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으로 무장한 시장근본주의?
    [기고]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②
        2017년 02월 02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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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박정희를 죽여야 ‘진보’가 산다?

    한국적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는가?

    ‘우리 안의 박정희’라는 [한겨레]의 기획기사는, 박정희 체제의 유산으로 비정규직과 사내하청도 꼽고 있다. “정규직도 알바 뛰는 울산, 박정희 도시의 현주소”(2017. 1. 18. 사회면)가 그 내용이다. 기사는 2015년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시작한다. 2015~2016년 사이 현대중공업의 원하청 노동자 수는 1/4 감소했다. 정규직은 15.8%인 4,400명 , 사내하청은 31.1%인 12,120명 감소한 수치다. 대기발령을 받은 정규직 노동자는 월 200만원 받는 것으로는 생계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알바를 해야 하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내하청 노동자는 그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여기까지는 조선업 구조조정의 현실이다.

    그런데 기사는 울산 조선업종의 구조조정을 박정희 체제의 유산과 결합시킨다. 1974년 현대중공업은 사내하도급 제도인 위임관리제를 도입한다.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저항은 실패로 돌아가고 위임관리제는 그대로 관철된다. 정규직은 줄고 하도급 사원은 10,852명으로 늘어난다. 기사는 은수미 민주당 전 의원의 논문 [사내하도급과 한국의 고용구조]를 인용한다. 현대중공업만이 아니라 철도, 포항제철 등 공기업에 이르기까지 “박정희 정권은 하청계열화와 사내하도급을 결합하는 산업정책”을 펼쳤고 “사내하청을 활용한 노무관리 모델은 손쉽게 퍼져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의 특징으로 정착했다.”

    이 기사의 중간 제목은 ‘한국적 신자유주의는 1970년부터 시작’이다. 비정규직-사내하도급의 활용을 한국적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기사는 흥미롭게 전개된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새롭게 등장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하면서, 실제 비정규직은 박정희 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첨언한다. [한겨레]식으로 말하자면, ‘한국적 신자유주의’는 IMF 구조조정을 주도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아니라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다. 그 근거가 비정규직의 존재이다.

    [한겨레]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정규직의 존재와 동일시한다. 박정희 체제에서 하도급-사내하청을 활용했기 때문에 한국적 신자유주의는 박정희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사내하청-하도급 등의 유무로 신자유주의를 정의한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말 그대로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19세기 영국 자본주의나 20세기 황금기 미국 자본주의는 물론이거니와 호황기 일본-독일 자본주의도, [한겨레] 식으로 표현하면 신자유주의다. 마르크스가 쓰고 있듯이, 실업자-불안정 노동자와 같은 산업예비군을 활용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음의 표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표 1] 종사상 지위별 경제활동인구 조사

