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직 전환 둘러싼
    청년노동자들의 두 가지 생각의 대화
    [노동자 내전·갈등③]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전환'
        2018년 01월 08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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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과정”

    공공부문 비정규직(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사용자인 정부가 정하면 되는 문제일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역차별이라고 규정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반면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이들은 오랜 사회적 문제가 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부문에서 먼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정규직 전환 문제는 노노 갈등으로 비화됐다.

    어떤 자리에 가도 이 문제는 이슈였다. 나 또한 “같은 젊은 사람들로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대부분 나이가 드신 분들)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을 정규직 이기주의라며 그저 비난을 늘어놓는 글과 말들을 보면 기분이 상한다. 비판의 여지가 없진 않다고 보지만 지금의 청년들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환기해 본다면 그렇게 간편하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더 중요한 건 그런 비난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서울교통공사 노사는 정규직 전환에 대해 지난해 마지막 날 극적 타결을 이뤄냈다. 인천공항공사도 1만명 완전 직고용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이견을 좁혀 30%의 직고용, 나머지 70%는 자회사 전환 방식으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두 공기업의 합의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수많은 공공부문에서 정부 가이드라인을 두고 각자의 해석으로 싸울 것이고, 또 같은 노동자들끼리 각진 말들로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들도 벌어질 것이다.

    평행선만 달리는, 답답한 논쟁이라도 ‘노동자와 노동자’는 서로를 설득해야 한다.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싸우더라도 대화를 포기 하지 않는 것만이 IMF 이후로 20년 동안 축적된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디앙>은 정규직 전환 논란을 둘러싸고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대담을 추진했다. 양측으로 나눠 한 쪽은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서울교통공사 합리적 정규직 전환을 위한 연대모임(연대모임)’ 소속의 한국노총 메트로노동조합 청년국장 박홍규 씨(32), 메트로노조 조합원 오경진 씨(30)가,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측으론 민주노총 서울지하철노조 청년부장 전양규 씨(33)가 참석했다. 세 사람 모두 공개채용을 통해 2015년 입사했으며, 박홍규·오경진 씨는 역무, 전양규 씨는 차량정비 일을 하고 있다.

    대담은 노사가 합의를 이루기 직전 지난해 12월 29일 충정로 역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됐다. 사회는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이, 정리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대담자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노조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개인 자격의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유하라>


    왼쪽부터 전양규 정종권 오경진 박홍규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이라는 계급의 벽, 차이일까 차별일까

    정규직 전환 찬반과 별개로 대담 참석자 모두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엔 뜻을 같이 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반대 측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의 간극에 대해선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고 규정했다.

    정종권 :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인천공항에 방문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고용관행을 공공부문부터 바꿔서 민간까지 확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작업이 시작됐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과 그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보는지 먼저 듣고 싶다.

    박홍규 :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양산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로 인해 문제가 되는 부분도 많다. 대표적인 게 고용 불안정이다. 기간제, 계약직,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하는 계약직은 일을 하다가 계약이 해지되면 가정을 꾸릴 수 없으니까 고용이 안정돼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정규직화(무기계약직 지칭)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우도 정규직보다 굉장히 열악한 경우가 있다. 정규직과 너무 차이가 나면 사내에서 갈등 있을 수 있으니, 어느 정도 균형 맞춰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한다.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중점을 두는 정규직화(무기계약직 포함)라면 삶을 꾸리는 데에 훨씬 더 나은 여건 가질 수 있고, 또 일반 공채 출신이나 정규직의 반발을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전양규 : 제가 일하는 차량 부문의 공채 경쟁률은 비교적 낮았다. (역무와 차량이) 같은 경쟁률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토론할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가 다르게 보는 부분이 뭐냐면, 비정규직 보호법에 의하면 2년 이상 같은 업종에서 일한 사람을 정규직으로 규정하고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 노동 현실이다.

    많은 분들이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이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저는 그 부분에 대해 이견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특수한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비정규직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계급을 나누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헌법 위에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나누는 게 헌법을 초월하는 것이 아닌지 싶다.

    정종권 : 무기계약직 얘기가 나왔으니 말해보자. 연대모임에서도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라고 규정한다. 반대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중규직’이고 또 다른 의미의 비정규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을 듣고 싶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 동일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비정규 문제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고용형태라고 보고 계시나?

    오경진 :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도,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간주했고 우리 회사도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이라고 봐서 정규직 전환이 애매했다. 여기에서 서울시에가 한발 더 나아가서 무기계약직까지 정규직으로 완전히 전환 해주겠다고 한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거다.

