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을 넘는다는 것
    [유럽통신③] 뉘른베르크, 프라하, 부다페스트의 여정
        2016년 08월 15일 01: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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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뉘른베르크에서

    여행 12일째다.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인터라켄을 거쳐 프라하를 향한다. 강행군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웬간한 나라를 순회하려니 그렇다.

    유레일 야간 열차가 너무 힘들어 프라하 들어가기 전에 바이에른주 북서쪽, 체코와 가까운 뉘른베르크에서 하룻밤 쉬어가기로 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그 유명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열린 곳이다.

    11시 넘어 도착한 기차역 앞은 완연 분위기가 거칠다.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본 광경 하나. 내 3미터 앞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걸어가는 커플. 마주오던 흑인 청년들 중 한 녀석이 커플 남자의 어깨를 주먹으로 세게 치고 지나간다. 위세에 눌린 탓인지 남자는 그저 움찔 걸음을 재촉할 뿐.

    맥주 사러 다시 찾은 기차역 근처에는 술 마시고 웃고 떠드는 백인, 흑인, 터키계 청춘들로 가득하다. 어딘지 흔들리며 뿜어 나오는 그들의 에너지가 강렬하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역사 안에 경찰 여러 명이 경비를 서고 있다.

    며칠 전 뉘른베르크 인근 소도시에서 터진 폭탄 테러의 영향일까. 여행 다니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유럽이 상당부분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화적 격동과 충돌이 사회 저변에 꿈틀대며 숨어있는 것을 본다.

    곤히 잤다. 아침을 먹고 숙소 앞에 나가 아이폰으로 거리 풍경을 찍어본다. 첫 번째 사진이 점심녘에 버스 타고 프라하로 넘어갈 터미널이다.

    조금 시간 여유가 날 때, 바르셀로나에서 겪은 <아프리카 청년들>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무사히, 건강하게 낯선 나라들을 떠돌고 있음을 전한다.

    뉘 종합

    프라하 가는 버스 안에서

    7월 31일 오전 11시 50분. 뉘른베르크 역 앞에서 2층 버스 탑승. 도시 하단 인터체인지에서 동쪽으로 선회. 6번 고속도로를 따라 3시간 반을 동진하면 프라하다.

    예전에 몇 몇 나라를 각각 왔을 때는 실감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9개국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보니까 정말 (EU체제의) 유럽은 국경 없는 하나의 나라다.

    도버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엄격한 짐 검사와 여권 체크가 있다. 그러나 유럽대륙으로 넘어오면 국경선은 형식이다. 세관이고 뭐고 없다. 유레일 열차에서는 그냥 한번쯤 표 검사만 한다(독일 들어올 때는 기차에서 여권 보여줌) 도보로 국경을 넘는 경우에도 “Hi!” 고개 끄덕여 인사만 하면 끝이다.

    예를 들어 바젤(Basel)은 프랑스 북동쪽에 있는 스위스 접경도시. 몽블랑 빙하를 만나러 인터라켄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근데 역 건물이 두 나라 국경선 정 중앙에 지어져 있다. 물론 역사 건물 내에 형식적 국경 초소(라기보다는 탁자와 의자 놓인 자그마한 데스크)는 있다. 하지만 그냥 경찰에 눈인사만 하면 상황 완료.

    영국에서 프랑스에서 스페인에서 17, 8살 먹은 고등학생들이 커다란 배낭에 샌달 끌면서 각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유레일 패스 개시했던 파리 리옹역 창구에서 만났던 폴란드 고등학생 3명(그 중 하나는 2002 월드컵에선가 맞붙은 폴란드팀과의 축구 경기를 이야기하자,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자기는 미국 NBA팬이라고^^). 바르셀로나 타파스 식당에서 만났던, 수줍은 표정의 아이슬란드 소년.

    하지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방은 (역설적으로) 세계 최대의 군사력이 밀집된 “비무장지대”를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 이러한 환경과 의식 상태에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어딘가 가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되는 경험이다.

    식민지와 이념 충돌에 따른 가혹한 분단 경험이 주는 일종의 사회문화적 DNA가 뿌리박혀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식민지와 분단 이후 한국 사람들이 후천적으로 가지게 된 하나의 특징적이며 억압적인 사회심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이름을 따로 <국경의식>이라 붙여본다.

    이런 정서를 가장 첨예하고 간절하게 묘사한 것이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으로 시작되는 김동환의 시 “국경의 밤”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비행기 타고 한발짝만 나와 보면, 우리 안에 또아리 틀고 있는 그러한 “국경에 대한 어딘가 비틀린 억압감”이 정치상황과 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주입된 유령임을 알게 된다.

    국경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권리와 행위, 무엇보다 그러한 행위에 대한 시민 개개인의 자의식은 특정 사회가 보유한 자유의 순도를 측정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이기 때문이다.

