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에게 총 파는 나라
    [텍사스 일기] 미국의 총기문화 ②
        2017년 01월 27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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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사스 일기] 미국의 총기문화 ➀

    미국의 로비기관 가운데 가장 힘이 센 곳으로 둘을 꼽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약칭 AIPAC)입니다. 미국에 사는 유태인들이 세운 압력 단체지요. 유태인의 비중은 미국 전체 인구에서 2%가 안 됩니다. 하지만 어떤 정치인이라도 이들에게 밉보이면 재선이 불가능할 정도로 집요한 단결력과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합니다. 오바마든 트럼프든 예외가 없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대 이스라엘 정책을 발표하는 것이 이 단체 때문이라 보면 됩니다.

    쌍벽을 이루는 곳이 전국총기협회(NRA)입니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무려 47%가 이 단체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걸로 나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딱 하나입니다. 총기 보유와 사용을 철저히 찬성하고 총기규제를 철저히 반대하는 것.

    1871년에 설립된 NRA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회원이 많습니다. 총기제조업자, 사냥꾼, 사격선수, 일반인 등 정회원만 450만 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 단체의 힘은 사람 숫자가 아니라 돈에서 나옵니다. 미국 내 총기시장 규모만 해도 15조원을 넘습니다. 거기에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이니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까지 합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달러가 흘러넘치겠습니까. 그 엄청난 자금에서 뭉텅 홍보비를 떼어내어 아낌없이 그리고 집중적으로 뿌려대는 거지요.

    제가 박물관에서 유심히 본 건 물론 총기였습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가르치는 선생의 직업의식이 어디 가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총기협회가 어떻게 시민들 마음에 접근해서 총기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확산시키는가 하는 설득전략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박물관은 무료입장입니다(사진 1).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서면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가 방문객을 맞습니다. 선량하게 생긴 60대 초반 아저씨입니다(일부러 이런 분을 고른 듯). 얼굴 가득 웃음 지으며 방명록에 사인을 해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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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키지는 않지만 공짜 구경하는 부담감에 페이지를 펼칩니다. 이름, 주소, 이메일, 소감 적는 란이 있네요. 대충 적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두둥! NRA 회원으로 가입하시겠습니까? 묻는 란이 나타납니다. 일부러 소리 나게 탁! 노트를 덮었습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압도적 풍경이 시작됩니다. 이름은 사냥총 박물관이지만 권총, 엽총, 소총 등 민수용에서 군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총이 다 있습니다. 우선 오른쪽 편에 6열로 장식된 권총 시리즈(사진 2). 초기 머스킷(musket : 부싯돌을 사용하여 불꽃을 일으키고 화약을 점화시키는 방식) 권총(사진 3)에서부터 서부시대 리볼버(Revolver)(사진 4)를 거쳐 현대의 자동권총에 이르기까지 130 가지가 넘는 권총이 진열되어 있군요. 가히 장관입니다.

    사본 -2

    사본 -3

    사본 -4

    왼쪽 편에는 격발방식에 따라 분류된 시대별 주요 엽총 및 소총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먼저 미국 식민지 초기의 소총이군요(사진 5). 가장 볼만한 건 미 육군에서 사용되는 제식소총을 연대별로 모아놓은 것이네요(사진 6).

    사본 -5

    사본 -6

    이 박물관의 특징은 2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는 전시 방식입니다.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총열, 갸름하고 세련된 총신. 유리창 너머 전시된 총들이 사람 죽이는 물건이 아니라 무슨 유명 미술관의 작품처럼 고급스럽습니다. 제 카메라에 편광(CPL) 필터가 없어 유리창 난반사가 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엉성한 사진으로도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사진 7). 저같이 총에 대한 거부감 있는 사람도 “하나 정도는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운 전시기법입니다. 총에 대한 친화력을 높이려는 교묘한 설정입니다.

    사본 -7

    두 번째는 (이게 핵심인데)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다는 겁니다. 부부끼리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사진 8). 하지만 어린아이를 동반한 일가족이 훨씬 눈에 많이 띕니다(사진 9). 그만큼 일상 속에서 총이 익숙하다는 말이겠지요. 총기문화가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생활 속에 뿌리내린 증거로 보입니다. 기껏해야 열대여섯 살 정도 떠꺼머리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까지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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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 판매업자들의 마케팅 활동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총기문화의 가족적 확산이라는 지점을 정확히 때리고 있습니다. 핵심 목표고객은 역시 성인 남자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여성과 어린이를 새롭게 공략하는 양상이 뚜렷합니다. 광고에서는 이를 타깃 세그멘테이션(target segmentation)이라 부릅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기존의 헤비 유저(heavy user, 重使用者)에서 벗어나 있던 계층을 찾아내어 판매 메시지를 던지는 겁니다.

