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 개헌 시안 발표
    노동권·평등권·선거제도 비례성 등 강조
    개헌, 제자리 걸음 상황에서 원내정당 중 처음 발표
        2018년 01월 29일 04: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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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이 노동권과 평등권을 대폭 강화하고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여 국회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 시안을 발표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공허한 구호만 반복되는 가운데, 원내정당 중 처음으로 정의당에서 구체적 시안을 공개한 것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8일 오후 2시 국회 정론관에서 ‘국민을 위한 개헌 시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 동시개헌이라는 국민과의 약속마저도 논쟁의 한복판에 휘말려 있는 상태이며, 개헌의 내용은 토론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의당은 모든 원내정당들이 2018년 지방선거 시 국민투표 실시를 통해 개헌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자는 뜻을 담아 오늘 ‘정의당 개헌 시안’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헌법 전문에 ‘촛불시민혁명’ 추가
    기본권 주체는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

    정의당이 이날 발표한 개헌안은 지난해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마련한 초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노동권‧평등권‧사회보장권‧경제민주화‧지방분권을 대폭 강화하고 저항권과 생명권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치분야에 있어선 거대정당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선 특정 입장을 담고 있지 않지만,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비례성의 강화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 도입을 강조했다.

    정의당 개헌안은 헌법 전문에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시민혁명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기회균등과 연대의 원리로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나아가고…(중략)…모든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변화 속에 우리와 미래세대의 자유와 안전과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고도 강조했다.

    개헌특위 자문위의 개헌 초안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 촛불시민혁명과 노동존중, 복지국가 등이 추가됐다. 또 초안의 ‘지속가능한 발전’ 대신 정의당 개헌안은 ‘지속가능한 변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이다’라는 3항을 신설했다. 기본권 주체는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그 주체를 확대했다.

    통일정책과 관련해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보다 넓은 의미인 ‘민주적 기본질서’를 명시하고, 통일정책 수립과 추진에 있어서의 합리성과 연속성을 위해 그 기본사항을 법률로 정할 것을 제안했다.

    노 원내대표는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정의 실현’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상으로 추가 제시했다”며 “또한 ‘모든 분야의 지속가능성’을 적시하여 미래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 아닌 노동자”

    정의당은 헌법 전문에 노동존중을 명시함에 따라 노동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노동권 강화의 첫걸음으로 현행의 ‘근로’, ‘근로자’ 대신 ‘노동’, ‘노동자’라는 호칭으로 모두 변경했다.

    또 적정임금과 함께 공정임금의 보장을 명시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했다. 노사대등결정 원칙 규정,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로부터의 보호 규정을 넣고, 최저임금에 대해선 ‘노동자 자신과 그 가족의 품위 있는 생활’의 보장을 명시해 최저임금이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논의되고 그 수준이 결정될 수 있도록 했다.

    노동3권과 관련, 현행 헌법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로, 자문위 초안은 ‘경제적·직업적 이익에 관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로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 2개 안에 대해 “이 경우 박근혜 퇴진 총파업,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정규직 노동자의 총파업 등이 불법파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단체협약의 이행’ 등을 위한 단체행동 등이 불법파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의당은 단체행동권의 목적에 대해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한다고 명시했다. 또 이익균점권과 노동자 사업운영 참가권 조항도 신설했다.

    평등권 조항엔 인종‧언어‧장애‧연령‧지역‧성적지향‧고용형태 등을 추가해 차별금지 사유를 확대했다. 특히 ‘성적지향’은 자문위 초안에도 포함돼있지 않았던 차별금지 사유로 이성애와 동성애를 가리지 않고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 역시 금지할 것을 명문화했다.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조항 신설…정주 외국인 기초생활 보장도 언급

    정의당 개헌안에 다소 논란이 있는 조항들도 과감하게 포함됐다.

    우선 이번 개헌안에서 신설된 생명권엔 ‘사형제 폐지’를 담았다. 정의당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본질적이고 근원이 되는 생명권을 명시하는 것과 사형제 폐지를 명문화하는 개헌특위 자문위 안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도 포함됐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 정의당은 “현재 법원에서도 하급심 판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 선고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위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저항권’ 조항도 신설됐다. 현행 헌법 전문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이라고 저항권에 대해 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정의당 개헌안엔 “모든 국민은 국가기관에 의한 헌법적 질서의 중대한 위반 및 그 불법적 폐지에 대하여 다른 구제수단이 불가능할 때에는 이에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다 직접적으로 명시했다.

    노 원내대표는 “지난 촛불시민혁명에서 보듯이 헌법적 질서를 무력화시키는 권력기관의 행태에 대해서는 국민의 저항이 필수”라며 “이에 따라 저항권을 명시하여 국가기관의 반헌법적, 불법적 행위에 대해 다른 구제수단이 불가능할 때에는 저항할 권리를 가짐을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사회보장권도 대폭 강화했다. 특히 “법률이 정한 범위의 정주 외국인들에 대하여 국가는 법률에서 정하는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의료를 포함한 기초생활 유지를 보장하여야 한다”며 “노령·장애·아동 등 소득 및 생활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예산과 그 밖에 사회보장 예산 순으로 이에 소요되는 예산을 다른 분야의 예산보다 우선편성하고, 국가와 모든 국민 및 정주 외국인은 부담능력에 따라 소요 재정에 대한 연대책임을 부담한다”고 명시했다.

    정의당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해서 그 기본권의 주체를 ‘모든 사람’으로 하되, 사회보장과 소득보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했다”며 “다만, 외국인에 대해서는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을 위한 기초생활을 제공하되 그 내용을 법률로써 정하도록 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도 확대해 집회·결사의 자유를 분리하고 ‘언론·출판의 자유’를 사상이나 의견을 외부로 표현하는 자유인 ‘표현의 자유’로 수정·확대했다.

    경제민주화 강화…권력구조 개편 대신 국회의 비례성 원칙 강조

    경제분야에 있어선 기존 경제민주화 조항이라 불리던 제119조 2항을 강화했다. 경제질서의 기본을 개인의 창의와 자유에서 모든 국민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보장으로 명문화하고, 이를 실현하는 기반을 만드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했다.

    노 원내대표는 “날이 갈수록 불공정과 불균등이 심화되고 있는 바,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경제질서가 ‘국민에게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것’임을 적시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의당은 거대양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권력구조 개편 대신 공천의 민주성 원칙과 정당 설립의 자유 확대, 국회의원 선거제도 비례성 강화를 부각했다.

    정의당 개헌안은 정당의 공천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모든 정당이 국회와 지방의회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도록 했다. 국회의원 정수 조정에 있어서도 기존 200명에서 300인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았다. 정의당은 “현행 의원정수 200인 이상 조항은 1980년 제8차 개헌부터 유지돼, 한국의 국회의원 1인이 대표하는 인구수는 약 17만명”이라며 “이로 인해 국민의 대표성이 약화되고 국회의원 1인의 권력이 강화되어 국회의 민주성이 약화됐다”고 의원정수 확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비례성의 강화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 도입과 관련해서도 자유선거의 원칙을 명문화하고,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헌법에 규정했다.

    노 원내대표는 “정의당 개헌안에는 정부형태 변경을 따로 제안하지 않았다. 이는 정부형태가 어떻게 변화하든 국민의 기본권 및 지방분권의 확대 등 사회의 실제 변화가 우선이라는 점에 방점을 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형태 변화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여 구성되는 것이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피력한 것”이라며 “특히 국회를 구성하는데 있어 비례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 상태에서 어떠한 정부형태 변화도 무의미함을 천명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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