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정부는 토건적폐,
    문재인 정부는 균형발전?
    정부의 24조 규모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에 시민사회·야당, 비판 높아
        2019년 01월 29일 05: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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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24조원대 대규모 토목사업들에 대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를 결정했다. 이는 4대강 사업 22조보다도 큰 규모로, 보수정권의 토목사업을 비판해온 현 정부와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퍼주기 정책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에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의결하고 17개 시·도에서 신청한 총 32개 사업(68조7000억원) 중 23개를 예타 면제 사업 대상으로 선정했다.

    국가재정법에 근거한 예비타당성 조사란, 대형 신규사업의 신중한 착수와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등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준수해야 할 원칙이다.

    총 사업비는 24조1000억원으로 줄었지만, 2014~2018년 5년간 예타를 면제받은 사업이 4조7333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약 5배에 달하는 대규모다.

    지역별 면제 사업 규모는 영남권이 8조2000억원, 호남권 2조5000억원, 충청권 3조9000억원이다. 강원과 제주 지역의 예타 면제 사업은 각각 9000억원, 4000억원 규모다. 북한 접경지역에도 남북평화도로 건설 등 1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이 예타 면제 대상으로 선정됐다.

    대표적인 예타 면제 사업은 서부경남 KTX로 불리는 남부내륙철도 건설 사업으로, 4조7000억원이 책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신청했다. 단일규모로는 전국 최대다.

    이 밖에 충북선 고속화(1조5000억원), 전북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 사업(8000억원), 울산 외곽순환도로(1조원), 부산 신항~김해 고속도로(8천억원) 등이 있다.

    예타 면제 사업 현황표

    특히 정부는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제외한다고 했으나, 경기도가 신청한 1조원 규모의 수도권도시철도 7호선 도봉산 포천선 연장, 평택~오송 복복선화(3조1천억원)가 예타 면제 대상이 됐다. 평택~오송 복복선화 사업은 경기도가 신청하지 않았으나 정부가 독자적으로 포함시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구가 적고 인프라가 취약한 비수도권은 예타 조사 통과가 어려워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추진이 늦어지고 이로 인해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며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오기 전에 반드시 국가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설명에도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규모 토목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결정에 부정적이다.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 없이 정부가 주도해 추진한 토건사업이 대부분 세금 낭비 등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십년 동안 세금 낭비···후세에 죄를 짓는 일”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2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예타를 무시하고 추진하게 되면 당초 들어간 사업비 낭비도 문제지만, 시공 과정이나 완공 이후에 이용량이 적으면 수십 년 동안 세금이 낭비된다”며 “그것은 후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예타 면제를 받지 않은 사업 중에도 큰 사업성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상황에서 예타 면제까지 받을 경우 상당 규모의 세금이 장기적으로 낭비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신 단장은 “지역 발전 역차별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서 2007년부터 지역균형개발에 있는 항목 지수에 대한 평가 기준을 점점 늘려 왔고, 정책적 판단 30%를 합치면 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고 짚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이미 기존 예타 조사 자체도 느슨하게 적용해왔다는 설명이다.

    그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던 사업들도 시설물을 100% 가동하고 있는 데는 거의 드물다”면서 “그럼에도 (사업성 등이) 안 나오는 사업 추진하겠다는 것은 예산 낭비를 무시하고 진행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지적했다.

    토목사업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 등 고용효과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서 “4대강 사업에 20조를 쏟아 부었는데 도대체 어떤 고용효과가 있었느냐”며 “건축은 건물을 지으니까 일시적인 고용효과가 있는데 토목은 다 기계화가 돼서 차이가 없다. 지표상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실제 고용효과는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와 여당 외 야당들 모두 비판 입장 밝혀
    정의당 정책위 “총선용 선심성 정책이며 대중영합주의 정책”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집권여당을 제외한 모든 야당들이 잇따라 비판 논평을 내고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논평을 내고 “정부가 대규모 건설사업의 장기적인 경제성이나 사업 타당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경기부양만을 목표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할 경우, 4대강이나 경인운하(아라뱃길)와 같이 국민혈세 낭비를 되풀이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일자리와 저소득층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과감한 경기부양 정책을 펼쳐야 할 시점에, 묻지마 식 토건 재정 확대로 경기부양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수년 뒤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정부는 대규모 SOC사업들에 대한 예비타당성 면제 방침을 철회하고 정부의 재정 운영 기조와 방침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실련도 보도자료를 내고 “촛불정신을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이 과거 토건적폐로 비판했던 이명박 정부의 예타 면제를 따라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애초 5개이던 예타 면제 항목을 10개로 늘렸던 것을 비판했으면서도 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서 “예타 면제 규모도 100조원 이상으로 역대 최대였던 이명박 정부의 60조원을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간 문재인 대통령이 외쳤던 사람중심 경제, 소득주도 성장은 결국 말뿐인 구호로 전락했다”며 “토건사업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 제고’ 등의 명분을 붙였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이명박 등 전임 대통령들처럼 토건정부임을 자인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도 내년 총선을 공략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들을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무책임한 ‘인기영합 정책’과 ‘선심성 퍼주기’”로 규정하며 “암울한 경제현실 속에서 문재인 정권이 목전에 둔 총선을 위해 국가재정 건전성을 훼손하는 ‘예산 집행의 대원칙’을 저버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윤 수석대변인은 “과거 예타 면제 사업들 상당수는 엄청난 국고부담만 남기고 실패한 바 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야당시절 정부의 SOC사업을 두고 ‘토건국가’라며 비판했다”며 “역대 최악의 경제상황을 의식해서인지 대통령 본인이 그토록 비판하던 ‘SOC 토건사업’을 원칙을 어겨가며 선심 쓰듯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라고 비판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내년 총선을 겨냥한 교활한 술수에 불과하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표를 사려는 질 낮은 정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남발된 공공사업이 실패로 끝난 사례는 수 없이 많다”며 “졸속 예타 면제로 미래세대의 부담만 가중시키게 생겼다”고 우려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도 논평을 내고 “오늘 정부의 발표로 이제 새로운 토건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며 “이번 결정은 예타 면제 등의 예외 사유로 볼 수 없으며, 예타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잘못된 행정”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지자체별로 사업을 나누어주는 것은 내년 총선용 선심성 정책이며, 대중영합주의 정책에 불과하다”고도 비판했다.

    특히 정의당은 정부가 발표한 예타 면제 사업이 ‘지역균형발전’, ‘일자리 창출’ ‘사회적 가치’ 보다 “지역 기득권 세력과 개발론자들이 꾸준히 요구하였던 대규모 토건 사업이 대부분”이라며 “정부의 무분별하고 편의적인 예타 면제로 인해 지역간 갈등은 물론, 지역 내 찬반 의견으로 갈등과 혼란이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우려했다.

    신창현 민중당 대변인도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경기 활성화에 필요하다며 편법까지 동원해 밀어붙인다면 그동안 정부여당이 그렇게 비판했던 MB의 4대강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내고 “혁신 성장판을 열고,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경제·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하며 “야당은 세금 낭비, 포플리즘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균형발전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주민 삶의 질 개선에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 달라”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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