    기본적으로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임금이 많이 차이 나지 않는다. 저희가 그렇게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그쪽이 그렇게 적게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선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엔 차별과 차이를 구분할 때 ‘같은 건 같게, 다른 건 다르게’의 기본 원칙을 내세운다. 들어온 방식이 달랐고 입사지원 조건이 달랐기 때문에 다른 처우와 위치에 있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양규 : 아까 말했듯이 사용자, 노동자, 그리고 그사이에 어떤 계급이든 계급의 격차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분명하게 인식하듯이 현실에서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계급의 차이가 있어 헌법의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같은 고용형태가 97년 이전에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회가 점차 바뀌어가면서 이런 비정규직 고용형태들이 다수 나타나게 된 것인데, 이런 차별적인 고용형태가 과연, 올바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전환 과정에서도 일정한 경과 규정과 조건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차별적 고용형태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수능, 대입, 시험, 졸업…우리 삶 그 자체”

    정종권 : “결과의 평등이 시대적 흐름이던 시기는 지났다” 연대모임이 붙인 정규직 전환 반대 포스터의 한 구절이다. 결과의 평등이 시대적 흐름이었던 시기가 있었는지도 궁금하지만, 정규직 전환을 ‘결과의 평등’으로 정의하는 것 같은데?

    오경진 : 우리는 결과의 평등에 반대하고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과정 그 자체가 그렇다. 수능을 쳐서 대학에 들어가고 대학에 들어가서 다시 사회에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었다. 저도 그렇고 취업준비생들 대부분 금수저가 아니다. 때문에 공정한 기회를 열어주는 것은 밖에 있는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다수의 청년들에게 중요한 일이고, 먼저 입사한 선배로서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기회의 평등이 없었다면 우리도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을 더 강조하는 거다.

    박홍규 : 2018년 신입사원들 평균 경쟁률이 78대1이었다. 그렇게 가혹한 경쟁을 뚫고 들어왔는데,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다가 바로 정규직이 되면 기존 정규직 입장에선 ‘나는 왜 그 과정을 거쳐서 들어왔나’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게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거 같다.

    전양규 : 충분히 동의하는데 약간 다른 의견을 내면,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일한 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용접 같은 경우 학문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 기술을 습득해서 전문가가 되는 방향도 분명이 있는데, 우리 사회엔 (공채, 대입 이런 것 외에) 다른 방향이 너무나 막혀 있다. 물론, 그런 분들을 선발하는 과정은 공정하게, 투명하게 해야겠지만, 그런 길이 있도록, 열어주는 부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적 박탈감, 자괴감 든다’ VS ‘선배들이 끝까지 사수한 덕에 정규직 입사’

    반대 측은 자신들이 겪은 수준의 채용 절차 없이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찬성 측은 지금 당장의 상대적 박탈감은 있겠지만 향후 미래세대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박홍규 :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계약직 간에 계급적인 차이가 있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 무기계약직이 정규직화가 됐을 때 정규직이 받던 처우와 동일하게 받아야만 한다고 보는 것인가. 엄연히 입사경로가 다른데 기존 정규직과 (정규직으로 전환될) 무기계약직의 호봉표를 똑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전양규 :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우리나 후배들이 주장하는 형평성도 중요하지만, 무기계약직 중엔 자회사 경력으로 10년 근무한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의 경력은 당연히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호봉테이블을 하나로 묶어놓으면 우리가 사측에 주장하거나, 대정부를 상대해서 협상을 펼칠 때 훨씬 더 수월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편의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노동조합은 평등과 연대를 기본적인 가치관으로 둔다. 두 분이 경쟁을 이기고 들어온 것에 대한 보상을 말씀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가치관과 충돌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오경진 :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이 되는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가점제 등 합격률을 높이는 방법들을 통해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런 정도의 절차도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공채생들에게 상대적으로 엄청난 박탈감을 준다. 2018년 신입직원들만 해도 이런 상황에 대해 ‘자괴감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

    전양규 : 앞으로 경쟁을 뚫고 입사해야 하는 분들의 입장에선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제 주장이 자신들의 길을 막는 거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정비창 페인트칠 업무를 서울지하철 내의 다른 기지는 모두 외주업체가 하고 있다. 지금 제가 있는 차량기지에서만 정규직이 한다. 15년 전 얘기지만 당시 선배들이 그 자리를 정규직 일자리로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그 자리에 정규직으로 올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종권 : 박홍규 씨는 무기계약직 등 현재 비정규직의 처우는 개선해야 하지만 정규직 전환이 되더라도 직급 등 이후의 길은 다르게 갔으면 하는 것, 즉 들어온 경로가 다르니까 차별은 좁혀도 경로는 다르게 가야 한다는 것이고 전양규 씨는 기존 정규직과 전환되는 정규직이 처음엔 일정하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경과 과정은 있겠지만 결국엔 하나의 길로 모여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무기계약직 업무는 책임성이 적다”
    “정규직인 내가 하는 업무, 다른 기지에선 용역이…”

