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매각 방침이 GM 불러와
18년 전 ‘아더 앤더슨 보고서’의 부활?
1972~2018년, GM과의 질긴 악연 (2)
    2018년 04월 12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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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폐쇄와 희망퇴직, 이어서 부평 등 전 사업장에 대해 GM본사는 정리해고와 부도처리 등에 대한 협박을 하면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지엠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지속적인 발전 계획에 대해서는 계속 유보적이거나 침묵하고 있는 게 GM의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GM의 태도는 최근의 사태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라 대우자동차, 그리고 그 이전 신진-새한자동차 시기부터 계속 나타난 문제였다. 이에 필자가 GM 사태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피고 현재의 쟁점들에 대해 정리했다. 6개의 주제로 이어지는 글인데, 2개 주제를 묶어 3회에 게재한다. <편집자>

① GM 지겹다, ‘ 차라리 부도내고 떠나라! ’
② 김우중 회장이 GM과의 결별을 선택한 이유는?
③ 해외매각 방침, 다시 GM을 불러오다
④ 아더 앤더슨 보고서, GM인수를 위한 구조조정 보고서
⑤ 단협을 양보하지 않으면? 인수하지 않겠다! & 부도 내겠다!
⑥ 부평공장 인수조건, 숨죽이고 노예처럼 일해라!

앞 회의 글 “반복되는 GM의 노동조합 협박의 흑역사”

3. 해외매각 방침, 다시 GM을 불러오다

GM과 결별한 이후 대우자동차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는 듯 했다. 92년 GM과 결별한 이후 대우자동차는 모델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통해서 판매를 유지하면서 버텨나갔다. 예를 들어 GM결별 이후 94년에 출시한 ‘씨에로’는 르망모델을 기반으로 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신차이지만 국내에서는 ‘르망에 껍데기만 조금 바꾼 차’라는 조롱을 받았다. 나도 ‘르망 트렁크를 해머로 한 방 쳐서 쑥 들어가게 만든 차가 씨에로’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조롱을 받던 ‘씨에로’가 폴란드, 러시아,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지역은 물론이고 서아시아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씨에로를 생산했고, 씨에로가 우즈베키스탄의 국민차라는 말도 들렸다.

대우자동차는 이렇게 낡은 모델을 가지고 힘겹게 버티면서, 영국의 워딩 연구소를 인수하는 등 독자적인 제품개발능력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90년대 중반 이후 레간자(중형), 누비라(준준형), 라노스(소형) 3개 차종 동시 출시로 내수시장의 돌풍을 일으키며 한때 내수시장 30%를 웃도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김우중 회장은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폴란드의 FSO 인수등 루마니아, 우즈베크, 우크라이나 등 동구권을 비롯한 제3세계에서 공격적으로 생산과 판매를 확장했다.

GM이라는 질곡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경영을 통해 성장하던 대우자동차는 잘만 했으면 현대자동차와 어깨를 겨누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는 GM의 약탈적 경영행태에서는 벗어났지만 무모한 차입에 의존하는 재벌경영이라는 또 다른 암초에 부딪쳐 좌초하게 된다.

김우중 회장의 공격적인 세계경영은 IMF라는 국가적 경제위기도 꺾지 못하는 듯 했다. 기아자동차가 부도가 나고, 현대자동차가 위기에 빠졌던 시기에 대우자동차는 내수 시장점유율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에게 IMF 직후의 상황은 그저 스쳐가는 미풍으로 느껴졌을 뿐이다. 하지만 대우자동차의 위기는 은폐되었던 것이고 폭발의 시기가 잠시 늦춰졌을 뿐이었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힘들다. 세계경영의 실패의 원인은 무모하기도 하고, IMF라는 불운도 겹치고, 너무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기도 하다. 김우중 회장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동구권을 중심으로 제3세계에서 자동차가 대중화되는 ‘모터라이졔이션’이 곧 도래할 될 것이라는 것을 믿었고, 그 믿음에 근거해서 공격적으로 이 지역에서 생산과 판매를 확대했다. 하지만 그 믿음만큼 그 시기는 빨리 오지 않았고, 또한 IMF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쳤다. 김우중의 세계경영의 발상을 이어받아 성공한 기업이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대우자동차가 실패했던 그 곳에 생산기지와 판매망을 구축함으로써 자동차기업 글로벌 TOP5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우중 회장은 이 암초를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아마 그는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대우그룹은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의 운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암초를 돌파하는 해법을 공격적인 사업확장에서 찾고 이를 위한 자금동원을 위해 무모한 차입경영과 돌려막기의 편법을 사용했다. 영국에 BFC(아마도 British Finance Center의 약자일 것이다)라는 금융센타를 만들어 놓고 모든 대우그룹의 수출대금을 집중관리 했다. 예를 들면 대우조선에서 배를 판 대금을 받으면 BFC로 입금하고, 이 돈을 다시 대우자동차의 사업에 투자하던지 빚을 메꾸는 방식이다.

