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코뮌과 세월호 리본
    [유럽통신②] 파리의 페흐 라쉐즈
        2016년 08월 03일 12: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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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의 팬더곰

    파리는 런던과 함께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이 생긴 도시입니다. 100년을 훌쩍 넘는 역사답게 이 지하철들은 매우 낡았습니다. 거의 대부분 냉방이 안 되고 창문을 열고 달리는 열차 구조입니다.

    우리나라나 이웃 일본처럼 커다란 LCD 전광판 안내는 언감생심. 덜컹거리는 소음 때문에 역명 안내는 거의 안 들리지요. 그러니 차 내에 붙은 열차노선도를 집중하지 않으면 내리는 역 놓치기 딱 쉽습니다.

    아마도 런던지하철(tube라 불림)보다 차량 내부가 크고 덜 붐비기 때문이겠지요. 파리에는 기타나 바이올린 혹은 아코디언 연주하는 사람들이 객차 내에 꽤 많습니다. 최고급 연주는 아니지만, 늦은 밤 숙소로 들어오면서 듣는 생음악이 적지 않이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파리코뮌 전사들의 벽>을 보러 페흐 라쉐즈 묘지에 다녀오는 지하철 안. 염소수염 예쁘게 기른 젊은 아코디언 연주자가 귀에 익은 음악을 들려주는군요(사진 1). 분명히 아는 샹송인데, 이름이 안 떠오릅니다. 지하철에서 듣는 아코디언 연주라, 사흘 만에 이제사 진짜 파리라는 기분이 납니다(소액이지만 감사의 마음으로 기부함).

    1 아코디언

    영국과 프랑스는 전통적인 라이벌이자 우방국. 하지만 도버해협을 경계로 오랫동안 쌓아온 정치경제적 경험 차이 때문에 풍토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게 느껴집니다.

    표면적으로 딱 감이 잡히는 건, 철도 등의 공공시설에서 앵글로색슨 나라 영국이 조금 더 깨끗해 보인다는 것. 파리 지하철은 어두운 선로 내부 벽에 그래피티 낙서가 가득합니다. 열차가 씽씽 달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서 어떻게 저 많은 라커를 뿌렸을까 괜히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거리 분위기는 프랑스가 어딘가 모르게 개방적이고 한 뼘 더 풀려있습니다(여행 말미에 독일 갈 예정인데, 유럽을 대표하는 이 세 나라의 거리풍경 비교도 재미있을 듯^^).

    광고와 커뮤니케이션 가르치는 제 눈에 한 가지 더 띄는 것은 프랑스의 경우 대중교통수단에 상업광고가 적다는 것이지요. 영국보다는 아무래도 사적 자본이 휘둘러 대는 힘이 약하다는 증거일까요? 사진은 그 중에서 파리 전역의 지하철에 유난히 많이 붙어있고 그만큼 유난히 튀는 광고입니다(사진 2).

    1 v팬더 페러디

    저는 각국을 여행하면서 광고를 통해 그 나라의 고유 코드를 해독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광고야말로 특정 사회의 특징을 칼로 자르듯 보여주는 <문화의 창>이니까요. 자본주의 발상국 영국과 사회주의 전통이 면면한 프랑스를 문화경제적 차원에서 구별 짓는 상징적 기표 중 하나도 광고입니다. 우선 표현적 특징에서 그런 차이가 드러납니다.

    이 프랑스 광고의 주인공은 귀여운 팬더곰. 전면에 딱 버티고 서서 WWF(세계자연보호기금 : World Wide Fund for Nature) 깃발을 휘두르고 있네요. 팬더는 WWF의 심볼마크로 활약하는 녀석.

    배경이나 등장 인물들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팬더곰이 질끈 밟고 넘어서는 것은 시가전에 등장하는 바리케이트입니다. 부서진 담장과 벽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네요. 팬더 옆에는 총 대신 자전거 핸들 잡고(친환경 교통수단을 상징하는 것) 실크햇 쓴 흑인청년(인종적 다원주의를 대표?), 영어 구호 새긴 티셔츠 입은 백인 청년, 꼬리를 흔들며 팬더에게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 ^^

    아이디어 소재와 구도를 보면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1830년 7월 혁명을 기념하여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사진 3)을 패러디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에서도 보고 파리코뮌에서도 보았던 지극히 프랑스적인 장면입니다.

    자유 여신

    팬더가 목놓아 외치는 헤드라인을 대충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환경에 대한 모욕을 멈추고 우리의 지구를 지키자!”

