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진보정치 위한 디딤돌 놓자
    촛불이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 위해 진보정당에 힘을
        2017년 05월 01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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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편안한(?) 대통령 선거다. 온갖 역사적 패악질을 일삼던 수구꼴통 세력들이 당선권에서 저만치 멀어져 있으니 말이다. 물론 막판에 안철수로 단일화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본다. 오히려 저들의 지리멸렬, 이합집산의 한 모습을 드러내 보일 뿐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9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권영길은 김대중의 당선을 방해한다고 조합원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하여 당시 민주노총 조합원 42만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30만6,026표(1.2%)의 지지만 받았다. 2002년에도 반복되었다. 정몽준이 막판에 단일화를 깨는 바람에 노무현의 당선이 흔들렸다. 그러자 심지어 민주노동당 선거운동본부에 들어와 있던 일부가 자기당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었다. 결국 선거 막판에 표가 우수수 빠져 나갔고, 유시민이 우리를 비웃었었다. 100만표를 넘길 것으로 예상했던 권영길은 결국 95만7,148표(3.9%)에 그쳤다.

    그런 세월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 얼마나 행복한 선거인가? 만약 촛불이 없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만큼은 진보진영을 괴롭히는 사표(死票) 심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격세지감이고, 상전벽해다.

    한국노총식 정치의 승리?

    그럼에도 이 와중에서 우리는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줄 지어 보수정당에 줄을 서는 기이한 현상을 본다. 그것도 한때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했던 사람도, 심지어 민주노동당 대표를 했던 사람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당선 가능한 보수야당 후보’ 편에 당당하게 서고 있다. 그리곤 자기가 아니라 시대가 변했다고 한다. 대놓고 문재인과 안철수 선거운동본부에 이름을 대고 참가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 바로 한국노총이 태초부터 지금까지 해 왔던 방법이다. 그것을 비판하며 노동자 정치운동을 강조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그들과 같아져 버렸다. 싸우면서 적을 닮아간다고 했던가? 87년 이후 만들어진 ‘비판적 지지’라는 괴상한 단어의 조합은 이제 촛불의 틈을 비집고 ‘맹목적 지지’로 발전했다. 주체를 만들려는 노력보다는 민주당이나 국민의당에 정책협약 등의 이름을 달고, 노동현안의 해결을 촉구하는 행태도 부쩍 늘어났다. 문제는 한국노총식 정치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대신 그들의 사회적 지위만 바꾸어 놓는다는데 있다.

    촛불과 대선의 괴리

    촛불이 만든 대선 주제는 당연하게도 “적폐가 청산된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짧게는 지난 10년, 길게는 해방 이후 청산되지 않은 많은 부분을 쇄신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된 주요 원인은 물론 주체의 허약함이다. 지난 4월 18일 열린 「퇴진행동 적폐특위」는 “박근혜 국회 탄핵 이후 적페청산 의제를 전면화 하면서 사회대개혁 과제를 쟁점화 시킨 성과”가 있으나 “새누리당 분열 이후 여소야대 국회가 되고, 광장의 요구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촛불투쟁을 이후 적페청산의 지렛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한계를 토로하기도 했다. “촛불 주도세력이 그 열기를 대선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반복된 통합과 결별로 왜소화된 진보정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 아니 사실은 그 책임이 가장 크다. 진보정당의 분열로 마음 둘 곳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어져 버렸다. 당장에 기댈 언덕으로 보수야당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다. “이게 나라냐?”라며 들고 일어난 촛불이 횃불로 번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으로 봐선 “죽 쒀서 개 주지 않을까?”라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 섞인 말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DJ와 노무현을 거치면서 정리해고, 비정규직법 등 각종 노동현안이 악화되었는데도 왜 항상 정권교체는 늘 민주당의 몫이고, 사표 논리는 항상 진보정당의 것이어야 하는가?”라고 묻지만 그건 오로지 주체의 문제일 뿐이다.

    민주노총`

    진보정치를 위한 출발점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은 미래를 위한 씨앗을 남기는 데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 지금 진행되는 선거는 역사적 과제와 현실의 괴리가 극대화된 채 진행 중이다. 촛불혁명은 어느새 사라지고 홍준표같은 무뢰배가 TV에서 노조가 적폐라고 말하는 적반하장이 일어나고 있다.

    정권교체만이 아니라 대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87년 6월 항쟁이 남긴 정치·경제적 개혁과제, 97년 IMF가 몰고 온 신자유주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주체를 만드는 데 중점이 주어져야 한다. “권영길에게 찍는 표만큼 정리해고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라고 97년에 말했었다. 그러나 삭발까지 했던 그 절박함은 주체들에 의해 외면당했었다. 정의당은 “이번 대선은 촛불의 꿈을 실현하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심싱정에게 모여지는 표만큼 받침돌의 높이가 달라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20년이 지났음에도 같은 얘기를 해야 하는 답답함을 이제 끝을 내자.

    문재인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새누리당류가 대표하던 정치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의 차이가 청계천 정도라면 한국 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한강만큼 넓다. 그렇다면 선택할 길은 분명하다. 진보정치 역사 전체를 보더라도, 촛불이 열어준 시대적 과제를 보더라도 새로운 세상을 위한 시작이 되어야 한다.

    표현만 다른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에게 찍는 투표야 말로 한국 사회를 서서히 죽이는 사표(死票)가 될 것이다. 이제 새로워질 때가 분명히 왔다. 편안한 마음으로 진보정당으로 표를 몰자.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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