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죽여야 ‘진보’가 산다?
[기고]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 ①
    2017년 02월 01일 02: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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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논리는 무섭다. 우리 모두의 고용이나 삶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 탄핵 문제는 단지 개인 박근혜의 문제가 아니라 양극화, 고용불안, 청년실업, 비정규직, 복지 축소 등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경제 시스템과 체제, 구조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바로잡는 것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과 이명박 체제는 악이요, 과거 김대중과 노무현 체제는 선이라는 이분법적 망상은 현실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질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런 이분법적 현실 진단, 특히 경제 체제의 문제와 관련한 오진(誤診)을 소위 진보적 언론과 명망가들이 선도하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에 대한 비판은 단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위한 비판이다. 남종석 박사의 이번 기고 글은 그 첫 출발점이다. 필요한 논쟁은 더욱 격화되어야 한다. 반박, 비판, 토론 글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글이 길어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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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박

죽은 자를 죽이기: 새로운 공화국의 출발?

박정희는 한국 보수주의의 신화적 존재다. 한국 보수주의는 친일파에서 친미반공주의 발전주의로 자신의 명맥을 이어왔다. 그들은 일제에 봉사하며 권력을 향유했고, 해방 후 미군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로부터 남한을 구했으며, 1960~1990년까지의 경제성장을 주도해 왔다. 그 중심에 박정희가 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10년은 박정희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대중들의 심성 구조에는 ‘부패해도 괜찮아 경제만 살려준다면’이라는 신념이 팽배했다. 부패했지만 경제성장을 이끈 이가 바로 박정희다. 이명박은 의도적으로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박정희 코스프레를 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였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녀는 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는 보수주의자들의 권력 장악을 보장하는 ‘성배’였던 셈이다. 죽은 박정희가 살아있는 권력의 아이콘이다.

이명박은 현대건설 신화, 청계천 개발로 발전주의를 대표했지만 재임기간 그가 남긴 유산은 녹조라테로 귀결된 4대강 사업, 100조 넘는 손실을 유발시킨 자원외교,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일관된 대기업 옹호,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와 함께 산 생명이 수장되는 것을 방조했고, 사드 배치를 결정함으로써 외교 참사를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권력기구를 통한 사익 추구, 우유주사 등 상상 초월의 정치적 스캔들을 낳았다. 그녀는 현재 탄핵 대상이 되어 감옥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박정희의 아들, 딸들이 만들어 낸 추잡한 현실이다.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에게 ‘박정희’는 넘어야 할 거대한 벽이다. 박정희를 넘는 것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지상과제다. 경제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등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박정희 신화를 깨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 어떤 미학자는 ‘무덤에 침’을 뱉었고 어떤 경영학자는 박정희를 사회주의적 계획-관치를 추진한 인물로 몰아 붙였다. 그에 따르면 박정희식 반시장주의가 오늘의 경제적 불평등, 비극을 만들어내었다. 역사학자들이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타락을 고발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꿈적하지 않던 박정희 신화가 이제 허물어져 가는 듯하다. 자유주의자들, 민주주의자들의 비판 때문에 박정희 신화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딸이 보여준 무능, 부패, 비정상이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급속히 떨어뜨리고 있다. 박정희의 후광만으로 정당성을 만들어왔던 보수주의자들은 이명박근혜의 타락과 부패로 인해 더 이상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심지어 보수주의자들마저 이제 박근혜를 적대시 한다. 그것은 아마 이 여성 대통령이 박정희라는 ‘성배’를 더 이상 활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 남은 과제는 이제 ‘죽은 자를 죽이는 것’이다. 이명박근혜에 의해 내파된 박정희 신화의 찌꺼기마저 제거해야 한다. 박정희 신화를 부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정희의 성과로 꼽히는 경제성장의 신화를 무너뜨려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이 이 신화를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사회적 효과는 변변치 못했다.

그만큼 보수주의자들에게 박정희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박정희 신화는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다. 들불처럼 번져나간 촛불항쟁은 그 모든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박정희 신화의 숨통을 끊어 놓을 절호의 기회다. 누가 나설 것인가? 한국 진보주의의 유구한 전통을 잇고 있는 [한겨레] 신문이 스스로에게 그와 같은 역사적 과업을 부과한 것 같다.

