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대통령 머릿속이 양극화돼있어요
        2006년 04월 05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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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님, 연애해보셨죠?”
    오는 13일 생일이 지나면 만 19세가 된다는 남궁정씨. 생애 첫 투표를 하게 된 사람으로 소개받은 그가 지난 4일 저녁 여의도 한 호프집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과 청년 10인의 대화에 물꼬를 트며 던진 질문이다. 국회의원과 첫 만남자리에 다소 어색했던 얼굴들이 순간 환해졌다.

    연애는 상호 침투, 상호 변화

    “자기 자신의 감정,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최종은 없다. 모든 선택은 책임지면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관계죠. 한번 이상 안 싸웁니다. 그렇게 살 수는 없지요.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들이 변화해야 합니다. 상호 변화, 상호 침투해야죠.”

    노회찬 의원이 풀어쓰니 연애론이 졸지에 인간관계학으로 변한다. 사랑이야기에 ‘상호 변화, 상호 침투’란 말이 낯설면서도 민주노동당 의원이 어디 가겠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사실 그건 진실이기도 하다. 올해로 만 50세가 되었다는 노회찬 의원이 한 참석자의 질문을 ‘핑계’로 자신의 이십대를 회고했다.

       
    ▲ 지난 4일 저녁 호프집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과 청년 10인의 만남

    “20대 초반에는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20대 중반 이후로 노동운동을 했어요. 경제수준은 낮고 독재정권이었고 노동자로서 활동이 거의 허락되지 않는 사회였지요. 나는 뭐든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데모도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먹고, 소주에 토마토, 소주에 단무지 이렇게도 마셨어요.

    지금까지 기억나는 가장 맛있는 술 중 하나는 부산 바닷가에 가서 돈이 없어 회는 못 먹고 소주 4홉들이에 꽁치 통조림을 사서 바닷가에 앉아 먹었던 술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고시 공부, 취업을 준비했는데 어찌 보면 철없는 사람 같이 보였을 지도 몰라요. 뭐든지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쉬운 삶 살고 있는 거 아냐

    대학 4학년 때 청소년 직업학교에 가 용접 기술을 배웠어요. 용접공으로 취업했고 공장가서도 일 열심히 했지요. 남들 일당으로 1,700원 받을 때 나는 5,000원 받았으니까. 소모임 때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집으로 오라고 해서 밀가루 반죽하고 칼국수 기계를 사서 칼국수를 직접 해 먹던 생각이 납니다.

    그 때가 어렵긴 했지만 지금 젊은이들이 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니고 싶은 직장, 연애, 꿈이 있는데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없는 현실이잖아요.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거냐 한다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대충 원하거나 별로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마세요.”

    누군가를 상대로 투쟁을 해봤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이들은 노회찬 의원에게 물어볼 게 많다. 투쟁 선배에게 답답한 심정도 풀어놓고, 위로받고, 답을 얻어가고 싶어 한다. 부산에서 올라온 스물일곱, 스물여덟의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3명도 이날 함께 했다.

       
    ▲ 노회찬 의원이 KTX 여승무원의 고민에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제일 힘든 게 동지들이 떠나갈 때다. 같이 투쟁하다가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 씁쓸해요. 서로를 다독거리고 있지만 힘이 듭니다.” 38일째 농성 중이라는 그녀들은 머리를 못 감았다며 눌러쓴 모자를 매만진다.

    운동이라는 것의 어느 한 자락이나마 잠시라도  붙잡아 본 사람이라면 그네들의 고민이 낯설지 않다. 떠난 이든, 남은 이든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자리가 되기도 한다. 투쟁 선배가 들려준 답은 뭘까.

