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같은 얘기, 달라진 캐릭터
    [그림책]『곰 세 마리』(폴 갤돈/보림)
        2019년 02월 07일 02:28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그림책 『곰 세 마리』는 전래동화인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를 폴 갤돈이 이야기를 다시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입니다. 혹시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옛날 숲 속 오두막집에는 곰 가족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엄마 곰이 아침 식사로 먹을 호박 수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수프는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곰 가족은 수프가 식을 동안, 잠시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골디락스’ 라는 금발머리 소녀가 숲으로 놀러왔다가 곰 가족의 집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마 그 다음 이야기는 모두들 기억이 나실 겁니다. 골디락스가 아기 곰의 수프를 먹고…….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 단순하고 오래된 수프 도둑 이야기를 21세기를 사는 폴 갤돈은 왜 다시 이야기를 고쳐 쓰고 그림을 그려서 새로운 그림책 『곰 세 마리』를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저는 왜 이 그림책을 붙잡고 서평을 쓰고 있을까요?

    똑같은 이야기, 달라진 캐릭터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와 폴 갤돈의 그림책 『곰 세 마리』의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금발머리 소녀는 여전히 작은 곰의 죽(수프)을 먹고 작은 곰의 의자를 부수고 작은 곰의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잡니다.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와 폴 갤돈의 그림책 『곰 세 마리』가 다른 점은 드라마가 아니라 캐릭터입니다. 폴 갤돈의 『곰 세 마리』에는 더 이상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이 나오지 않습니다. 『곰 세 마리』에는 조그맣고 조그만 곰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곰과 커다랗고 커다란 곰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폴 갤돈은 아기 곰, 엄마 곰, 아빠 곰을 작은 곰,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곰, 큰 곰으로 바꾼 걸까요? 겨우 이걸 바꾸려고 별로 다르지도 않은 이야기를 새로 쓰고 그림을 새로 그린 걸까요? 폴 갤돈은 예술가로서 자존심도 없는 걸까요?

    캐릭터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캐릭터를 아기 곰, 엄마 곰, 아빠 곰에서 작은 곰, 중간 곰, 큰 곰으로 바꾼 것은 단순한 캐릭터의 변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예술 작품은 당대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전래동화인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가 만들어진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 대해서 성별과 연령에 차별이 엄격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개념 자체가 권위적이고 봉건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가족은 그 형태가 다양합니다. 재혼 가정도 있고, 한 부모 가정도 있고, 입양 가족도 있고, 동성 가족도 있습니다. 더불어 성별과 나이에 따른 차별이 줄어들었습니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역할 규정도 허물어졌습니다. 더 이상 가사를 도맡은 엄마와 생계를 도맡은 아빠와 말 잘 듣는 아이로 가족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폴 갤돈은 21세기를 사는 독자를 위해 작은 곰, 중간 곰, 큰 곰으로 곰 세 마리 가족을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가족의 구성을 성별과 나이의 차별로부터 자유롭게 만든 것입니다. 폴 갤돈은 무엇보다 특정한 곰에게 가사를 전담시키지도 않았고, 특정한 곰에게 생계를 전담시키지도 않았습니다. 분명 캐릭터의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전래동화를 다시 쓰고 그립시다!

    전래동화를 교양으로 여기고 교육시키려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물론 전래동화라는 예술은 과거에 대중을 즐겁게 하고 교육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활자와 책이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전해 준 것처럼,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로 지식과 예술을 인류에게 전파하면서 혁명이 일어나고 민주주의가 꽃피었습니다. 인류와 세계가 모두 달라졌습니다.

    전래동화를 만든 사람들은 과거의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전래동화를 그대로 읽고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 옛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21세기를 사는, 깨어있는 현대인의 눈으로 전래동화를 비판적으로 읽고 새롭게 고쳐 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유를 지키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승자의 역사이자 살인자의 역사인 과거의 역사를 국민의 역사이자 민주주의의 역사로 새로 써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곰 세 마리 집에 침입한 금발머리 소녀

    저는 곰 세 마리가 사는 집을 지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금발머리 소녀를 인류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지구라는 평화로운 집에 몰래 들어와서 훔쳐 먹고 부수고 늘어지게 쉬다가 저승으로 도망가는 존재입니다. 이야기 속의 소녀는 적어도 자신이 한 짓이 부끄러운 일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에서 먹고 쓰고 가는 것 가운데 인류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곰 세 마리의 것입니다. 지구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구에게 저지른 도둑질을 부끄러워하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너그러이 먹여살려주는 지구에게 고마워하면 좋겠습니다. 부디 인류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 지구를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제발 탐욕스럽고 무분별한 개발을 그만두고 지구를 살리는 노력을 하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