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나’는
    누나를 찾고 있습니다
    [그림책 이야기]『오늘은 5월 18일』(서진선 / 보림)
        2017년 05월 18일 01: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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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오늘은 5월 18일』의 표지는 얼핏 보면 짙고 두꺼운 액자 속에 끼워진 작고 오래된 사진 한 장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짙고 두꺼운 액자는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광장의 길바닥입니다. 작고 오래된 사진 속에는 편지가 놓여 있는 책상, 가방, 교복, 알 수 없는 상자 그리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앉은 꼬마가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림책 『오늘은 5월 18일』의 표지는 ‘짙고 두꺼운 액자 속에 끼워진 작고 오래된 사진’이 아니라 ‘광장 가운데 놓인, 한 어린이의 방’입니다. 돌아앉은 꼬마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더불어 꼬마가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에는 베게만 덩그러니 있는, 누군가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누구의 빈자리일까요?

    오늘은

    5월 18일 일요일

    나는 총이 갖고 싶다. 준택이는 생일 선물로 받은 총을 자랑했다. 엄마 아빠한테 총을 사 달라고 했지만 안 된다고 했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왔다. 누나가 총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무젓가락으로 총을 만드는 누나는 요술쟁이 같다. 우리 누나는 뭐든지 잘 만든다. 누나가 만든 종이비행기는 멀리 날아간다. 나는 누나가 참 좋다. – 본문 중에서

    주인공 ‘나’는 총을 갖고 싶은 어린이입니다. 진짜 장난감 총을 갖고 싶지만 엄마 아빠가 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무 속이 상한 ‘나’에게 누나가 나무젓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줍니다. 누나는 종이비행기도 만들어 줍니다. ‘나’는 누나가 참 좋습니다.

    그림을 보니 주인공 ‘나’의 집 마당입니다. 엄마는 빨래 통에 빨래판을 넣고 손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아빠는 닭이며 오리에게 사료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나무 아래 넓은 평상마루가 있습니다. 누나는 평상에 주저앉아 나무젓가락으로 총을 만들고 있습니다. 별이 네 개나 그려진 작은 상자를 머리에 쓴 주인공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누나에게 뽀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나가 교복을 입었습니다. 표지를 다시 펼쳐 봅니다. 작고 오래된 사진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벽에 교복이 걸려 있습니다. 바로 그 교복입니다.

    서부 소년 차돌이

    제가 어릴 때는 텔레비전에서 <서부 소년 차돌이>라는 만화 영화를 방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존 웨인이 보안관으로 나오는 서부영화를 좋아해서 그 만화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채널이라고 해야 KBS, MBC, TBC 세 가지뿐이었지만 채널 선택권은 언제나 아버지에게 있었으니까요.

    <서부 소년 차돌이>를 보며 저도 총이 갖고 싶었습니다. 놀라운 총 솜씨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차돌이가 부러웠습니다. 저에게 총만 있다면 왠지 차돌이보다 더 잘 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곧 저는 총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차돌이 대신 타잔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타잔은 줄타기 솜씨와 동물 친구들과 칼 하나로 총을 든 악당들을 물리쳤습니다. 타잔이야말로 저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저는 동네 꼬마들을 집으로 불러서 타잔 놀이를 했습니다. 타잔처럼 ‘아아아~’ 소리도 질러보고 방안을 뛰어다녔습니다. 서랍장 위에 올라갔다가 뛰어내리기도 하고 이불 위를 구르기도 했습니다. 정말 타잔이 된 것 같았습니다. 흥분한 저는 손에 든 하모니카를 타잔의 칼처럼 집어 던졌습니다.

    딱! 윗집 꼬마가 제가 던진 하모니카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꼬마는 울음을 터트렸고 깔고 앉은 이불 위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울음소리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달려왔고 저의 타잔 놀이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타잔은 더 이상 저의 영웅이 아니었고 칼도 갖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역사책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영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책에 나오는 영웅들은 사실 전쟁에서 이긴 살인자들입니다. 그런데 살인자들이 영웅이 된 까닭은 우리가 배우는 역사가 승자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진짜 영웅은 역사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정의를 말하고 인간의 양심을 믿었던 선량한 시민들은 그 잘난 영웅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존엄함을 모른다면, 타인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자기 욕망에만 미쳐 있다면, 무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면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살인자가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않고 회고록을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림책 『오늘은 5월 18일』는 평범하고 단란했던 어느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나’에게 나무젓가락 총과 종이비행기를 만들어주던 누나는 1980년 5월 21일에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나’는 누나를 찾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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