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 정책의 방패막이 ‘비영리’
    장애인활동지원기관 통장에 쌓인 600억의 진실은?
        2017년 12월 27일 03: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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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노동부가 귀띔해 준 팁이었다. 2015년 장애인활동지원기관들은 노동부의 특별감사를 받았다. 심상정 의원이 사회복지기관 취업규칙에 노동인권 침해와 근기법 위반 조항이 다수 발견되었다고 지적하였고, 노동부는 이 지적을 받아 특별감사에 돌입했다. 50여 개의 활동지원기관이 감사를 받았고 거의 모든 기관이 노동관계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활동지원기관 연합체들이 심상정 의원을 찾아가 항의를 하고, 현실성 없는 단가로 제공기관을 범법자로 전락시키는 정부를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심 의원은 감사를 보류하라고 요청했다. 기관 불법 운영에는 정부가 수가를 너무 낮게 책정하는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노동부도 난감해졌다. 임금체불액을 대충 확정하고 서둘러 상황을 마무리하면서 노동부는 이 상황을 덮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말을 흘렸다. 노동자에게 개별적으로 체불임금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받으면 법을 피해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2015년 말 노무사 A씨는 문서를 하나 만들어서 활동지원기관들을 돌았다고 한다.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특례, 휴일대체제도, 연차휴가대체 등에 대한 합의를 포함하고 있는 이 문서의 핵심은 체불임금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에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합의하는 것이었다. 노무사는 이 합의서만 있으면 노동자와 체불임금으로 인한 웬만한 분쟁은 피해갈 수 있다고 약을 팔았던 것 같다. 노동부가 했던 말도 있고 해서 일부 기관들은 이 말을 믿고 노동자들에게 합의서를 받았다.

    활보노조의 보건복지부 앞 기자회견 자료사진(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얼마전 세상을 떠난 배정학 씨)

    노동자의 합의를 무색하게 만들었던 최저 미만의 임금 수준

    노동부도, 노무사 A씨도 놓쳤던 것은 활동지원사(활동보조인)들의 임금이 근로기준법 최저기준에 미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016년 활동지원사 대부분의 시급은 6800원 혹은 6840원이었다. 기본급 6030원, 법정제수당 770원. 이것이 거의 모든 활동지원사의 근로계약서에 적힌 임금조항이었다. 주휴수당을 포함하여 시급을 재계산하면 5670원. 조용히 있으면 그냥 넘어갈 일을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이다.

    활보노조(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는 합의서가 무효임을 증명하기 위해 부산에 있는 복지관 하나를 고발했다. 근로감독관이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복지관은 2억7천만 원이 넘는 체불임금을 털어주고 사업을 반납했다. 그러나 플라시보(placebo 심리효과를 얻기 위한 것으로 치료에는 도움이 안 되는 가짜 약제)도 치료의 한 영역인지라 심리적 안정감을 원하는 기관들은 이 합의서를 아직도 받고 있고 이로 인한 갈등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의정부에 있는 B기관은 작년 6월부터 노동자들에게 확약서라고 하는 걸 받았는데, 그 내용이 위 부산의 것과 대동소이하다. 활동지원사들이 월말에 제공기록지(근무일지의 일종)를 제출하러 가면 무슨 종이를 내밀고 읽을 틈조차 없이 사인만 받고 회수해갔다. 노안이 온 사람들은 글자가 하도 작아서 읽기도 힘들었다.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면 임금을 받았다는 걸 확인하는 거라고 말했다.

    올 7월 의정부에 활보노조 지회가 출범을 했다. 조합원 중에 B기관 소속 노동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지회 출범이 계기가 되었던지 굴욕적이고 불법적인 사측의 요구를 거부했고 이때부터 이들을 향한 B기관의 횡포가 시작되었다.

    B기관 대표 C씨는 지역 내에서 자칭 영향력이 크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사회복지 관련 여러 사업을 운영하고 교회 목사라는 직업을 겸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C씨는 활보노조 위원장이 활동하는 장애인단체와 지회장의 이용자가 활동하는 단체의 후원을 끊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위원장 등에게 전화를 해서 “평생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협박을 했다. 이런 방법이 먹히지 않자 노조와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선생님들의 뜻을 존중하며” 그 존중을 위해 B기관에서는 60시간 이상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말라고 문자로 통보하고 60시간이 되면 단말기(활동지원서비스 결제수단)를 정지시켰다. 의정부시에서 추가로 제공하는 서비스 시간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노조를 지지하는 이용자들에게 활동지원사를 바꾸라고 종용하거나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선전물을 돌리고 1인 시위를 하는데 부목사라는 사람이 나와서 경찰을 부르고 여기는 교회 땅이니 나가라고 했다. 곧 연말이 되는데 아마 조합원들은 모두 계약해지 통보를 받게 될 것 같다.