이러한 무모한 차입경영과 돌려막기는 1999년 대우그룹 워크아웃이라는 대우그룹 전반의 위기상황으로 결말이 났다. 그리고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대우그룹은 수십조 부채의 늪에 빠졌다. 지금 한국지엠이 지고 있는 3조원의 부채가 한국지엠의 경영부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듯이, 당시 대우자동차의 천문학적 부채 역시 대우자동차 그 자체의 경영상의 문제, 특히 노동자들의 책임은 아니었다.

이후 대우자동차의 처리방향을 놓고 대우자동차 내부에서, 그리고 전사회적으로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은 해외매각 반대 – 공기업화가 대우자동차의 올바른 처리방향임을 주장하면서 해외매각 반대투쟁을 벌여나갔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 정권의 경제관료들은 해외매각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던 논리가 바로 ‘향후 세계 자동차 산업이 500만대 이상을 생산하는 5~6개의 글로벌 메이저 자동차 회사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고, 군소 자동차 기업들은 이들 기업에 합병되던지 최소한 제휴관계를 맺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과점체제론’ 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당시 해외매각을 주도했던 이헌재 금융감독원 원장(이후 재경부 장관)은 “한국자동차산업을 지속해야 할지를 생각해 볼 때이다…. 자동차산업의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영권이나 소유권을 누가 갖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공공연하게 대우뿐 아니라 현대도 세계 초국적 자동차 자본과 관계를 맺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기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기업의 해외매각은 국부의 해외유출이 아니라 자본의 국내유입이다”라면서 해외매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김대중 정권은 해외매각 반대 여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해외매각 방침을 밀고 나갔고, GM은 인수의사를 표명하면서 가장 헐값에,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골라서 인수하기 위해서 동분서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GM은 대우자동차 인수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을 했지만 자산-부채 인수방식의 선별인수의사(예로 FSO사나 군산공장만을 선별인수하겠다.)를 표명함으로써 GM과의 인수협상은 난항에 부딪치고 있었다. 자산-부채 인수방식이란 대우자동차 전체를 인수(지분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대우자동차 공장 중에서 생산성과 전망이 있는 공장만 인수하고 나머지 공장은 대우자동차에 남겨놓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GM의 선별인수 방침은 이후 대우자동차 인수과정에서 상당부분 관철된다.

하지만 과거 GM을 경험했던 대우자동차와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해외매각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GM은 피하고 싶은 최악의 선택지였다. 그래서 대우자동차 인수경쟁에 포드가 뛰어들었을 때 해외매각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포드에 열광했다. 당시 포드는 7조원 대의 인수가격을 GM이 4조원 대 현대-다임러 컨소시엄이 6조원 대의 인수가격을 써 냈고 포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포드는 실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대우자동차 인수를 포기했고, 이후 대우자동차는 부도와 법정관리, 정리해고의 구조조정 국면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게 되고, GM만이 대우자동차 인수의 유일한 후보자로서 남게 된다. 그래서 92년 김우중 회장의 결별선언으로 대우자동차를 떠났던 GM은 떠날 때 했던 말대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01년 당시 대우차 해외매각 반대 집회 자료사진

4. 아더 앤더슨 보고서, GM인수를 위한 구조조정 보고서

나는 『위장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지금도 당시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기로 결정해 놓고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인수 조건으로 내건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정리해고는 단지 경영상의 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나긴 세월 동안 투쟁과 조직화 과정을 통해서 축적된 노동조합의 역량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것, 자본의 힘의 우위와 통제력이 관철되는 공장을 만드는 것, 흐트러진 노동 규율을 세우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의 활용 등으로 노동력의 구성을 바꾸는 것이 정리해고의 숨은 의도라고 본다’ (‘위장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 64~65p)