    박홍규 :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무기계약직이 수행하는 업무 자체가 공채 정규직 업무의 보조적인 측면이 있다. 안전 관련 무기계약직의 경우 수행 업무에 책임성이 적은 경우도 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을 하는 건 향후 문제될 소지가 있다.

    전양규 : 두 분 모두 역무 소속인데, 다른 지역의 지하철 상황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 대전, 광주, 대구 같은 곳은 역무 직종도 전부 용역이다. 저는 차량정비 정규직인데 이 업무가 대한민국에서 서울지하철만 정규직이다. 저가 하는 똑같은 업무를 도시철도에선 외주 인력이 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서울지하철에선 PSD(스크린도어) 수리를 전부 다 용역이 하고 있지만, 도시철도의 경우 70% 정도가 정규직이 하고 있다. 그러한 부분들을 보면 과연, 무기계약직이 보조적인 업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 있다고 본다.

    책임성에 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용역, 무기계약직이라서 책임성에 있어 한정적이다. 사고가 나도 용역회사 직원이면 책임질 이유가 없다. 반면 정규직이라면 당연히 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그 책임도 개인에게만 지울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박홍규 : 무기계약직이기 때문에 책임을 덜 진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면 정규직화 전에 책임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한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무조건 1월 1일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건 굉장히 문제가 있다는 거다. (서울교통공사의 최종 노사합의에서는 3월 1일 전환으로 결정됐다.-편집자)

    오경진 : 서울지하철-도시철도가 통합되기 전엔 다른 회사였기 때문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아마 다른 회사도 다 그럴 것이다. 제가 PSD 고장 신고를 해서 오시는 분들 보면, 전문 자격증이나 지식 없는 분들 정말 많다. 중요한 업무라고 해서 그 일을 하는 무기계약직이 다 자격을 갖췄다고 말하긴 힘들다는 뜻이다. 자격증을 검증 받은 것도 아니고 시험을 치고 들어온 것도 아니지 않나. 솔직히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다. 실력도 검증 안 된 사람들이 들어와서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분들이 중요한 업무를 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정종권 : 그건 무기계약직 또는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시민의 입장으로 봤을 때 최소한의 그런 안전성을 점검할 능력도 없는 사람은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이나 용역으로도 그 일을 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오경진 : 시민 안전을 중요시 한다면서 경쟁채용도 없이, 자격증 없는 분들까지 일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더 시민의 안전을 해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실험’
    “공공부문이 자선단체는 아냐” VS “공익성 추구하는 공공부문에서 해야”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번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자동화의 도입, 공공부문의 적자 구조 내에서의 인력 충원, 그에 따른 인건비 총액 인상으로 인해 자신들이 힘겹게 얻어낸 안정적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측은 기존 정규직의 희생 없이도 정규직 전환은 가능하며, 공공부문에서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때 가혹한 경쟁에 시달리는 99명에게 취업의 문턱을 낮춰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경진 : 공공부문 도로나 공항 등을 보더라도 이미 (고용) 포화상태다. 그래서 기존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줄고 있는 건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1~8호선에서 더 늘릴 게 아니고 수익을 창출할 다른 사업을 구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만 더 늘릴 게 아니라 다른 부분(민간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전양규 : 예를 들면 서울지하철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승무의 무인운전화다. 무인운전화가 되면 매번 2명씩(기관사, 차장) 열차에 타던 직원들이 필요 없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돌발 상황이나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서 열차에 승무직원이 열차에 타는 것은 승객의 안전이나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필요하다. 자동화가 도입되더라도 안전을 위한 인력 충원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경진 : IMF 이후로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차별이 생겼다. 이렇게 오랫동안 쌓여온 문제를 단 몇 개월에 해결한다는 건 힘들다. 노조에선 그렇기 때문에 공공부문이 먼저 해야 한다고 하지만, 회사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우리가 앞설 필요가 있나?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 그 후에 공공부문이 따라가도 늦지 않다.

