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사노위 참여 ‘부결’
    민주노총의 몫, 정부의 몫
    [상선여수] 노동 내부 갈등 부추기는 정부···이솝우화 '두루미와 여우'
        2019년 02월 03일 11: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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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아무런 결론도 없이 끝났다. 경사노위에 대해 “아예 들어가면 안 된다, 조건부로 들어가자, 들어갔다가 상황에 따라 나오자”라는 안들이 모조리 부결되었다.

    10시간 가까이 꼬박 자리를 채웠던 9백명이 넘는 대의원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 결론에 대해 허탈하다. 작년 내내 경사노위가 곳곳에서 발목을 잡더니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블랙홀에 빠졌다. 민주노총 지도력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1월 2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모습

    이 사안을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화를 하자면서 대화를 위한 그 어떤 조건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을 설치해 왔다. 경사노위의 첫 의제로 탄력근로시간제 개악을 다루자 하고, 최저임금 결정제도는 아무런 말 나눔 없이 밀어 붙이고, ILO 핵심협약 비준마저도 노동법 개악의 수준으로 내놓고 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그랬듯이 부리가 긴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 개구리 수프를 접시에 담아 내 놓고 있다. 그리고는 “맛있게 먹어라,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왜 잔치에 초대했는데 거절하냐?”고 연일 언론을 통해 떠들어댄다. 제일 나쁜 태도다.

    이걸 분명히 하자. 참여, 불참을 막론하고 토론에 나선 대의원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은커녕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대화를 하려는 태도가 안 되어 있다는 데는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나는 작년 문재인 정부가 경사노위를 구성, 대화를 제안할 때 민주노총의 참여가 옳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의 노동정책은 나쁜 방향으로만 흘러왔다. “노동존중은 개뿔”이란 말은 이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누구도 자신있게 경사노위에 들어가자고 말할 수 없는 조건은 문재인 정부가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대의원대회 결과는 민주노총에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해왔던 정부여당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탄력근로제, ILO협약 비준을 왜곡하는 노조법 개악안 등이 추진된다면 이번 정부의 노동정책은 완전히 실패할 것이라는 경고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왜곡을 시정하지 않고, 게다가 만약 올해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악까지 일방적으로 진행하려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라는 공공운수노조의 논평은 정확한 진단이다.

    87년 6월 항쟁 때 민주주의를 외치던 많은 언론들이 불과 몇 달 뒤 이어진 노동자대투쟁에 대해서 등을 돌렸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들도 유독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는 외면했다. 재야로 불리던 그들이 정권을 잡았어도 그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노무현의 죽음이 비극적으로 상징한 것은 ‘다른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된 문재인이 그 죽음으로부터 뭔가를 배웠을 거라고 내가 착각했다. 문재인 정부가 우왕좌왕 하는 사이 거리엔 문재인 타도를 외치는 우익들이 늘어가고, 자유한국당류의 꼴통 보수와 거대 자본들이 ‘풀보다 먼저’ 일어서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 정녕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가시덤불부터 치워라. 노조 할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단 한 건이라도 제대로 처리하라. 노사정 대화 없이 정부가 할 수 있는 공무원·교사의 단결권 보장, ILO에서 권고하는 핵심 협약은 즉각 결정하라.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평평하게 하고, 대화를 할 자세부터 제대로 갖추길 바란다.

    이미 대통령이 애정(?)을 가지고 수차례 만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로 인해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 책임은 청와대의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직후 “사회적 대화와 타협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라며 민주노총 없이 경사노위 전체회의에서 탄력근로제 논의 등 노동현안을 계속 논의하겠다는 밝혔다. 최저임금 개악 등을 앞서서 진행한 민주당은 “민생 경제가 위중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두 번이나 사회적 대화를 놓쳤다” 며 “민주노총이 대화와 타협의 장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더 큰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며 흰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기가 찰 일이다.

    민주노총의 혼돈상태가 계속될수록 한국사회 개혁은 늦어진다. 개혁의 가장 큰 동력을 배척한 최후가 어떤 것인지는 이미 질리도록 보았다. 뻔히 보이는 종말을 선택할지는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결론 없는 산회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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