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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에게 공손한 이유
    [텍사스 일기] 미국의 총기문화①
        2017년 01월 11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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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동부와 중서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마지막 여행지 시카고에서 오스틴으로 돌아오는 길은 1,8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 17시간 이상을 달려야 합니다. 하루 만에 당도하기는 불가능해서 별수 없이 일박한 곳이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Springfield). 곤하게 하룻밤을 잤습니다. 근데 아침에 눈을 뜨니 아무리 시골도시지만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집니다. 호텔 방에 비치된 관광안내 책자를 뒤적여봤습니다. 눈에 번쩍 뜨이는 게 있습니다.

    도시 중심가에 그 유명한 미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약칭 NRA)가 직접 운영하는 사냥무기 박물관(Sporting Arms Museum)이 있다는 겁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NRA 본부가 있고 그곳에 세계 최대의 총기박물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그마한 동네에 유사 시설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당연히 방문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국 오기 전부터 관심이 컸던 게 총기 문화였거든요. 이 나라를 여타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 구별 짓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 총기를 마음대로 보유하는 자유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의 “총에 대한 사랑”은 역사적으로 납득할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건국 자체가 식민지 모국 영국에 대한 유혈 무장봉기를 통해 이뤄졌으니까요. 이후 총을 통해 국가의 질서를 잡았고 마침내 총을 통해 오늘날의 거대한 부를 이룩했으니까요. 인디언 원주민에 대한 끝없는 살육을 딛고 이뤄진 서부개척 역사가 그 전형입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이 타국을 침공한 이 나라의 공격적 집단심리 근원이 바로 미국인들의 “총에 대한 사랑”이라는 겁니다.

    미국의 총기문화는 1791년 제정된 수정헌법 제2조(Second Amendment)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본문을 잠깐 살펴볼까요?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주(州)의 안전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인민이 총기를 보유하고 휴대하는 권리가 침해되어서 안된다.(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쉽게 말해, 국가가 시민들이 총을 지니고 그것을 사용하는 걸 막아선 안 된다는 겁니다.

    특히 서부개척 시기 행정력이 닿지 않는 광활한 개척지를 스스로 힘으로 지켜야 했던 상황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법천지 속에서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총을 지녀야 했고 그것을 사용해야 했던 겁니다. 문제는 세월이 흘러 21세기 문명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여전히 고리짝 시절의 헌법과 이념이 압도적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저 총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일까요? <사냥무기 박물관>이란 어딘지 애매모호한 이름을 짓는데 활용된 짐승 사냥을 위해서라구요? 현대문명의 엄격한 야생동물 보호를 떠올려보면 그저 빈 말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에둘러 갈 필요도 없지요. 공격용이든 방어용이든 총(gun)의 주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문화>. 총기 사용 관습이야말로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코드 중 하나라고 제가 생각해온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여러 국가적 특성이 이 총기 문화에서 비롯되고 있다 봅니다. 특히 집요하고 장구한 군사외교적 공격성의 출발점이. 넓고 깊게 뿌리 내린 총기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국민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국가의 존재방식에도 핵심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겁니다. 행정 및 사법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스프링필드에 머무른 2014년 9월에 미주리주 퍼거슨시(옆을 지나쳐 왔음에도 외부인 출입금지라 해서 못 들렀음)에서 흑인 폭동이 발생했는데, 도화선이 된 것이 경찰에 의한 비무장 흑인청년 살해였습니다.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는 미국 사회의 지반 아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인종적, 계급적 불평등입니다. 그러한 구조적 불만을 제도적으로 통제하고 억누르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경찰관의 손에 들려있는 총이라는 것입니다. 거시적으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잠재적 위험”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지요. 하지만 개인 체험 차원에서 보면, 불법행동 시 경찰이 시민을 향해 총을 발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들을 움츠려들게 하고 공권력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겁니다.

    미국 총기 시장은 연간 130억 달러(우리돈 15조 6천억원)의 놀라운 규모. 나라 안에 정식으로 등록된 총기가 1억 6천만정입니다. 하지만 50개 주 가운데 특정 주는 법률에 따라 총기 등록을 강제하지 않지요. 이에 따르는 미국 내 추정 총기 숫자는 무려 3억 5천만 정! 2014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가 3억 1,890만명 정도 되니 1인당 1개 이상의 총을 보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당연히 온 나라에 총이 흘러넘칩니다. 텍사스의 경우 길거리에 총 파는 가게들이 수두룩합니다. 호기심에 쭈뼛쭈뼛 들어가 본 적이 있지요. 근데 어색할 것도 없고 망설일 것도 없었습니다. 휴대폰 가게에서 폰 보여주듯 자연스레 총을 보여줍니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물어보고 즉석에서 사람들이 총을 구입합니다. 진열장 안에는 가격표 붙은 번쩍이는 최신형 권총. 벽에는 가공할 살상력을 자랑하는 AK 자동소총이 멋들어지게 세워져 있습니다.