    [표 1] 종사상 지위별 경제활동인구 조사

    [표1]은 시기별 임시직-일용직 근로자의 분포를 보여준다. 1970년대 이래로 통계청은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고용형태를 종사상 지위별로 구분해 왔다. [표1]에서 보듯이 임금근로자를 상용근로자와 임시근로자, 일용근로자로 분리해서 조사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이다. 1990년 임시 및 일용근로자의 비중은 45.78%이다. 그런데 상용근로자에는 1년 계약직도 포함되기 때문에 상용근로자가 모두 정규직 노동자는 아니다. 1년 계약직으로 포함하면 1990년의 시점에서만 보아도 비정규직의 규모는 도표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클 것이다. 한국은 IMF 외환위기 이전에도 비정규직 규모가 50%는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비정규직, 임시직, 일용직은 언제나 있어 왔다.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은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내적 구성부분이다. [한겨레]가 주장하는 것처럼 비정규직의 존재가 신자유주의 체제의 본질이고 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한겨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부정하는가? 물론 아니다. 한겨레는 진보적 자유주의 표방하는 언론 아닌가? [한겨레]는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옹호하면서도 박정희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비판하는 꼴이다. 이같이 논리가 뒤죽박죽이 된 것은, 비정규직의 존재를 신자유주의의 핵심으로 둔갑시키고 이를 토대로 박정희 책임론을 부각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은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그 기원은 박정희 정권 말기 강경식-김재익 등이 기획한 것이었다. 그들의 정책 방향은 금융자율화, 통화량 감소를 통한 인플레이션 통제, 수출금융 축소, 중화학공업 중심 성장정책 조정, 수입자유화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정책들은 당시 미국 유학파들로 구성된 한국경제개발원(KDI) 출신들이 기획하고 전두환 대통령이 승인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핵심은 개방화와 민영화, 자유화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강경식 등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기획을 완성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IMF+α’와 함께 말이다. 여기서 플러스 알파(α)가 의미하는 바는 IMF가 요구한 것 이상으로 한국 관료가 주도한 구조조정을 말한다.(5) 한국 정부가 추가한 것이 바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자법 도입이다. [한겨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주도한 ‘IMF+α’가 불안정 노동을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박정희 체제 때문에 비정규직의 고통이 심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가 악이라면 그건 박정희 잘못이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오류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의 무오류성 증명하기 위해 [한겨레]는 눈물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한겨레]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초역사화 한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정세를 분석하는 개념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다면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사내하청-하도급의 활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박정희의 발전주의 체제가 모방하고자 했던 일본적 생산방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한국 경제사의 기초적인 지식만 있다면 한국은 1970년대 일본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배후지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오일쇼크를 매개로 세계적 경쟁이 격화되는 국면에서 에너지다소비형 산업들은 배후지역으로 이전시키고 자국은 ME혁명 등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구조조정 한다. 그 과정에서 비용절감과 미국을 추월하기 위한 전략으로 소위 ‘일본적 생산방식’이 정립된다. 한국은 전자, 조선, 자동차, 기계 등 주력산업을 발전시키면서 일본에서 들여온 설계도에 따라 완성품을 ‘조립가공’하여 수출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적 생산방식도 함께 들어온다.

    도요타

    일본 도요타 공장의 생산 모습

    [한겨레] 식으로 쓰자면 1970년대 일본도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하도급을 활용한 경제체제였으니 말이다. 일본적 생산방식은 몇 가지 차원으로 나뉜다. 일본적 생산방식에서 독특한 점은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의 중층적인 산업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그 관계를 유지 재생산한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청 기업은 고정비용을 줄이면서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하도급 기업을 활용하여 비용을 절감하지만 긴밀한 산업네트워크를 통해 재고비용을 줄이고 탄력적으로 시장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산방식의 특징을 ‘간반체제-Just in Time 노동’이라고 한다.

    둘째 원청 내부에서도 고용관계는 위계적으로 된다. 중심부 노동과 주변부 노동의 구별이 그것이다. 중심부 노동에 대해서는 종신고용을 보장한다. 기업은 이 노동자들을 ‘고정자본’ 즉 해고 불가능한 자산으로 파악한다. 이 ‘고정자본’에 대해서는 직무순환-숙련향상을 통해 다기능공화 시킨다. 공정과정 전반에 대해 노동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직무에 대한 권한을 할당한다. 품질관리조(이른바 QC)는 그와 같은 노동과정에 대한 숙련 노동자들의 책임을 강화시킨 노동통제 기제였다. 숙련노동자들은 기업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기업에 대한 복종을 통해 고용의 안정을 보장받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연공서열에 따라 정년을 보장받은 남성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1/3정도였다.

    그 외 주변부 노동자 층은 파견노동자, 소기업노동자, 계절공, 해외노동력, 정년퇴직자, 사내 하청공 등으로 활용한다. 임시직 노동자는 기업 내 노조에서 배제되고 평균임금은 1980년 시점으로 대략 정규직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임시직 노동자는 일본적 생산방식의 부과적인 존재가 아니라 핵심적인 구성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이의 활용은 “경기순환 시 하강의 충격을 흡수하고 비용분담을 전가시키는 방식”이었다. 다만 일본적 생산방식에서 중핵기업들(도요타, 닛산 등)은 중소기업을 착취하면서도 기술이전, 상호 공동개발, 지속적인 중간재 시장 제공을 통해 하도급 기업들의 기술수준을 향상시키며 동반성장의 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에 따른 실질임금도 향상되었다. 이와 같은 중층화된 생산체제를 통해 일본은 미국과 유럽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6)

