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가장이다…1회용 소모품이 아니다
        2006년 05월 20일 01:38 오전

    Print Friendly

    19일 청주 죽천교 다리 위 송전탑에 도착하자 70여명의 조합원들이 밥그릇 하나씩을 들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조합원들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밥그릇을 건넨다. "밥 한그릇 안 먹으려면 그냥 가세요" "밥 먹고 왔어요" "먹었어도 더 먹어요. 우리 밥 맛있어요" 조합원들의 인사에 살가움이 묻어난다.

       
     
    ▲ 하이닉스 비정규직 조합원 2명이 지난 5월 17일부터 청주 죽천교 고압 송전탑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두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난 17일부터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는 154,000볼트의 송전탑. 학부모들은 학교 옆에 송전탑을 세운다고 항의를 하고, 주민들은 아파트 가까이에 있는 송전탑을 옮겨달라고 시위를 한다.

    스님들도 절 주변의 송전탑을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1979년 미국에서는 고압 송전탑이 어린이 백혈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는데, 그 송전탑 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려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농성을 벌인 지 3일째. 새벽부터 비가 쏟아졌다는데 어떻게 비를 피했는지 걱정됐다. 하이닉스 비정규직지회 이세교 교선부장이 송전탑에 올라간 조합원이 친한 친구라며 핸드폰을 연결해 건네준다.

    "비는 어떻게 피했어요?""네. 비가 오자마자 곧바로 천막을 쳐서 괜찮습니다."
    "몸은 어떠세요?" "몸은 좋아요. 괜찮은 편이에요."

    "집에서는 알고 계세요?" "아뇨, 부모님 걱정하실까봐 말씀 못 드렸고, 형한테만 얘기했어요."
    "위에서 주로 뭐하세요?" "집회 같이 할 때 아니면 책 보고 얘기하고 그렇게 보내고 있어요."

    "무슨 책 봐요?" "(웃으며) 무협지 보는데요."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저희는 꿋꿋이 열심히 할 테니까 많은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려요."

    "회사한테는요?" "빨리 교섭에 나와달라는 얘기말고는 할 말이 없어요."
    무엇보다 몸이 중요하니까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채 1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곳에서 무슨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조합원들에게 미안해졌다.

    2004년 10월 22일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청주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260여명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2005년 1월 1일 길거리로 쫓겨났다. 날짜를 세어보니 오늘이 505일째 되는 날이었다. 100일이 되고, 200일이 지날 때까지만 해도 이 날들을 기억해 집회도 하고 문화제도 했었는데, 1년이 지나면서 이제 날짜를 세는 일이 무상한 일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11년 청춘을 하이닉스에서 보냈는데

       
     
     

    임헌진 사무장을 찾아 조합원 한 분들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변상인 조합원(44)의 등을 떠민다. 그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만 11년을 청주공장에서 보냈다. 크린룸(청정실) 내부에 유틸리티와 무진기기(먼지를 제거하는 기계)를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아이 둘을 키웠다.

    공장을 떠나기 직전인 2004년 12월, 11년 근속인 그의 통장에 찍힌 월급은 150만원이었다.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은 그래도 견딜 수 있었지만, 관리자들이 주는 모욕감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2005년 1월 1일 원청회사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해 조합원들을 공장에서 쫓아냈다. 하청회사는 "당신이 필요하다"며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바뀐 업체 사장은 꼭 한번 만나자며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회사의 회유에 넘어간 동료들의 임금이 조금 올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노조에 가입했는데 돈 몇 푼 때문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11년 동안 나 밖에 몰랐는데 조합활동하면서 끈끈한 결속력이 다져졌고 많은 동지를 얻었어요."