    노동부가 2년 전에 준, 불법하게 운영하고도 처벌을 피해가는 팁 때문에 이런 난리가 난 것이다.

    활동지원사들은 노동부보다는 복지부와 지자체에 익숙하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장애인활동지원법에 근거해 해결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B기관 활동지원사와 이용자들은 의정부시청을 먼저 찾아갔다. 시는 이 문제는 기관운영에 관한 문제이니 개입할 수 없다고 답하고 노동부에 가라고 했다. 복지부도 똑같은 말을 했다. 의정부시 활동지원 담당자는 한 술 더 떠서 “을이 갑을 어떻게 이겨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고 충고를 했다. 노조는 담당부서를 통해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시장 면담을 요구하였으나 서류는 이 부서 저 부서를 떠돌다가 원래 부서로 돌아갔고 똑같은 답이 왔다. 그게 절차라고 했다.

    활동지원사들은 처음에는 정부가 당연히 법대로 처리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애인활동지원법에는 제공기관이 이용자의 서비스 요청을 거부하면 지자체가 자격을 정지시키거나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청와대 국민신문고, 복지부, 지자체 어디에서도 노동자들의 호소를 들어주는 곳이 없는 현실에 부딪혔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무법천지인 줄은 몰랐어요.” 활동지원사 한 분은 복지부 직원 앞에서 이렇게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지만 영혼 없는 얼굴을 마주하다 돌아서야 했다. 이들은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극한직업을 체험하고 있다.

    비영리단체와 영리단체는 정말로 다른가?

    이 일이 벌어진 곳은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활동지원기관이다.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은 비영리단체만 신청이 가능하며 지자체가 지정을 한다. 예외는 사회적기업 정도다. 신고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영리기관 난립으로 문제가 많은 노인요양 분야에 비해 장애인활동지원은 영리기관 진입을 막기 때문에 문제가 적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전면개정공대위는 신고제를 허가제로 변경하고 수가에서 임금비율을 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운영능력도 없이 돈만 보고 달려드는 요양기관들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활동지원기관들이 일정한 규모에 이르면 운영비가 덜 들어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영리건 비영리건 규모가 크건 작건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정선에 있는 한 복지관은 이용자와 활동지원사가 각각 10여 명 남짓하다. 2015~6년 활보노조가 활동지원기관에 대해서 실태조사를 했을 때 이곳은 사업을 통해 들어오는 돈을 활동지원사 임금과 법정수당, 교통비 등으로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규모가 크거나 비영리기관이라고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사업주의 운영철학이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의 차이를 낳을 뿐.

    비영리기관 통장잔고 핑계로 정부는 수가인상을 막고,
    기관들은 낮은 수가를 핑계로 불법을 정당화 한다

    수가 이야기만 나오면 기관들이 하는 소리는 늘 똑같다. 남는 게 없다, 수가가 낮아서 예비범죄자가 되고 있다. 회계에 대해서 하도 다른 말들이 오고가니까 복지부는 기관 모두 회계자료를 복지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보통은 지자체가 매년 정기적으로 회계와 운영을 감사하고 복지부는 개입하지 않는다.) 확인 결과 2016년 말 활동지원기관 통장에 쌓인 잔고가 600억에 달했다. 100여개 기관은 완강하게 자료 제출을 거부했는데 이들은 아마도 남긴 게 많을 것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돈이 이렇게 남는데 모자란다고 하는 근거가 뭐냐고, 근거를 가져오라고 복지부를 닦달했다.

    (600억은 전체 900여개의 활동지원기관 중 자료제출을 한 800여개 기관의 잔고 총합이다. 이 잔액은 별도의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없고, 활동지원사 처우개선 등에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게 복지부 지침이다. 하지만 지침은 문서로만 있을 뿐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는 게 활보노조 측의 의견이다 -편집자)

    이 600억에 대해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노조가 묻자 복지부는 이 돈은 보조금이 아니라서 자신들에게는 처분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활동지원 지침에 깨알같이 박혀있는 인력관리와 처우개선의 내용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냐고 물었지만 지침은 법이 아니라고 했다. 덤 앤 더머 같은 질문과 답이 오고가는 동안 노동자들은 가슴을 치며 복지부를 떠나야 했다.