    전양규 : 오히려 공공부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민간기업은 이윤이 창출되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으니 정규직 전환을 할 동기가 약하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험적으로도 보이는 이번 (정규직 전환) 시도는 이윤보단 공익성, 시민 혹은 국민들의 안전을 우선하는 공공부문에서 분명히 한 번 해볼 여지가 있다.

    박홍규 : 무기계약직이 수행하는 업무가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중요하다면 그 자리를 정규직화해야지, 그 사람을 그대로 정규직화하는 건 옳지 않다.

    정종권 : 양 측에 공격적 질문을 좀 하겠다. 연대모임 자료를 봤는데, 자료의 전체 흐름을 보니까 기간제, 계약직, 간접고용 이런 비정규직들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고 고용도 안정돼야 하니까 무기계약직까지 가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안 된다는 거다. 공채 정규직의 울타리는 넘어설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채라는 경로를 거친 정규직과 나머지 직종 사이에 큰 강을 두고 있다는 느낌. 기간제가 무기계약직 되는 건 찬성하지만 정규직 전환은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인지 묻고 싶다. 속된 말로, 공채 출신 정규직은 철밥통인가라는 느낌도 받았다.

    또 전홍규 부장에 대해서는 아까 정규직 무기직 비정규직 등 차별적 계급이 없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공자님 말씀처럼 들린다. 지하철 노동자 사이에서도 직종과 노동조건, 급여 등에서 다 나뉘어져 있는데 노조라고 하면 당위적인 게 아니라 이질적인 구성원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가야 하는데 로드맵 없이 너무 당위적으로만 말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정규 없애는 것에 반대할 사람 없지만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없으면 교과서적인 얘기밖에 안 된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전양규 : 당위적인 주장이 아니라, 어떤 로드맵을 가지고 정규직 전환을 추진해야 할 것인지를 질문하셨다. 우선 서울지하철노조와 도시철도노조가 이야기하는 게 기존 정규직의 희생을 통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안 된다는 것이고 서울시도 이에 동의하고 예산을 어느 정도 지원한다고 한 상태이다. 예산 내에서 우리가 임금테이블을 만들 수 있고 그러한 방법으로 정규직의 희생 없이 정규직 전환은 가능하다고 본다. 또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과의 차이 극복도 무작정 주장하는 게 일정한 경과, 규정과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추진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는 현실적 입장을 갖고 있다.

    오경진 : 공채 정규직도 더 이상 철밥통이 아니다. 물론 처음 입사했을 때 그런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하철의 만연한 적자 구조나, 지하철이 더 확대될 일을 없는 상황에서 회사는 자동화를 도입하고 역무인원을 줄이려는 시도를 한다. 이런 흐름이 있는 와중에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까지 해서 인원이 늘어나면 기존 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 압박이 들어올 수 있다. 더군다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또래라서 끝까지 같이 가게 될 텐데 서울시에서 예산 확정 받더라도 생애주기에 따른 임금을 다 계산하기도 힘들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작은 변화 때문에 전체적인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제일 큰 문제는 회사가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거다. 최근에 초미세먼지 많은 날 지하철 무료로 타게 해주기로 했는데, 서울시가 관련 예산을 주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우리 회사의 적자로 남는다. (서울시가) 이런 식의 선심성 정책만 펼치는데, 정규직 전환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 실패하게 되면 소위 말해 우리는 팽 당하는 것 아닌가 이런 우려도 있고.

    (구조조정 압박이 오면) ‘파업하면 된다’고 보는 입장인지 모르겠지만 옛날 노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 입장은 ‘파업 참여 안 하겠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이런 얘기 많이 한다. ‘그 때가서 문제 생기면 파업하지’ 이런 식의 접근도 안 된다고 보고.

    공채시험은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 제도일까?

    정종권 : 공채 이야기 좀 해보자. 어찌됐든 양측 모두 오랜 사회적 이슈인 비정규직 양산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공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제를 시험이라는 절차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제도로 너무 공채만을 강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오경진 : 지금 시대적 흐름은 공개채용이다. 일부 노동계에선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평등’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하는데 요즘 기사들 댓글 보면 문재인 정부 정책들에 대해 ‘대한민국 5년만 있다가 없어지는 거냐’, ‘5년 후 뒷감당 어떻게 할 거냐’는 시각도 많다.

    전양규 : 투명한 채용 방식이 필요하다는 데엔 동의한다. 하지만 그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 방식이 무조건 필기시험 방식의 공채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저 같은 경우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역학을 위주로 배웠고, 전공시험 역시 전부 역학 위주로 나왔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역학을 써본 적이 없고, 부끄럽지만 오히려 저랑 함께 입사했던 기능인재(특성화고 출신)가 더 일을 잘한다. 이런 걸 보면 과연 필기시험이 적합한 채용방식인가 의구심이 든다.

