병원이 생기면서 벌어진 이 병원의 양극화는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영리병원으로 인한 의료 양극화는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정종권 :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데다, 투자자 배당 문제 때문에라도 진료비를 높게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생기더라도 소수에 불과한 영리병원이 국내 건강보험 체계를 위협할 만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순자 :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영리병원에 맞는 민간보험이 만들어질 거다. 돈 있는 사람들은 전부 그 민간보험에 가입해서 영리병원을 찾을 것이고 나중엔 “왜 당연하게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나”, “(건강보험이나 민간보험 중) 선택하게 해달라”고 요구할 거다. 그럼 정부는 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건강보험은 가난한 사람들만 가입하는 제도로 위축될 것이고 부자들은 전부 비싼 민간보험에 가입하게 되는 상황이 올 거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삼성의 꿈은 삼성 계열의 보험이 건강보험을 대체하는 거다. 삼성의 보험이 건강보험보다 우선이 되게. 이렇게 되려면 결국은 영리병원이 만들어져야 한다.

    농성장의 나순자 위원장

    인터뷰 후의 모습(사진=유하라)

    후퇴하는 의료공공성
    의료민영화, 영리병원만 문제일까

    박근혜 정부의 규제프리존법을 병행한 지역특구법, 민간기업의 예방 및 건강관리서비스 등 원격의료 확산에 포석을 둔 원격의료 규제완화 정책이나 의료기기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단계를 생략해 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우선허가·사후평가’ 방식의 규제완화 정책.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의료민영화’ 정책이다.

    정종권 : 의료민영화를 막고자 하는 투쟁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런데 의료민영화가 영리병원만 얘기하는 건 아니지 않나.

    영리병원에 애착을 갖고 있는 쪽이 자본 일반이 아니라, 민간보험을 운영하는 삼성과 같은 특정 재벌이다. 현재로서는 영리병원이 특정 자본의 요구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되, 자본 일반의 요구인 규제프리존법과 유사한 지역특구법엔 적극적인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리병원 하나가 들어서면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지금 의료민영화가 영리병원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쪽에서 조금씩 둑이 터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이 영리병원에는 소극적이지만 다른 분야의 의료 민영화 추진에서는 적극적인 것 아닌가?

    나순자 : 문재인 정부가 영리병원 허용 관련해서 연결이 되어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었지만 면담해본 결과, 원희룡 지사가 설립 허가를 한 게 청와대와 조율했거나 묵인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잘못 개입했다가는 정부가 덤터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발을 빼고 있는 거 같다. 이 정도가 영리병원에 관한 정부의 스탠스다. 영리병원 외에 의료문제에 있어서 규제를 완화하려는 건 영리병원 문제와 별개로 또 다른 의료공공성 후퇴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투쟁할 계획을 갖고 있다.

    녹지병원 저지에서 경제자유구역 내 공공병원 설립까지
    ‘영리병원을 공공병원으로…’ 범국본 대안 제시, 청와대 결단 촉구
    “녹지병원, 질 높은 공공병원의 모델로 만들어야”

    정종권 : 다시 녹지병원 문제로 돌아와서. 영리병원 허가를 철회한다면 현재 병원이 들어선 터나 건물은 어떻게 해야 할까. 특히 ‘제주영리병원 철회 및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본)’와 보건의료 시민단체, 노동조합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막는 걸 넘어서서 대안을 제시하는 집단이라는 걸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거 같은데.

    나순자 : 녹지병원 허가 철회 투쟁이 단순히 제주도의 영리병원만을 막는 투쟁이 아니다. 녹지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했을 경우 다른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을 막고 공공병원을 세울 여지를 열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렇게만 된다면 앞으로 자본은 우리나라에서 영리병원을 세울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제주 영리병원 투쟁은 공공병원으로의 전환 투쟁까지 이어져야 한다.

    우선 정진엽 전 장관이 사업계획서에 문제가 있는 것을 보지도 않고 승인해줬으니 현 정부는 재검토해서 영리병원을 취소하는 것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이후 녹지병원 터와 건물을 공공병원으로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인데, 그러려면 청와대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종권 : 공공병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나순자 : 우리나라는 영리병원은 0이지만 공공병원의 비중은 많아봐야 5~9.6% 정도다(병상 수 기준과 병원 수 기준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정부에서도 기존 민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지정해 지역에 한 군데씩은 공공병원을 만들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공의료 발전 대책을 냈다. 그런데 시행계획도, 예산도 없다. 일단은 정부가 이런 정책을 냈다는 것은 실천 의지와는 별개로, 공공의료를 확대하겠다는 뜻은 있는 것으로 본다. 우리도 이번 녹지병원 저지 투쟁을 기회로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공공병원 확대를 현실화해볼 생각이다.

    정종권 : 공공의료의 상징이 지방의료원이다. 문제는 의료나 서비스 수준과 질이 떨어진다는, 그런 이미지가 있는 거 같다. 공공병원에서도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롤모델이 국내에 한 곳이라도 있나.

    나순자 : 없다. 물론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서울의료원이 의료서비스 질이 높아서 주민들의 평가가 높은 편이지만 워낙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가 없어서 롤모델이라고 할 정도의 공공병원은 현재 전무한 상태다. 때문에 녹지병원을 좋은 공공병원의 모델이 되게끔 만드는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민영화 저지 범국본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백만인 서명 운동을 진행하는 등 병원 현장에서도 영리병원 투쟁만큼은 굉장히 적극적이다. 나 위원장은 “1월초부터 시작한 이 운동에 서명한 이들이 7만 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제주 영리병원 철회 100만 서명 링크)

    범국본은 녹지병원 개원 전까지 청와대의 결단을 촉구하며 대규모 투쟁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15일엔 청와대 앞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20일엔 국회 앞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통해 영리병원 저지를 요구한다. 21일, 27일 들어선 제주도청 앞 원정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이들은 앞서 정진엽 전 장관과 원희룡 도지사를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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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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