    총 맞아죽은, 현 대통령의 아비가 공포의 철권을 휘두르던 시절 독재 권력이 한사코 국민들이 국경을 자유로이 넘지 못하게 통제한 이유 또한 그 때문이고 말이다.

    문제는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된 오늘날도 그 같은 심리적 억압이 (우리 세대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들에게조차 일정 부분) 온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 정치, 외교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상황에서 <통일의 그날>이 오지 않는 한 우리 마음 속에 그늘진 그같은 심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을 해 본다.

    언제 그날이 올까. 부산역에서 설렁설렁 기차를 타고 (평양역 간이음식점에서 후루룩 냉면 한 그릇 해치우고) 신의주를 지나며 만나는 중국 검표원에게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하면 되는 날.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이 일체의 억압감 없이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만주와 시베리아와 세계를 마음껏 휘젓고 달릴 그 날이. 유럽은 되는데 우리는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고개를 드니 차창 밖으로 독일 동부의 울창한 숲이 휙휙 지나간다. 문득 생각하니 이런 나를 어쩔 것인가 싶다, 멀리 나와 천지를 떠돌고 있는데도 늘 사고의 한 머리가 내 사는 땅을 향하고 있는 이 고질병을. ^^

    – 체코행 버스 안에 다행히 와이파이가 되어, 스마트폰 자판으로 헉헉대면서 씀

    프 종합

    몽고계 조상님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다, 오른쪽에 페스트 구역이 합쳐져서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한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통해 한국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장소가 강 물 위에 척하니 걸쳐진 세체니 다리. 다리를 건너 부다 쪽 높은 언덕에 마차슈 성당이 있는데(사진 1). 그 바로 옆에 도시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어부의 요새”가 자리 잡고 있다.

    부1

    부 2 3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건축된 아름다운 구조물이다. 도나우강 어부들로 구성된 시민군이, 이 요새에서 강을 건너 기습하는 외적을 막은 데서 비롯된 이름이라 한다(사진 2, 3).

    프라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다페스트. 동구의 보석이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적으니 상업적 그악스러움도 덜해 보인다. 체코(1인당 GDP 19,000달러)에 비해 국민소득이 낮은 만큼(13,000달러) 거리나 상점 분위기는 훨씬 촌스럽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성정과 표정도 덜 때 묻어 보인다(돈독 잔뜩 오른 프라하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아무리 그래도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 관광지 어부의 요새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사시사철 북적인다.

    요새의 베란다와 기둥에 기대어 서면 눈 아래 도시 전경이 쫘악 펼쳐진다(사진 4). 강 건너 국회의사당 사진을 한 장 찍고 돌아서려는데 회랑 사이에서 (관광객 판매용 풍경화 그리는) 화가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운다.

    부4

    그림 사라는 줄 알고 멀건이 쳐다봤다. 그랬더니 동구권 억양이 역력한 서툰 영어로 헝가리언 헝가리언…. 자꾸 말한다(사진 5).

    부5

    뭔 말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내가 전형적인 헝가리인 골상이라는 게다. 코도 그렇고 얼굴 윤곽도 그렇고.

    필시 그림 하나 사 가라는 장사 속 우스개 소리겠지. 한국 사람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했다. 하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고개를 옆으로 흔들면서 절대 아니라는 게다. 이게 뭔 소리여? 반만년 단군의 자손을 두고 헝가리언이라니.

    이 사람 아무래도 역사책을 좀 읽은 모양이다. 헝가리 사람 중 98.5%를 차지하는 것이 마자르족. 이들은 혈통학적으로 몽골 족에 속한단다. 기원 후 9세기부터 10세기 말까지 중앙아시아와 흑해 북단을 거쳐 유럽을 침공한 이들은 결국 헝가리 지역에 머물러 나라를 세웠다… 고 역사책은 전한다.

    이후 1,000년 이상에 걸쳐 코카서스 인종과 혼혈을 거듭한 것이 오늘날 헝가리 사람들의 외모. 그래서 그런지 언뜻 봐도 이웃나라 체코 사람과는 얼굴 모습이 다르다. 평균 신장도 슬라브계인 체코인보다 작아 보이고. 눈매나 얼굴 윤곽선에 어딘가 모르게 동양적인 느낌이 스며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토박이 조선 아저씨한테 마자르족 용모와 비슷하다니. 혹시 그림 공부하실 때, 박물관에서 아득한 옛날 헝가리 평원 휩쓸었던 몽고계 조상님 초상화를 너무 오래 보신 것 아니유?

    하여튼 즐겁게 웃으며 헤어졌다(그림은 안 사줬음). 혹시나 싶어 아이폰으로 셀카를 한 장 찍어서 확인해 본다(사진 6). 화면에는 2주 동안의 배낭여행으로 꼬질꼬질 새카맣게 탄, 오리지널 동양인 아저씨가 씨익 웃고 있다.
    김ㄷㅇ

    필자소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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