    이방인의 눈에 놀라운 것은 아이들 생일선물로 총 사주라는 광고가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2013년의 경우 8살짜리 소녀가 광고 모델로 나온 핑크색 소총(아동 및 여성을 타깃으로 잡은)이 없어서 못 팔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사진 10). 단일 소총이 무려 7만정이나 팔렸다니 말 다 했지요. 광고에서 나레이터가 이렇게 천연덕스레 말합니다.

    “5살, 6살, 7살 정도 되는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초심자용 라이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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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사스의 경우 곳곳에서 아이들이 (진짜) 총을 쏘는 이벤트가 벌어집니다. 거기 가보면 주최자들이 이렇게 호랑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지껄인답니다. “어릴 때부터 총을 소유하면 책임감과 안전의식이 높아집니다.”

    당연히 부작용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발표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총기 사고로 숨지는 14살 미만 어린이가 한 해에만 100명에 달합니다. 젖을 갓 뗀 아이가 뭔지도 모르고 방아쇠를 당겨 누나를 숨지게 하는 사건 같은 것이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다섯 살 소녀에게 살상용 총을 권하는 사회에서 이런 일이 안 벌어지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지만 말입니다.

    좋건 나쁘건 이것이 미국의 현실입니다. 미주리 주 시골도시 총기박물관을 채우고 있는 가족단위 관람객들을 보십시오(사진 11).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총입니다. 아이들이라고 못 가질 이유가 없지요. 자연스레 어릴 적부터 총을 선물하고, 그것을 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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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실 한 모퉁이에서 아빠 손을 잡고 온 소녀가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초상권 관계로 찍지는 못함^^). 바로 앞 진열대에는 관람객을 꼭 닮은 인형 부녀가 사냥 하는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전직 대통령 중 하나가 테오도르 루즈벨트입니다. 박물관 3층에 특별전시실을 만들어 루즈벨트와 총에 얽힌 스토리를 흥미롭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총기광으로 알려진 그의 애장품 권총과 엽총을 전시해놓은 건 당연지사(사진 12). 아프리카에서 사냥해 온 코끼리 상아와 사슴박제까지 전시해 놓았습니다(사진 13).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위인의 행적을 “총”을 매개로 엮어냄으로써 총기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려는 노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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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그의 유명한 시뮬라크르 개념을 통해 어떤 대상을 상대로 복제된 물건이 원본보다 더 현실 같은 경우, 이렇게 만들어진 파생현실(hyperreal)이 거꾸로 진짜 현실을 대체해버린다 말합니다. 미국의 총기문화가 그렇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위협”과 이에 대응하는 개인 무장은 서부개척기를 관통하는 명백한 역사적 근원을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대명천지 21세기에도 과연 그러할까요? 혹시 미국인들이 믿는 “폭력적 세상”은 1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총알이 난무하고 사람 목숨이 파리처럼 스러지는 할리우드 영화와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가짜 현실은 아닌가요? 미국의 <거대한 디즈니랜드>라 부른 보드리야르의 관점을 다시 한번 빌려오자면, 미국은 그런 의미에서 <거대한 서부극 세트장>인 셈이지요.

    분명한 것은 막대한 자금력과 집요한 목표의식을 지니고 그러한 가상현실화를 실행하는 맨 앞 줄에 서 있는 것이 NRA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험한 곳이라 인식시키고 스스로를 지키려면 총을 들어야 한다고 암시하는 일. 아이들에게 총을 친근한 존재로 포지셔닝(positioning)시켜 미래의 잠재고객으로 만드는 일. 이를 통해 총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행위를 단순한 개인 취향에 그치지 않고 강고한 사회문화적 관습으로 고착시키는 치밀한 장기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최전방 요새 역할을 이 박물관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흥청망청 돈을 퍼부어 계단 한 칸 한 칸마다 청동 독수리 로고를 박은 겁니다(사진 16). 럭셔리한 최고급 자재로 공간을 꾸미고 예술작품을 방불케 하는 디스플레이와 조명을 때리는 겁니다. (계속 이어짐)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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