그동안 GM은 망가져가는 대우자동차를 인수해서 회생시키고, 정리해고자들이 전원 복직되도록 한 구세주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GM이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의 숨은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엠이 대우자동차를 인수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숨은 인수조건’으로 내걸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고, 그 확신의 근거는 바로 2001년 2월 14일, 정리해고가 단행되기 바로 이틀 전의 날짜로 발행된 ‘대우자동차 중장기 구조조정을 위한 최종보고서’의 내용이다. (이미 아더 앤더슨은 2000년 11월에 2001년 영업이익 극대화를 위한 단기대책을 제시한 1차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회계법인은 ‘아더 앤더슨’ 이다. 그런데 아더 앤더슨 회계법인은 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미국의 에너지 기업인 앤론사의 분식회계를 눈감아 주면서 분식회계로 앤론사는 파산하고, 아더 앤더슨 회계법인은 해체되었다. 이러한 부도덕한 회계법인이 대우자동차의 독자회생이 목적이 아니라, GM의 의도에 맞춰서, 즉 GM에의 인수조건에 맞추어서 보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본다.

물론 당시 김대중 정부와 GM 간의 보이지 않는 거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정리해고에 대한 상당한 정치적 부담감을 느끼겠지만, 이때 김대중 정부의 기조는 대우자동차를 GM에 인수시키려면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대규모 정리해고의 중요한 선례를 남기고 싶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나는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정책실장으로서 당시 대우자동차 매각을 책임지고 있던 산업은행의 한 관료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관료는 ‘GM이 대우자동차 인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정리해고가 끝나자마자 적극적으로 인수협상에 달라붙었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이 말을 GM은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를 비롯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숨은 인수조건’으로 제시했고, 이 조건이 충족되자 공개적으로 인수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면 ‘아더 앤더슨’ 보고서가 왜 ‘GM의 인수조건를 충족시키기 위한 구조조정 보고서’인지, 즉 GM을 위한, GM의 보고서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아더 앤더슨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려는 GM의 요구와 구미에 맞게 맞춤형 구조조정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위 표는 대우자동차의 해외법인 처리의 기본방향을 도표로 정리한 것이지만, 대우자동차 전반적인 구조조정도 이와 같은 개념에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즉 대우자동차가 GM 인수 전에 정리해고 등 사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을 하면 중장기적인 구조조정과 재편은 GM이 인수 후에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기본 개념이 될 것이다.

2) 아더 앤더슨은 구조조정의 기본방향을 ‘선택과 집중’, ‘생산집약화’, ‘효율성 제고’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 부평공장은 폐쇄하고 부지를 매각하여 금융부채를 상환한다. ▶ 부평공장에서 생산하기로 되어 있던 T-200(젠트라)은 창원공장으로 이전하고, 엔진구동공장은 창원과 군산으로 분산해서 이전한다. ▶이로 인해 2,400명의 추가적인 인원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추가적이라 함은 이미 계획되어 있던 정리해고 인원 이외의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말한다.)

GM은 대우자동차 인수협상에서 일관되게 부평공장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GM이 부평공장을 인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더 앤더슨’ 보고서에 나온 대로 부평공장의 폐쇄를 의미한다. 부평공장 인수 문제는 GM과의 인수협상에서 최대의 쟁점이었다. 이종대 당시 대우자동차 법정관리인은 법원에 사표를 던졌고, 그 이유를 묻는 법원을 향해 그는 ‘GM이 부평공장을 인수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평공장을 인수 안하는 매각협상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노동조합 정책실장으로서 만난 산업은행 관계자는 왜 헐값에 대우자동차를 매각했느냐는 질문에 ‘부평공장 문제 때문에 인수가격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자동차와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위해서 우리 은행이 엄청난 손해를 봤는데 매각 협상을 잘못했다고 욕먹는 것이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GM과 매각협상을 하면서 매각대금 12억불을 우선주로 배당받았다. 그런데 이 우선주 상환의 의무는 GM이 아니라 인수기업인 한국지엠에 부과되는 것이고, 한국지엠은 이후 우선주 상환에 1조 6천억 이상을 산업은행에 지불하였고, 그 대금은 GM의 금융회사로부터 연리 5%이상의 고금리로 대출받았다. 이는 고스란히 한국지엠의 부채로 남게 되었고 지금 3조원에 달하는 부채가 시작된 출발점이 되었다. 즉 산업은행은 GM과 공모하여, GM이 지불해야 할 매각대금을 한국지엠에 떠넘겨 한국지엠의 재정적 부실을 가져오게 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최종적으로 GM은 부평공장을 인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평공장은 폐쇄되지는 않았다. 부평공장은 지엠에 인수되지 않은 별도의 위탁생산공장의 지위로 생산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이후에 자세히 하기로 하겠다. 결론적으로 아더 앤더슨 보고서의 부평공장 폐쇄라는 제안은 GM의 부평공장 인수거부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만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GM은 이후 ‘부평공장을 폐쇄했더라면 큰일날 뻔 했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부평공장은 GM을 기사회생시킨 일등공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3) 아더 앤더슨은 부평공장을 폐쇄하고 창원, 군산으로 부평공장의 생산을 이전하면 ▶ 대우자동차의 생산능력은 105만대에서 56.5만대로 ▶ 생산차종은 7차종에서 4개 차종으로 ▶ 가동률은 56.1%에서 95.2%로 ▶ 인원은 14,346명에서 11,333명으로 줄어드는 예측을 제시하였다. 특히 창원공장은 생산능력을 26만대로 평가하고, T-200을 창원공장으로 이전하면 28만 8,373대로 가동률 110.91%로 예측하고 있다. (군산공장은 가동률 81.9%) 이는 부평공장은 폐쇄하고 대신에 창원은 무리를 해서라도 가동률 110%로 공장가동을 하라는 제안인 것이다.

