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온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너
    [한시산책]왕안석(王安石)의 「매화」
        2018년 05월 14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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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이성부(李盛夫) (『창작과 비평』 1974년)

    오랜만에 한시산책을 올립니다. 사실 제가 원고를 작성하려고 한시를 골라 놓은 것은 1월 중순이었습니다. 봄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첫봄의 상징인 ‘매화(梅花)’에 관한 시를 골랐습니다. 이제 봄꽃들이 지고, 숲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그야말로 봄이 막 달아나고 있는 계절에 봄을 갈망하는 한시를 올린다는 게 쑥스럽기는 합니다.

    저는 지난 2018년 1월 말 진주, 통영, 거제 등 남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 중 1월 20일 거제에 갔었습니다. 제가 거제에 간 건 순전히 본토(본토와 연결된 섬 포함)에서 제일 먼저 핀다는 춘당매(春堂梅)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춘당매는 지금은 폐교된 거제 구조라초등학교 교정에 있습니다. 보통 입춘 전후에 피는데, 일찍 필 때도 있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멀리서 교정을 봤습니다. 매화나무 가지 위로 붉은 기운만 보일 뿐 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여나 한 송이라도 펴있지 않을까 해서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봉우리는 통통하게 부풀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한 송이도 피지 않았습니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에 춘당매도 움츠러들었나 봅니다.

    춘당매를 못 봐 아쉬운 마음에 건너편 공곶이 동백을 보고 왔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원고를 쓰려고 했는데, 자료를 다 준비해놓았는데도 원고는 영 진척이 없었습니다. 바쁘기보다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새해 들어 개인적으로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일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갈래마다 곡절이 있었습니다. 쉽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슬럼프지요.

    그동안 송필경의 『왜 호치민인가?』를 읽었습니다. 호치민에 대한 궁금증도 컸지만, 제 마음의 갈래를 잡고 싶었던 게 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치민을 읽으면서 왕안석에 대하여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고른 한시의 작가이기도 하고, 혁명가의 삶을 엿보면서 개혁가의 고민을 알고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우라 쿠니오의 『왕안석, 황하를 거스른 개혁가』를 읽었습니다.

    레닌은 ‘혁명 건설의 길은 네프스키 대로가 아니다!’라고 했다죠. 참고로 네프스키 대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넓은 대로라고 합니다. 구시대를 쓸어버리고 새 시대를 만들고자 하지만, 혁명가들 머릿속엔 여전히 구시대의 잔재가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적들이 아닌 내 머릿속 구시대 잔재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죠. 혁명 건설이 이렇게 쉽지 않다면 개혁은 어떨까요. 개혁은 구시대의 잔재뿐만 아니라 구시대의 인물들조차 청산하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새 세상을 건설한다는 의미에서 혁명 건설보다 훨씬 힘들겠지요.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왕안석을 ‘인류 역사상 최고의 개혁가’로 꼽았다고 하죠. 그러나 왕안석이 이끌던 신법당의 반대파 구법당은 왕안석을 ‘간상배(奸商輩)’, ‘나라를 망하게 한 무리’라고 폄하하였습니다. 구법당의 핵심인 사마광(司馬光)이나 정이(程頤), 정호(程顥) 형제 그리고 그들을 계승한 주희(朱熹)에 의해 성리학(性理學)이 만들어집니다. 잘 아시다시피 조선의 지배이념이 바로 성리학이었습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정신적으로 송나라 구법당을 계승하였으며, 구법당과 마찬가지로 왕안석을 매우 배척했습니다.

    이제 왕안석의 시를 볼까요?

    梅花(매화)

                 왕안석(王安石)

    담 모퉁이에 몇 가지 매화꽃
    추위를 무릅쓰고 홀로 피었네
    멀리서도 알겠네 눈이 아닌 걸
    은은한 향기 날아오고 있으니

    墙角數枝梅(장각수지매)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遥知不是雪(요지부시설)
    爲有暗香来(위유암향래)

    올 봄 지리산 자락 남원 산내에 핀 설중매 – 사진 : 정상은

    왕안석은 망국으로 치닫는 송(宋)나라에서 강력한 개혁인 ‘신법(新法)’을 시행하여 나라를 회생시킵니다. 그는 세금, 토지제도, 군사문제, 교육제도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개혁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정말로 정열적인 개혁가였습니다.

    왕안석은 정열적인 정치가 이전에 유학(儒學)과 불교(佛敎), 도학(道學)에 정통한 대단한 학자였으며, 시문(詩文)에 뛰어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분입니다. 5~6년 동안 재상으로 지내다가 물러난 다음에는 지금의 남경(南京)인 강녕(康寧)에 은거합니다. 이곳에 은거한 뒤에는 정열적으로 개혁에 매진하던 정치가의 모습이 아닌, 삶을 돌아보면서 시(詩)를 지으며 한가하게 일상을 보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매화(梅花)’는 강녕에 은거한 뒤에 쓴 시입니다.

