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페란토와 사회운동
    SAT대회, 아시아에서 사상 첫 개최
        2017년 07월 06일 07:5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새로운 대안사회 전망 찾아 한국 오는 전 세계 사회운동가들

    승자독식(勝者獨食)의 파괴적인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대안사회를 모색하기 위한 세계무민족성협회(SAT; Sennacieca Asocio Tutmonda, 이하 SAT) 대회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된다. 지난 100여 년간의 SAT 역사 동안,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것도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하나의 공통 언어로 인류의 평등한 소통과 평화의 증진을 주장하면서 폴란드 안과의사 자멘호프 박사가 1887년 에스페란토어를 공식 발표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과 내용으로 에스페란토어를 통한 인류의 우애와 평등한 협력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 왔다.

    특히 올해에는 세계에스페란토운동이 한국을 중심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제50차 세계에스페란토 교육자연맹 대회(ILEI: 2017년 7월 15~22일, 부산)와 제102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UK: 2017년 7월 22~29일, 서울 한국외대)가 열리게 되고, 마지막으로 SAT 대회가 김포 약암호텔(2017년 7월 29일~8월 5일)에서 개최된다.

    특히 다른 두 대회와 달리 SAT 대회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의 혼란과 그 혼란의 모든 결과를 민중이 떠안게 된 비인간적 현실에 직면해 프랑스의 노동운동가 란티(E. Lanti)의 주도 아래 인종과 민족을 초월해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이 되는 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SAT가 개최하는 대회다.

    유럽 중심성에서 벗어나 사회운동의 전 세계적 연대로

    그 동안 자본-반자본 운동의 중심이 유럽이었고 특히 에스페란토 운동 내부에서 진보적 좌파 활동가들 다수가 유럽에서 활동한 관계로 SAT 대회는 거의 유럽에서만 개최되었다.

    최근 한국의 젊은 사회운동가들이 에스페란토를 통한 국제연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90차 세계무민족성협회 대회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게 되었다. 한국의 역동적인 변화와 사회운동에 관심을 기울이던 유럽 및 다른 지역 좌파 사회운동가들의 지지와 동의에 힘입어 이번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된 것이다.

    이번 대회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다는 상징성에 걸맞은 다양한 강연과 토론들이 준비되어 있다. 디터 루크(스위스 활동가)의 “1917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 강연”, “한반도 두 국가 체제의 통일에 대한 대담회”, 호리 야스오(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그 이후”, 모레이라(프랑스)의 “인류학, 지정학 그리고 식민주의” 등의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그밖에도 미국, 루마니아, 그리스 등 다양한 나라의 활동가들이 토론과 강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중지성의 정원> 조정환 대표가 “2016 다중의 촛불혁명과 민주주의의 민주화”, IT 분야 김형근 활동가가 “구글 국가? – 진화하는 인공지능(AI)과 노동, 인권, 사회 체계의 변화”를 주제로 강연한다.

    왼쪽부터 디터 루크(스위스) 조정환(한국) 미야자와 나오토(일본)

    에스페란토,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인 언어?

    ‘이상주의적’ 또는 ‘비현실적’이라는 단어는 그나마 에스페란토에 덜 부정적인 사람들이 쓰는 단어다. 에스페란토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단지 몇몇 글에서 단편적으로 쓰인 글만을 읽고 ‘죽은 언어’ 또는 ‘중산층의 유희를 위한 언어’ 등으로 에스페란토를 폄훼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칭 ‘좌파’들도 에스페란토 운동에 부정적이었던 몇몇 좌파 이론가들의 발언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최소한의 이해에 대한 노력 없이 비난하기도 한다. 스스로는 언어의 평등권에 대한 인식조차 없이 영어, 프랑스어 등으로 쓰인 이론을 아무런 독창적 해석도 하지 않고 외워서 말하는 좌파 지식인들도 적지 않다.

    통역 없이 에스페란토(Esperanto)로 직접 소통하는 사회운동가들

    에스페란토 운동이 인류의 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그리고 유일한 운동은 결코 아니며 어떤 사람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등이 자본 증식과 강대국의 세계 침략 과정에서 지배적 언어가 된 사례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제국의 주류 언어 바깥에 위치한 다양한 소수 언어들, 다양한 식민지-피지배 소수민족의 언어와 소수자들의 언어, 그리고 그 속에 포함된 인류의 풍부한 문화적-사회적 자원과 지적 자원을 소멸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자신의 모국어를 제외하고는 다른 언어를 제대로 배워 볼 기회가 없었던 노동자 민중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 권력자나 지식인이 번역해 주는 통제된 소통이 아닌 직접적인 소통을 꿈꾸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에스페란토 운동이다. 에스페란토를 통한 사회운동이 갖는 실천적 의미는 평등한 언어 사용과 함께 자본과 국가 등 어떤 권력에도, 또는 그 권력의 언어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자기 스스로의 자기 지배를 이루는 것에 있다.

    제89차 SAT(독일 헤르츠베르그)대회 분과 토론회 2016

    제90차 SAT 대회,
    ‘오늘날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7박 8일간 김포에서 개최

    7월 29일부터 8월 5일까지 7박 8일간 김포 약암호텔에서 개최되는 제90차 SAT 대회는 전 세계 민중의 연대와 단결을 에스페란토를 통해 실천하는 지난 100여 년간의 노력을 확인하는 자리다. 전 세계 진보적 사회운동가들이 한국으로 몰려오는 이유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이 인류인의 이름 아래 하나로 만나자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제90차 SAT 대회의 주제인 “오늘날 전 세계의 민주주의”는 전 세계 사회운동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 탄핵을 이끈 한국의 촛불 혁명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90차 SAT 대회는 그밖에도 생태주의, 여성주의, 노동자 운동, 젠더 다양성, 양심의 자유, 공유 경제, 언어 평등권, 문화 상대주의, 아나키즘, 자율주의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다면 이번 대회에 참여를 권한다.

    비록 지금은 에스페란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대회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통역을 통해 전 세계 사회운동가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제90차 SAT 대회 홈페이지: http://sat90.org

    참가 문의: 파즈 paze23@gmail.com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