[한겨레]는 6월 항쟁 30주년,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해, 촛불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획 <광장의 노래> 특집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그 2부의 주제가 ‘우리 안의 박정희’다. 민주주의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첫 과제는 ‘우리 안의 박정희’를 제거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헬조선’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박정희 유산의 제거 없이 민주주의도, 새로운 대한민국도 불가능하다.

[한겨레]가 꼽고 있는 ‘우리 안의 박정희’는 크게 세 개의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 재벌주도 경제성장과 정격유착, 강남개발의 신화와 부동산 공화국, 노동배제적 정치경제학이 그것이다. 재벌은 한때 한국 경제의 성장을 촉진하는 힘이었으나 이제 골목상권을 침탈하는 괴물 공룡으로 변모했으며, 아파트·땅 투기로 벌어들인 불로소득은 계층적 불평등을 구조화했다. 비정규직-사내하청을 활용한 노동배제적 성장은 저임금-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이 일상화된 헬조선을 만들어 내었다. 이 박정희는 이 모든 악의 원흉이다. 그의 제거 없이는 다른 어떤 새로운 대한민국도 꿈꿀 수 없다는 것이 이 기획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한겨레]의 기획기사, ‘우리 안의 박정희’는 박정희 경제성장의 쟁점은 전혀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기획기사는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모두 박정희 체제로 환원시켜 ‘현재’에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 한국 경제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박정희 탓이다. [한겨레]는 박정희 비판을 위해서라면 어떤 궤변도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방식의 박정희 비판은 그 체제가 낳은 모순을 극복하는 길도 아니거니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은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그 기획기사는 단지 오늘날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초라한 언론의 초상을 반영할 뿐이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비판이다.

박정희는 재벌공화국을 만들었는가?

탄핵정국에서도 삼성가의 3대 경영자 이재용은 구속되지 않았다. 그는 구치소에서 보란 듯이 풀려났다. 전 대통령비서실장이자 온갖 악행의 중심에 섰던 김기춘이 구속된 반면 삼성가의 3대 경영 계승자는 이번에도 풀려났다. 삼성은 검사들에게 뇌물을 주고도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불법전환사채를 통해 편법 상속을 했음에도 기소 당하지 않았고,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300억 원의 뇌물을 최순실에게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영장실질심사에서 불구속 처분을 받았다. 가히 삼성공화국다운 현실이다.

[한겨레]는 그 기원을 56년 전 군사쿠데타 이후 삼성가의 창업주 이병철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박정희는 쿠데타 당시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을 의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부의장으로 취임했지만 쿠데타 후 2달도 되지 않아 장도영을 제거하고 자신이 의장이 된다)의 면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데타 발생 후 1961년 5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부정축재처리법을 제정하고 대자본가 10여명을 구금·체포한다. 당시 이병철은 일본에 머물고 있어 구속은 되지 않았으며, 부사장 조흥제가 체포되었다. 이병철은 ‘전재산 사회 헌납’을 약속하며 한국으로 귀국한다.(1) 그는 구치소로 이송되지 않고 박정희와 서울호텔에서 면담한다. 그 이후 구금 체포되었던 경제인들은 모두 풀려나며, 2017년 현재 해체가 예상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전신 [한국경제인협회]를 꾸린다.

[한겨레] 기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군사정부가 경제인들을 풀어주게 된 계기는 다른 측면이 존재했다. 1957년 미국은 무상원조가 중단하고 이를 외채로 전환한다. 1961년이면 외채의 원금 상환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다. 거기다가 경제인을 구속한 이후 재벌기업들은 군사정부에 대해 투자 보이콧을 하는 상황이었다. 군사정부로서는 권력의 정당성의 측면에서도, 다가오는 외채 만기일을 연장하기 위해서도 재벌기업들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다. 재벌이 군사정권을 길들인 셈이다.

[한겨레]의 기사는 박정희 정권을 삼성 특혜를 세 가지로 요약해서 제시한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 중에 민간차관에 특혜, 8.3 사채동결 조치,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승인이 그것이다.

