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단체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
    By
        2006년 05월 17일 08:1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 글은 시민의 신문(ngotimes.net)에도 함께 실리며, <레디앙>에는 매주 화요일에 게재됩니다. <편집자 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민단체 놈들’을 욕하는 댓글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TV 뉴스는 으레 “시민단체들은 이 문제에 반대하고 있습니다”는 식으로 보도를 마감하곤 한다.

    시민단체의 ‘매국’에 비분강개하는 우익 열혈청년이나 시민단체를 끌어대지 않고는 단 한 마디의 비판도 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기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시민단체들은 ‘같은 의견을 가진 통일체’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시민단체는 하나가 아니다

    개혁적이라거나 진보적이라 칭해지는 시민단체들 사이의 의견 차이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의 그것보다 크면 크지 결코 작지 않다. 다만, 서로를 비판하지 않는 침묵의 불문율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고, 그래서 시민들은 시민단체들이 ‘한통속’이라 오해한다.

    몇 년 전, 한국전력을 몇 개의 회사로 나누어 민영화하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환경운동을 하는 몇몇 사람들은 그런 정책에 찬성하였다.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공급자를 약화시켜 생태를 지키겠다는 발상으로부터 비롯된 이런 입장에 대해 다른 시민단체들은 내심 반대하였다. 분사나 민영화로 인해 전기 값이 올라가고, 서민 살림이 어려워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장애인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서 별도의 차별 금지법을 만들고, 국가인권위원회와는 다른 독립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적지 않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별도의 장애인 차별 금지법과 기구가 국가인권위원회를 약화시키거나,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집단 사이의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같은 단체도 강 상류 지부와 하류 지부가 의견이 다르다!

       
     

    한 단체의 강 상류에 있는 지부와 하류에 있는 지부가 공업단지 신설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이 시민단체의 실상이다. 하지만, 이견이 문제는 아니다. 어떤 단체와 어떤 단체 사이에 어떠한 이견이 존재하는지, 그 이견의 배경은 무엇인지, 이견 해소를 위해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시민들이 모르는 것이야 말로 심각한 문제다. 각 단체의 정책 차이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비교하는 것이 이 칼럼의 첫째 목적이다.

    이 칼럼의 두 번째 목적은 시민단체들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1987년 이래, 정부나 정당 같은 정책 생산 주체들의 정책 형성 과정은 점차로 공개되고 있다. 형식적이지만 당원과 부처 간의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정책안이 만들어지고, 정책안이 나오면 언론과 시민단체, 다른 정당의 공개 비판에 부쳐진다. 이른바 공론의 장에서 정책이 형성되고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민주화를 이끈 시민단체 내부의 정책 형성 과정은 어떠한가? 회원들의 논의나 투표를 거쳐 정책이 결정되는 시민단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 아쉽게도, 형식이나 절차에 있어서만은 시민단체가 보수정당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형식, 절차 보수정당 못 쫓아가는 시민단체 정책 결정과정

    간혹 ‘빨갱이’라거나 ‘개량주의’라는 비판이 외부로부터 던져지기도 하지만, 너무 오른쪽이나 너무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애초 정책 따위에 관심이 없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들의 비판은 정책 비평이 아니라 이념적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시민단체의 정책은 단체 소속 전문가와 간사들의 전유물처럼 취급되고 있다.

    회원이나 시민이 시민단체의 정책 형성에 개입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정책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회원이나 시민이, 정책을 일삼는 시민단체의 교수나 변호사, 간사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민주주의는, 사회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데 아무런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어느 누구도 감시와 견제, 비판으로부터 제외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나는, 민주주의가 문외한인 내게 준 칼날을 시민단체에게 겨누며, 비판의 권리를 마음껏 향유해보려 한다.

    이 짧은 글이 깊이 있는 정책 비평이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정책 비평은 짧은 칼럼보다는 다른 대안정책을 통해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이 글로 말미암아 시민단체의 정책이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고, 거칠지만 생생한 시민의 목소리가 시민단체에 전달되는 데 작은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