    이렇게 억지스런 장면이 반복되는 동안 국회와 정부는 내년 수가를 올해와 똑같은 상황으로 만들었다. 2018년 수가 10,760원의 75%를 임금으로 지급할 경우, 시급은 6725원이다. 최저임금보다 805원이 적다. 올해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극한 상황은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최저임금을 지급하기에도 부족한 수가를 가지고 통장에 잔고까지 남기는 마법에는 이면이 있다. 노동자들에게 체불임금 포기각서를 받는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수원은 활동지원기관들이 해마다 모여서 협의를 하는데 이 자리에는 공무원도 참여한다. 수원 활동지원사들은 결제수단인 단말기를 여러 개 들고 다닌다. 하나의 기관에서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하루에도 두 대씩 단말기를 바꿔가며 결제를 한다. 연장수당 발생을 애초에 막은 것이다. 실수로 한 기관에서 8시간을 넘겨서 결제하면 삭제 당한다.

    활동지원사들은 여러 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데(이것을 중복등록이라고 한다) 이것의 장점(?) 중 하나는 60시간 미만 결제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기관은 퇴직금과 사회보험료 지출이 없기 때문에 과외소득을 얻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이용자와 매칭이 끊어지면 바로 사직서를 쓰도록 하는 곳도 많다. 사회보험료 (사측)부담을 줄이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는데 계약이 1년 미만인 경우는 퇴직금이 회사로 귀속되는 효과까지 겹쳐서 이익이 더 늘어난다. 시간당 10분씩을 휴게시간으로 빼는 곳도 있다.

    낮은 수가 때문에 기관들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난리를 치지만 오히려 이런 여러 방식을 이용하여 기관들은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노동자들이 체불임금으로 고발하면 범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앓는 소리를 하지만,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 노동자는 적고 편법을 써도 처벌은 쉽지 않다. 정부는 기관 운영이 어렵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체 하는데 그 이유는 관리감독을 하지 못하는(사실은 안 하는) 핑계로 삼기 좋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짜고 치는 고스톱 되겠다.

    사업주 개인의 돈주머니에 쌓이는 현금만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이 비영리와 영리를 가르는 것이다. 의정부의 C씨가 정부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는 사업은 여러 가지다. 교회 마당에 걸려 있는 간판만 9개다. 그는 여기서 얻는 이익의 일부를 (아주 조금) 지역단체들에 후원한다. (돈은 노동자가 벌고 명예는 ‘목사님’이 가져간다.) 이 ‘목사님’이 뿌려대는 돈은 공무원을 움직이고 단체에 압력을 가하는 수단이 된다. 이것이 권력이고 이익이다.

    노동자의 눈물로 버티는 현장, 비영리단체는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2017년 사회서비스 분야의 가장 핫한 이슈는 사회서비스공단이다. 사회서비스공단은 시장화 전략의 실패를 정부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공적 제도 도입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논의단계부터 영리와 비영리를 막론하고 민간기관의 저항에 부딪힌 정부는, 공단을 추진하더라도 민간기관에는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야 했다. 그것마저 이제는 진흥원이라는 민간 지원 성격으로 후퇴하고 있다.

    최근 들리는 이야기는 사회적 협동조합 중에 공단을 위탁해서 운영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서비스 사업기관 중에 그나마 노동자의 처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이렇게 나서는 것은 반칙이다.

    노동자들이 정부 직접고용·직접운영을 주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회서비스는 국가가 인간의 생존과 인권을 책임지는 사회로 전환을 하겠다는 의미다. 사회서비스 현장에서 인권은 사라지고 이용쿠폰만 남은 것은 정부가 사회복지를 늘 민간에 맡겨왔기 때문이다. 이것의 대안을 찾자는 것이 공단이라는 이름으로 외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공공성 확충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의가 꼭 좋은 쪽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비영리단체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의 수호자가 되고 있다. 정부가 터무니없는 예산을 책정해도 현장이 굴러가도록 방법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고, 정부가 맞아야 할 화살을 자신들의 몸으로 대신 맞으며 국가의 부담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들 비영리의 실체인 것이다. 지금 사회서비스 현장은 노동자들의 눈물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 이 눈물은 비영리단체들의 선의로는 닦을 수 없다.

    * ‘장애인활동지원사’라는 명칭에 대해 :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은 2017년 4월부터 활동보조인이라는 명칭을 활동지원사로 바꾸기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이며, 정부에 이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검토하고 있다. 이 캠페인을 접한 다수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활동지원사라는 명칭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소개
    활동보조인노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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