    이방인의 눈에 더욱 놀라운 것은 쇼핑센터의 풍경입니다. 도시마다 빼곡한 쇼핑 콤플렉스(complex)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스포츠용품점. 보통 그런 건물 안에 총포상이 입점해 있는데, 규모가 큰 스포츠용품점에서 총포상을 발견하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총기는 진열장이나 안쪽 벽에 보관하지만 총알은 그냥 과자 팔듯 개방된 선반에 박스 채 놓아둡니다. 마음대로 포장을 뜯고 총알을 꺼내 봐도 됩니다. 동네 쇼핑센터 총포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경품으로 받은 장총을 들고 활짝 웃는 소녀의 사진이 벽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범죄경력이나 정신병력이 없는 한 총기구입과 소지는 자유. 일반인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강력한 무장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법적으로 총기 소유가 금지된 경우는? 어차피 흘러넘치는 것이 총기인데 뒷길로 구입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코네티컷 산 속에 집이 있었지요. 로드 아일랜드 앞바다에서 함께 광어낚시를 한 후 집으로 초대를 해주었습니다. 직접 잡은 사슴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와 구워주더군요. 생 사슴고기는 처음 봤는데 그냥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새빨간 육질이었습니다(처음 접하는 맛에 허겁지겁 게눈 감추듯^^). 사냥이 취미인데다 산 속에 집이 있으니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사정이 존재합니다. 그래서일까 집 안에 총이 7자루(!)나 있더군요. 한번 보여 달라 부탁했더니 자동권총에서부터 쌍발 엽총, 사정거리 500미터의 초강력 5연발 소총까지 무시무시한 놈들을 구경시켜 줬습니다. 군대를 갔다 왔지만, 솔직히 거실에 늘어놓은 그 많은 총을 지켜보니 저도 모르게 오금이 저리더군요.

    미국인들은 겉으로 볼 때 대개 공손하고 예의바릅니다. 아이엠 쏘리와 익스큐즈 미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연발합니다. 길에서 언성을 높이거나 멱살잡이를 하는 모습이 희귀합니다. 이 나라를 잠깐 다녀간 어떤 한국분이 이런 겉모습만 보고 미국인들 심성이 매우 착하다 칭찬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표피적 관찰에서 나온 순진한 결론이 아닐지요. 속마음까지 그렇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스스로는 쾌활하지만 타인에게는 젠틀(gentle)한 미국인들의 이 같은 대인관계 습관을, 저는 상당 부분 총기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개인 간에 심각한 충돌이 일어날 경우를 상상해봅시다. 그때 만약 상대가 총을 가졌을지 모른다 떠올려 보세요. 저절로 극단적 언행을 삼가게 되지 않을까요.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평소에도 온화한 낯빛 지니는 게 생활화되지는 않을까요.

    가까운 사이의 한인 교수 한 분이 쇼핑몰에서 딸아이와 부딪힌 싸가지 없는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그 여자가 먼 산 보다가 서로 부딪혔고 딸아이가 심하게 바닥에 넘어졌답니다. 딸 가진 아빠 입장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 근데 더 이상의 심한 항의를 하지 않은 것이 옆에서 말 한마디 없이 지켜보고 있던 남편 때문이었답니다. 혹시 총을 지녔을지 몰라서였다는 거지요. 그 같은 상상의 공포가 사람들의 공격적 행동을 자제하게 만드는 겁니다. (미국 온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저도 유사한 경험을 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그러니 그 교수님의 이야기가 우스개 소리 같지만 단순히 우스개가 아닌 겁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스프링필드 중심가 <아웃도어 월드> 건물에 있는 총기박물관은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 총기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자료가 넘치도록 많은 곳이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미국 최강 로비단체에서 운영하는 곳답게 박물관 전체에 부티가 줄줄 흐른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입구에 서있는 멋진 흰머리 독수리 형상을 보십시오 (사진 1).

    사진 1(독수리 조각)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까지 엄청난 돈을 들였습니다. 세로 지지대를 머스킷 장총(격발식 소총이 나타나기 전의 부싯돌 점화방식 총)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지지대 하나하나 모두가 실물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합니다(사진 2).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볼까요. 공간을 구분하는 작고 큰 문 손잡이들 모두가 특별 주문 제작한 청동제 장총모양입니다(사진 3). 분위기가 이만저만 호사스러운 게 아닙니다. 조명 방식과 전시 테크닉까지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유리창 너머 진열된 소총과 권총들이 무슨 최고급 예술작품을 연상시킵니다(사진 4). 일반 사람들이 저절로 총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생겨나게 꾸며져 있는 거지요. 박물관을 가득 채운 것이 가족단위 관람객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은 게 우연이 아닌 겁니다.

    사진 2. 머스킷 총

    사진 3. 청동손잡이

    사진 4. 전시물

    아무리 부유하기로 소문난 총기협회(NRA)라고 해도 고작 중소도시의 박물관에 왜 이렇게 엄청난 돈을 때려 부었을까요? 다 숨겨진 목적이 있습니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벤허>에 나온 영화배우 찰톤 헤스톤의 장총 이야기와 함께 다음에 들려드리겠습니다. 무슨 사연일지 궁금하시지요?

    (추신)

    # 박물관이 위치한 도시 스프링필드는 미주리 주 말고 메사츄세츠 주에 한 군데가 더 있습니다. 후자가 더 유명한데, 300년 전통의 병기창이 위치한 미국 군수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1차 대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미군 제식소총으로 사용되었던 “스프링필드 소총”이 바로 이 도시 이름을 땄습니다.

    # 애니메이션 <심슨 패밀리, Simpson Family>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 이거 들어본 이름인데? 라고 하시겠지요? 심슨 패밀리가 살고 있는 만화영화 주무대도 역시 (가상의 도시) Springfield랍니다.^^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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