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GM의 노동자 협박의 흑역사
1972~2018년, GM과의 질긴 악연 (1)
    2018년 04월 11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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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군산공장의 폐쇄와 희망퇴직, 이어서 부평 등 전 사업장에 대해 GM본사는 정리해고와 부도처리 등에 대한 협박을 하면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지엠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지속적인 발전 계획에 대해서는 계속 유보적이거나 침묵하고 있는 게 GM의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GM의 태도는 최근의 사태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라 대우자동차, 그리고 그 이전 신진-새한자동차 시기부터 계속 나타난 문제였다. 이에 필자가 GM 사태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피고 현재의 쟁점들에 대해 정리했다. 6개의 주제로 이어지는 글인데, 2개 주제를 묶어 3회에 게재한다. <편집자>  

① GM 지겹다, ‘ 차라리 부도내고 떠나라! ’
② 김우중 회장이 GM과의 결별을 선택한 이유는?
③ 해외매각 방침, 다시 GM을 불러오다
④ 아더 앤더슨 보고서, GM인수를 위한 구조조정 보고서
⑤ 단협을 양보하지 않으면? 인수하지 않겠다! & 부도 내겠다!
⑥ 부평공장 인수조건, 숨죽이고 노예처럼 일해라!

1.  GM 지겹다, ‘ 차라리 부도내고 떠나라! ’

지난 3월 26일 베리 앵글 GM 사장은 한국지엠 지부 지부장에게 “4월 20일까지 이해관계자가 동참하지 않으면 부도신청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군산공장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의 기회를 줬다.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는 회사가 정리해고권한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표현이야 정부와 노동조합 모두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상 노동조합이 회사가 제시한 양보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도처리하겠다는 노동조합을 향한 협박이다.

여기에 정부도 한마디 거든다. 지난 4월 6일 백운규 산업통산부장관은 한국지엠을 방문하여 “노사 간 대타협이 선결돼야 구체적 정부지원 방안도 협의가 가능하다 ”, “노조가 대승적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말하자면 노동조합이 우선 양보를 하라는 것이다.

베리 앵글의 협박에 조합원들은 격앙했다. 부도에 대한 걱정보다는 ‘차라리 부도내고 GM 떠났으면 좋겠다.’는 분노의 표출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정리해고의 협박에 군산의 조합원들은 부평공장에 농성텐트를 까는 것으로 응답했다. GM의 부도협박, 4월 20일이라는 기한, 그리고 노동조합의 선 양보. 이런 말과 요구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물론 한국지엠이 GM 본사로부터 꾼 돈을 갚아야 할 기한은 줄줄이 도래하고 있고, 그 돈을 갚지 않으면 부도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GM이 한국지엠의 대주주이면서 동시에 제1의 채권자라는 사실이다. 한국지엠의 대주주가 채권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해서 자신의 자회사인 한국지엠을 부도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그런데 이미 GM은 3조에 달하는 자신의 채권을 출자전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3조원의 채권이라는 것도 낱낱이 들여다보면 한국지엠의 경영에서 발생한 부채라기보다는 GM의 필요에 의해서, 또는 손실을 떠안김으로써 발생한 부채이다. 그리고 지금은 정부의 자금지원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한 산업은행의 실사가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실사가 끝나고, GM과 정부, 그리고 노동조합 간에 협상이 종료될 때까지 채무상환을 연기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노동조합는 이미 양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왜 양보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달라는 것이다. GM이 한국지엠을 유지발전 시킬 계획이 있으면 노동자들은 양보를 통해 일정정도 비용문제에 대한 협조를 하겠지만, 만일 단계적으로 철수하겠다면 단 한 푼의 철수비용도 대지 않겠다는 거다. 그러니 한국지엠의 장기적 유지발전에 대한 GM의 계획과 의지를 이야기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시기는 한국지엠에 대한 정부의 실사가 끝나고 그 실사결과를 토대로 협상을 하는 시기가 맞다.

그런데 GM은 왜 2월말, 3월말, 4월 20일 끊임없이 시한을 정해놓고 노동조합을 압박하는 것일까? 이는 GM이 노동조합을 협상해야 할 주체이자 당사자가 아닌 하나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노동조합이라는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서 협박이라는 무기를 동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지금 걸림돌이라기보다는 이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사전에 제거하자는 것이 아닐까?