    60만원 정도 나오던 고용보험도 지난 해 7월 끝났다. 적금도 깨고 보험도 해지했다. 아이들 학원마저 끊었다. 아내가 처남이 하는 식당에서 일을 해 생활비를 벌고 대출을 받았다. 지회에서 재정사업을 했고,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합원들이 매달 1만원씩 걷어서 생활비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어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아빠 나도 학원가고 싶어"

    그의 지난 달 용돈은 5만원이었다. 그 중 이틀에 한 갑 피우는 담배가 3만원이다. 아내에게 용돈을 탈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문다. 아내는 잘 이해하다가도 힘들어지면 언제까지 할거냐고 하소연을 한다. 그는 "평소에 무뚝뚝한 중학교 2학년 큰 녀석이 아빠 나도 학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후회한 적 없어요. 명분 있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이 물론 노조가 승리해야겠지만 설혹 힘이 부족해서 진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애들 앞에서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 하이닉스 비정규직 조합원 중에서 10여명은 야간에 택배 일을 하고 있다. 밤 8시부터 아침 7시까지 꼬박 11시간을 철야하고 아침에 농성장으로 나와 같이 집회하고, 천막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한 조합원은 대리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는데 합의금을 마련하지 못해서 지난 16일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빨리 이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 5월 19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철탑에 올라간 조합원 2명 중 한 명은 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밤마다 간호를 했던 절친한 동생이다. 지난 해 12월 수배 중이던 신재교 지회장이 연행될 때 그는 지회장 옆에 있다가 40여명의 경찰들에게 밀려 넘어져 가로수에 머리를 부딪혔고, 3개월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정말 착찹하죠. 왜 내 동생들이 고압 철탑에 올라가야 하는지…" "이 동생들 평소에도 의리가 있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위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어요? 밑에 있는 우리들이 하루라도 빨리 동생들이 내려올 수 있도록 투쟁해야죠."

    지난 1년 6개월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가급적이면 머리 속에서 다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에요"라고 답했다. 경찰과 용역깡패들에게 맞아서 피 흘리고 경찰서에 끌려가고 집구석은 엉망진창이 되고… 나는 어쩌면 지난 500일 동안 조합원들이 겪은 고통의 10분의 1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 순이익의 5%만 있어도 비정규직 120명 30년 고용

    지난 해 하이닉스는 1조 8천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 돈의 5%만 있어도 공장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 120명을 30년 동안 고용할 수 있다.(평균임금 2,500만원×120명×30년=900억원) 그런데 회사는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 "11년동안 청춘을 바쳤고,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회사 살리기’에도 나섰어요. 노동자가 1회용 쓰레기도 아니고, 이게 모든 자본가들의 속성인가요? 회사가 빨리 대화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금속노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5∼6월 총력투쟁을 전개해서 끝을 보겠다고 결의를 다졌어요. 정말 끝장나는 싸움이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도와주셨으면 해요."
    그의 주름진 얼굴이 펴지고 그의 아들이 학원에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오후 2시. 농성장 주변에 방송차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KBS, MBC, 청주방송 등 4개 방송국에서 모두 출동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지방선거 지원을 위해 청주에 내려왔고, 이곳을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동지들 문제가 우리 문제"

       
     
    ▲ 5월 19일 오후 2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농성장을 방문해 철탑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들과 무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농성장에 도착한 심상정 의원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들과 무전기로 얘기를 나눈다.

    "건강은 괜찮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너무 고생이 많으세요. 비정규직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도록 민주노동당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건강 중요하니까 무리하지 말고 건강 돌보세요." "예."

    농성장 바닥에 앉은 심상정 의원은 배창호 충북도지사 후보와 민주노동당 후보들, 그리고 70여명의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심 의원은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를 해결한다고 하면서 개발공약만 남발하고 투기를 조장해 서민의 등골을 빼고 있다"며 "양극화 해결하려면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하이스코가 해결되고 미흡하지만 GM대우도 마무리됐다"며 "노동부장관에게 이제 하이닉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했다"고 전했다. 그는 "투쟁의 막판에 왔기 때문에 힘드시더라도 마음 굳게 먹고 막바지까지 최선을 다하자"며 "동지들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금속노조 사무처장 출신의 심상정 의원을 조합원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지방선거 승리하고 일터로 돌아가자" "일터로 돌아가서 인간답게 살아보자"
    노동자 국회의원과 노동자 후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의 함성이 죽천교 다리 위에서 뜨겁게 울려 퍼졌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