1964년 이병철의 삼성은 당시 미쓰이물산으로부터 4190만 달러 규모, 연이율 5.5%로 차관 계약을 맺는다. 1972년 8.3 사채동결조치는 60년대 말, 70년대 초 과잉투자로 인한 부채비율(총부채/자기자본)의 폭등으로 재벌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신고한 사채에 대한 동결조치를 말한다. 이 조치에 따라 재벌기업들은 부채를 3년 거치 5년 분할상환, 이자율은 년 15%로 제한된다.

이와 같은 조치는 분명 특혜이다. [한겨레]는 이 조치가 시장경제에 반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의 인터뷰 자료를 인용한다. 이승윤은 “금융공황이 온다. 그러니까 이자 탕감해줘야 한다. 이건 잘못된 습관을 길러주는 거다”고 하며 8.3조치를 비판한다. 전 재무부 차관 김흥기는 “사채동결 그게 8.3 조치인데 그거 우리나라만이 가능한 얘기야. 기업한다고 말이야 전부 빚을 써놓고 못하겠다고 동결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말한다.

이 정책들이 기업들에 대한 특혜인 점은 분명하다. 아래 그래프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림1]과 [그림2]는 실질금리 추이와 물가상승률 추이를 보여준다. [그림2]에서 보듯이 당대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20% 내외에서 변동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대출 이자율 5.5%는 사실상 마이너스금리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8.3 사채동결조치로 사채금리는 20% 이하로 낮아졌으며 실질금리를 마이너스금리로 변화시켰다. 무역금융은 6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금리였다. 마이너스 금리란 대출을 받은 기업에게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얹어주면서 대출을 하는 것과 같다. 정부 소유의 금융기관이 음의 금리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사채를 사용하던 기업들에게는 금리를 대폭 낮추어 기업들의 금융부담을 크게 경감시킨 것이다.

[그림 1] 실질금리 추이(2)

[그림 1] 실질금리 추이(2)

[그림 2] 물가상승률 추이(3)

[그림 2] 물가상승률 추이(3)

이것은 이승윤의 주장처럼 도덕적 해이를 만들고 김흥기의 주장처럼 다른 국가들에는 없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당대의 정부가 무역금융에 한하여 음의 금리를 적용한 것은 달러를 벌기위한 매우 적극적인 조처였다. 달러를 벌어야 원료, 중간재를 수입해서 조립가공품을 생산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상환해야 다시 외채를 끌어들여 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역특혜 금융을 통해 무역을 촉진한 것은 당대의 경제성장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이었다. 당시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대부분 1차 상품이나 경공업 제품이었다. 기술적 경쟁력이 거의 없었다. 무역특혜를 통해서라도 기업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60년대 말 차관 도입으로 인한 민간기업들의 부실은 국가정책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이 시기 차관 도입 민간기업 43%가 부실기업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수입대체 중화학공업’에 투자한 기업들이었다. 이들 기업은 한국 경제의 중공업화를 위한 초기 단계에 필요한 투자를 담당한 기업들이었다. 국가의 전략에 따른 중화학 공업화를 위한 계획과 관련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차관 도입이 무모했고, 과잉중복투자로 인해 채산성 위기가 왔다. 현금흐름의 압박을 받는 기업들은 사채에 의존해서 유지되었다.

83사채동결

8.3 사채동결조치 공고를 보고 있는 사람들

당대 한국 금융 산업의 발전은 일천했으며 사채시장의 큰 손들이 대규모 자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림1]에서 보듯이, 기업들은 파산을 하지 않기 위해 사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채 이자율은 폭등했으며, 이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원리’를 적용했다면 당시 위기를 겪고 있던 대부분의 기업은 파산했을 것이다. 8.3조치 이전 많은 기업들은 이미 파산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박정희 정부는 ‘한국경제인협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사채시장을 억압하고 기업의 금융부담을 대폭 완화했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사채업자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파산시키는 것이 시장원리라면 그런 시장원리는 배격해야 마땅하다.