    이와 같은 비정규직-사내하청-하도급 생산체제는 1970년대부터 한국 제조업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1970년대는 한국 제조업에서는 부품 국산화 비율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하도급 기업들의 규모도 크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현대자동차와 같은 한국의 선도기업들은 중소기업들에게 설계도를 제공하고 기술 도입을 장려하며 납품계약 구조를 중층화 한다. 중소기업은 한편으로 경기변동의 부담을 완충시키는 조절수단이자 중간재 생산비용을 낮추는 비용절감수단이었다. 더불어 선도기업들은 낙후한 중소기업들에게 기술지도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견인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와 수탈과 기술지원, 중간재 시장 제공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그 결과 다층적인 거래네트워크가 구축된다.

    1987년 이전까지 원청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비인격적인 대우, 저임금 노동에 허덕여야 했다. 한국은 일본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낮은 기술수준에서 단순 조립가공을 통해 수출을 하며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수출경쟁력 확보, 자본축적이 불가능했다. 1980년대 이후 3저 호황과 기술적 노하우의 축적을 통해 실질임금의 상승과 노동조건을 개선해 왔지만 그 수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국의 원청기업-하청기업 간의 관계, 원청 기업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는 일본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격차가 컸다.

    노동자들의 조건이 급속하게 바뀌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1987년 이후 폭발한 한국 노동운동의 성장이다. 대기업 제조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본격화된 민주노조 건설과 임금인상 투쟁 및 노동조건 개선을 둘러싼 투쟁을 통해 대기업 노동자들의 지위는 급속하게 개선되었다. 대기업은 한편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상승에 대응하여 설비투자를 늘였으며 신규 채용 규모를 대폭 감축한다. 신규채용은 기존 피고용자들의 감소인원을 대체하는 수준에 머물게 된다. 수요증가에 따른 산출증가를 위해 필요한 신규인원은 비정규직을 활용하거나 하청생산을 확대하는 것을 통해 해소한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노동자-중소기업 노동자의 격차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대기업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신규고용은 대폭 줄인다. 더불어 유형자산 투자 확대,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출한다. 한편으로 비정규직-하청생산을 통해 비용 상승을 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 연구개발투자 등을 통해 기술적 경쟁력을 높이면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대폭 상승시킨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도 상승하지만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구조화된다. 산업구조는 다층화 되고 대중소기업간 거래네트워크는 더 촘촘하게 복잡해진다. [그림3]은 자동차업종의 거래네트워크 구조이다.

    [그림 3] 자동차 업종 거래네트워크 구조(7)

    [그림 3] 자동차 업종 거래네트워크 구조(7)

    한국 제조업은 2000년대 이후 급속히 기술적 경쟁력을 높이면서 세계시장의 선두그룹을 형성한다.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등에서 한국 제조업은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그림4]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OECD 국가들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상승률을 비교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상승률은 OECD 전체에서 가장 높다. 한국 수출주도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을 착취하면서 정체만 한 것이 아니라 기술수준, 노동생산성을 동시에 높여 온 것이다. 그 결과 높은 노동생산성 상승률을 이뤄내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 한국 제조업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실질임금 상승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한다.

    [그림 4] 2005-2013 년간 OECD 국가 간 노동생산성 상승률 비교(8)

    [그림 4] 2005-2013 년간 OECD 국가 간 노동생산성 상승률 비교(8)

    [그림 5] 동남권 광역지자체 제조업 실질임금 추이 비교(단위, 백만)

    [그림 5] 동남권 광역지자체 제조업 실질임금 추이 비교(단위, 백만)