    墙角數枝梅(장각수지매) 담 모퉁이에 몇 가지 매화꽃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추위를 무릅쓰고 홀로 피었네

    매화는 잎이 지는 나무들 중에선 가장 먼저 꽃이 핍니다. 세상에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시기에 홀로 꽃을 피웁니다. 그러다 보니 ‘설중매(雪中梅)’처럼 꽃이 피어 있을 때 눈이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성향 때문에 매화는 인내하는 고결한 인품의 군자(君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봄을 꿈꾸는 이들에겐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담 모퉁이에 매화꽃이 힐끔 보입니다. 참으로 반가웠을 겁니다. 그런데 멀리서도 어떻게 그게 매화꽃인 줄 알았을까요.

    遥知不是雪(요지부시설) 멀리서도 알겠네 눈이 아닌 걸
    爲有暗香来(위유암향래) 은은한 향기 날아오고 있으니

    멀리서도 흰 꽃이 눈이 아닌 걸 알아챈 건 바로 향기 때문이었겠지요. 매화의 향기가 정말 멀리서 느낄 정도로 짙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겠죠. 매화꽃이 가득 핀 과수원도 아니고 겨우 몇 가지에 핀 매화가 멀리까지 향기를 전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럼에도 매화향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봄을 간절히 바라는 시인의 마음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고결한 인품의 군자는 가만히 있어도 명성이 사방에 전해지듯, 그런 군자를 닮은 매화 또한 향기가 멀리서도 전해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당위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겠고요.

    왕안석에 대한 일화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대를 뛰어 넘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 병든 아들에게 며느리와 이혼하고 며느리를 재가하도록 설득한 일화입니다. 아들의 이름은 왕방(王雱)인데, 아주 뛰어난 재사(才士)였습니다. 학문이 뛰어나 왕안석과 함께 여러 경전에 주석을 달기도 했고, 정치적으로는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리따운 방씨라는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둘이는 사이도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젊어서 폐결핵에 걸려 중태에 빠졌습니다.

    왕방이 중태에 빠지자 방씨는 자연 독수공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왕안석은 아들 왕방도 안타까웠지만, 젊은 나이에 독수공방하는 며느리 방씨도 안타까웠나 봅니다. 왕안석은 아들에게 이혼하고 며느리를 개가(改嫁)하도록 하라고 설득합니다. 왕방는 아버지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혼을 합니다. 아내 방씨가 개가하기 전날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담아 노래를 부릅니다. 그것이 유명한 「안아미(眼兒媚)」라는 시(詩)입니다.

    안아미(眼兒媚)

    하늘하늘 휘날리는 버들가지
    뿌연 실타래 되어 수심을 잣는구나
    팥배나무 꽃비 내리기 전이요
    배꽃 눈처럼 떨어진 다음이니
    봄도 반이나 지났구나
    이제 지난 일 다시 생각하기 어려워
    꿈속으로 돌아가 *진루(秦樓)를 감도니
    사랑하는 마음은 다만
    정향나무 가지 위에 있는가
    두구꽃 꽃대에 남아 있는가

    (* 진루(秦樓) : 춘추시대 진나라 목공이 딸 농옥(弄玉)과 사위 소사(蕭史)를 위해 지어준 누각)

    楊柳絲絲弄輕柔(양류사사롱경유)
    煙縷織成愁(연루직성수)
    海棠未雨(해당미우)
    梨花先雪(이화선설)
    一半春休(일반춘휴)
    而今往事難重省(이금왕사난중성)
    歸夢繞秦樓(귀몽요진루)
    相思只在(상사지재)
    丁香枝上(정향지상)
    荳蔲梢頭(두구초두)

    미어지고 끊어지는 마음이 느껴지죠. 애끊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아들에게 차마 하기 힘든 결정을 내리게 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떨까요.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도 제3자와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대하는 것이 옳지만 인정(人情)에 쉽게 수긍되지 않는 면도 있겠지요. 이런 냉철한 이성이 어쩌면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쳐져 상대방의 공격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현대 개혁론자 또는 혁명론자들은 왕안석의 이러한 일상 태도를 자신의 평소 행동에 비추어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왕안석의 초상 – 출처 : 「사학도록(詞學圖錄)」

    아들 왕방은 아내 방씨가 개가하고 3년이 되던 해에 결국 죽습니다.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지만, 따뜻한 인간애의 소유자기기도 했던 왕안석은 아들의 죽음이 견디기 어려웠나 봅니다. 핏줄로는 아들이요,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동지이기도 했던 아들의 죽음을 맞아 왕안석은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 동경하던 강녕(康寧)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9년 뒤 왕안석과 함께 개혁을 이끌던 신종 황제가 38세의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이어 나이 어린 철종이 등극하고, 할머니인 선인태후가 섭정을 하게 됩니다. 왕안석과 신종의 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선인태후는 섭정이 되자마자 개혁적 신법(新法)을 하나하나 폐지합니다. 신종이 죽고 1년 뒤 평생 숙원인 개혁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으며 왕안석도 쓸쓸히 죽습니다.

    너무 우울했나요? 봄은 생기의 계절이자 사랑의 계절이지요. 생기와 사랑이 넘치는 김용택의 시 「봄날」을 보면서 이번 한시산책을 마치고자 합니다.

    봄날

              김용택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매화 꽃 보러간 줄 알아라.

    필자소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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