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힌디와 영어, 한국어
    [인도 100문-35, 39] 언어의 관계들
        2018년 02월 28일 04: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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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에서 힌디를 아는 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인도 헌법 부칙 제8조에 의하면 연방의 주 공용어는 스물두 개다. 인도-아리야어가 힌디를 비롯해 사어로만 존재하는 산스끄리뜨, 네팔리 등 열다섯 개이고, 드라비다어가 따밀어를 비롯하여 네 개며 티메토-버마어가 마니뿌르어와 보도어 둘이고 문다어 계통이 산딸어 하나다.

    연방 공용어는 힌디와 영어 둘이다. 이 가운데 힌디는 제3언어로서 구사 가능한 인구가 약 5억3천만 정도 되고, 그 분포는 주로 데칸 고원 이북 지역이다. 하지만 그 지역이 아니라 할지라도 인도의 남부 5개 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힌디가 널리 통용되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되기에는 근대 이후 전체 인구 이주가 많이 발생을 했고, TV.와 영화가 널리 보급된 영향이 크다. 영어는 제3언어까지 포함해 약 1억 2천만의 인구가 구사하는 언어이니 인도 인구의 약 1/10이 조금 못 되는 수다.

    모든권위 있는 행사는 영어로 진행된다. 인도에서 영어는 위계를 반영한다.@이광수

    인도에는 국어(national language)가 지정되어 있지 않아 있다. 독립 후 현재의 연방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의 전신인 국민단(Jan Sangh)가 주장하고, 마찬가지로 강력한 국민국가를 추진하던 회의당에 의해 힌디 국어화 정책이 추진되려 했으나 국민단의 힌두주의에 경사된 과도한 민족주의와 힌디 사용권 중심의 독주에 반감을 산 다른 지역의 국민들이 반대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인도 근대 문화를 이끌어왔다고 자부한 벵갈어를 사용하는 지역인 서벵갈과 힌디의 모오격이라고 자부하는 뻔잡어를 사용하는 뻔잡 지역 그리고 힌디와는 전혀 다른 계통의 언어인 드라비다어를 사용하는 남부 인도에서 반대가 극심하였다. 특히 이 가운데 따밀어를 사용하는 따밀나두 지역에서는 독립 전인 1935년부터 독립 후인 1965년까지 대학생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그 바람에 드라비다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정당이 뿌리를 내렸고 이후 회의당은 이 지역에서 주요 정당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게 되었다.

    국어가 없는 상황에서 영어는 실질적인 국어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델리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의 주요 대학에서는 강의와 연구는 모두 영어로만 이루어졌고, 시험은 형식적으로는 영어와 힌디를 허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힌디로 시험을 보는 학생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교수들은 모든 논문이나 책은 거의 영어로만 냈고, 학내의 행사도 마찬가지로 영어로만 이루어졌다.

    비즈니스에서는 더욱 심했다. 비즈니스는 그 특유의 성격상 다양한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만나야 하고, 외국인들을 만나야 하며, 국수적 민족주의의 사고에 빠지면 곤란해서 힌디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로가 많이 친하게 되면 그들은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적인 대화는 힌디로 하다가, 공적인 대화는 영어로 하는 그런 형태다.

    마찬가지로 격식 없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경우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동네 이야기를 한다거나 학교 동창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힌디를 사용하지만, 뭔가 폼이 좀 필요한 경우에는 영어를 사용하였다. 또 아랫사람들을 꾸중하거나 명령을 할 때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개에게 먹이를 주거나 말을 걸 때는 영어를 쓴다. 그 두 언어는 현란할 정도로 어지럽게 바뀌면서 사용된다. 외국인의 경우에는 그들이 하는 대화를 보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대개의 인도 사람들은 외국인이 힌디를 사용하면 매우 반가워하면서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외국인이 서양인이거나 한국이나 일본인 같이 그들이 잘 사는 나라에서 온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들인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차림새가 누가 봐도 외국인인 경우에 그렇지, 인도 동북부의 일곱 자매 주인 앗삼, 나갈랜드, 마니뿌르 혹은 메팔과 같은 곳 출신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보통의 인도 사람들은 그 지역 사람들을 아주 낮춰 보고 무시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힌디를 사용하면 그들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반면에 한국인 비즈니스맨이 영국식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인도에서 비즈니스를 잘 하려면 힌디를 알아서 손해날 건 없다. 그러나 힌디를 함부로 사용하다간 여러 가지 예기치 않은 봉변을 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인도에는 언어에도 등급이 있는 것이다.


    한국어가 드라비다어에서 기원했다?

