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급조치, 국가 손배 청구 가능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2항 위헌
    국가배상 관련 대법원 재판 헌법소원은 받아들이지 않아
        2018년 08월 30일 09: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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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재판소가 군사정권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도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수령했다는 이유로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민주화보상법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30일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 등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민주화보상법에 따르면 민주화운동 보상금 지급 결정에 신청인이 동의하면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국가배상금을 청구할 수 없었다. 헌재의 이날 결정으로, 보상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국가에 손배를 청구할 수 없었던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정신적 손해에 따른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헌재는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 등에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 배·보상이 이뤄졌다는 사정만으로 정신적 손해에 관한 국가배상청구마저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라고 밝혔다. 다만 “보상금 등엔 적극적·소극적 손해(재산적 손해)에 대한 배·보상 성격이 포함돼 있다”라며 덧붙였다. 위헌 결정을 하되 ‘국가 손해배상 청구권’을 ‘정신적 손해’로 제한한 것이다.

    헌재는 과거사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에 민법상 소멸시효제도(166조 1항)를 적용하는 것 또한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중대한 인권침해 및 조작의혹사건’이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등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은 일반적인 국가배상청구권과 근본적으로 달라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을 희생할 정도로 국가배상청구권의 시효소멸을 통한 법적 안정성 요청이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공무원의 조직적 관여를 통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집단 희생시키거나 장기간 불법구금·고문 등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유죄판결을 내리고 사후에도 조작·은폐를 통해 진상규명을 방해했는데도 그 불법행위의 시점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는 것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지도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헌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이 긴급조치 관련 국가 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 달라고 한 ‘재판소원’에 대해선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 재판을 헌법소원심판 대상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은 위헌’이라고 한 헌법소원은 재판관 전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대법원 판결들에서 긴급조치 발령행위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것은 긴급조치가 합헌이기 때문이 아니라 긴급조치가 위헌임에도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해석론에 따른 것”이라며 “이 사건 대법원 판결들은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등을 근거로 재심을 신청해 무죄판결을 받고 국가배상소송을 냈으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를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판단하며 국가의 불법행위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민주화보상금을 받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재판상 화해’한 것이라며 정신적 손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후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 이 사건으로 ‘재판 흥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모임인 ‘긴급조치 사람들’과 민변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가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대해 기본권 보장기관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제대로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본다”고 비판했다. 68조 1항 등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은 헌재의 결정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헌재의 일부 전향적 판결에 대해서는 환영하나 헌법소원에 대한 각하 또는 기각을 통해 그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 상황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피해자들은 추후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한 피해자 구제조치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도 헌재의 결정을 일부 환영하면서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법원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헌판재판소법 68조 1항 헌법소원은 기각,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다소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와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이 부분적으로나마 보장된 것은 비록 지연된 정의이나, 다행스러운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변인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누구보다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앞장서야 할 사법부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재판을 한낱 흥정의 수단으로 삼아아 피해자들이 다시 한 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야 했다”며 “양승태 대법원장이 자행한 재판거래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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