    “제일 마음 아픈게 이런 일들이지요. 편을 달리하는 사람들한테 한 대 더 얻어맞는 것은 별로 아프지 않은데 같이 한 사람이 떠나가는 것은 아프지요. 하지만 적진에 서서 칼끝을 동료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면 힘들어서 동료를 떠나는 거라면 넒은 마음으로 이해해줘야 한다고 봐요.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는 순간, 자기 스스로 와해되고 팀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싸움 하다보면 부상자도 나오고 휴가가 필요한 사람도 나오죠

    힘든 싸움에서는 부상당하는 사람도 있고 치료가 필요하고 휴가가 필요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 아닙니까. 전방이 있으면 후방도 있다. 내가 힘들 때 다시 친구와 돌아와 대신 해주겠지 생각하면 돼요. 춘향전에 ‘간다고 아주 가고 간들 또 못 볼 쏘냐’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틈이 벌어지면 나쁜 생각과 나쁜 힘이 들어옵니다. 또 동료가 돌아오면 어려울 때 간 것에 대해 묻지 말아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 표현하고 행동하면 될 일이죠.”

    절박함이 크기 때문일까. 스물여덟 KTX 여승무원의 고민이 이어진다. “노동자라고 생각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20대 대부분 직장인들이 그렇겠죠. 파업을 하면서 이 세상에서 임금 받는 모든 직장인은 노동자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솔직히 우리도 전에는 좋은 직장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여성 노동자들이 머리를 삭발하게 만들고, 만삭의 임산부 배를 발로 차고 이런 일들이 2005년에 일어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구나 느꼈죠. 하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정말 노동자의 현실이 어떤지 잘 모르고 있어요.”

       
    ▲ 대화 중간중간 노회찬 의원이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메모하고 있다.

    노회찬 ‘동지’는 운동의 첫 기억을 되살린다. “노동운동의 처음 시작이 스스로 노동자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정하면 세상이 달라보이고 그 전에 보이지 않은 세상이 보입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를 만들 때 공군에서 20년 동안 전투기를 몰았고 연봉 1억을 받던 이들도 회사와 부닥치면서 갈 데 없는 노동자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노조 창립선언문 첫 구절이 ‘이제 우리는 노동자임을 선언한다’였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젠데 노동자가 위치하고 있는 어려운 현실입니다.

    노동자·사용자 아니라 노경이라고 관계를 부정하고 있어요. 민주노동당 당명에 ‘노동’이 들어간 것은 과격하고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노동’을 감추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노동이 죄가 아니고 노동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욕먹어도 점거합니다

    비정규법안과 관련해 노회찬 의원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린다. 새벽 2시에 법사위를 점거해야 했던 민주노동당의 고뇌와 정부의 무책임함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나왔다.

    “민주노동당은 욕 듣더라도 점거합니다. 당장 국민이 정확히 이해 못하니까 박수 안 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내일만 보고 점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20년 후를 보고 점거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국민들께서 이해해 주실  겁니다.

    지금 법대로 가면 비정규직은 보호 받을 수 없습니다.  KTX 여승무원이 임금 10% 올려달라고 하면 올려줬을 겁니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것은 안 해주지요. 정부의 방침이 그렇습니다. KTX 문제는 노사나 이철 사장만의 일이 아닙니다. 국무총리실에서 개입했고 이제 청와대까지 개입하는 문제가 됐습니다.

    비정규직 늘리면서 양극화 해소한다는데 거짓말을 하면 안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를 어쩔 수 없다고 솔직히 선언을 하든지 비정규직을 좀 늘리겠으니 국민들에게 이민 가라, 보트타고 탈출하라고 말해야 합니다. 머릿속이 양극화 돼 있어서 그렇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사즉필생’입니다. 정부 당국이 이를 알아야 합니다.”

    노대통령 머릿속이 양극화돼서 그렇습니다

       
    ▲ "정자와 국회의원의 공통점"을 질문해 노회찬 의원을 순간 당혹케 한 오장원씨. 그는 국민들의정치불신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해법을 물었다.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 오장원씨는 “정자와 국회의원의 공통점을 아십니까”라고 질문해 국회의원 노회찬을 당황케 했다. 갑작스런 질문에 노회찬 의원은 “굉장히 치열하다는 겁니까?”라고 답한 뒤 금세 생각이 났다는 듯 “아! 인간이 될 확률이 매우 적다”를 외쳤다. 오장원씨는 “정치 전반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이라고 지적한 뒤 민주노동당의 해법을 물었다.