    [한겨레] 기사는, 2016년 현재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박정희 도시’ 울산에서 정규직도 알바 뛰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규직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어 돈만 벌어오는 ‘현금 지급기’이고 비정규직은 해고 위협 속에서 불안정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성과급제는 박정희의 ‘공장 새마을운동’에서 그 원형이 있다고 덧붙인다. 모든 것은 박정희가 뿌린 씨앗으로 인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정희가 죽은 지 근 40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모든 책임은 박정희에게로 돌려진다. 그런데 박정희의 도시 울산은 정말 [한겨레]가 그리고 있듯이 그렇게 처참한 상황인가?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울산

    울산 현대차 공장 모습(사진=울산시)

    [그림5]는 2000년 이후 동남권 지자체 10인 이상 제조업 노동자 실질임금 추이를 보여준다. 10인 이상 제조업체 전수를 조사한 결과이다.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0인 이상 제조업 평균임금보다 월등히 높고 그 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4년 현재 울산지역 제조업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부산지역 제조업 노동자들 평균임금보다 대략 2,400만원 더 높다. [한겨레]가 마치 몰락해가고 있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박정희 도시’ 울산의 실제적인 지표이다. 노동생산성, 자본집약도, 기술수준 모든 면에서 울산은 다른 지역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월등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울산이 무너지면, 한국 제조업은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는 점도 함께 사고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박정희 도시’ 울산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심장이다.

    필자는 구조조정의 여파가 노동자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래 [그림6]을 보면 경제위기가 노동자들의 임금, 고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림6]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한국의 경기 침체 국면에서 상용근로자와 임시직 및 일용직 노동자들의 임금 및 고용변동을 보여주고 있다. 임금의 측면에서 보면 2007년~2009년 사이 상용근로자는 완만하게 감소하지만 임시직 및 일용직은 대폭 감소한다. 임시직-일용직 임금은 2,514만원에서 1,550만원으로 감소한 반면 상용근로자는 5,661만원에서 5,202만원으로 감소한다.

    필자가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길 바란다. 통계청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임시직-일용직 고용 비중도 대폭 감소한다. [그림6]의 보라색 선이 임시-일용직 근로자 비중을 나타낸다. 2009년 위기 시점에서 상용직 대비 임시직-일용직 비중은 2007년 44.41%에서 29.79%로 줄어든다. 세계수요 감소에 직면한 한국의 수출대기업들은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의 고용을 대폭 줄임으로써 경제위기 국면에 비용절감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임시직-일용직의 임금 감소 폭이 크게 나타나는 이유 역시 임시직-일용직 노동자의 사용을 줄임으로써 노동시간이 줄어든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5,600만원을 받던 노동자의 임금이 400만원 감소하는 것과 2,500만원 받던 노동자의 임금이 1,000만원 감소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후자는 삶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심각하게 파괴한다. 거기다가 임시직-일용직의 고용은 대폭 줄어들어 경제위기의 체감 수준은 상용근로직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2015년 조선업 위기의 영향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비정규직이 겪게 될 고통도 이에 비견될 것이다.

    [그림 6] 울산지역 제조업 종사상 지위별 임금 및 고용비중 추이

    [그림 6] 울산지역 제조업 종사상 지위별 임금 및 고용비중 추이

    [그림6]은 대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조선업은 선박제조의 수주에 따라 경기의 부침이 매우 크게 나타난다. 건설업처럼 하나의 선박제조가 단일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일거리가 있으면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선박 물량이 줄어들면 고용 비중을 줄인다. 이렇게 선박수주에 따라 사내하청의 공급이 신축적으로 운용되는 노동자들을 ‘물량팀’이라고 한다. 선박 제조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노동을 담당하면서 가장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이다.

    문제는 이들 공정을 담당하는 사내하청 파견업체들은 매우 열악한 지위에 있다 보니 경기 수축 시 체불임금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2015년과 같이 대량의 구조조정, 물량감소가 있을 때 상황은 더 악화된다. 임금감소와 고용불안정이 이들을 공격하고, 파견업체가 파산하게 되면 체불임금으로 노동자들은 3중의 고통을 겪는다. 파견업체 사장들은 자신의 자산을 모두 타인 명의로 돌려놓았기 때문에 체불임금이 발생할 시 노동자들이 자산압류도 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산재가 발생해도 원청업체는 책임지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죽음의 공장이다.

