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소망 이루기 위한 끈질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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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26일 04: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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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끌려가고 짐만 남아

    4월 20일, 저녁 무렵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상황실에 도착했다. 새벽 5시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 30여명이 지난 해 이어 두 번째로 크레인에 올라 고공 농성을 시작한 다음 날이었다. 그리고 농성 시작 7시간 만에 끌려 내려온 다음 날이기도 했다. 상황실에 들어가니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들이 착잡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가방들을 들춰보고 있다. 경찰이 돌려 준 크레인 점거 농성 조합원들의 짐이다.

       
     
     ▲기름에 흥건하게 젖은 주인 모를 낡은 조끼 ⓒ연정
     

       
     
     ▲채 뜯지도 못하고 그대로 내려온 음식물들 ⓒ연정
     

       
     
     ▲새벽 5시 2차 크레인 점거 조합원이 메고 들어갔던 배낭 ⓒ연정
     

    “이게 누구 거지?” 한 조합원의 아내가 바닥에 떨어진 조끼 하나를 들척인다. 주머니에서 홀쭉한 담배 갑 하나가 나온다.
    ‘결사투쟁 가자! 투쟁! 無風地帶 원직복직 쟁취하자’ 헤어지도록 입은 낡은 조끼지만, 뒷면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선명하다. 만져보니 기름에 흥건하게 젖어있다. 진압 당시 바닥에 뒹굴다가 기름에 흠뻑 젖은 모양이다.

    “기자님, 이거 메고 뛸 수 있겠습니까?”
    한 조합원이 큼직한 배낭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두 손으로 들어 보았으나 들리지도 않는다. 끌러보니 40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500ml 짜리 물병이 가득 들어있다. 어제 새벽 5시, 이걸 메고 정문에서 공장까지 단박에 뛰어 들어갔을 이를 생각하니 코끝이 아려온다. 물병 뚜껑이 몇 개 열리는 것도 보지 못하고 끌려 내려왔을 그 이.

    뜯지도 않은 자유시간, 핫 브레이크, 청포도사탕, 초콜렛이며 나무젓가락, 목장갑, 비옷…
    “먹을 거 겁내 많이 가져갔네. 우리 올라갈 때는 라면 부스러기 밖에 없었는데…” ‘동지’들이 뜯어보지도 못한 자유시간과 핫 브레이크를 먹고 있는 조합원들의 눈에 허탈감이 묻어난다.

       
     
     ▲2차 크레인 점거 농성자들이 메고 들어갔던 짐을 정리하는 조합원들 ⓒ연정
     

    한 동안 누구도 그 짐들을 정리하지 않았다. 아니, 정리하지 못했다. 만지작거리거나 주변을 배회할 뿐이다. 간부 한 명이 와서 주섬주섬 짐 정리를 시작하자 그제서야 조합원들은 짐을 비우고 빈 가방을 모아 개수를 센다. 조합원들은 내내 말이 없다.

    남편이 크레인에 올라간 후 계속 악몽을 꿉니다

    “어제 아침에 전화 받고서야 알았다. 누가 올라갔는지도 몰라 엄마들끼리 서로 전화해서 물어봤다. 우리는 처음인데도 이렇게 막막한데, 두 번째인 분들은 마음고생이 오죽할까… 차라리 단식을 하지. 단식하면 눈에 사람이 보이기라도 하지만, 이건 볼 수도 없고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지 않냐.”

    크레인에 올라갔던 조합원의 아내가 얘기한다. 담담하게 말 하지만, 이번 일을 떠올리며 얘기하는 내내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다.

    “작년 10월, 1차 크레인 점거 농성 때 너무 놀라 며칠을 잠을 못 잤다. 그 뒤로 나는 어린애가 된 것 같다. 계속 악몽을 꾸고 가슴이 떨린다… 이미 점거는 했는데, 내려오라 할 수도 없고… 올라가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쉬운 싸움 없지…”하며 한숨짓는 그녀는 공장 건물만 봐도 떨리기 때문에 이번에는 공장 앞에 가보지도 못했다 한다.

       
     
    ▲2차 크레인 점거 농성 당시 안전통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조합원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가난한 사람들이 버티는 게 힘들지 않냐. 앞으로도 힘들 거다… 남편이 올라가는지 전혀 몰랐다. 비밀이니까 지켜야하고 누설되면 안 되는 것도 알겠는데… 하지만, 말 안했다는 게 솔직히 섭섭하다… 이 일이 정말 목숨 걸고 해야 할 인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만큼 잃어버린 게 많고 상처가 큰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옆에 있다가 한 마디 하는 다른 조합원 아내의 얼굴에 서운함과 안스러움,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다행스러움이 교차한다.