    한국과 인도와의 관계를 주장하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짜증나는 주장이 한국어가 드라비다어 – 현재 인도의 남부 5개주인 따밀나두, 께랄라 등에서 사용되는 따밀, 말라얄람 등 4개 언어의 공통 조어 –와 같은 계통의 언어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를 대라고 하면, 고작 엄마, 아빠가 같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엄마, 아빠는 수도 없이 많은 언어에서 같거나 유사하다. 그것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이 엄마고 아빠인데, 그들을 향해 처음 내뱉을 수 있는 음가가 ma와 pa이기 때문에 그렇다. 즉 엄마나 영어의 mother이나 mom이나 다 같은 말이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다 비슷하다. 또 근거를 대라고 하면 몇 몇 단어를 댄다. 밥, 쌀, 젖, 목, (이)빨, 날(日), 나라(國) 등을 그 근거로 대는데, 그 어휘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체계적이지 못하다.

    호기심은 호기심으로 그쳐야한다. 지나쳐 자본이나 권력과 결탁되면 사이비 역사학이 된다. ⓒ 이광수

    어떤 사람은 한자어 안부(安否)도 같다고 한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세계 모든 언어의 5~7% 정도는 음가 상 유사하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가 그 정도 된다는 의미다. 또 어순이 같지 않냐, 라는 사람도 있다. 세계의 모든 언어는 그 어순이 둘 중 하나다. 주어-술어-목적어/보어 이거나 주어-목적어/보어-술어 이다. 이 가운데 한국어와 드라비다어는 후자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에 속한다.

    어떤 어휘 유사한 음가를 가졌다고 하면 그 어휘의 형태소를 나눠봐야 한다. 즉 그 말이 명사인지, 동사인지, 형용사인지를 봐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그냥 비슷하게 들리면 같다고 한다. 명사 하나만 보더라도 그 어휘가 한자어인지, 토착 한국어인지, 어근인지, 어미인지, 어조사인지 정도는 봐야 한다. ‘이리’가 같으면 이 쪽, 이 곳, 이 사람 등의 용법을 함께 살펴봐서 그 어휘가 어근이 ‘이리’인지 ‘이’인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그냥 ‘이리’가 비슷하게 들리면 환호하면서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한국어가 인도-유럽어와 같은 계열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어의 ‘똥’과 영어의 dung이 같고, ‘많이’와 many가 같고, ‘푸르다’도 blue와 같기 때문이다. 마음먹고 찾으면 이 정도만 있겠는가? sister와 (아)씨는 같지 않은가? 한 발 더 나가면 그 ‘씨’에서 여성의 ‘씹’도 나왔다고 말하면 어쩔 텐가? 사실 ‘씹’은 씨(seed)의 입이라는 어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 두 언어는 이렇게 멀리 떨어지게 되었나요? 라고 물으면 허왕후가 올 때 가져 왔단다. 허왕후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고, 그는 만들어진 신화 속 인물이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래도 말을 이어보기 위해 허왕후가 가져 왔다고 칩시다. 그러면 허왕후 하고 그를 따라온 일행 몇 사람이 한국어 자체를 드라비다어롤 바꾸었네요? 아니면 그때까지 한국어는 없었고, 드라비다어를 그 몇 사람이 가져와 한국에 심었던지? 라고 물어보면 대화는 더 이상 진전이 되지 않는다. 언어라는 것이 한 시기, 몇 사람 혹은 몇몇 사건에 의해 전파되거나 이식될 수 없는 것이다. 어휘 몇 개가 비슷하다고 해서 그 언어 사이에 친연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로서는 한국어와 드라비다어 사이에 어떤 언어적 친연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몇몇 사람들이 관광객의 입장에서 혹은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으로 남부 인도 사람이 한국에 혹은 한국 사람이 남부 인도에 살면서 배운 몇 개의 ‘신기한’ 현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이 주장의 시작은 헐버트(H.B.Hulbert)라고 하는 한국에서 오래 산 미국의 선교사가 인도 남부에서도 몇 년간 살았는데, 두 언어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1905년에 주장한 이론이다. 가설로 치면 한국어 기원인 우랄 알타이어와 드라비다어가 우떤 유사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드라비다어가 남부 인도에서부터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국 남부로 흘러 들어와 그 두 언어 계통이 만나 하나를 이루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인 학자 스스무 오노(大野晉)는 일본어와 따밀어가 같은 계통의 언어라고 하는 주장을 방대한 학설로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이 학계에서 검증된다면 한국어의 드라비다어 친연설도 재검토를 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한국어와 드라비다어를 아는 학자는 아무도 없어서 구체적인 연구물이 나온 게 없다. 더군다나 그 주장이 뭐가 좀 되려면 한국어의 우랄알타이어 계통설에 필적할 만큼의 주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니, “가능성은 배제할 수는 없겠으나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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