    인간이 될 확률이 100만분의 1보다 작다는 국회의원에 몸담은 노회찬 의원은 “오죽하면 이런 퀴즈가 나왔을까”하며 “원인은 국민들의 정치불신이고 해답은 민주노동당이 최소한 제1야당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첫출발입니다. 정치를 바꾸지 않고 다른 곳의 변화를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낡은 정치는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이 제1야당이라도 되면 정치는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절대 안 썩느냐고 묻는다면 모든 권력은 다 썩을 가능성 있다고 답하겠습니다. 오히려 더 엄격하게 스스로를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정당만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의회 정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도 영역의 활동과 기층 민중의 투쟁이 함께 연대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핵심입니다. 연대는 민주노동당의 철학입니다. 일시적 전술이 아니고 민주노동당의 전략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스웨덴을 넘어서는 사회를 꿈꿉니다

    은행에 다니는 이승덕씨는 “연대는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임금 받는다고 다 노동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이 다니는 은행의 최고경영자도 월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승덕씨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자본의 생산성도 인정하는 것”이라며 “민주노동당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게 뭔지"를 물었다.

    노회찬 의원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를 진짜 노동자로 분류했다. “사용자의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이다. 자영업, 중소기업인, 농민, 빈민 등 민중 개념으로 90%가 연대의 범위에 들어온다.

    “민주노동당은 100% 평등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주택, 교육, 의료, 복지 등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정책이 그런 겁니다. 스웨덴이 민주노동당의 1단계 이상향입니다. 스웨덴 수준으로 가는 것도 힘들겠지만, 스웨덴을 넘어서는 사회를 꿈꿉니다.

    스위스도 자본주의입니다. 하지만 스위스의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은 똑같습니다. 적게 주면 형사처벌감입니다. 그렇다고 스위스가 사회주의 국가인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인데도 하고 있어요. 비정규직으로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염려가 있기 때문이죠."

    노동자가 대접받는 사회가 민주노동당이 바라는 사회

    "노동 안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자영업자도 노동을 하고 농민도 노동을 합니다. 노동 안하는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예전에 구로공단 여성노동자들은 구로공단역에서 안 내렸어요. 공순이로 볼까봐 그런 겁니다. 그게 비극적인 일이죠. 노동자 없는 사회는 민주노동당의 이상이 아닙니다. 노동자가 대접받는 사회가 민주노동당이 바라는 사회입니다.”

       
    ▲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 노회찬 의원.

    마지막으로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의 낮은 지지율을 걱정해주는 참석자들에게 노회찬 의원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민주노동당 본색으로 할 겁니다.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선거 전략입니다. 득표만 더하기 위해 5년간 파업 안하겠다, 비정규직 포기하겠다 하면 표 줄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얻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얻는 표가 더 많은 표도 아닙니다. 정면돌파 정면승부입니다. 아직 노동자 일부는 민주노동당 지지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민주노동당 본색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침체를 종식시키고 내년 대선까지 치고 나가는 분수령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전통적으로 지방선거에 강해요. 징검다리 선거에 강하죠.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대선, 총선으로 이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징검다리 선거에 강해 민주노동당 본색 보여준다

    10시 30분이 넘어서고 있다. 7시 30분부터 시작해 3시간여의 짧은 만남은 할말을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한 참석자들에겐 아쉬움을 남겼다. 어떤 이는 발갛게 얼굴 가득 술기운이 오르기도 했다. 노회찬 의원은 청년의 당, 민주노동당을 위해 다음을 또 기약하며 “줄 수 있는 게 책 밖에 없다”고 참석자 모두에게 책 한 권씩을 선물했다.

    책 앞머리에는 노회찬 의원이 마음 한 쪽을 직접 써 담았다.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맙시다. – 노회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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