    왼쪽 하단에는 이 작품이 유명광고상을 수상했음을 알리고 있군요. 그런 정보가 아니더라도 매우 뛰어난 크리에이티브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패러디 유머와 판다로 상징되는 환경오염 및 동물보호 메시지가 절묘하게 결합되어있으니 말입니다.

    유머광고의 전통적 달인으로 영국 사람들을 많이 꼽습니다. 하지만 같은 유머라 해도 이 광고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단순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 그 배경에 프랑스만의 탄탄한 역사의식을 깔고 있어서입니다.

    제가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술과 문화와 패션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가 사실을 알고보면 유구한 혁명과 투쟁과 저항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이 가장 빈번히 이용하는 공공시설인 지하철,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상징적 코드라 할 수 있는 광고에서도 예외없이 그같은 저항과 전복의 기의가 녹아있는 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이같은 전통에 대해서는, 페흐 라쉐즈 묘지의 <파리 코뮌 전사들의 벽> 이야기를 통해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해 기우는 베르사이유 정원의 잔디밭에서 휴대폰 보조배터리를 의지해서 씀 –

    페흐 라쉐즈의 묘지들

    낯선 도시에 가면 유명인이 묻힌 묘지를 즐겨 찾습니다. 특별한 연고가 있을 리 없으니 거기 묻힌 누군가의 인생을 만나러 가는 거지요. 묘지만큼 특정인이 살다간 흔적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장소가 없으니까요.

    일본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문화와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묘지는 일상의 번요를 떠나있습니다. 그저 말없이 고요합니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그림자 춤을 추는 곳. 묘석과 흉상 사이를 천천히 걷노라면 치열하게 자기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이 말없는 말을 건넵니다. 제가 찾아간 페흐 라쉐즈 묘지 또한 그러했습니다(사진 4).

    페흐-1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묘지에는 7만기가 넘는 가족 및 개인 묘가 있습니다. 7월 25일 일요일 오전 11시. 파리 지하철 2, 3호선이 겹쳐 지나는 <페흐 라쉐즈> 역에서 내려 벽을 따라 300미터 쯤 걸어가니 정문이 나옵니다. 입구 안내소에서 지도를 받아야 할 정도로 묘역이 넓습니다(일요일에는 지도 배부가 없어 폰 사진으로 안내판을 찍은 후 일일이 화면을 확대해가면서 찾아다녔지요^^ (사진 5).

    2-2

    총 97개 구역으로 나눠진 페흐 라쉐즈에는 프랑스(와 유럽)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유명인들의 묘가 가득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여성 팬들이 묘비에 수많은 립스틱 자국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 그 밖에도 발자크(48번 구역), 쇼팽(12번 구역), 에디트 피아프(97번 구역)와 한때 그의 남편이었던 이브 몽땅(44번 구역) 등이 영원의 잠을 자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페흐 라쉐즈는 이미 십년 전에 다녀가야 했던 곳입니다. 그 해 국제광고제 때문에 칸느 갔다가 파리를 거쳐 귀국했는데 이상하게 일정이 꼬였지요. 마음만 간절했을 뿐 도저히 찾아갈 도리가 없었지요. 이번 여행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방문하리라 출발 전 단단히 결심을 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 묘지 북동쪽에 있는 <파리 코뮌 전사들의 벽(Mur des Federes)>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파리코뮌(Pari Commune)은 세계 최초의 노동자 자치정부. 1871년 보불 전쟁패배 후 부패 무능한 정부군 대신 파리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자체 무장을 했지요. 그리고 선거를 통해 시 전역을 통괄하는 민중 주도의 새로운 입법, 행정 정부를 구성하고 당시로는 혁명적인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개혁 정책을 실시했던 게지요. 이 비운의 정부가 존속한 시기는 1871년 3월 28일부터 같은 해 5월 28일까지 고작 2달이었습니다.

    5월 21일 파리코뮌의 급진성과 대외적 영향력에 공포심과 증오를 품은 정부군과 프로이센 연합군이 파리를 침공합니다. 튈르리 궁전 공원(루브르 박물관 뒤에 위치. 지금은 커다란 관람차가 돌아가는 시민공원으로 유명합니다. 사진 6)에서 열린 “코뮌전사자 가족을 위한 음악회”를 틈탄 기습 공격이었습니다.