베리 앵글이 정말로 노동조합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GM은 한국지엠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실사 이후에 밝힐 것이다. 하지만 비용이 걱정이고 노동조합의 협조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실사 이후에 노동조합과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노동조합도 이러한 문제에 열려 있어야 하고, 또 지금 충분히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대화와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고 솔직하게 협조를 요청해도 시원찮을 판에 어디다 협박질인가?

물론 노동조합이 당당한 협상의 주체이자 당사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준비와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반성해야 한다. 이는 단지 한국지엠 노동조합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그리고 한국사회의 진보적 사회운동 세력이 함께 반성해야 할 문제다.

GM이 철수라는 협박의 칼을 들고 정부에게는 자금지원과 각종 특혜를 요구하고 노동조합에게는 임금과 단체협약의 양보를 요구하며 한국 땅에 들어왔을 때 GM과 정부 간의 협상을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제3의 당사자 – 주체를 힘 있게 만들어 노동자들의 요구와 주장을 힘있게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지엠의 문제는 한국지엠 구성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연관 산업의 30여만 노동자들, 그리고 만일 정부가 지원을 하게 되면 그 돈을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납세자인 시민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앞으로의 숙제로 남겨두도록 하자.

여하튼 지금은 평소에 경영참여를 요구하면 경영권은 자본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하면서 너희는 일이나 하라고 하던 자들이 지금은 마치 한국지엠 노동조합이 한국지엠의 장래와 30만 노동자들의 고용과 지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결정권한을 가진 냥 호들갑을 떨고 있는 희한한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너희들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 부도가 나고, 그러면 한국지엠도 망하고, 한국경제가 흔들린다!’

이번에 정년을 얼마 안 남기고 희망퇴직을 하고 나가시는 한 선배가 피곤한 표정으로 말을 내 뱉는다. ‘지엠 놈들 정말 지겹다, 지겨워….이 꼴 더 이상 안 보려고 나간다.’

GM의 노동조합 협박의 역사는 정말 지겹게 반복되어 왔다.

나는 배리 앵글의 부도 협박 소식을 듣고 솟아오르는 분노에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내가 흥분하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그렇게 흥분해. 이런 일 한 두 번 겪어? ” 그렇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원인은 GM의 반복된 협박에 대한 과거의 경험에 뿌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노동조합이 ~ 안해주면’… 인수 안하겠다, 본 계약 할 수 없다…. 이미 잊혔다고 생각했던 오래 전의 GM의 협박에 대한 기억들이 가슴을 요동치며 분노의 떨림으로 다시금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나의 깊숙한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과거를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먼지가 풀풀 나는 상자 속에서, 외장하드에 담아 처박아 두었던 파일들 속에서 옛날의 GM의 반복되었던 협박과 노동자들의 분노의 기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4일 부평역 광장에서 ‘한국지엠 30만 노동자 총고용보장 인천 결의대회(사진=금속노동자 신동준)

2. 김우중 회장이 GM과의 결별을 선택한 이유는?

지엠과 한국지엠 노동자들 간의 악연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한국지엠의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길다. 노동조합의 역사도 길다. 1963년 한국지엠의 전신인 신진자동차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지엠과의 악연은 1972년 신진자동차가 GM과 50대 50으로 합작을 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곧바로 회사는 위기상황에 빠지고 1976년 산업은행이 신진자동차의 지분을 인수해서 새한자동차로 이름이 바뀌고, 다시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산업은행의 지분을 인수해서 1982년 대우자동차로 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다시 1991년 대우자동차는 다시 위기에 빠지고 김우중 회장은 1992년 GM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이렇게 GM과 합작한 신진- 새한- 대우자동차가 반복되는 경영위기에 시달리고 있을 때, 초국적 자본에 의존하는 경로가 아닌 선진 자동차 업체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독자경영을 추구했던 현대자동차는 포니 신화를 시작으로 한국자동차 산업의 중심으로 흔들림없이 발전을 해나갔다.

당시 정부 관료들이나 주류학자들은 한국에서 자동차산업이 초국적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초국적 자동차 기업의 기술과 판매망에 의존해야 한국에서 자동차 기업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진자동차는 이러한 정부 관료와 주류학자들의 견해에 충실히 따랐고, 현대자동차는 이러한 견해에 거슬렀다. 그리고 이들 관료들과 주류학자들은 현대의 무모함을 비웃었다. 그리고 이들 관료들과 주류학자들의 견해는 초국적 자동차 기업들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했다.