    "1차 크레인 점거 후 초코파이 못 먹어"

    “1차 때 내가 들어갈 때는 정문에서 공장까지 겁나 멀더만 이번에 보니까 공장까지 들어가는데 딱 1분 걸리더만. 겁내 멋있게 들어가더만. 올라간 조합원 중에는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칠순이 넘은 어머니와 둘이 살던 사람도 있고, 1차 점거 때 아내가 유산됐다가 다시 아기를 가진 조합원도 있다. 들어가기 전날 밤에 조합원끼리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집행유예 상태라 조합원들의 만류로 이번에 올라가지 않았다는 윤용화 조합원이 어제 새벽을 회상한다. 그는 1차 크레인 점거 농성 이후 초코파이를 먹지 않는다 한다.

       
     
    ▲지난 2월 7일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확약서 이행’을 촉구하는 5보1배를 논현역 사거리에서 하이스코 본사까지 진행하고 있는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택용

    “확약서가 이행되지 않고 해고 노동자들의 생계는 파탄이 났다.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이 확약서 이행을 촉구하고, 2월 7일 5보 1배 투쟁, 3월 15일 금속노조 부분 파업을 통해 경고도 했지만 확약서는 이행되지 않았다.

    사측은 실제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집중교섭’이라 부르고 회사는 ‘회의’라고 불렀던 그 자리도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졌고, 조합원들의 전체 결의로 2차 크레인 농성을 어제 새벽 5시에 감행하게 된 것이다.”

    바쁘게 문서 작업을 하던 김종안 직무대행이 2차 크레인 점거 농성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사측의 준비된 즉각적 대응으로 점거한지 5분도 되지 않아 전기가 차단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구사대들과 경찰특공대가 들어와 매트리스 등 보호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물대포를 쏘고, 1만 볼트 이상의 전자총과 근육 마비와 실명의 위험이 있는 테이져건 같은 ‘대테러 무기’까지 동원하여 33명의 조합원들을 크레인 점거 7시간 만에 연행했다. 이번에는 현장 소식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기록하기 위해 노트북과 캠코더도 준비해 갔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왜 그곳으로 올라갔나

    “예전에는 이 길이 다 흙이었는데… 일년 이상을 비포장도로를 다녔지…” 촛불 문화제를 보기 위해 공장 앞에 들어섰을 때, 한 조합원이 얘기한다.

    바다를 메워 만들어진 율촌 산업단지에 현대하이스코가 설립된 것은 1998년이다. 설립 당시 순천지역민들은 대기업 설립으로 고용창출이 이루어져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졌었다.

    회사 설립 때부터 비정규직으로 일해 온 이들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렵다’는 말에 군소리 한마디 없이 회사 정상화를 위해 휴일도 명절도 없이 3교대로 일해 왔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현대하이스코는 2001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그 후 매년 흑자 폭을 늘리고 있다.

    2005년도에는 매출액이 2조6천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체 직원 7백 명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450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상 유지를 하기도 버거운 삶을 살아야했다.

    “어떻게 노조에 참여하게 되었나?”
    다소 ‘쌩뚱 맞은’ 질문을 던진다.
    “그저 남들이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면서 살고 싶었을 뿐”이라며 현대하이스코에서 비정규직으로 6년 간 일해 온 한승철 씨가 말문을 연다.

    교대 근무 없이 주간만 일하면 월급 1백만 원도 안 돼

    “(3조)3교대로 명절이나 휴일도 없이 6년을 일했다. 한 달 꼬박 휴일 없이 일하고, 한 달에 잔업을 40시간 정도 해서 받았던 돈이 연봉 2천 만 원이 안 된다. 이 돈으로는 아이들 학원 보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빚내서 아이 등록금이나 내면 다행이었다.”라고 그는 말을 잇는다.

    6년 경력의 이 노동자가 쉬지 않고 일해서 버는 돈은 4조 3교대로 일하는 원청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돈마저도 1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하는 시스템 때문에 고용불안에 떨면서 만져볼 수밖에 없었다.