    2-4

    방어선을 돌파한 2만 정부군(다음날 7만 명 증파)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코뮌군과 시민들을 잔인하게 죽입니다. 그리고 파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대대적 추격전을 벌입니다. ‘피의 1주일’이라 불리는 대학살이 시작된 것이지요(지난 시절 많은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이 사건에 비유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대혁명 시기에 나타났고 1830년, 1848년 혁명에도 다시 등장했던 바리케이트가 시내 곳곳의 도로에 설치됩니다(사진 7). 지난번 글에서 “팬더곰”이 밟고 넘어가던 바로 그 바리케이트 말입니다.

    압도적인 인원과 무력을 행사하는 정부군과의 싸움은 애초부터 상대가 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전투라기보다는 차라리 학살에 가까운 시가전을 통해 수많은 코뮌군과 비무장 시민들이 무차별 살해됩니다.

    지금은 무명화가들의 이젤 행렬로 유명한 몽마르트 지역의 경우, 바리케이트를 친 코뮌군 전부가(여성 100명 포함) 잔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당시 정부 공식 통계만 하더라도 총살 후 매장 비용이 지불된 희생자가 1만 7천명이었으니, 비공식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지 아무도 모릅니(사진 8).

    파리

    전투 중에 3만 명에 가까운 코뮌전사와 시민들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투 종결 후에는 코뮌 가담자 및 지지자 4만 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그 중 1만 명이 사형을 받았고 7000명 이상이 국외 추방을 당합니다(예를 들어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자였던 쿠르베는 상상을 초월하는 벌금에 파산을 한 후 스위스에서 비참하게 숨을 거둡니다).

    코뮌 소멸 이후에도 정부군과 그 주구들의 백색테러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세느강에 푸른 강물 대신 코뮌나르(코뮌 지지자)들의 시체가 흐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답니다.

    피의 일주일의 엿새 째, 5월 27일에는 파리 전역에 비가 내렸습니다. 퇴로를 완전히 차단당한 코뮌군은 도시 동쪽의 페흐 라쉐즈 묘지까지 밀리게 됩니다. 그리고 곳곳에 산재한 묘석을 방패 삼아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집니다(그때의 흔적일까요, 검은색 이끼가 낀 아주 오래된 몇몇 묘석들에는 아직 탄흔 자국들이 남아있습니다. 사진 9)

    2-3

    마지막 총알까지 소진된 코뮌군은 정부군과 피의 백병전을 벌입니다. 그리고 중과부적으로 남은 147명이 생포되고, 사로잡힌 전사들은 현장에서 즉결처분을 받습니다. 묘지와 시민 거주지를 구획하는 벽 앞에 일렬로 쭉 세워져 총살을 당한 거지요. 그 장소가 바로 제가 찾아가는 페흐 라쉐즈 북동쪽 77번 구역 뒤 벽돌 벽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벽은 파리코뮌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 혹은 비극을 상징하는 애절한 기념비인 것이지요. 제가 이곳을 꼭 찾아야겠다 생각한 것은 그들의 열망과 좌절과 그리고 죽음에 어떤 형태로든 예를 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리본을 만나다

    전사들의 벽이 있는 77번 구역은 묘지 북동쪽 맨 구석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안내판을 보니 그곳을 향하는 중간에 눈에 띄는 이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짐 모리슨, 발자크의 무덤은 방향이 달라서 건너뜁니다. 고엽(Les Fuilles Mortes)의 가수 이브 몽땅이 잠든 곳은 44번 구역. 그의 무덤도 보고 싶었지만 역시 포기. 하지만 프레드릭 쇼팽과 에디트 피아프의 무덤은 안 볼 수가 없네요.

    12번 구역의 좁은 오솔길 옆에 위치한 쇼팽의 묘지. 선이 여린 그의 옆모습을 새긴 릴리프 부조 앞에 시들었거나 아직도 꽃잎이 생생한 꽃다발 여러 개. 펜스 난간에는 흰 색과 빨간 색의 폴란드 국기 리본이 매어져 있습니다(사진 10.11).

    쇼팽

    페결핵에 신음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39살 젊은 나이에 이국에 묻힌 천재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생전에 조르즈 상드를 비롯하여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쇼팽답게, 오늘 무덤 앞에 서성이는 대여섯 명은 (저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입니다. ^^

    에디트 피아프의 묘는 전사들의 벽에서 50미터도 떨어져있지 않은 97구역에 있습니다. 곡예사 아버지를 따라 거리에서 최초로 노래를 불렀던 20세기 최고의 샹송가수 피아프. 하지만 평생 사랑에 목말랐고 역설적으로 평생 외로웠던 “어린 참새(Piaf)”의 고독을 떠올려 봅니다(사진 12).