80년 중화학투자조정 당시에 ‘한국자동차산업은 경쟁력이 없으니 투자를 더하지 말아야 하며, 승용차산업 일원화를 위해 현대와 GM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기획원, KDI 및 세계은행(IBRD)의 논리였다.

‘GM이나 FORD, TOYOTA는 1980년대 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국자동차 산업의 독자발전 가능성을 부인한다. 옛날에도 환경기술(옛날에는 무게중심이 오일쇼크로 인해 저연비 차량개발이었고 지금은 그와 더불어 EMISSION 등 환경규제도 중요하게 간주한다)투자비를 상각하기 위해서는 150~200만대 이상의 10개 회사 정도가 살아남을 것이라 했고 지금은 5~6개 정도가 살아남으리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이는 항상 5개 내에 드는 것이 확실한 BIG3와 토요타가 앞장서 주창한다. 이들의 말대로 1980년 국보위 하 중화학투자조정 때 포드나 GM의 논리대로 (경제기획원 / KDI/ 채권은행인 IBRD도 동의) 현대 대우와 GM의 합병을 통해(GM 지분50%)국내 승용차 산업을 일원화시켰다면 결코 오늘날 같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기아자동차 법정관리인을 거쳐 대우자동차의 법정관리인 겸 회장을 맡았던 이종대씨가 한 말이다. 이런 입장을 표명한 사람이 대우자동차의 GM매각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긴 하다.

나는 『위장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지엠에서 위기는 숙명적으로 반복된다. 주기적으로 철수설, 공장축소 – 이전설이 터져 나온다. ”

이 책에서는 2002년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이후의 상황을 설명한 것이지만, 1972년 GM과 관계를 맺은 이후 위기는 숙명처럼 반복되었다.

대우자동차가 GM과 결별할 때 까지 신진–새한–대우를 거치면서 위기가 반복된 이유는 지금 한국지엠이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GM은 기술이전에 매우 인색했다. GM은 신차 개발은 독일의 오펠에서 수행하고 신진–새한–대우는 생산기지로서의 역할만 부여했다. 대우자동차의 르망은 상당히 좋은 차였다. 당시 현대, 기아의 영업사원들은 르망 같은 차를 가진 대우자동차가 한국의 내수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독일의 오펠에서 개발한 르망은 엔진소음이 크고 고속주행에 적합해서 독일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차종이었지만 한국의 소비자들은 엔진소음에 큰 불만을 표현했다. 하지만 GM은 대우자동차의 반복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시장에 맞게 르망을 설계 변경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우자동차는 르망 이외의 다른 모델계획을 갖지 못했기에 대우자동차는 독자적인 모델개발을 강력히 요구하여 에스페로를 개발하여 시장에 내어 놓았지만 GM이 기술이전에 인색하였기 때문에 몇 가지 결정적 결함 때문에 실패하게 된다.

다음으로 GM은 수출시장을 제한하였다. 대우자동차는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GM에 요구하였지만 GM은 미국시장 이외의 대우자동차 수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GM이 월드카 르망을 대우자동차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이유는 미국시장에서 일본 소형차에 대응하기 위한 이유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GM의 약탈적 경영행태가 겹쳐진다. GM은 신진–새한–대우자동차에게서 과도한 경영지도료, 로열티, 시장가 이상의 부품사용료를 요구하였다. 매년 75만 달러의 경영지도료, 모든 모델에 대한 3%의 로열티, GM이 제공한 차관에 대한 이자를 꼬박꼬박 챙겨갔다.

91년 대우자동차가 극심한 가동률 저하로 어려움에 빠졌다. 당시 나는 동료들과 술집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걱정을 나누던 기억이 난다. GM과 결별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떠돌고, 삼성인수설이 돌기도 했다. 당시 언론은 강성노조의 파업이 원인인 것으로 몰고 갔지만, 사실 위기의 원인은 바로 GM에게 있었던 것이다.

1992년 마침내 대우자동차의 발전을 가로막는 GM의 약탈적인 경영에 참을 수 없었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GM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적인 경영을 모색하게 된다. 위기의 원인을 도려내고 독자경영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때 한국시장에서 쫓겨나면서 GM은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다시금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와신상담 그 기회를 기다렸을 것이다.<계속>

한국지엠 조합원 공청회에 2000명 정도 참여하고 있다(사진=필자 페이스북)

필자소개
한국지엠 부평공장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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