    교대 근무를 하지 않고 주간근무만 하는 상주 근무의 경우, 잔업을 하지 않으면 1백만원도 받지 못한다. 이 회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다쳐도 산재처리를 받지 못한다. 작년에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린 한 노동자는 회사에서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아 결국 공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2차 크레인 점거 농성 당시 공장 건물에 걸린 ‘정몽구 회장 해고자 복직 약속을 지켜라!’ 현수막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2005년 1차 농성 당시 합의 완전히 휴지조각 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5년 4월, 그저 이보다는 나은 조건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노조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소박한 요구에 대한 응답은 하청업체 위장폐업으로 인한 해고자 120명이었다.

    새로 만들어진 회사는 고용승계를 거부했고, 원청인 현대하이스코는 이들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6월 14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지회를 설립하여 투쟁을 계속하였다. 마침내 2005년 10월 24일, 61명의 조합원들이 목숨을 건 고공크레인 농성에 들어갔다.

    ‘해고자 복직과 노조활동 보장, 민․형사상 문제 최소화’ 등의 내용으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와 현대하이스코 사측, 순천시장 등이 참가하여 작성한 ‘확약서’ 조인으로 11일 간의 농성은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확약서 이후 19명이 구속되었고, 66명에게 72억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되었다. 또, 계속되는 위장폐업과 51명의 추가 해고, 끝없는 노조탄압이 이어졌다. 복직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알게 모르게 신용불량자가 되어 가는 조합원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이들이 두 번째 목숨을 건 크레인 점거 농성을 하게 된 이유다.

    2,700원이 없어서 울면서 학교에 간 아이 “가슴이 찢어집니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과 조합원 가족들의 생계 어려움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한 조합원은 “얼마 전에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가 학교 준비물 때문에 5천원을 달라고 했는데, 엄마에게 2,300원 밖에 없었다. 결국 아이는 2,700원이 부족해서 울면서 학교에 갔다. 작은 아이는 유치원 차가 지나가는 것만 보면 운다. 아빠는 복직 투쟁하느라, 엄마는 돈 벌러 다니느라 아이들은 계속 방치되고 있다.”며 가슴 아파했다.

    “어머니가 수술을 하셔야 하는데, 돈이 없어 수술을 못해 뼈가 잘못되었다.”며 속상해하던 한 조합원은 “그래도 나는 결혼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은데, 형님들이 걱정.”이라고 이야기한다.

    ‘동지’들이 걱정할까봐 자신의 생활고를 이야기하지 않는 조합원들도 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상대방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까지 알게 하는 마음의 눈을 갖게 한다. 확약서 조인 이후 추가로 해고된 조합원들 중 현재까지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힘든 상황임에도 많지도 않은 실업급여를 구속된 조합원의 가족과 나누는 따뜻한 동지애를 보이기도 했다.

    “투쟁을 하면서 동지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누구누구 씨’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형님 동생’이 되었다.” 생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조합원들의 이야기는 늘 ‘동지애’로 끝이 난다.

    이 날, 내가 순천에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구로동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격려의 메시지를 내 편에 전달했다. 기륭전자분회의 한 조합원은 자신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내려가 보지 못해 미안하다. 하이스코 조합원들에게 딸기라도 사다 주라.”며 꼬깃꼬깃 접은 돈 2만 원을 나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범시민대책위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다

    날씨는 하루 종일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한다.
    오후 7시, 공장 앞에 도착하니 바람이 심하게 분다. 공장 앞은 이 곳이 농성장이 맞나 싶게 깨끗하다. 어제 크레인 점거 농성자들이 연행되고 나서 오후 4시부터 면회가 시작되었다. 조합원들이 면회를 하러간 틈을 이용해서 사측이 용역들을 동원하여 조합원들이 60여 일 간 생활해 온 소중한 천막을 철거하고 컨테이너를 마을에 갖다 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하게 걸고 지켜 온 현수막들을 철거했다.

    “다시 쳐야 하는데, 바람 때문에…” 결국 그 날 천막은 치지 못했다.
    지역의 활동가들과 학생, 시민들이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촛불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차량에서는 얼마 전 여수 문화방송에서 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흘러나온다. 학생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범시민대책위 회사 쪽에 약속 이행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오늘 아침 8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확약서 이행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범시민대책위 공동대표 민점기 의장과 민주노총 순천시지부 이계일 지부장 등 5명이 단식에 참여했다. 이들은 매서운 바람에도 하루 종일 공장 앞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20일 저녁 현대하이스코 공장 앞, 촛불문화제를 위해 참석한 지역 연대 동지들, 제일 앞줄이 이 날 단식에 들어간 범시민대책위 ⓒ연정
     