이것은 역사적 예외가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독일의 채무를 탕감시켜 주고 독일을 나토 체제의 주축으로 만든다. 정치적 결정이다. 전후 영국은 GNP 대비 국가채무가 200%를 넘어섰지만 10년간의 고인플레이션을 통해 이를 간단히 해소한다. 정부가 채권자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대공황 이후 미국 정부는 모건을 해체시키고 투자은행의 역할을 대폭 축소해버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나 유럽공동체는 화폐를 찍어내어 은행을 구제한다. 각각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른 처방을 내렸지만 위기를 시장에 내 맡겨둔 사례는 거의 없다. 반면 1929년 뉴욕 증시 붕괴 이후 미국의 후버 행정부는 시장을 방임하다가 대공황을 초래한다. 시장에 맡긴 결과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점에서 [한겨레]의 기사는 악의적이다. [한겨레] 기사는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가 기업의 축적을 지원한 것이 마치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이 쓰고 있다. 이승윤과 김흥기의 인터뷰 인용은, [한겨레] 스스로 정부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실행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이 시장원리를 위배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겨레]는 이 점에서 시장근본주의자들과 같은 입장이다. [한겨레]가 시장근본주의 옹호지라면 그럴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시장을 통제하고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에 선 진보적 일간지라면, 저들의 인터뷰 인용은 악마와 결탁한 것에 불과하다. 필자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한겨레]가 이 기사를 쓴 근본적인 목적은 정경유착의 뿌리, 삼성공화국의 뿌리를 박정희 정권에서 찾고자 함이다. 재벌특혜가 그것이다. 그런데 1960년~1970년 시점에 정부가 앞장서서 자원을 할당하고 특정한 산업분야를 성장시키는 전략이 잘못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당대의 시점에서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러시아 출신의 경제사학자 거센크론(Gershenkron)은 후발국가들의 경제성장, 즉 추격자의 경제성장은 선발 경제 대국들과는 다른 원리로 움직일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주장했다. “만성적인 후진성은 국가가 경제에 간섭하는 완벽한 발전계획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후발적 제국들인 독일이나 일본은 금융자본-투자은행을 중심으로 제조업 성장을 추진한다. 은행이 자본을 조달하고 제조기업들에게 장기 대출을 한 것이다. 이를 학자들은 관계적 금융이라고 한다. 레닌은 이를 두고 독점자본주의 시대의 금융과두제라고 했지만 사실 이는 독일과 일본 자본의 후진성을 대표한다. 독일이나 일본 기업들이 주식시장을 통해 자기 자본을 조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요한 제도였다. 독일과 일본은 금융-은행자본을 매개로 자본을 집중시키고 경제 성장을 추동한 것이다. 반면 세계경제의 중심이 된 미국 기업들은 이 시기에 법인자본의 형성을 통해 자기자본을 조달한다. 이것이 발전수준이 다른 국가 간의 제도적 차이다.

한국과 같은 훨씬 후진적인 국가들은 금융을 통한 자본조달도 할 수 없었다. 이 경우 유일한 대안은 국가이다. “후진국 경제는 너무 뒤떨어져 있어서 국가만이 격차를 좁히는 데 충분한 힘과 자원, 수단을 가진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4) 그런 점에서 국가 주도로 재원을 동원하고 특정한 분야에 재원을 집중하며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것은 현명한 발전전략이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짜르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후진성을 극복하려 했으며 한국은 1960년대 그렇게 했다. 이것이 추격자인 한국이 후발성의 이익을 챙기면서 빠른 성장을 이룬 힘 가운데 하나이다.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정책은 그런 점에서 과오가 아니라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생겨난다. 박정희식 발전은 재벌친화적 성장, 노동배제적 성장이었다. 그 결과 재벌은 과대성장했으며 경제적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재벌들은 온갖 특혜를 받은 반면 그들의 불법행동은 법의 처벌을 피해갔다. 지금도 여전히 사내 하청기업의 산업재해에 대해 원청기업은 책임지지 않고 있고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의 사용을 남용한다. 이 모든 것은 헬조선의 지표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당신이 공정한 판관이라면 당대의 관점에서 한국과 유사한 수준의 국가들과 그 성과를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독일, 스웨덴 등 1등 국가들과 비교하지 말고. 공정함이란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비교가 아니라 같은 초등학생끼리의 경쟁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과 위에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논해야지 마치 그 성과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논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한겨레]의 논리가 퇴행적이라 지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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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겨레 “박정희·이병철 56년전 독대···박근혜·이재용 대이은 밀월”(2017. 01. 01)

2) 홍장표, [후발산업화와 한국경제의 발전과정] 중에서 인용(미발간 자료).

3) 홍장표, [후발산업화와 한국경제의 발전과정] 중에서 인용(미발간 자료).

필자소개
남종석
부경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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