    오경진 : (필기시험 내용이 업무와 무관한) 문제는 우리 회사뿐 아니라 어느 회사든 똑같을 거다. 그렇게 따지면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도장 찍는 게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한국의 교육현실 때문인 일을 지금 당장 해결하자고 하는 건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공무원, 공기업 준비하면서 생각한 건, 목표를 두고 준비하는 과정들이 마인드가 된다는 거다. (공채 준비로) 그 기업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만 필요하다면 실기시험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99명의 취준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종권 : 여기 모인 분들은 거의 100대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분들이다. 합격해서 취업한 1명의 이야기 말고, 합격 문턱을 넘지 못한 99명의 이야기를 해보자. 99명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와 노동조합이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보나. 그런 고민이 없으면 결국 99명이 아니라 합격한 1명의 지위와 처우에 대한 얘기밖에 안될 테니.

    박홍규 : 자리의 정규직화가 필요하다. 청년들이 선호할만한 일자리에 정규직이 많아진다면 취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그거만큼 좋은 건 없을 거다. ‘자리’의 정규직화가 필요한 거다. 그리고 자리의 정규직화가 됐을 때 그 자리에 들어오는 과정은 공정해야 하는 건 당연한 전제다.

    정종권 : 의견들은 조금 정리해보면, 첫째 채용되는 과정의 공정성, 투명성 또는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거 같다. 둘째, 예를 들어 지하철 100개 일자리에 70개 비정규이고 30개 정규직이라고 치자. 이 정규직 일자리 30개 때문에 100대 1의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그런데 30개가 아니라 100개의 일자리 전체를 정규직으로 만들면 취준생에게도 좋은 거 아닌가. 셋째 일자리 창출을 공공부문으로 한정하는 게 아니라 민간 부분으로 확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공공부문 정책이 정치인들의 선심성 정책이 되어 정권이 바뀌면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이 왔다 갔다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충 이런 점에서는 이견이 좁혀지는 거 같다.

    전양규 : 동의한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현재 근무형태가 4조 2교대이지만, 예전에 선배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3조 2교대였던 적도 있다. 결국엔 다시 바로잡아서 4조 2교대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일자리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엔 예산, 정원의 문제가 수반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가만히 지금 상태를 유지한다고 했을 때 일자리가 지켜질 수 있는 보장이 있느냐고 한다면 그것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동화는 계속 들어오고 있고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자동화를 막을 순 없지만 인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조합원들을 함께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노조의 역할이다.

    박홍규 : 모두가 정규직화가 돼서 단합한다면 일자리 줄이는 것에 대응하는 힘을 모을 수 있다는 뜻인가.

    전양규 : 그렇다. 지난 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퇴출제 파업 때를 떠올려 보면, 가령 성과연봉제와 상관이 없는 식당에서 일하는 선배 노동자들(무기계약직)도 저희 파업에 동참해줬다.

    정종권 : 대충 오늘의 대담은 이 정도에서 정리를 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하는 걸로 정리하자.

    오경진 : 너무 단기간에 끝내려고 하는 모습이 아쉽다. IMF 이후로 비정규직이 확산돼왔고 차별 문제도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를 단 몇 개월 만에 해결한다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시간적으로 보더라도 공공부문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 조금 더 고민하고 공론화하고, 돌다리도 건너보고 건너는 식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시기가 너무 빠르게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나중에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든다.

    박홍규 : 같은 의견이다. 전환 시간을 정해놓은 것 때문에 논란이 더 커진 것 같다. 전환을 위해선 노사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이사회 의결, 시의회 승인, 행안부 승인 등 그런 과정 생각하면 실제 논의 기간은 굉장히 짧았다. 노조에선 오랫동안 준비해왔다고 말하지만 실제 직원들이 느끼기엔 굉장히 급하게 결과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서 과정을 만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급하게 하는 건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양규 : 서울지하철 노조를 하면서 자체적으로 토론회를 했었다. 역무지부의 경우 4번 토론회 했는데 역무지부가 다른 지부보다 가장 큰 쟁점이 붙었다. 직능도 1~2번 정도 토론했고 노조 전체토론회도 두어 번 정도 했다. 하지만 토론이 충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안타까운 부분은 그런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양 의견이 좁혀지는 접점 봤다면 좋았을 건데, 양측에서도 무조건적인 입장이 분명히 있어서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끝>

    작년 12월 31일 서울교통공사 노사합의서 일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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