    “그동안 시민대책위가 현대하이스코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와 정든 일터로 돌아갈 권리, 해고노동자 가족의 생존권을 지켜내는 일을 함께 해왔지만 많은 한계를 느꼈다. 이제 단식농성으로 지역민의 여론을 현대자동차와 하이스코 측에 전달하려 한다. 또, 확약서 이행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정부에도 해고자 복직 약속 이행을 간곡하게 요구하기 위해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게 되었다.” 공무원노조 활동으로 해고를 두 번 당했고, 지금도 해고자 신분인 민정기 범시민대책위 공동대표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게 된 배경을 설명해준다.

    바람 때문에 촛불을 켤 수 없어 범시민대책위와 연대를 위해 온 동지들이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정문 앞을 지키는 것으로 문화제가 대체 되었다. 그러나 이 ‘촛불 없는 촛불 문화제’가 진행되는 내내 확약서 이행을 요구하는 이들의 뜨겁고 절실한 마음이 공장 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일 안 나오면 결혼 안 할 거여”

    순천경찰서로 연행된 조합원들 면회를 갔다. 면회실 밖은 면회를 했거나 기다리는 조합원들과 가족들로 분주했다. 연행된 33명의 조합원들은 여수, 순천, 광양, 구례 경찰서에 분산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1차 때 올라가고, 이번에 또 올라갔다는 한 조합원의 아이는 익숙해졌는지 울지 않고 조합원들이 들어오자 매달리며 논다.

       
     
     ▲순천경찰서에서 면회 신청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 ⓒ연정
     

    “다친 데는 없냐?” “내일 나오니까 걱정하지 말고”
    면회실 안에 들어가니 박종삼 쟁의부장이 면회하러 나오는 조합원 한명 한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안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알고 있다. 1차 때 들어갔다가 이번에 또 들어 간 이들은 내일 새벽에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잘 되 버렸어야 했는데…”
    연행된 조합원들은 7시간 만에 진압된 것이 마치 자신들의 잘못이기라도 한 양 몹시 미안해하는 기색이다.
    “세상이 난리여!”
    “괜찮아. 잘했어. 어떻게 경찰하고 싸워서 이기냐.”
    “여론 좋아!”
    박종삼 쟁의부장과 조합원들이 이들을 위로한다.
    “밥은 좀 그제? 나도 먹어 봤는데, 밥은 쫌 그르트라. 과자랑 많이 먹어. 괜찮아. 별거 아니더라.”
    능청스레 이야기하는 쟁의부장을 조합원들이 ‘약장수’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몰라, 내일 안나오면 결혼 안할 거여!”
    면회실 밖에서 울먹이며 퉁명스레 얘기하던 한 조합원의 여자친구는 면회실에 들어서자 옷이며 음식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내일 나오면 되제!”하는 말을,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잊지 않고 한다.
    “미안하다…”
    진압 과정에서 파손된 자신의 안경 대신 어색한 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 조합원의 낮은 목소리가 창살 너머에서 들려온다.
    “면회 끝났습니다!”
    경찰서를 나오는 길,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다.

    덧붙이는 이야기

    순천에 다녀온 다음 날인 4월 21일, 2차 크레인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가 연행된 33명의 조합원들 중 21명이 석방 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 22일, 나머지 12명에 대한 영장실질검사를 통해 9명의 조합원들이 불구속입건으로 석방 되었습니다. 차행태 부지회장, 이병용 사무장, 안영오 총무부장은 구속이 되었습니다.

    범시민대책위의 단식은 어느덧 7일 째를 맞고 있으며 어제는 한 명의 단식자가 쓰러져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24일에는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박정훈 지회장과 우범석 조직부장이 확약서 이행을 요구하는 옥중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동지들의 투쟁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요즘 입니다.

    25일 오전 11시에는 광주 노동청 앞에서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가 27일 오전 12시까지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최후 통첩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 했습니다. 27일에는 4만 명의 지역 민주노총 조합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연대파업과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 앞에서 1만 명의 조합원이 참가하는 대규모 항의집회가 예정되어 있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조합원의 부모님들이 걱정이 되니까 점을 보는 분들이 계신데, 이 분들의 대다수가 (음력)3월에는 복직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오셨다고 한다. 4월 27일이 음력으로 3월 말일이다.” 2차 크레인 점거 농성으로 연행되었다가 석방된 한 조합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일 아침,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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