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피해,
    장시간·저임금·하청업체 노동자에 집중
    정의당, 탄력근로 기간 확대 현장 피해사례 간담회
        2018년 11월 13일 06:0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탄력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로 피해가 예상되는 노동자들이 일제히 임금삭감과 장시간노동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앞서 정의당을 제외한 여야와 정부는 여야정 협의체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 이상 확대하는 데에 합의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이달 내로 국회에서 해당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정의당은 13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정부·여·야의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 합의에 따라 예상되는 노동현장 피해사례 간담회’를 열었다.

    현행법상 탄력근로의 평균 단위기간을 2주에서 최대 3월로 규정하고 있다. 여야정은 이 단위기간이 6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기존에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하청업체나 방송·게임업계에 몰렸다.

    대한항공의 지상조업서비스 하청업체인 (주)한국공항은 24시간 교대사업장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하기 전인 지난해 이 사업장에선 과로사로 사망한 노동자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공항은 최근 어용노조와 노사합의를 통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는 데에 합의했다.

    서우석 민주한국공항지부 홍보부장은“24시간 근무체계에서 월평균 12시간 넘게 일하는 날이 9일, 11시간 연속휴게가 지켜지지 않는 날도 6일”이라며 “그 과정에서 2017년 12월 지상조업 노동자가 과로사한 사건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수당 삭감, 장시간 근로의 원인이 되는 탄력근로시간제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장시간 노동이 심각성이 알려지고 있는 방송업계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두영 희망연대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은 “한 달 최장근무 531시간이었던 적도 있다”며 방송업계의 심각한 장시간 노동문제를 짚었다. 특히 하루 노동시간에 제한이 없는 탄력근로제의 허점을 이용해 주당 지켜야 하는 64시간 노동을 2~3일에 몰아 하루 19.4시간 이상씩 일한 사례가 있었다고도 전했다.

    김 지부장은 정부가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6개월 유예하기로 한 것에 대해 “장시간 근로를 유지하기 위한 꼼수를 쓰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나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 법안을 유예했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오세윤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 지회장은 게임업계의 일상적 장시간 노동 문제가 최근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합 등의 노력으로 해결될 조짐을 보였으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수포로 돌아갈 우려를 제기했다.

    오 지회장은 “노조 결성과 근로시간 단축 이후 노사합의를 통해 장시간 노동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고 있는데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이 확대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상근무 시 수당 줄이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기간을 늘려 임금손해를 불러올 것”이라며, 임금삭감을 우려했다.

    계절적으로 업무가 집중되는 사업장의 경우 장시간 노동이 가장 큰 문제다.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표수석부지회장은 “삼성전자서비스는 에어컨 수리업무가 집중된 여름에는 주말이 없다. 여름에는 10~12주 연속으로 주말근무를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곽 대표수석부지회장은 “그나마 노조를 만들고 나서 여름에도 일부 주말을 찾아가고 있는데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이 6~12개월로 확대되면 여름 전 기간에 장시간 근로에 내몰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무가 집중되고 업무량이 늘어나면 인력을 충원해야지 과로사, 업무중 사고사로 내모는 이런 방식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전문가들 또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중소규모, 미조직 사업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임금삭감, 장시간 노동의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노무법인 동인의 이훈 공인노무사는 이날 간담회 발제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단위기간 1년 확대 시 연간 최대 312시간의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임금의 지급의무 면제된다”면서 “임금절감 수단”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동조건 악화 외에도 노동자 건강권도 크게 위협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권이 침해되는 것도 문제로 짚었다.

    이 노무사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면 주 64시간의 장시간 노동이 3개월 이상 지속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뇌심혈관계질환의 발병의 강한 관련성을 인정한 바도 있다.

    이 노무사는 “근로시간 52시간 단축의 취지는 장시간 노동관행을 개선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산업재해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라며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방안은 근로자의 임금절감 및 장기간의 장기과로로 인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크게 위협하는 등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의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임금삭감, 장시간 노동, 건강권 침해 등의 피해가 중소규모, 미조직 사업장 노동자들에게집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노사합의로 도입이 가능한 제도라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일정 부분 방어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업장은 노동자들의 동의도 없이 노동시간이 확대될 수 있다.

    이 노무사는 “중소규모, 미조직 사업장의 경우 사측의 일방적인 도입이 가능해 피해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취업규칙으로 도입할 경우 ‘불이익변경’ 절차 명시, 근로자 대표제도 개선, 임금보전방안의 실질화 등 최소한의 방안이 선행되지 않은 채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성급하게 확대하면 중소, 미조직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손실 및 건강권 침해의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정 대화는 허울뿐, 일방 처리 압박하는 여당

    여야정 협의체에 참여했던 정당 중 유일하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했던 정의당은 국회 통과를 막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이 문제가 결코 최저임금법 산입범위 개악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주52시간 제도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로 뿌리까지 휘청거리고 있다”면서 “정부와 여야4당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합의가 진행이 된다면, 많은 노동자들은 자기 삶의 퇴행을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이 대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합의를 “예전처럼 1년 내내 1주 68시간 노동을 못시키니, 몇 개월만이라도 1주 64시간 정도라도 일을 시키게 해 달라는 사용자들의 민원”이라며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겠다는 정부가 사용자들의 부당한 요구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 현재 고용노동부 과로사 관련 기준으로 되어 있는 12주 평균 60시간 초과 노동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말 그대로 합법 과로사가 가능해 진다”며 “탄력근로제 확대와 노동자 건강권 보호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작전”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오는 20일까지 논의한 후 합의안이 나오지 않으면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물론,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한국노총 역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사실상 합의를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생색내는 노사정 대화하다가 국회에 가져와서 일방 처리하라는 방식은 노정 관계의 종식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노-사-정이 대화를 해서 필요성이 부족하고, 의견이 일치되지 않으면 하지 않아야 한다. 결론을 정해 놓고 사회적 대화를 동원하는 방식은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