    한국의 대·중소기업 간 관계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나 기술탈취 등 수요독점적 지위를 지닌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은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더불어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 및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등 생산현장 내부에서 지속되는 노동자 간 격차 해소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또한 원하청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업재해, 외주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불법적인 임금체불 같은 불공정 관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원청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적 수단의 완비와 엄격한 법집행이 행해져야 한다. 그것이 박정희 체제로 인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문제점은 개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혁으로 무장한 시장근본주의?

    장하성의 [한국자본주의]에는 박정희식 성장모델을 스탈린주의 정책과 유사한 사회주의적 것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장하성에게 있어서 현재의 헬조선의 근원은 바로 박정희식 사회주의적, 독재적 성장모델의 결과이다. 장하성의 대안은 시장 중심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시장원리를 복원하면 그런 사회주의적 독재적 유산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정상적인 체제가 된다는 점이다. 이런 장하성류의 비판을 이어가는 [한겨레]의 최근 특집기획이 ‘우리 안의 박정희’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한겨레]는 마치 박정희 경제정책들이 시장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문제라는 식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한겨레]가 시장근본주의자의 반열에 들어선 것인가?

    만약 [한겨레] 기사에서 나오듯이, 한국 정부가 시장원칙에 충실하게 경제정책을 펼쳤다면 한국은 현재와 같은 발전을 전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박정희 이후 한국경제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3세계 국가들 중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좋든 싫든 박정희식 발전체제는, 한국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방식의 경제정책을 제도화한 것이다. 재벌은 그 과정에서 출현한 하나의 ‘제도’였다. 그 모든 부정적인 유산과 함께 말이다.

    오늘날 한국의 자유주의적 진보주의자들은 역사적 성전을 치르고 있다. 박근혜 탄핵과 박정희 유산 제거라는 거대한 성전 말이다. 그들은 박정희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지 나쁜 것이며, 헬조선의 핵심적인 문제는 모두 박정희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박정희를 비판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끌어다 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겨레]가 기획한 ‘우리 안의 박정희’이다. 박정희 체제는 한국 신자유주의의 근원이고, 울산이라는 도시는 박정희의 도시이자 몰락해 가는 도시가 되었으며,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은 시장 질서를 위해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는 심각한 역사 왜곡, 무지, 궤변이다.

    이와 같은 논지 전개는 박정희 체제가 남긴 모순을 극복하는 방향성을 제시하는가? 필자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박정희-박근혜에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지닌 ‘깨시민 진보들’에게 ‘박정희는 나쁜 놈’이라는 확신을 불어넣는 선동에 불과하며 최악의 경우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만 박정희 체제가 극복될 수 있다는 망상을 심어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그것은 제대로 된 조사와 문제제기에 바탕을 둔 박정희 체제의 극복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반박근혜 정서에 묻어가는 퇴행한 저널리즘을 대표한다. 이는 심히 유감스러운 상황이다. 이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나태와 오만은 한국 진보운동의 방향을 더욱 왜곡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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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ershenkron, A. Economic Backwardness in Historical Perspective (Cambridge, 1962). 이 책은 비교경제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저작이자 최고의 작품이다.

    5)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 기원과 형성』(책세상, 2011)의 6장을 읽어보라.

    6) 도끼다 요시히사, 「극소전자혁명과 노동자계급의 상태」, 강석재·이호창, 『생산혁신과 노동의 변화』(새길, 1999) ; 가또 테츠로우·롭 스티븐, 「일본 자본주의는 포스트포드주의인가?」, 강석재·이호창, 『생산혁신과 노동의 변화』(새길, 1999); 박준식, 『세계화와 노동체제』(한울, 2001).

    7) 홍장표·정재헌·남종석, “대기업의 지역경제 생산 및 고용유발효과 분석,” 『지역사회연구』 24(2).

    8) 차상미 외, 『2015 노동생산성 국제비교』 , 한국생산성본부.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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