나는 아더 앤더슨 보고서의 이러한 제안을 다시 읽으면서 섬뜩함을 느꼈다. 지금 GM이 제시하고 있는 한국지엠의 구조조정 방안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GM은 현재 100만대의 한국지엠 생산능력을 50만대로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GM이 50만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수 차례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이 생산능력을 말하는 것인지 그 정도의 생산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홍영표 의원이 베리 앵글과 만난 후의 인터뷰 글에서는 ‘GM이 100만대의 생산능력을 50만대의 생산능력으로 줄이겠다’라고 했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GM은 이미 군산공장을 폐쇄했고, 남아 있는 3개 공장 중 한 개 공장의 추가적인 폐쇄를 의미하는 말들을 남기고 있다. 이는 아더 앤더슨 보고서에서 부평의 두 개 공장을 폐쇄하고 창원, 군산 두 개의 공장만을 운영할 것을 제안하고, GM이 부평의 2개 공장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당시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GM은 현재 2,600여명의 희망퇴직을 통한 구조조정이 불충분하며 5,000~6,000명의 인원감축이 필요하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이는 2001년 당시 1750명의 정리해고를 포함해서 7,000여명의 인원을 구조조정한 상태에서도 부평공장 폐쇄를 통해서 2,400여명의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다는 아더 앤더슨 보고서의 냉혹함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아더 핸더슨의 보고서 표지

4) 아더 앤더슨은 부평공장 폐쇄의 효과로 정규직 인력의 증가억제를 통한 인력운영의 효율성의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

▶ 가동률에 따른 탄력적인 인력운영과 노동생산성 향상으로 정규 생산직 인력규모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관리직 인력규모도 최소한으로 제한함.

▶ 향후 가동률 증대에 따른 추가 생산직 소요 인력은 인건비 부담이 작은 용역인력으로 대체함.

비정규직 노동력을 확대하는 것은 GM 인수 후의 일관된 방향이었다. 정리해고 이전에 부평공장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이 지극히 낮았다. 특히 직접생산부문에는 비정규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GM 인수 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이 급속히 증가했다. 2006년 기준으로 비정규직 인원은 4,541명에 달했다. 이는 1차 비정규직에 한정된 통계이고 2,3차까지 하면 그 인원은 훨씬 늘어날 것이다. 말하자면 정리해고 등 인원 구조조정으로 빈 공간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채운 것이고, 정규직 대상의 인력구조조정의 목표 중의 하나가 비정규직 고용확대라는 노동력 구성의 변화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20년이 된 이 ‘아더 앤더슨 보고서’를 다시 볼 것을 제안한다. 아니 그동안 깊숙한 어둠속에 묻혀있던 이 보고서를 다시 햇빛에 꺼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아더 앤더슨 보고서는 2001년 정리해고 등 대규모 구조조정의 숨은 주범이 GM이었다는 것과, 부평공장을 인수하지 않았던 GM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에 대한 GM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소중한 과거의 경험적 사료라는 것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GM의 행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계속>

필자소개
한국지엠 부평공장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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