    피

    97구역에는 개인 묘지도 있지만 다카우, 아우슈비츠 등 나치 강제수용소 희생자들의 묘비가 여럿 서 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갑자기 한국말이 들립니다. 20대 초반의 학생 들이 스무 명 남짓 다카우 수용소 희생자 묘비를 반원형으로 둘러서 있네요. 그리고 인솔자(역시 청년)가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유럽의 정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단체로 페흐 라쉐즈를 찾아온 모양입니다.

    눈빛을 반짝이며 설명 듣는 젊은이들 얼굴이 푸른 나뭇잎처럼 반짝입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목례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설명을 마친 가이드 청년이 저를 보더니 놀라면서 “혹시 김동규 교수님 아니세요?” 묻습니다.

    제가 더 놀랐습니다. 파리 한 구석의 묘지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페이스북 친구신가요? 물어보니 아니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신문 칼럼을 읽었답니다. 이런 인연이,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눕니다. 고려대학교 신입생들 스무명이 20일간 유럽 자동차여행을 왔다는군요. 여기는 코뮌전사의 묘를 보러 온 거냐고 물으니 모두들 일시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에디트 피아프 묘지 위치를 아냐고 여학생 한 명에게 물었습니다. 에디트,,,요? 눈이 동그래져서 되묻습니다. 그렇지요 이 세대들이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을 알 리가 없고 <빠담 빠담>을 알 리가 없겠지요. 웃으며 아니라고 말하고 작별을 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 목소리로 인사 건네더니 모두들 언덕을 넘어갑니다. 도란도란 멀어지는 목소리들 너머로 무슨 훤한 휘광이 비치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3명이 함께 묻힌 피아프의 가족묘는 생각보다 소박합니다. (그녀가 즐겨 입던 검은 드레스를 상징하는 것인지) 윤기 나는 흑요석 묘석 위에 십자가 위 예수가 누워있고, <EP>라는 금박을 새긴 화병이 놓여있습니다. 꽃들이 가득 꽂혀있군요. 역시 붉은 장미가 많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꽃다발은 “에디트 피아프에게(To Edith Piaf) 조르게와 세릴이(From Jorge & Cheryl)”이라는 인쇄글씨를 코팅 입힌 메시지입니다(사진 13,14).

    피아트---

    드디어 코뮌전사들의 벽입니다. 커다란 떡갈나무 너머에 가로로 길게 돌로 쌓은 벽이 누워있습니다(사진 15). 벽 너머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일반 주택들입니다. 담쟁이 덩굴로 덮혀있는 높이 3미터 정도 벽 한 가운데 대리석판이 붙어있군요. 거기에 이런 글귀가 부조되어있습니다. “1871년 5월 21일에서 28일까지, 코뮌 희생자를 위하여”(사진 16).

    묘지의 나무

    벽2

    작은 화단에는 팬지꽃이 불타오르고 석판 주위로 시든 꽃다발들이 여럿 놓여있습니다. 일흔살은 넘어 보이는 노부부가 먼저 와있군요(사진 17,18). 석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동구 어느 쪽 나라로 짐작되는 말로 조용히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묘지 벽

    벽 주변의 사람

    저도 벽으로 다가가서 석판을 어루만져 봅니다. 판을 둘러싼 담벼락에 작은 쇠고리들이 여럿 돌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작은 팬던트 하나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요(사진 19). 노란 색의 세월호 리본이! 이곳에서 세월호 리본을 만나다니….

    세월호

    누가 남겨놓고 떠났을까요. 조금 전 왔다 간 학생들일까요, 아니면 그 전에 다녀간 누구일까요. 갑자기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하늘을 쳐다봅니다. 구름들이 눈물로 어룽어룽 젖어듭니다.

    바람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여름 한낮. 파리의 묘지 한 모퉁이에 서서 코뮌전사들의 죽음과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을 함께 생각합니다.

    국가라는 잔인한 힘에 의해 희생되었으나 끝내는 민중의 가슴에 붉은 꽃처럼 되살아날 이름들. 백 수십 년의 시공을 넘어 서로 만난 이 애절한 죽음들 앞에서 멀리서 온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저 자꾸 벽을 만지고 자꾸 리본을 어루만지기만 합니다. 그렇게 종내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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