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태·청와대의 판결 뒷거래
    KTX 해고승무원 “13년 세월 돌려 달라”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 "판사로서 죄송하고 참담"
        2018년 05월 30일 1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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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KTX 승무원 해고 무효 재판을 두고 ‘뒷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피해당사자인 KTX 해고 승무원은 “사법 살인”이라고 대법원을 규탄하는가 하면, 사법부 내부에서도 검찰 수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KTX 해고 승무원 등으로 꾸려진 KTX해고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전날인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청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자행된 ‘판결 뒷거래’에 관한 현 대법원장의 향후 대책 등 입장을 직접 듣겠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에서의 항의(방송화면 캡처)

    해고 승무원들은 김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면담 요청서를 품고 대법원으로 들어가려 하자 보안관리원들이 막아서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등이 대법정까지 진입해 “우리 잃어버린 13년 세월 꼭 돌려 놓으라”고 외치며 대법원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대법원 점거 농성은 최초의 사례로 전해진다.

    김 대법원장의 입장을 촉구하며 대법원을 점거한 해고 승무원들은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30일 오후 2시 면담하기로 약속하고 2시간 30분 동안의 점거농성을 중단했다.

    해고 승무원들에게 양승태 대법원이 저지른 ‘판결 뒷거래’는 10년 넘게 함께 싸워온 동료를 빼앗아가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준 사건이다.

    12년 전 KTX 승무원 해고된 승무원들은 ‘근로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2008년 11월 첫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 2심에서 연달아 승소했지만 2015년 대법원은 “승무원이 안전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철도공사의 정규직이 아니라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해고 승무원들은 1인당 1억에 가까운 임금을 환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대법원 판결 직후 해고 승무원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이 청와대와의 뒷거래를 통한 것이라는 의혹이 사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청와대와 KTX 해고 승무원 재판을 두고 거래를 시도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은 KTX 해고승무원 관련 판결 등을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로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살인’이라는 절규에 가까운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특별조사단은 작성 당사자 진술을 근거로, 이들 문건 대부분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된 것일 뿐 실행되진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별조사단의 조사를 거부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핵심인사에 대한 조사 내용은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특별조사단의 발표 내용과 달리, 대법원이 청와대와 공모해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1,2심의 판결을 뒤집었을 것이라는 의구심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이 판결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그야말로 사법살인”

    김승하 지부장은 30일 오전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와 인터뷰에서 “(당시 패소했던 대법원 재판은)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는 판결이었다”며 “다른 노동 사건과는 다르게 증거가 너무나 풍부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서는 그 모든 증거들을 다 부정하고 저희들을 패소시키기 위해서 이걸 조작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단순 아이디어 차원이었을 뿐 실제 실행되지 않았다’는 특별조사단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된다. 그 사람(문건 작성자가)이 자기 혼자 소설을 썼을 리도 만무하고, (KTX 승무원 해고무효 소송이) 노동개혁에 관련된 사건이라고 할 만큼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텐데 이 부분을 아무런 조사도 없이 결론을 냈다”며 “이 판결 때문에 사람이 죽고 저희는 13년 세월을 거리에서 헤매고 있는데, 그렇게 안이한 결론을 내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판결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그야말로 사법살인”이라며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것을 어떻게 앞으로 처리해나갈 것인지, 얼마나 더 의지를 가지고 수사를 해나갈 것인지 앞으로의 대책을 여쭙고 싶다. 지난 대법원장이 벌인 일이라고 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이 부분이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며 “앞으로 어떻게 이 모든 잘못된 것들을 되돌릴 수 있는지 분명한 해결책을 가지고 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 여부와 관련해서도 “반드시 해야 한다”며 “특별조사단이 그 사람(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안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도 구속된 상황에서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를 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이런 판결을 내려놓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힘들다. 이 문제의 발단인 철도공사 그리고 정부 아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전 대법원장인 양승태뿐 아니라 (이 사건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 “특별조사단 보고서,
    임종헌 전 차장 혼자서 다 한 것처럼 작성. 의도했던 안했던 사실관계 왜곡“

    일선 판사들도 ‘판결 뒷거래’ 의혹과 관련한 방안 논의에 나섰다. 법원행정처는 29일부터 법원행정처 차장 주재로 실장, 총괄심의관 등 부장판사와 일부 심의관이 참석한 간담회를 열고 각 조치방안을 놓고 논의를 진행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내달 4일 단독판사회의를 열고 ‘현 사태에 관한 입장 표명’을 안건으로 논의한다. 서울가정법원도 같은 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결과에 따른 후속조치 논의’를 안건으로 단독·배석판사 연석회의를 열기로 했다.

    류영재 춘천지방법원 판사는 이날 오전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서 “판사로서 굉장히 참담하고 죄송하다”며 “보고서를 본 대부분 판사들이 법원행정처에 의해 그 재판이 마치 청와대 거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처럼 폄훼된 것에 대해 굉장한 모욕감을 느끼고 있고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류 판사는 “판결을 내릴 땐 그 결과가 정말로 정당한 결론인지와 이 결과가 정말로 정당한 과정을 통해 정당하게 이제 내려졌다는 외관의 공정성 등 두 가지가 중요하다”며 “법원행정처가 KTX 승무원 판결을 청와대 협력 사례로 스스로 꼽았다는 것은 외관의 공정성에 중대한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별조사단이 내놓은 보고서에 대한 한계도 지적했다. 그는 “특별조사단에 강제조사권이 없어서 조사보고서 상에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거의 모든 걸 혼자 다 한 것처럼 돼있다”며 “사실상 총괄책임자 법원행정처의 수장 혹은 사법부의 그 수장인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건 큰 조사상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조사보고서에서 그런 한계를 드러냈어야 했는데 조사가 불가능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적시하지 않아 마치 그분들의 지시나 보고는 없었고 임종헌 전 차장 혼자서 다 한 것처럼 보고서가 작성됐다. 의도했던 안했던 사실관계를 왜곡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류 판사는 거듭 “(양승태 대법원이) 청와대를 상대로 계속해서 ‘우리가 대법원 재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청와대가 상고법원에 협력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로 재판을 안 해 줄 거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재판에 개입하겠다는 몇 차례 공언한 사안을 과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위에서 법원행정처 전부를 움직이면서 혼자서 기획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개입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특히 류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서도 사법부가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사법부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어떤 조치가 일어난다면 전면적으로 협조를 할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자료 전면적 제공이라든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법독립에 대한 침해’라는 식으로 반발할 수 없을 거다. 왜냐하면 이게 이것 자체가 사법부가 스스로 사법독립을 포기한 것이기 떄문”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수사 불가피

    사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 중에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통계가 나오는 와중에 그 바닥에서 더 추락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노 원내대표는 “이런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대단히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일이긴 하지만 검찰 수사를 해야 한다”면서 “지금 이 상태가 그대로 이어지면 법원이 아무리 법관의 양심에 따라 법률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판결을 내려도 그걸 누가 믿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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